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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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趙仁鎬

1981년 충남 논산 출생.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sd31345@hanmail.net

 

 

 

다이너마이트의 미학

 

 

오늘밤 나의 식탁 위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의 심지처럼 한 소년을 검게 세워둔다

 

소년아, 너를 만지면 곧

캄캄한 사막의 밤이 온다

내가 모르는 어둠 저쪽에서 폭음이 울린다 불꽃은,

너의 팔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쾅쾅 어디로 튀었나

나는 두 귀를 막고 입을 벌린다

식탁 위에 쌓인 잿가루를 더듬거리며

추락한 불꽃을 집어 먹는다

소년아, 폭사한 너의 몸, 모래알처럼 까칠한

이 불꽃을 나는 씹어 먹는다

뜨거운 혓바늘로 돋아나는 너의 비명을

목구멍 너머 삼켜버린다

나는 불꽃을 우물거리다, 후후 입 밖으로 하얀 연기를 뱉는다

몸 없는 소년아, 너의 우스꽝스런 춤만이 허공에서

뭉게뭉게 흩어진다

다이너마이트를 관통하는 心地의 끝

나의 기름방울 같은 검은 눈동자 속에서

번쩍, 타오르던 저 소년의 불꽃!

 

보라, 오늘밤 나의 식탁 위에

불꽃 한마리, 불붙은 꼬리를 세운 사막여우가 달려온다

 

 

 

내 친구의 부대는 어디인가

 

 

내 친구는 군대 가기 싫어서 하루 종일 통조림만 먹었다 우적우적 먹고 또 먹어서 뚱뚱한 참다랑어처럼 잔뜩 배가 불렀다 입영통지서가 날아오던 날 마침내 내 친구는 사라졌다 식탁 위 고요한 통조림 하나 달랑 남겨두었다 내 친구의 부대는 어디인가 나는 궁금한 마음으로 훈련병의 편지를 뜯어보듯 통조림의 뚜껑을 서걱서걱 잘라내었다 뻥 입 뚫린 통조림 속에는 국방색 모포 같은 새벽이 들어 있었다 훅 땀냄새가 풍겼다 소금에 절여진 내 친구의 군가 소리가 짜디짜게 울렸다 사방이 철책으로 둘러싸인 밀봉의 연병장에서 완전무장 구보를 하는 내 친구가 있었다 손에 들린 소총의 총구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 친구의 눈빛, 캄캄한 물음을 둥글게 가둔 저 진공상태의 눈빛, 생선눈깔! 나는 그만 통조림을 닫아버렸다 뻥 입 뚫린 통조림의 이야기를 막아버렸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행군하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서 있는 통조림들을 보았다 서로 다른 통조림 속마다 어린이 같은 병사들의 편지가 신선하게 들어 있었다 어떤 통조림 속에선 누군가의 잘려나간 검지 하나가 까딱까딱 깡통을 두들기기도 했다 나는 몇개의 통조림을 샀다 새벽의 거리를 지나는 동안 통조림들은 비닐봉투 안에 담겨 달그락거렸다 그 둔탁한 이야기를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뻥 입 뚫린 통조림은 식사 내내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