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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2013년체제는 새로운 코리아 만들기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 보자
김대호 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저서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 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등이 있음.
itspolitics@naver.com
대관소찰(大觀小察)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미국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케네디, 레이건과 더불어 재임중 국정 운영을 매우 잘한 대통령으로 꼽힌 조사결과를 놓고 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첫째는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더 번영한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1)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흔히 역사감각(sense of history)이라고 한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선상에서 나라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흔히 국제감각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다른 존재와 비교해야 하듯이, 자기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세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OECD 지표를 주요하게 참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감각과 국제감각은 사고의 시공간적 확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위치(위상과 객관적 처지)와 세계의 흐름(방향과 속도)을 파악할 수 없다. 이끌어갈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멀찌감치 떨어져 망원경으로도 조망해야 한다. 일자리 사정, 기업과 가계 형편, 건강과 범죄 추이, 직업과 배우자 선호도 등 미시흐름을 살피고, 산업구조, 고용구조, 정치구조의 변화 등 거시흐름과 함께 세계화, 지식정보화, 기후변화, 중국의 부상 등 세계사적 흐름도 헤아려야 한다.
2061년에 편찬될 코리아 역사
우리 시대를 멀찌감치 떨어져 망원경으로 내다보자. 지금으로부터 50년 뒤인 2061년, 우리의 자손이 펼쳐볼 코리아 근현대사 교과서를 상상해보자. 21세기 첫 10년간의 시대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어떤 것들이 선택될까? 추측건대 6・15남북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비극적 죽음,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는 청년의 절규,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 그래프 등이 선정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1990년 이후 한국의 자살률 그래프와 노인자살률 국제비교 그래프는 아무래도 0순위가 되지 않을까 한다. OECD는 노인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을 표기하기 위해 원래 5명, 10명, 15명으로 증가하는 왼쪽 눈금을 사용하는데, 한국의 폭증하는 노인자살률을 표기하기 위해 20명, 40명, 60명, 80명 (…) 160명으로 증가하는 별도 눈금을 만들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자살률 그래프를 보면, 잔잔했던 바다에 90년대 초반부터 큰 풍랑이 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자살률 그래프는 그야말로 거대한 쓰나미를 연상케 한다. 자살이라는 것이 아무리 개인의 실존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그 원인을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깝고도 직접적인 원인은 노령연금제도가 부실하고, 근로소득이든 자산소득이든 사적이전소득이든 노인들이 소득을 얻을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멀고 간접적인 원인을 보자면 급격한 핵가족화(대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도시화, 가계 교육비 부담, 중국발 산업구조조정 압력, 벤처중소기업의 발목을 잡아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틀어막는 기득권 과보호의 노동・금융・유통시장 및 원・하청관계, 부가가치를 국내화하는 능력(부가가치 유발계수)과 고용을 창출하는 능력(고용계수)이 현격히 떨어지는 산업구조 등이 꼽힐 것이다. 한반도의 기후 및 일조량과 한민족의 성정과 문화, 절대적인 부의 수준 등을 종합하면 한국은 그리스, 스페인, 이딸리아, 멕시코 등 라틴계 민족처럼 자살률이 결코 높을 수 없는 나라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살대란, 특히 노인자살대란은 90년대 후반 북한의 대량기아사태처럼 일종의 사회적 대학살이라고 기록되지 않을까?
그런데 노인자살대란을 파고들어가보면 우리 시대 고통과 갈등이 대부분 거의 동일한 뿌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급격한 사회적 지각변동으로 인해 변화의 압력이 거대하게 밀어닥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와 무능이다. 이 중심에는 한국정치와 지식인사회의 취약한 현실진단・해결 능력과 저열한 원(願)이 자리하고 있다. 그로 인해 국가가 복지로써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정의로써 사회적 강자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2061년에 코리아 근현대사의 시대구분을 하는 역사가가 있다면 지금을 어떤 시대범주에 넣을까? 추측건대 전후 복구가 본격화된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대략 30여년은 냉전과 분단체제하에서 남북한이 각각 동서 양 진영의 모범생으로 발전해가는 시기로 기록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대략 2010년대 중반까지 30여년은 수명이 다한 남북의 발전체제와 분단체제를 해체하여 평화번영이라는 새로운 발전체제를 정립해가는 시기로, 그후 대략 30여년은 코리아의 재통합을 이루고 한민족이 세계사적 사명을 이행해나가는 시기로 기록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기록될 역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이 새로운 발전체제를 모색하는 대전환기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지난 30년간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남미 등 대부분의 문명국에서 이전 수십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바라는 대중적 열망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해온 정치사회적 화두는 단연 개혁과 통일이었다.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연출한 민주・노동세력은 일찍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혁명, 변혁, 개혁, 통일을 부르짖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 시대(전두환),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노태우), 신한국(김영삼), 제2건국(김대중), 새로운 대한민국(노무현), 선진화 원년(이명박) 등 정권의 간판구호들이 그 증거다. 6월항쟁과 더불어 대전환의 분수령으로 간주되는 김대중정부는 80년대부터 선진국과 중국, 인도, 남미, 동유럽, 동남아 등이 공유하던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경제)의 개혁원리를 충실히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요 경제사회지표인 성장률, 고용률, (청년)실업률, 상・하위 10% 임금격차, 출산율, 자살률, 노사분규, 교육 관련 지표, 조세재정 지표, 정치사회적 갈등 등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체제 대전환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1980년 이후 극심한 경제사회적 위기를 겪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 경제, 금융, 복지, 노동 씨스템 등을 개혁했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정치사회적 갈등이 벌어졌다. 전반적으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국가부채 비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정치사회세력 간에 자기 나라가 가야 할 큰 방향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식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전환의 선봉에 섰던 미국과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 보수당(영국 보수당, 미국 공화당)과 진보당(영국 노동당, 미국 민주당) 간에 정권교체가 두세번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의 합리적 핵심을 흡수하여 정권교체에 따른 경제사회정책의 변화폭은 그리 크지 않았고, 정치사회적 갈등도 극심하지는 않다. 통일 후 오랫동안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독일은 꾸준한 내부개혁에 힘입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엔진’으로 거듭났다. 일본, 러시아, 브라질도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가장 극적인 체제전환을 이룬 중국은 1989년 천안문사태 등 개혁 몸살을 앓았지만 성공적으로 수습하여, 지금은 사회 전반에 ‘오늘보다 내일이, 현세대보다 자식세대가 훨씬 나을 것이고, 조만간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넘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30대 이상의 경우 자신은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교육,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수입과 기회를 누렸지만, 자식세대는 그보다 결코 나을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이 그 징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 진보, 개혁, 평화, 복지 등으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해온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이 전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정부가 의도한 세상도 아니요, ‘잃어버린 10년’이니 ‘선진화 원년’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누구에게 힘(권력)을 실어주고 기다려도 국민 다수가 바라는 사회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정치가 안정된 나라라 할지라도 좀체 해결이 안되는 고질적인 문제는 있다. 미국의 과중한 의료비 부담, 총기사고, 인종갈등과 중국의 공산당 일당체제, 빈부격차, 소수민족 문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 나라 주류 정치집단과 지식인사회는 문제가 무엇인지, 나라가 어디쯤 와 있는지 대체로 잘 알고 있고, 나름대로 전략적 해결방향을 잡아서 비교적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기득권집단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조차 모르고, 알아도 강고한 기득권질서에 발목이 잡혀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기껏 내놓는 해법들도 구부러진 동전의 볼록한 면은 그대로 두고, 오목한 면만 펴려는 무망한 시도가 많다. 진보와 보수의 핵심 가치 및 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자, 그 실체조차 의심스러운 마녀 사냥이 횡행하고 있다. 만악의 근원으로 자주 지목되는 마녀의 이름은 ‘좌파정권’과 ‘신자유주의’다. 단적으로 검색엔진 구글(google.com)에서 ‘신자유주의’를 치면 한글문서 423만개, ‘neoliberalism’을 치면 영문문서 213만개가 뜬다. 반면에 ‘자유주의’와 ‘liberalism’은 각각 357만개와 1690만개가, ‘민주주의’와 ‘democracy’는 2690만개와 1억 7300만개, ‘정의’와 ‘justice’는 850만개와 6억개가 뜬다. 웹문서의 절대량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출구 잃은 분노와 불만은 때때로 폭발적으로 분출하여 정치적 지진과 화산을 만든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극단적인 보수 쏠림, 그 몇개월 후 터진 대규모 촛불시위, 최근의 ‘희망버스’ 현상 등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말과 퇴임 후의 수난으로, 집권세력의 예외없는 도살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50년 뒤에 코리아 근현대사를 살피는 역사가는 지금 시대를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과도기의 정점으로 규정하지 않을까 한다.
1953년체제의 해체
국가와 정치의 본령은 외부의 도전(군사적 침략, 환경재앙 등)으로부터 공동체를 방어하고, 구성원의 사고와 행위를 규율하는 질서(철학, 가치, 제도, 문화 등)를 잘 세워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질서의 핵심은 승자도 패자도 억울함 없이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게임규칙이다. 다양한 ‘가치생산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사회적 동기부여체계 또는 상벌체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고, 우리를 규율해온 주요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하겠다.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 민주화, 외환위기 조기극복 신화를 창조한 제반 질서가 수명을 다하여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정치집단과 지식인사회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수준의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 아니 남북한 전체를 규율하는 가장 밑바탕의 질서인 1953년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체제를 만들고 유지해온 결정적인 힘인 동아시아 냉전의 대결구도는 진작 끝났다. 남한은 더이상 적화통일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체제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제는 남북간의 긴장관계가 생래적으로 보수 친화적인 기업과 금융에도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53년체제 형성과정에서 훈장을 주렁주렁 단 인사들의 생물학적 수명도 거의 다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의심받아온 북한의 체제 내구력도 어느정도 증명되었고, 남한의 대북 강경정책의 한계도 노정되었다. 이명박정부가 3년여 동안 견지한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노선의 기조를 스스로 폐기하거나 크게 변화시키려 했음이 북한의 비밀회담 내용 폭로를 통해서 드러났다. 이제는 ‘후천성 분단인식결핍증’ 환자거나, 적화통일 위협에 떠는 ‘피해망상증’ 환자만 아니라면, 향후 몇년간 한국정치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가 1953년에 공고화된 분단체제를 해체, 재편하는 일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 재편의 내용은 최소한 2000년 6・15정상회담,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10・4선언을 이행하는 것이다. 더 나아간다면 남북이 동시에 역사의 분수령으로 삼을 만한 획기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인데, 그것은 백낙청(白樂晴)의 말대로2)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대규모 경제지원 패키지와 더불어 북한이 흡수통일 위협을 크게 덜 수 있는 한반도의 재통합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국가연합 건설”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가 아닐까? 어쨌든 남북관계의 대반전은 외교, 국방, 재정, 산업(남북 분업, 물류, 북한 SOC 투자 등) 질서의 대대적인 재편을 요구한다.
이밖에도 인류의 생활양식 전반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거대한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위기, 에너지・자원 위기, 국제 통상・산업질서의 변화(FTA, 역내 경제공동체 등), 중국과 인도의 정치경제적 비상, 인간의 소통・관계방식의 변화(SNS, 인터넷)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우리의 생활방식과 국가씨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준엄한 도전이다. 여기에 응전하는 일 역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구성될 새 의회와 행정부의 난제들이다.
문제는 1987년체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분단체제의 해체, 전인류적 위기에 대한 대응, 복지지출의 획기적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비록 정치의 취약한 통합조정 능력과 강고한 기득권구조 탓에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박정희, 재벌, 관료, 김대중, 민주・노동세력 등이 주도적으로 만든 발전체제에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사실 지금 한국인의 삶을 규율하는 기본질서는 1953년체제와 1987년체제다. ‘주식회사 한국’ 혹은 ‘관치경제’체제라 불리는 1961년체제는 정치적으로는 1979년의 10・26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통해 치명상을 입은 뒤 1987년의 6월항쟁, 7~9월 노동자대투쟁, 직선제 개헌, 1988년 총선으로 해체되었다. 경제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와 그뒤 몇년간의 급격한 경제개혁에 의해 해체되었다. 70년대 들어 뚜렷한 한계를 보인 ‘박정희 씨스템’을 청산하려는 노력은 전두환정부에서 시작되었고, 6월항쟁과 한국 자본주의의 자신감 회복(3저호황)에 힘입어 민주화・자유화・개방화 흐름을 탄 노태우—김영삼—김대중정부에 의해 거의 완결되었다. 사실 ‘관치경제’체제의 청산에 관한 한, 80년대 민주・민중・시민세력뿐 아니라 1노 3김도, 재벌대기업도, 보수 지식인사회도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가 주도한 경제개혁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에 폭력적으로 이식한 질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속도와 수순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특히 조직노동의 반발은 격렬했지만, 전반적으로 당시의 경제계와 시민사회의 상식에 부합하는 측면이 강했다. 결코 민영화, 규제 완화, 노조 탄압, 작은 정부, 복지 축소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새처와 레이건식 신자유주의 개혁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정부의 경제개혁은, 크게 보면 한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상화를 추구한 87년체제의 연장(경제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당시 조직노동의 반발도, 최근의 비정규직 철폐투쟁,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농성투쟁 등도 87년체제의 연장(노동판)이긴 마찬가지다. 그것은 87년체제 자체가 경제사회모델(국가비전)에 대한 합의 없이 국가, 시장, 사회에 대한 독재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억압을 철폐하고, 개인 및 집단의 자유로운 권리와 이익추구의 자유를 보장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가능한 나라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97년체제’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 것은 이 용어가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한 측면인 자유주의와 시장주의 개혁만 과도하게 부각시킬뿐더러, 그나마 이를 몽땅 신자유주의로 뭉뚱그림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대안이 모호하고 허황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대중정부의 개혁이 거칠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경제민주화, 자유화, 개방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것은 80년대 중반 이래 소련과 북한 모델을 추구한 일부 급진좌파를 제외한 시민사회의 확고한 상식이었다. 물론 시대의 상식을 구현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상식을 구현했음에도 뭔가 심각한 결함 탓에 한국사회가 그 누구도 바란 적 없는 사회가 된 만큼 성찰이 깊고 넓어야 한다는 얘기다.
87년체제의 짙은 그늘
87년체제는 아래로부터 광범위한 대중동원(민주화운동)에 의해 탄생한 체제다. 또한 독재세력 및 보수 기득권세력과 야당 및 민주화세력의 타협에 의해 탄생한 체제다. 그 산물로서 5년 단임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체계는 기본적으로 독재 방지에 치중한 나머지, 책임정치와 유능정치 등 많은 가치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득표제를 채택한 국회의원 선거제는 1구 2인 동반당선을 보장한 기존 제도보다 당시 여당(민정당)에 불리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3김의 분열을 노린 여당의 어부지리 책략과 서울과 호남에 집중된 지지기반을 가진 김대중의 책략이 결합한 것이었다. 의외로 반민정당 정서가 강해서 민정당의 어부지리가 무력화되긴 했지만, 이 제도로 유력 정당들의 지역 분할・독점구도는 강고해졌다.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이들의 물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는 엄청난 부동산 개발이익을 사유화할 수 있게 한 토지소유제도 및 조세제도와 결합하여 국회의원을 국민 전체의 대변자가 아니라, 도로 뚫고 교량 놓고 공항 짓는 예산 등을 따와서 자신의 부동산 가치를 올려주는 ‘지역(부동산)개발 일꾼’으로 전락시키려는 압력이 강하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끊임없는 정책적 헛발질의 주요한 뿌리 중의 하나다.
87년체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던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호황기’에 탄생한 체제였기에 경제 패러다임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투쟁을 주도한 세력들은 농업국에서 불과 30년 만에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상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신화를 창조한 한국식 자본주의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사회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은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대기업 노조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의 철학과 정서는 한마디로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곳에서 선도적 투쟁을 통해 근로조건을 끌어올리면, 그 영향이 주변지역이나 동종산업으로 파급되어 나머지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킨다는, 사익과 공익이 완전히 일치되리라는 속 편한 가정을 깔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의 빼앗긴 권리 찾기가 곧 정의라는 신념을 내면화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머릿속에는 가치생산 생태계의 균형(지속가능성)이나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합리적인 불평등(공평),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화시킨 국가비전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30여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해온 민주・노동・민중・시민세력은 보수와 마찬가지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큰 그림(국가비전) 없이, 대체로 자신이 부당하게 빼앗기고 억눌려온 약자라는 확신을 깔고 상하좌우(공동체 전체)를 살피지 않은 채 자기 권리 찾기에 매진해온 것 아닐까? 물론 사회적 약자의 권리 주장이나 부당하게 빼앗긴 내 몫 찾기란 정의고 공공성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권리를 전투적으로 주장하는 주체가 더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면? 또 부당하게 빼앗기기는커녕, 부당하게 빼앗는 존재가 되었다면? 당연히 그 주장은 정의도 공공성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압축적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의 약자가 강자가 되고, 부당하게 빼앗긴 자가 빼앗는 자가 되는 일이 무수히 일어났다. 각자 빼앗긴 권리를 찾아 각개약진만 하면 그것이 곧바로 공공성이 되는 시대가 더이상 아닌 것이다. 단적으로 여성의 정치적 진출 확대를 위한 여성정치인 프리미엄은 청년, 장애인, 노인, 중소기업가 등 다양한 소수자, 전문가, 정치신인 들의 권리와 충돌한다. 각자 공공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교권과 학생 인권, 수사권과 피의자 인권, 검찰권과 경찰권, 의권과 약권 등이 맞서고 있다. 또한 수도권(효율성)과 지방(균형발전)이 대립하고, 육체노동의 권리와 지식노동의 권리, 노동권과 자본권, 현세대 권리와 후세대 권리 등이 부딪치고 있다.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제각기 ‘족(族)’(토건족, 복지족, 보건족, 사학족 등)이나 ‘마피아’를 구성하여 충돌하고 있다. 이는 정부 부처 간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87년체제는 국가와 사회의 주인노릇을 하던 독재권력을 몰아내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한 체제다. 시장과 사회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을 철폐하고 개인, 기업, 집단의 자유로운 권익 추구를 보장한 체제다. 그런데 힘센 이익집단에 의해 가치생산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것을 막고 합리적인 사회적 상벌체계를 운영할 진짜 주인과 충직하면서도 유능한 대리인(정치, 관료, 언론 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민주화의 핵심가치로 반독재, 탈권위, 분권, 자치, 참여, 노동권, 도덕적 신뢰, 깨끗한 정치 등은 중시했지만 투명, 공정, 공평(합리적 불평등), 유능한 정치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했다. 결국 87년체제는 독재 방지에 치중한 나머지, 공공의 핵심인 정치적 안목, 책임성, 국가경영 능력 등이 매우 약화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 속에 정치의 혼미와 무능을 틈타, 공공적 마인드는 취약하지만 재력, 조직력, 전문성, 여론 조작력 등을 가진 관료(검찰이나 모피아 등), 재벌, 토건족, 언론집단, 직능협회 등의 정치사회적 힘이 급성장했다.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선출권력은, 특히 진보적 선출권력은 이 거인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포박・포섭당하는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개인과 기업의 탁월한 변신・적응능력에 비해 국가와 사회 씨스템의 형편없는 수준은 한국정치의 상대적 왜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9년 경제파탄과 정치파탄 상황에서 측근에게 피살된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잦아들지 않는 것은 보수언론의 장밋빛 덧칠 탓만은 아니다. 박정희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61년체제가, 곳곳에서 부조화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지금의 87년체제와 달리 상당기간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돌아갔고, 모순의 폭발시기에 박정희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불의한 방법이긴 하지만, 경제발전의 핵심자원인 금융・인재・노동력의 흐름을 좀더 생산적인 부문인 수출・제조업・민간 등으로 유도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관료와 이익집단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박정희는 ‘집을 통째로 훔칠 수 있기에 자기 것이 될 유리창을 깨는 짓은 하지 않는’ 큰도둑 내지 큰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진보진영의 김대중에 대한 향수도 그 뿌리는 동일하다. 김대중이 압도적 다수 지분을 보유한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던 시절, 민주당의 이익은 곧 김대중의 이익이었다. 그래서 김대중은 당의 전국적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재야인사, 영남 민주인사, 386 학생운동 지도자, 각 분야 전문가 등을 자신의 지분을 내주면서라도 과감히 영입했다. 또한 당을 위해서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영남 등에 나가 싸운 낙선자들을 배려했다. 그러나 김대중 이후의 민주당 안에서는 많아야 5~10% 수준의 지분을 가진 고만고만한 중진들이 각축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민주당 전체의 이익은 자신에게 많아야 5~10% 정도만 이로울 뿐이다. 아니, 새로운 정치세력이 당에 들어오면 자기 지분이 줄어들지 모른다. 당연히 당 전체의 이익은 뒷전이고 오로지 자신(자기 계파)에게 유리한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계몽군주는 사라졌으되,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주인으로 등극하지 못한 민주당의 기풍은 과거에 비해 한참 퇴행했다. 사실 민주당의 기풍은 한국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그런 점에서 87년체제를 만든 세력들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천착하지 않고, 선진국에서 운영되는 제도를 수입하거나 빼앗긴 권리 찾기에 전력하면 살 만한 세상이 된다는 생각에 그쳐 있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
초보의사의 중환자수술 후유증
지금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경제・금융 및 복지의 질서는 최종적으로 김대중정부에 의해 짜였다. 김대중정부의 개혁은 IMF와 미국 재무성의 압력을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1961년체제를 개혁하려고 줄기차게 노력해온 경제관료 및 금융 전문가와 개혁적 지식인의 오랜 염원을, 외환위기를 오히려 도약기회로 삼고자 거칠게 구현한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가 깔아놓은 레일을 충실히 달려갔다. 씨스템 개혁의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참고 기다리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은 이 씨스템으로 실현할 2030년의 미래상을 재정계획과 연계하여 그려본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무시했지만, 실은 김대중정부가 완성한 씨스템에 박정희적 요소(단속경제, 환율 조작, 폭력적 억압)를 가미하고, 이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 시절에 보여준 저돌적 추진력과 변칙, 편법까지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1987년 이후 한국정부의 경제개혁 원칙은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신자유주의라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런 점에서 김대중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4대부문(기업・금융・노동・공공) 개혁과 복지개혁의 성과, 한계, 오류를 규명하는 것은 2013년체제의 디자인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4대부문 중 가장 역점을 둔 것이 금융개혁이었다. 금융개혁의 초점은 은행이었다. 은행이 개혁의 중심에 있어야 했다.”3) 그래서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수많은 부실은행을 서둘러 폐쇄하고, 은행간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해 재빨리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도록 했다. 그러나 금융개혁이 마무리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의 심장인 은행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과 중소기업 등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은 너무나 약화되었고, 안전한 부동산 담보대출을 선호하다보니 부동산 투기를 떠받치는 든든한 자금공급원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2013년 이후 건설할 새로운 발전(평화번영)체제는, 김대중정부가 못다 이룬 금융기능의 정상화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기업 부담을 덜어주고, 구조조정으로 쏟아져나온 유휴노동력을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이나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노동기본권(노조의 정치활동 허용, 교원노조 합법화)과 함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했다. 그러나 고용유연성은 힘센 노조가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 더 힘센 공무원은 비껴간 채 힘없는 민간 중소기업에만 관철되었다. 한때는 재벌대기업이 인재 유출을 걱정할 정도로 달아올랐던 벤처기업(dot—com) 열풍은 2000년을 넘기지 못했다. 기업・금융개혁과 중국 특수 등에 힘입어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임직원에 대한 보상을 강화했다. 대기업들은 동시에 비용 절감과 유연성 제고를 위해 공정(工程) 분할이 가능한 업무나 주변적인 업무를 최대한 외주하청화했다. 좋아진 경영실적을 신규고용 창출이 아니라 종업원의 고액연봉으로 전환하는 데 노조와 경영진의 의견이 완벽히 일치했다. 따라서 민간 중소기업이 노동력을 조달하는 외부노동시장(성밖)과 대기업 및 공기업, 공무원 등 좋은 직장(성안)의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둘 사이의 왕래는 거의 단절되었다. 성안 사람을 성밖으로 밀어내는 인력구조조정은, 복지매트리스도 얇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낙차가 너무 커서 2009년 쌍용차,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보여주었듯이 일종의 살인행위처럼 되어버렸다. 당연히 성안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했고, 경영진도 성안의 고용유지에 진력하면서 신규채용은 극소화하고 외주하청화는 극대화했다. 이에 비례하여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도 점점 치열해져갔다. 대기업이 차지하는 고용비중 또한 점점 줄어갔다. 1987년 이전과 달리 고졸자가 좋은 직장(생산직)에 들어갈 기회가 완전히 없어지면서 대학진학은 필수가 되고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고자 하는 살인적인 청년실업대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독특한 한국적 모순에 대해 진보세력은 복지 확대(2차 분배구조 개선), 공공부문의 적극적 역할(청년고용할당제 등), 예외없는 정년보장(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철폐 등) 말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새로운 발전체제의 난제다.
기업개혁의 핵심은 ‘5+3’원칙에 집약되어 있다. 이는 1998년 1월 김대중 당선자와 대기업 총수들이 합의한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보증채무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핵심사업 설정), 경영자 책임강화’라는 5개 원칙과 1999년 8·15 경축사에서 밝힌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억제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부당내부거래 및 변칙상속증여 차단’이라는 3개 원칙을 말한다. ‘5+3원칙’은 기업들이 실행할 능력만 있다면 정말 바람직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바람직한 기준이라고 해서 마구 들이대면 안되는 법이다. 당시는 김대중의 말대로 “정경유착을 통해 엄청난 대출특혜를 받은 기업은 돈줄만 죄면 무너지게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은행들은 자기 손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해본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놓치면 기업개혁을 할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판단한 김대중정부와 은행은 초보의사였지만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중병환자에게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그러다보니 많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그룹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하던 재벌 및 중견기업과 이들이 선도하던 진취적인 경영마인드, 중요 기업의 내국인 지분율이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중저가 부품의 최강국 중국과 첨단부품 소재의 최강국 일본 사이에 낀 조건에서 한국 특유의 고비용구조를 해소하지 못하다보니,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이 진행되면서 국내 산업연관효과가 급격히 약화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잘나가는 기업들의 실적(매출, 이익, 수출)과 국내 고용 및 부가가치의 연계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정도가 외환위기 전보다 더 높아졌지만, 이들은 이제 해외매출 비중이 압도적이고 재무구조도 건실해졌기에 정부가 통제할 방법도 마땅찮아졌다. 게다가 정부가 쥔 공정의 칼이 무디고 칼질이 서툴다보니,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5)에서 보듯이 부당내부거래와 변칙상속증여 대책에서는 큰 진전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결과적으로 산업생태계의 피폐로 인해 재벌계열사가 아닌 독립기업들이 성장해 올라오기가 정말 힘들게 되어버렸다.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대기업 및 공기업, 공무원, 국가가 면허증을 통제하는 전문직의 처우가 매우 좋다보니 벤처중소기업이 청년인재를 끌어들이기 힘든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재벌대기업의 인재 빼가기, 기술 탈취, 대기업 유통망을 통한 착취, 연대보증제도 등 채권자를 과보호하는 금융방식까지 겹치면서 삼중고, 사중고를 겪고 있다.
공공개혁의 핵심은 규제개혁과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김대중정부 기간에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한국종합화학, 한국통신 등 8개의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요금이 인상되는 등 소비자 후생이 악화되었다는 곳은 없다. 오히려 민영화로 기업이 가진 다양한 잠재력이 발휘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규제개혁의 경우 풀어야 할 규제는 풀고, 있어야 할 규제는 존치시킨다고는 했지만, 풀어야 할 규제는 “이익집단의 필사적 로비와 국회의 동조”로 많이 축소, 변질되었다고 한다.6) 한편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로 파탄에 이른 가계 긴급구제책이자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부동산 분양가와 신용카드 현금써비스를 자율화했다. 하지만 적절한 시점에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결과적으로 민생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김대중정부의 공공개혁은 규제개혁과 민영화의 속도, 범위, 수순 등 여러 측면에서 시비할 거리가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과연 공공개혁의 핵심을 짚었느냐 문제다. 2009~11년에 집중적으로 드러난 검찰과 금융감독기관의 후진성을 보면 그러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공공부문이 지닌 문제는 기본적으로 공공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관료 입장에서 ‘돈 되는 일’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공의 핵심인 정치에 대한 무지와 무능의 소산이다.
한편 ‘생산적 복지’로 명명된 복지개혁에서는, 기초생활보호제도 등 선별주의도 가동했지만 그 골간은 4대 사회보험료에 기초한 보편주의였다. 하지만 사회보험료(국민연금 등)조차 낼 수 없는 500만명은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복지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 종사자였다. 이들 수백만명의 소득을 높여주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시키는 것은 이 시대 최고 최대의 과제지만 진보든 보수든 그 누구도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복지씨스템이 너무 얇기도 했지만, 사각지대가 너무 컸다.
종합하면 김대중정부의 4대부문 개혁과 복지개혁은 우선순위, 속도, 전제조건 확보 등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서 혹은 선별주의라서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외환위기 상황이라 불가피했다고도 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 대부분은 초보의사가 중환자를 수술하면서 생긴 후유증이다. 초보의사는 김대중정부와 구조조정의 선두에 선 은행과 관치경제 탈피를 외친 많은 경제개혁가들만이 아니다. 실은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주도한 세력도 구체제를 과감하게 수술한 초보의사였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노태우・김영삼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1987~88년의 민주주의에 대한 거친 수술과 1997년 이후 몇년간의 시장경제에 대한 거친 수술의 후유증이 악조합되어 합병증이 극도로 심화된 상태다. 이 합병증은 단지 진보와 보수 정치세력의 수술(개혁), 수습 미숙 탓만은 아니다. 급격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세계 공장화, 분단체제 재편의 실패 등이 가세하면서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국내외 환경변화에 조응하여 씨스템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 남과 북,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성찰과 모색을 건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처럼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모두, 그전 10~20년 동안 행해진 서툰 수술의 깊고 다양한 후유증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한술 더 떠서 남북관계, 내수 진작, 중소기업 활성화, 민주주의 등에서 완전히 역주행하면서 모든 것을 더 악화시켰다. 민주화나 87년체제의 그늘이 짙다고 박정희・전두환체제를 대안으로 삼을 수 없듯이, 자유화・개방화나 김대중 개혁의 그늘이 짙다고 이를 전면 부정한 어떤 체제(착하고 유능한 박정희 씨스템, 독일・스웨덴 씨스템 등)를 대안으로 삼을 수 없다. 2013년체제는 87년체제와 김대중 개혁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이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헌법, 정당법, 선거제도, 관료제도, 교육제도, 복지제도, 조세・재정구조, 민주・노동운동의 문화와 관행 등 수많은 질서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김대중이 남긴 미완의 4대부문 개혁, 복지개혁, 분단체제 재편은 그것대로 하고, 또다른 4대 혹은 6대부문 개혁(헌법・선거법・국회법을 포함한 정치, 사법, 조세・재정, 교육 등)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2013년체제는 87년체제가 간과하거나 경시한 가치들인 분단체제의 재구성, 고용률과 임금근로자 비율의 향상,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에 맞고 노동의 양과 질에도 상응하는 보상체계 구축, (노동과 자본간 재분배, 조세・재정을 통한 재분배와 더불어) 노동간 재분배를 통한 중향 평준화, 청년인재의 흐름 건전화, 기업의 국내투자 및 고용에 대한 공포 저감, 수출 및 매출의 국내고용과 부가가치 유발 효과의 제고, 서민과 벤처중소기업 금융의 정상화, 부동산 불로소득 최소화, 중국발 구조조정 압력 대응, 유연안정 씨스템 구축, 정치의 유능화(관료 및 이익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등을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13년 이후 한국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집단과 지식사회는 성찰과 모색 작업을 ‘건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처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도움닫기 하고 있나? 장대를 준비하고 있나?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탄생하는 중앙권력은 시장(기업, 금융, 노동, 부동산, 통상)질서, 정치질서, 사법질서, 조세・재정질서, 외교・안보전략 등 개인과 기업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문제를 다룬다. 반면 지방선거를 통해서 탄생하는 지방권력은 개인과 기업과 국가가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지역주민이 여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당적(黨籍)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데서 보듯이 재량권 행사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야권연대와 중앙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야권연대는 참여하는 정치주체가 같을지 모르지만, 국민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은 보수가 만들 큰 질서와 진보가 만들 큰 질서의 차이를 지방선거보다 훨씬 주의깊게 따져보게 되어 있다. 진보진영에서 점점 큰 힘을 행사하는 진보좌파는 반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가격규제(분양가 상한제, 이자율 상한제, 전월세 상한제, 최저임금 대폭 상승 등)와 진입장벽(대형마트 입점 제한, 자영업 허가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끼칠 일파만파의 후폭풍이나 풍선효과를 면밀히 고려하지 않으면, 자신의 지지자가 될 수 있는 ‘한계기업’ 종사자 수백만명을 노동시장에서 쫓아내어 보수 쪽으로 내모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시대 수많은 빈곤, 갈등, 절망, 죽음의 확실한 원흉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와 시장’은, 단지 규제가 적어서, 경제주체들의 자유가 과잉이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탄생할 의회와 행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무척 어렵고도 중요하다. 기후변화, 에너지・자원위기 등 세계 공통의 난제를 한국에 맞게 해결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다른 나라는 이미 해결했거나 아예 없는 과제인 분단체제와 수명이 다한 발전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집단과 지식인사회의 준비 정도는 너무나 보잘것없다. 2013년 이후 본격화될 개혁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전—새로운 산업이나 진짜 유전—에서 엄청난 부가 나오든지, 아니면 말없는 후세대의 몫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의 기득권을 침해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의 정당한 권리든 부당한 기득권이든 이를 지키기 위한 결사항전은 진보나 사회적 약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한국이 생산력 수준에 비해 이렇게 살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은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의 권익에 관한 한, 엄청나게 근면하고 유능하고 철저하기 때문 아닌가? 이는 1인당 GDP를 기준으로 각 산업, 기업, 부문, 직능의 처우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2013년 이후 한국의 기존 질서에 대한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래서 개혁은 무식하고 집요하고 저돌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명박정부야말로 이런 생각이 만든 정부 아닌가? 결과는 어땠는가? 이루어놓은 것이 무엇인가? 아마도 앞으로 들어설 그 어떤 정부도 이명박정부만한 완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압도적 지지율과 국회 의석수, 보수 친화적인 검찰과 사법부와 재벌대기업, 시장지배적 언론 등. 이런 완력을 가지고도 제도적 개혁의 성과는 거의 없다. 물론 ‘비핵・개방・3000’이나 4대강사업 같은 몰상식한 목표를 독선적・저돌적으로 밀어붙여서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시대 한국의 모순은 단단한 데 반해, 정치라는 도끼자루는 푸석푸석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박정희시대의 경제개발이 엄청난 이익이 쉽게 생기는 1960년대 허허벌판 강남 개발이라면, 지금의 개혁은 ‘용산참사’를 낳은 구도심 재개발 같은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총체적 완력이 이명박정부보다 훨씬 약할 수밖에 없는 진보정부가 가져야 할 무기와 자세가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대관소찰(大觀小察)’에서 나오는 심모원려(深謨遠慮)의 지혜와 끈기,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의 견고한 연대일 것이다. 이 중심에는 국가경영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잘 조직된 정치집단과 지식인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갖추지 않은 집권 경쟁은 정치적 도살장에 들어가기 위한 싸움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정치가 2013년 이후 직면할 장애물은 긴 도움닫기 없이는 건널 수 없이 넓은 심연이다. 긴 장대나 사다리 없이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다. 도움닫기나 사다리는 곧 2013년체제를 구상하고 운영할 준비된 정치집단과 지식인집단이다. 도움닫기 없는 야심찬 도전의 결말은 비참한 추락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경쟁에 뛰어들 사람들은 욕망과 포부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 보면, 어떤 배를 만들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야권연대 혹은 정치연합의 문제는 이 중차대한 민족사적 과제와 자신의 왜소한 힘을 인식할 때, 한마디로 백낙청의 말처럼 “원(願)을 크게 세우면” 상당부분 풀리게 되어 있다. 2012년 대회전에서 성패의 관건은 시대와 국민을 아는 대관소찰, 자신을 아는 자아성찰(自我省察),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지공무사(至公無私), 분열과 유아독존을 뛰어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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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05.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