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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어떻게 넘을까
동아시아평화포럼 기조강연
카라따니 코오진 柄谷行人
일본의 사상가, 비평가. 주요 저서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탐구』 『트랜스크리틱』 『세계공화국으로』 『근대문학의 종언』 『네이션과 미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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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사고해온 사람입니다. 이 포럼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여러분께서도 모두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 서거나 서려고 하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공동체’라고 할 경우, 여러 국가나 자본 측에서 생각해낸 것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저에게 ‘동아시아공동체’는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각국 운동의 연합체로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운동의 연대는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국가나 네이션(nation)입니다. 국가나 네이션을 극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그것들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말이 이 포럼의 주제로 내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주의라는 말은 애매합니다. 가령 영어라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번역될 텐데 국가는 네이션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nation-state’라는 식으로 하이픈을 이용해서 연결하죠.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네이션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습니다.
맑스는 국가나 네이션이 경제적인 하부구조(토대) 위에 있는 정치적이고 관념적인 상부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후자가 해소되면 국가는 없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순서로 보자면 우선 국가권력을 잡아 자본주의를 해소하고, 그렇게 하면 계급이 없어지니까 국가도 네이션도 해소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지만 일이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주의권에서는 자본주의가 부정되었지만, 그 대신 국가가 엄청나게 강화되었습니다. 민족문제도 남았죠.
이런 실패는 국가나 네이션을 관념적인 상부구조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도 국가나 네이션은 ‘공동환상’이라거나 ‘상상의 공동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자본주의 경제도 똑같습니다. 제 생각에 국가나 네이션은 자본주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경제적 하부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가능케 한 경제적 하부구조와 다릅니다. 그럼에도, 나중에 다루겠지만, 국가나 네이션은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라 역시 ‘경제적 하부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나 네이션은 계몽주의적 비판으로 해소되기보다는 집요하게 남게 됩니다.
되풀이하자면 맑스주의 운동은 국가나 네이션을 단순히 관념적인 상부구조로 간주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실패를 만인 앞에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 1990년 소련 붕괴입니다. 그후 사람들은 국가를 통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방식을 부정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나 네이션을 지양한다는 생각도 부정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고 보입니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긍정하되 그것이 초래하는 계급격차나 환경파괴 등의 폐해는 국가에 의한 규제와 재분배로 바로잡아가면 된다고 말입니다.
결국 자본도 국가도 네이션도 영속적인 것이기에 부정해서는 안되고, 단지 그것들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 경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씨스템을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고 부릅니다. 이 안에서는 자본, 네이션, 국가라는 각각 이질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1990년 이래 사람들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지양할 것으로 보지 않으며, 더이상 근본적인 변혁이 불가능한 최종적 형태라고 생각하게 된 셈입니다.
예를 들어 동유럽 혁명에서 소련의 해체로 나아간 1990년경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미국 국무성 관리이자 신헤겔주의자인 프랜씨스 후꾸야마(F. Fukuyama)가 한 말이죠. 이 말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미국의 승리로 인해 향후 근본적인 혁명은 일어날 수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꾸야마를 비웃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옳았습니다. 물론 1990년에 일어난 일이 미국의 궁극적 승리라고 주장한 측면에서 보자면 틀렸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패권이 확립되어 세계화나 신자유주의가 일단 승리한 것으로 보였지만, 20년 후인 현재 그 승리가 파탄을 맞았다는 것은 명백해졌으니까요.
그러나 그 파탄의 결과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까요? 예를 들어 현재 각국에서 크든 작든 국가자본주의적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체인지’(change)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역사의 종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명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언’이란 더이상 근본적인 변화(혁명)가 일어날 수 없는 체제가 확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제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회로 속에 갇혀 있다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뱅글뱅글 돌 뿐인데도 역사적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그것을 넘어서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본, 국가, 네이션이 각각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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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회의1)에서 시민사회나 시민국가에 관해 논의했는데, 국가 즉 맑스가 말하는 정치적 국가는 한 국가의 내부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한 국가 내부에 시민국가가 실현되더라도 이는 곧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 의해 붕괴되고 맙니다. 환경문제가 국경을 넘어 여러 국민의 연대나 연합을 필연적으로 만들게 되리라는 논의가 어제 있었죠. 그 판단 자체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연대도 국가간의 대립에 의해 즉시 분열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동아시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각국 각지역의 대항운동은 국가나 자본에 의해 분열되거나 내셔널리즘에 회수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민적인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서로 분열되어 국가나 자본에 회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를 위해서는 국가-자본-네이션에 관해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10년 동안 『세계사의 구조』2)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맑스는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경제적 하부구조로부터 생각했는데, 이때 그는 ‘생산양식’, 즉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의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교환양식’으로부터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표 1>에 4개의 교환양식을 도해(圖解)해봤습니다.
A의 호수(互酬, 호혜)란 증여하고 이에 답하는 교환입니다. B의 정복-보호, 착취-재분배라는 것도 얼핏 보면 교환이 아닌 것 같지만 엄연한 교환입니다. 예를 들어 홉스는 국가의 근거를 각 개인이 주권자에 복종함으로써 안전을 획득하는 교환 속에서 찾았습니다. 즉 국가란 단순히 폭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에 의해 성립하는 것입니다. 또 국가는 폭력적으로 무언가를 빼앗지만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서는 오히려 상대방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약탈함과 동시에 재분배한다는 의미에서 국가는 교환양식 B에 뿌리를 두는 것이죠.
사회구성체는 이렇게 복수의 교환양식의 복합체로 존립합니다. 단 어떤 양식이 주요한가에 의해 차이가 납니다. 씨족사회에서는 교환양식 A가 지배적이고, 아시아적 국가·봉건적 국가에서는 교환양식 B가 지배적이며, 자본제사회에서는 교환양식 C가 지배적입니다. 어느 양식이 지배적이더라도 그와 다른 교환양식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남습니다. 예를 들어 교환양식 B가 지배적인 봉건적 국가에서도 교환양식 A(농업공동체)가 있고, 교환양식 C(도시·상업)도 있습니다. 단지 그것들이 국가에 의해 관리될 뿐입니다. 교환양식 C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A도 B도 남습니다. 단 변형된 채로 남게 되죠. 예컨대 그때까지 봉건영주나 왕이 가져가던 연공(年貢) 등은 국가에 의한 과세로 대체됩니다. 다른 한편 농업공동체는 해체됨과 동시에 상상적으로 회복됩니다. 그것이 ‘상상의 공동체’ 즉 네이션입니다. 결국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적 결합으로 존립하는 겁니다.
또 하나 교환양식 D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D는 B나 C가 지배적이 되었을 때 그것을 넘어서서 더 높은 레벨에서 A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D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보편종교로 나타났습니다. 고대에 각지에서 세계제국이 성립한 시점에서 출현한 것이죠. 이후 사회운동은 언제나 종교적 운동이라는 형태로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종교성을 탈피하여 ‘과학적 사회주의’가 됩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는 D입니다. 예를 들어 맑스는 공산주의란 미개단계에 있던 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그것은 상호부조적인 어쏘씨에이션(association)에 기초한 사회인 겁니다.
단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사회구성체만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존립하는 사회구성체는 없습니다. 국가는 항상 다른 국가에 대립하여 존재합니다. 국가를 그 내부로부터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즉 국가를 그 내부에서 해소하는, 혹은 지양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사회구성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른 사회구성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을 저는 ‘세계씨스템’이라 부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사회구성체는 다른 사회구성체와의 관계, 즉 세계씨스템 속에서 존재하며, 개별적인 단위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구성체의 역사는 세계씨스템의 역사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4단계로 나뉜다. 첫번째는 미니 세계씨스템인데, 이것은 교환양식 A(호수)에 의해 형성된다. 두번째는 세계-제국인데, 이것은 교환양식 B에 의해 형성된다. 세번째로 세계-경제인데, 이것은 교환양식 C로 형성된다. 세계-경제는 고대 그리스에도 있었지만 특히 근대의 세계-경제를 월러스틴(I. Wallersetein)을 따라 ‘근대세계씨스템’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형태를 취한다. 다음으로 이를 넘어선 새로운 씨스템이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교환양식 D로 형성되는 사회다. 칸트가 세계공화국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상이 『세계사의 구조』의 요약입니다. 500면에 달하는 책이라서 이런 요약은 너무 단순한 것이죠. 그렇지만 대충의 윤곽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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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문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것은 근대세계씨스템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금 사람들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비현실적인 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바마가 설파하는 ‘체인지’는 적어도 현상을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혁명의 구상보다는 현실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 혹은 근대세계씨스템은 종말에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자본의 축적, 더 풀어 말하자면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중국이나 인도가 경제성장을 완전하게 이룬 뒤 그것은 끝날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반이윤율의 저하로 나타납니다. 나아가 환경파괴나 자원고갈도 파국적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도 자본주의의 종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과 국가는 존속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활로가 있느냐? 바로 다른 국가와의 전쟁입니다.
여기서 결론으로 나아가기 전에 근대세계씨스템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존재해왔는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표 6>을 봐주십시오.
경제정책은 제국주의적・자유주의적・제국주의적・자유주의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오늘날 다시 제국주의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자유주의적인 국면은 헤게모니 국가가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1810년부터 1870년까지는 영국이 헤게모니 국가입니다. 한편 헤게모니 국가가 몰락하여 많은 국가들이 헤게모니를 차지하려 항쟁하는 상태가 제국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세계에서 헤게모니 국가는 셋만 존재했습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입니다. 네덜란드는 표에 들어 있지 않지만, 아무튼 헤게모니 국가가 지속된 것은 약 60년으로 그후 60년은 다음 헤게모니를 다투는 제국주의적 시대가 됩니다. 현재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잃고 다음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에 제국주의적 국면입니다. 19세기말의 제국주의는 영국의 몰락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제국주의적인 상태는 미국의 몰락에 의해 생겨난 것이죠. 예전의 제국주의와는 다르지만 많은 점에서 유사합니다.
19세기말의 제국주의는 레닌이 말했듯이 자본의 수출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했기 때문에 해외로 자본이 나간 것이죠. 이에 따라 군사침략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본의 수출은 자국의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대응하지요.
예전 제국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다윈주의, 즉 약육강식이었습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미국의 경제적 몰락과 함께 각지에 유럽연합(EU)을 필두로 한 광역국가, 제국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각각 역사적인 구세계제국의 판도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유럽, 중국, 인도, 이슬람권, 러시아, 중남미, 미국 등입니다. 앞으로 자원·에너지·시장을 둘러싼 제국들 사이의 경쟁은 경제전쟁 및 종교전쟁이라는 형식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국면과 제국주의적 국면을 정의함으로써 명백해지는 점은 역사가 일종의 반복성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자면 현재의 상황은 청일전쟁(1894) 시기와 유사합니다. 중국, 일본, 남북한, 대만의 지정학적 구분은 이 시기에 기원이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그 시점에서의 각국의 선택에 유래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택하여 서양열강의 제국주의에 진입해갔습니다. 일본은 선택을 잘못한 셈인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선택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후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문제는 이 지역만이 아니라 세계의 제국주의적 상황 속에서 봐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당시 러시아, 영국,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난 겁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 문제는 미국이 크게 관여하고 있고, 또 러시아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공동체가 만들어지느냐 대립이 생겨나느냐의 문제는 내부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과 세계 자본주의의 대응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지역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의 이데올로그들은 유럽연합이 주권국가라는 근대적 씨스템을 넘어선 기획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버마스(J. Habermas)는 다른 지역이 유럽의 예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결코 근대국가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국민국가를 넘어섰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광역국가(제국)를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죠. 실제 이런 광역국가는 근대사회씨스템 속에서 미국이나 일본에 대항하여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움직임에 대항하여 세계 각지에서 지역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이 세계씨스템 아래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광역국가는 과거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공동성의 기억에 바탕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경우 적대와 항쟁의 기억이 좀더 강할 겁니다. 단, 밖으로부터의 압력이 강할 경우 그런 적대나 항쟁의 기억을 잠시 괄호 안에 넣어두는 것이죠. 과거에 르낭(E. Renan)은 네이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함과 동시에 과거를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적인 공동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네이션이 앤더슨(B. Anderson)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라면 지역공동체도 ‘상상의 공동체’인 셈입니다.
이 경우 각 지역에서의 공동성은 다른 지역에 대한 적대나 공포로 확립됩니다. 각 지역에서의 평화는 다른 지역에 대한 적대나 전쟁으로 확립됩니다. 따라서 지역적인 공동성이나 평화는 중요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우선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공동체는 근대세계씨스템, 혹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변형이니까요. 그것은 새로운 세계씨스템이라기보다 낡은 세계제국의 부활입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세계제국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생각할 때 동아시아는 세계제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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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 세계는 19세기말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국면에 와 있습니다. 향후 세계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죠. 따라서 새로운 제국주의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전쟁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세계 각지의 운동 외에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운동은 즉시 분열되고 맙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제2인터내셔널에 속했던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1차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을 지지하여 제2인터내셔널은 해산하고 말았습니다. 맑스는 사회주의혁명이란 “주요한 민족이 일거에 동시적으로 수행함으로써만 가능하다”(『독일이데올로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동시혁명, 혹은 여러 국가 사이에서의 대항운동의 연합은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그런 국제적인 운동은 좌절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향후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이 칸트의 영구평화론입니다.
어제 소극적인 평화와 적극적인 평화의 구별을 말씀하신 분이 계셨죠.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는 적극적인 평화입니다. 그것은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단순한 정전(停戰)이나 적대행위의 연기가 아니라 일체의 적대행위가 끝나는 일”입니다. 이는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가 전면적으로 종말을 맞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는 국가의 지양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칸트는 원래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취급하는 도덕법칙이 실현되는 사회를 ‘목적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국가나 자본주의가 지양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 국가만으로는 성사될 수 없습니다. 국가들 사이에 적대가 존재하고 다른 국가를 수단으로서만 취급하는 상태가 있는 한 목적의 나라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목적의 나라가 실현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세계공화국이어야 합니다. 칸트의 역사철학은 세계공화국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 인류사를 보는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세계공화국이란 근대세계씨스템을 대체하는 세계씨스템입니다. 세계씨스템은 어떤 교환양식이 중심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들은 4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표 5). 미니 세계씨스템(부족연합체), 세계-제국, 세계-경제(근대세계씨스템), 그리고 세계공화국입니다.
최후의 세계씨스템은 어떤 의미에서 미니 세계씨스템을 고차원에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홉스의 원리(무력)가 아니라 호수성의 원리(증여)로 형성됩니다. 즉 교환양식으로 말하면 D인 것입니다.
칸트는 다국가연방을 생각했는데, 이는 원래 평화운동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구평화를 위하여』를 프랑스혁명 후에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다국가연방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칸트는 루쏘가 생각한 민주주의혁명을 지지했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혁명이라 불리지만 거의 사회주의혁명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루쏘와 다른 점은 민주주의혁명이 한 국가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공민적 조직을 설정하는 문제는 다국가 사이에서 외적인 합법적 관계를 창설하는 문제에 종속되는 것이기에 후자의 해결이 실현되지 않으면 전자도 해결되지 않는다”(「세계공민적 견지에서의 일반사 구상」). 이를 보면 칸트가 말하는 다국가연방이 ‘세계동시혁명’의 구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가 예견한 대로 프랑스혁명은 한 국가 안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주위의 절대주의 왕권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혁명정부는 혁명방위의 전쟁을 개시했고 이것이 정복전쟁으로 바뀌었죠. 이 시점에서 칸트가 영구평화를 위하여라는 책을 출판했기 때문에 평화론으로만 수용되었는데, 원래 이 글은 세계동시혁명을 위한 구상입니다. 프랑스혁명이 보여준 것은 한 국가만의 혁명으로는 혁명 자체의 성질이 왜곡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러시아혁명에서 반복되기도 했죠.
칸트의 다국가연방 구상은 19세기에 비웃음의 대상인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말의 제국주의 시대에 재평가되어 1차대전 후에는 국제연맹(LN)이 태어났습니다. 물론 이것은 무력했습니다. 미국 같은 대국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2차대전 후에는 국제연합(UN)이 생겨났습니다. 이것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국의 지지가 없으면 기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대국에 이용되기 마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무언가, 예를 들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국제연합이라는 것은 인간의 단순한 발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비참한 경험이 가져다준 유산이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국제연합은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씨스템, 즉 새로운 사회씨스템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국제연합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국가간의 외교나 전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국가 내부에서의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 즉 ‘밑으로부터의 운동’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한편 그런 대항운동은 국제연합처럼 여러 국가를 억제하는 장치가 없는 한 좌절되고 맙니다. 각국의 대항운동은 국제연합의 개혁을 공동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 고립이나 분열을 피할 수 있습니다. 국제연합을 통해서만 여러 국가들을 ‘위로부터’ 억제할 수 있는 겁니다.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동아시아 각국의 대항운동의 연합은 국제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 김항・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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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0년 11월 5~7일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포럼・한신대 공동주최 토론회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에서 발표된 기조강연문이며, 그후 필자 수정을 거쳐 일본 『세까이(世界)』 2011년 4월호 별책에 실린 원고를 전문 번역한 것이다. 원제는 「資本=ネーション=ステートをどう超えるか」이다. ⓒ 柄谷行人 2011 / 한국어판 ⓒ 창비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