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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부의 미래』 청림출판 2006
미래학적 논의의 재미와 한계
박명규 朴明圭
서울대 교수, 사회학 parkmk@snu.ac.kr
토플러 부부(Alvin & Heidi Toffler)의 『부의 미래』(김중웅 옮김)는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쎌러 대열에 들었다. 저자의 유명세를 감안하더라도 650여면 분량의 쉽지 않은 책에 대중적 관심이 쏠린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우리 사회의 어떤 관심이 이 책을 베스트쎌러로 만들었는지, 이 책을 통해 어떤 생각들이 확산될지 헤아려보는 것으로 촌평을 대신할까 한다.
총 10부, 50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종의 종합적인 미래학 저술이다. 이미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명성과 흥미로운 사례 중심의 글쓰기가 이 책의 인기를 설명하는 요인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특히 눈앞에서 전개되는 최신의 변화들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조어능력이 읽는이에게 지적 자극과 흥미를 제공한다. 시간기근, 무용지식(Obsoledge), 진실관리자, 프로슈머(prosumer), 창조생산성, 잉여복잡성, 세풀베다 해법 등 처음 접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신조어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만족감, 다시 말해 현실주의적 욕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자 하는 정서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먼저 ‘부의 미래’라는 제목이 주는 함의에서 출발해보자. 이 책은 단순한 경영기법이나 ‘부자 만들기’류의 책은 아니다. 원제 ‘Revolutionary Wealth’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부’의 속성에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부를 ‘돈’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모든 종류의 효용’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부의 축적’을 무시하거나 경원시하는 시각에 기초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의 논지는 현재 진행되는 혁명적 속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미래의 부를 소유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부에 대한 고급한 관심’이 담겨 있다.
사실 부와 관련한 혁신적 논의를 담은 책은 그간 적지 않게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의 새로운 점은 부의 성격에 나타나는 혁명적 변화가 사회전반의 문명사적 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논지에 있다. 이에 따르면, 21세기는 시간·공간·지식의 세 영역에서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속도의 충돌, 가속에 대한 숭배, 불규칙한 박동과 발작, 와해되는 경계와 공간, 지식경제의 급부상 등을 동반한다. 제2의 물결이라 할 산업사회적 논리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현상들, 즉 화폐 없는 경제, 비시장적 교환, 탈상품화된 산업 등이 새로운 부의 창출 씨스템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시공간적 전환이 낳는 긴장과 모순을 통해 한반도의 현실과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흥미있는 분석을 펼친다.
이런 논지가 가장 집약된 것이 프로슈밍 경제에 대한 해석이다. 화폐경제와 구별되는 다양한 비영리경제, 자원노동, 무보수노동, 자급용생산 등을 포괄하는 이 개념을 저자들은 ‘화폐경제와 맞먹는 숨은 절반’이자 화폐경제를 작동시키는 ‘부의 창출 씨스템’의 근간이라고 본다. 특히 지식경제가 심화되면서 리눅스나 웹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취미와 비즈니스가 결합되고 자기실현을 위한 아마추어적 행위의 경제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인터넷 콘텐츠는 거대한 집단 프로슈밍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큰 자발적 프로젝트이며 이것이 만들어내는 부의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문명적 변화와 ‘부의 미래’를 연결시킴으로써 사회학자들의 부에 대한 무관심과 경제학자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무지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가 미래의 혁신적 조직모델로 지적한 유누스(M.Yunus)와 그라민(Grameen)은행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생각하면 저자들의 혜안과 넓은 시야가 놀랍다. 이 책을 읽는 동기야 어떠하든 많은 독자들이 비화폐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는 망외의 소득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하지만 평자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으며 독자 역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세계의 변화와 미래전망을 동일한 변인(變因)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성장이 산업화와 탈산업화의 흐름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에서 가능한 것이며, 미국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혁신, 창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에 기인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전세계가 모두 동일한 전략과 대응논리를 필요로 하는지, 비동시화나 가속화, 재세계화(re-globalization)가 낳는 사회경제적 효과가 지역과 주체에 상관없이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 책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대로 기업과 정부·관료조직 간의 변화속도 차이를 말하는 ‘비동시화’(de-synchronization)의 문제가 지식의 수준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회운동에 대한 저자들의 염려도 좀더 다차원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이 책은 최첨단의 미국조차도 기존의 조직과 관행이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내부폭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오히려 인문주의자나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와 NGO 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실 비판성이 반과학적 정서를 지녔으며 심지어 일부 사회운동은 과거 주류 기독교와 진보적 신앙의 대체물 노릇을 한다고 혹평한다. 최악의 경우에도 과학적 사유와 지적인 논의만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되리라는 저자의 지식인적 지향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운동에 대한 일방적 폄하는 적절치 않으며 전지구적 불평등 구조에서 유래하는 모순과 갈등을 간과하는 단순논리처럼 여겨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미래와 부를 화두로 삼고 혁신적인 자세를 갖추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아시아의 부상이 갖는 세계사적 함의가 강조되고 글의 곳곳에서 한국 사례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독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들의 멋진 말과 최신 정보 속에서 우리 자신의 문제의식과 성찰적 자세가 희석돼서는 곤란하다. 이 책의 논지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되 자신의 입장에서 숙고하고 음미하려는 태도가 동반될 때 발전과 부에 대한 좀더 종합적인 시야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