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표성배 表成倍

1966년 경남 의령 출생.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으로 등단. 시집『아침 햇살이 그립다』『저 겨울산 너머에는』『개나리 꽃눈』『공장은 안녕하다』등이 있음. p-rorxh@hanmail.net

 

 

 

망치의 노래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가

저 고운 선율에 마음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의 처음처럼 맑은

바람소리처럼

누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가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익숙한 소리

 

화려한 드레스에

하얀 손이 움직일 때마다

빗방울이 튕기듯 손가락을 튕기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에서 울려퍼지는

마음이 평화를 느끼는 소리

나는 한번도 들은 적 없다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소리지만

나는 내 표현에 동의한다

 

선율이란 나도 몰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선율이란 나도 몰래 다리를 흔들게 하고

선율이란 나도 몰래 온몸에 활기를 넘치게 하는

선율이란 이런 것이라는 믿음,

 

지금 내 몸을 흔들게 하고

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내 몸이 나도 몰래 긴장에서 풀어지는

저 소리는 나의 피아노 소리

저 소리는 나의 바이올린 소리

 

 

 

간판

 

 

길 건너

간판집 간판이 어둡다

자세히 보니

간판집 간판이 말이 아니다

 

길 건너 간판집

간판처럼

사실 내 간판도 말이 아니다

 

열다섯살부터 이력이 붙은

용접이나 선반가공 경력이 뚜렷한

내 간판은

연필로 쓴 이력서보다

손바닥이나 손등의 상처자국이 대신 말해주는데

간판집 간판은

내 손등의 상처자국보다

바람에 긁힌 자국이 더 선명하다

 

볼수록 안타까운

간판집 간판은

등이 굽은 아버지 같다

손등이 마른장작 같은 어머니 같다

나이 사십 중반에 한숨을 달고 사는

내 누님 같다

공장에서 돌아와도 웃음이 없는

내 아내 같다가

변변찮은 간판을 속옷주머니에 넣고

공장 정문을 서성이는 사내 같다가

 

사내의 긴 그림자가

사내의 발길보다 더 무거워 보여

보는 내가 더 안쓰럽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간판집 간판은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