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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세방 李世芳
1941년 서울 출생. 1961년 자유문학사 신인상,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조국의 달』 『서울 1992년 겨울』 『걸리버 여행기』 등이 있음. saelee@saelee.com
가나다라마바사 8
시월상달 초승달도 서해에 지고
개천절에 은밀히 읊어보는 가나다라마바사
참으려야 참을 수 없이 번져나는 여자의 월경처럼
머나먼 조국을 벌겋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저 눈물겹게 아름다운 단풍을 보아라
보아라 조국을 벌겋게 물들이는
비애에 넘쳐나는
저 아름다운 가을을
단기 4339년 시월상달
단군이시여 들으셨나이까?
조국의 명치 그 깊은 곳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소리 소리 가나다라마바사
단군이시여 우리 민족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조국은 지금 어금니를 깨물고 칼을 갈고 있습니다
머나먼 조국으로부터 칼 가는 소리를 들으며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여자의 월경처럼
비애스럽지만 저 아름다운 조국의 단풍을 봅니다
금강산에서 묘향산으로
설악산에서 내장산으로
월경하는 저 아름다운 비애
싫건 좋건 잘했건 잘못했건
남과 북은 이미 한핏줄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가나다라마바사
둘의 나라 하나의 조국은
이미 하나의 운명으로
돌아설 수 없는 비장한 역사를 시작하였느니
보아라 머나먼 조국
비애스럽지만 저 아름다운
조국의 단풍을
또 보아라 머나먼
백두산에 하얗게 내린 첫눈을
그렇다 우리는 꼭 보아야 한다
천지로부터 솟아오르는
우리 민족의 지혜
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9
불어라 바람
북풍이건 남풍이건
남북 아니 북남 합작이건
불어라 바람
가나다라마바사 맙소사
한 나라가 두 나라로 갈라지더니
한 민족으로부터 세 개의 간첩단들이
아니 네 개의 간첩단들이
아이고 맙소사 가나다라마바사
그 옛날에는 일본 제국주의 친일파가 있더니
이제는 기름기 번드르르한 양키 간첩들
서울 복판에서 붙잡히지 않고 호의호식하니
남조선 파괴하려는 북한 공작단
인민공화국 높으신 양반들 암살하려는 ‘씨아이에이’
참으로 이건 무슨 깡패들의 수작인가
그래 불어라 바람
바람 다라마바가나사로 불어라 바람
남북 아니 북남만이 아니라
동서로 뻗은 태평양 건너
이 무식하게 얄궂은 양키나라에도
불어라 바람 마바사다라가나로
그래 차라리 너도 나도 모두 간첩이 되자
너도 나도 간첩의 또 숨은 간첩이 돼서
서로가 서로의 늑골을 꼬집어주든
배꼽을 간지러주든
뒤죽박죽 다라마바사가나다라
바람 바람 킬킬대는 바람을 일으키자
바람 바람 차라리 우리 다 함께 미쳐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