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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창곤 편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밈 2010
오연호・조국 『진보집권플랜』, 오마이북 2010
진보-보수의 세번째 대논쟁이 시작됐다
김대호 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itspolitics@naver.com
작년쯤부터 진보와 보수 간에 국가비전과 집권전략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대중적인 관심도 예사롭지 않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젊은층의 투표율 상승과,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쌘델)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장하준) 같은 인문사회서의 등장은 더 나은 비전과 정책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관심의 반영이다. 어쩌면 2011년을 전후한 몇년은 8·15 해방 직후와 1980년대 중후반에 이어 세번째로 도래한, 국가비전과 집권(변혁)전략을 둘러싼 대논쟁의 시기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의식했는지 두 언론인이 논쟁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책들을 냈다. 하나는 한겨레신문 이창곤(李昌坤) 기자가 낸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대한민국 국가비전논쟁』(이하 『진보와 보수』)이고, 다른 하나는 오마이뉴스 오연호(吳連鎬) 대표기자가 낸 『진보집권플랜: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이하 『집권플랜』)이다.
진보와 보수는 작년 5월 한겨레신문 창간 스물두돌 기획으로 진행한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의 녹취를 푼 내용이 중심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저명한 원로, 정책브레인, 교수, 정치인 등 16명이 국가비전, 분배전략, 성장전략, 정치개혁 등을 주제로 나눈 양자 대담(논쟁)을 중심에 놓고, 전체를 기획했던 이창곤 기자와 7명의 사회자의 짧은 촌평(해제)을 붙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집권플랜』은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에 대한 성찰, 양극화 해소책(사회경제민주화), 교육, 남북관계, 검찰개혁 등에 대한 조국(曺國) 교수의 견해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냈다.
『진보와 보수』는 이정우 대 박재완, 이태수 대 곽승준, 최장집 대 박세일, 백낙청 대 안병직 등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일급논객들의 논쟁을 통해, 서로의 합리적 핵심과 논리적 맹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래서 줄 치면서 음미할 만한 내용이나 화두로 삼아 깊이 연구할 만한 내용이 정말 많다. 진보나 보수 공히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면서 지적·이념적 편식이 심한 시대에, 사고의 균형 하나는 확실히 잡아줄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 중의 핵심인 양극화 문제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비전·정책 생산 생태계’의 피폐상 때문인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선진국과는 판이한 대한민국의 바닥현실 내지 속살을 잘 모른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진보의 정책대안은 한마디로 구부러진 동전의 볼록한 부분은 그대로 둔 채 오목한 부분을 펴려는 시도이다. 보수는 현실인식에 관한 한 조금은 낫지만 비기득권층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줄 대책을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생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진보와 보수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도 집권플랜의 조국 교수도 우리의 노조조직률 10%를 들며, 노조가 더 강해져야 북유럽처럼 친노동적 사회제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북유럽 노조와 한국 노조의 차이를 너무 모른다.
북유럽 노조는 종업원이 수만명 넘는 수출대기업의 고용임금과, 종업원이 5명도 안되는 3차·4차 협력업체의 고용임금이 노동의 양과 질이 비슷하다면 별 차이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 평균임금은 1인당 GDP의 1배(예컨대 1인당 GDP 5만불 나라에서는 노동자 평균임금 5만불) 내외이며, 높다고 해도 2배를 넘지 않는다. 즉 임금을 상향평준화한 것도, 하향평준화한 것도 아니다. 노조와 사민당 주도로 수십년에 걸쳐 연대임금제, 노동시간 단축, 보편주의적 복지제도 등을 통해 중향평준화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북유럽의 높은 고용율과 노조조직률, 높은 세금과 큰 공공부문, 높은 사회적 신뢰도와 낮은 경쟁강도, 비교적 두터운 보편주의적 복지혜택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공기업 노조는 기업의 수익성과 노조의 교섭력이 허용하는 한, 노동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임금을 1인당 GDP의 3배든 4배든 올리는 것을 당연시한다. 또한 유사시 고용안전판으로서 적정한 규모의 비정규직을 필요로 한다. 가능만 하다면 단체협약으로 자식에게 현대판 하급귀족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한다. 노동의 양과 질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3차·4차 협력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는 안중에 없다. 대부분의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자를 안고 있는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이나 경영상황도 거의 살피지 않는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고용임금 격차가 엄청나게 커서, 원래 고졸을 전제로 직무가 설계된 9급 공무원 공채에 대졸자들이 모여들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현실을 오로지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1989년 20%에 근접했던 노조조직률이 왜 지금 10% 이하로 떨어졌는지, 198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자영업 비중이 왜 1991년 즈음에서 멈춰버렸는지, 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기 힘든지, 왜 대기업 고용비중이 급속히 줄어드는지, 왜 조세저변은 협소한 데 반해 복지수요는 거대한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보(이태수 교수)는 열악한 민생현실을 아파하면서 교육, 보육, 주거, 의료 등에서 사회적 임금형태의 보편적 급여 제공, 사회적 일자리 확대, 공공부문에서 안정된 일자리 제공,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부의 개입, 혁신경제와 공정경제 등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보수(곽승준 교수)는 진보의 견해를 ‘부두 이코노미’(voodoo economy, 과학적 처방과는 거리가 먼 주술에 의존하는 경제)라고 폄하한다. 보수의 인식과 진단은 이렇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감세 안하면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안한다.” “돈만 많다면 복지예산을 많이 쓰고 싶지만 돈이 없다.” 그리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가계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비 줄이는 정책을 실행했다.” 앞으로 “젊은층이 원하는 콘텐츠, 디지털 산업 등 써비스 산업과 금융써비스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의 실효성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신성장 산업육성정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진보와 보수』는 한국 진보와 보수의 이념·정책적 정수에 깃든 총체적 혼미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편저자 이창곤도, 일곱명의 논평자(사회자)들도 진보와 보수의 주장이 지닌 허점을 예리하게 짚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집권플랜』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1980년대 진보의 고정관념인 노동 대 자본의 대립구도를 전제로, ‘반신자유주의=친노조=진보=사회적 약자의 편’이라는 등식을 가진, 현실로부터 유리된 진보지식인의 혼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단적으로 조국은 법철학이 말하는 정의(正義)가 “사회에서 재화를 배분할 때 사람의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서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정의는 기업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서 멈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법철학적 정의는 원래 국가나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원칙임에도. 그래서 조국은 한국의 경쟁과잉, 학벌주의, 대학의 서열화, 비정규직 폭증 등을 통탄하지만, 원인을 제대로 못 보는 만큼 대책이 공허하다. 학력차별금지법, 연차휴가 다 쓰기 운동, 교사 수 대폭 늘리기 등이 그것이다. 사실 그의 핵심 주장, 즉 노동(노조) 강화,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당 좌클릭, 단위기업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뉴민주당플랜 우향우론, 참여정부의 소심(진보)론, 무상급식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대중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 건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게 만들었다는—등은 진보집권이 아니라 정권헌납(보수집권)의 핵심요소들이다. 대한민국의 바닥현실을 아는 중도적 시민이 진보에 등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적 독해를 통해 이 책의 오류들을 간파하여, 진보의 이념정책적 키를 자라게 한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진보집권플랜이 될 수도 있다.
원래 국가비전과 핵심정책은 정치인, 관료, 연구자, 언론인 등의 경험, 지식, 지혜의 총화다. 그런데 한국은 이론과 실물 간에, 전문분야 간에, 강단과 정치인 및 기업인 간에 교류와 소통이 매우 빈약하다. 무엇보다도 소통과 종합의 중추인 국회, 정당,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단, 특히 인문사회학은 한국 현실을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 비전과 정책을 생산하는 생태계 자체가 이렇듯 피폐한 상황에서 아름다운 꽃(훌륭한 집권전략 또는 정권재창출전략)이 피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진보든 보수든 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많이 교류하고 소통하고 집단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특히 바닥현실과 속살을 아는 정치인, 기업인, 진짜 서민층의 현실감각과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참여정부와 범진보의 동반 몰락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라서, 소심한 진보라서, 충분히 좌클릭 못해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 아니다.
해방 직후의 대논쟁은 국가체제, 토지개혁, 친일파 청산, 신탁통치 등이 중심이었고, 결국 한국전쟁이라는 참극을 거쳐 종결되었다. 1980년대의 대논쟁은 민주·민중운동진영에 국한된 변혁전략이 중심이었고 6월항쟁, 헌법 개정, 대선 및 총선을 거치고, 소련·동구의 붕괴와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종결되었다. 최근의 대논쟁은 진보와 보수 지식사회 및 정치권이 모두 참가하여, 비교적 상호존중의 분위기에서 양극화 해소, 일자리, 복지, 정의, 통일정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몇차례 선거와 집권을 통한 정책가설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 10년은 경과해야 마무리되지 않을까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과 통일 코리아를 향한 이념・정책적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긴 여정에 두 책은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