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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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거미』 『가뜬한 잠』등이 있음. ppp337@hanmail.net

 

 

 

고라니

 

 

산마루 넘어가던 눈발들이

그만 쉬어 가자 쉬어 가자,

산마을에 든다

 

더는 못 가겠다고

절벅절벅 주저앉는 눈발들,

 

가쁜 숨을

가쁜 걸음걸음을

산마을에 부린다

하루걸러 사흘 나흘 닷새

길은 끊기고

 

밤새 고라니가 다녀갔다

 

똥글똥글

콩자반 같은 똥을

상사화 지던 처마 밑에

찔끔 누고

 

무청도 얼은 배춧잎도

없는 사내의 집을

순하게 다녀갔다

 

까마득 고픈 눈빛만

말똥말똥

까맣게 두고 가서

 

눈발도 그만 순하게 지나갔다

 

 

 

난 빨강

 

 

난 빨강이 좋아 새빨간 빨강이 좋아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

빨강 립스틱 빨강 바지 빨강 구두

그냥 빨간 말고 발라당 까진 빨강이 좋아

빼지도 않고 앞뒤 재지도 않는 빨강

빨빨대며 쏘다니는 철딱서니 같아서 좋아

그 어디로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빨강

난 빨강이 좋아, 새빨간 빨강이 좋아

해종일 천방지축 쏘다니는 말썽쟁이, 같은 빨강

빨랑 나도 빨강이 되고 싶어 빨랑

빨랑, 빨강이 되어 싸돌아다니고 싶어

빨빨 싸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나도

빨강이 될 거야 새빨간 빨강,

빨강 치마 슈퍼우먼이 될 거야

빨강 팬티 슈퍼맨이 될 거야

빨강 구름 빨강 바다 빨강 빌딩숲 만들러 날아다닐 거야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빨강,

막대사탕처럼 달달하게 빨리는 빨강,

혀를 내밀면 혓바닥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빨강

빨-강, 하고 말만 해도

세상이 온통 빨개질 것 같은 끈적끈적한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