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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중・일 작가가 말하는 동아시아문학

 

몽골에서 만난 신화적 상상력

 

 

김형수 金炯洙

1959년 전남 함평 출생. 1985년 『민중시』로 등단.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대한 추억』 등이 있음.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면 몽골의 사막지대가 나온다. 한국인이 고비사막이라 부르는 곳은 남(南)고비이고, 그곳은 도룬고비 또는 동(東)고비이다. 지상의 쌍봉낙타가 다 모여드는 곳, 밤이면 별빛 노을이 지고 이웃은 지평선 바깥에 있다. 지평선 너머에 지평선, 그 너머에 또 지평선이 있으니 어두운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으면 앞뒤가 온통 별밭이다. 고개를 쳐들 필요도 없다. 코앞에도 별, 등뒤에도 별, 머리 위에도 별이 떠서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가 말을 건다. 눈빛도 먼 곳으로, 목소리도 먼 곳으로, 마음도 한없이 먼 곳으로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좁은 가슴에 커다란 그리움이 들어차 서울의 작은 골목들까지도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바람에 묻어가면 친구들의 옷자락에 나붙어 흔들릴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고대 유목민은 바람을 새로 표현했다고 한다. 도룬고비에는 항가르뜨(붕새)가 날았다는 곳이 있다. 메마른 바다 색깔을 하고 있는 그곳에 서면 장자의 붕새 이야기가 절로 떠오른다.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붕새로 변해서 하늘로 승천하면 구만리장천을 난다! 공교롭게도 그곳이 바로 한반도 황사의 발원지다. 에구, 대륙풍이라 하는 거대한 새가 날아가느라 봄마다 우리들 숨도 못 쉬게 했던가보다.

친한 시인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울란바토르에서 기차로 여덟시간, 승용차로 꼬박 하루를 달리는 거리를 아주 가깝다고 말하는 이. 도룬고비가 거룩한지 내 고향 밀래미 장터가 거룩한지를 놓고 가끔 키재기를 하기도 했다. 부러운 것은 그 넓은 대지가 암각화를 끼고 있어 마치 초원의 화랑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한번은 저물녘 암각화를 보다가 그에게서 낙타 이야기를 들었다.

 

옛사람들은 열두개의 해가 번갈아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령님이 이를 가르치려고 고안한 것이 십이간지이다. 그 특성을 동물들에게 나눠주려고 소집하자 곳곳에서 원숭이, 양, 개, 돼지 등 모두 열세종류가 모였다. 한해 한해 짝을 맞추다 보니 낙타와 쥐가 남았다.

“어라! 해는 하나인데 동물은 둘이네. 어떡한담?”

“신령님, 제가 먼저 왔습니다.”

낙타가 나서자 발밑에 있던 쥐가 하소연을 했다.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안 쳐다보는 겁니까?”

신령님은 고민 끝에 내기를 걸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먼저 본 동물에게 남은 자리를 주겠다.”

키가 큰 낙타는 신이 났다. 쥐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한지라 고민에 빠졌다. 낙타와 나란히 서보니 키가 너무 작고, 혹 위에 올라타면 해 뜨는 쪽이 낙타의 기다란 대가리에 가린다. 쥐는 궁리 끝에 반대쪽을 쳐다보기로 했다. 동이 틀 무렵에 낙타가 먼저 기분좋게 외쳤다.

“야, 해가 떠오른다. 곧 빛이 나올 거야.”

그때 쥐가 만세를 불렀다.

“저 햇빛 좀 봐라! 내가 이겼다.”

낙타가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쥐의 말이 옳다. 동쪽에서 뜨는 해는 서쪽을 먼저 비춘다. 쥐가 열두해에 포함되자 낙타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 쥐구멍이 있는 흙더미를 보면 멋대로 나뒹굴어 시샘을 한다. 신령님이 낙타를 불러 타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낙타야, 네 몸에는 열두가지 동물이 다 있어. 쥐의 귀, 소의 배, 호랑이의 발굽, 토끼의 코, 뱀의 눈, 말의 갈기, 양의 털, 원숭이의 혹, 개의 넓적다리……”

“용은요? 또 닭과 돼지는 어디를 닮았단 말이에요.”

“어허, 하늘은 용을 만들 때 네 몸을 본떠 만들었어. 닭의 벼슬이 네 것과 닮은 걸 어찌 모르느냐. 또 돼지의 꼬리도 네 것과 똑같아. 그러니 넌 모든 해를 가지면 되지.”

 

이런 이야기는 내게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한다.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먼 것, 가공의 단계를 많이 거친 것일수록 인체와 불화를 일으킨다. 생각의 재료도 마찬가지다. 암각화로부터 만년씩 달아나서 전혀 다른 세계에 와버린 듯이 생각하지만, 인간세상은 실상 그리 멀리 오지 못했다. 유목민의 경험과 이야기 들은 옛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최첨단 문명의 증상들을 통찰할 때 사용되는 사회적 인식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양치기의 경험에서 파생된 ‘공유지의 비극’이 그렇듯이, 십이간지에 속하는 동물들의 특성을 모두 지녔지만 그 때문에 소외되어 친구를 잃은 낙타의 이야기도 인간의 처지를 탁월하게 은유한다. 가령, 너무 많은 것을 가지면 정체성을 잃는다. 큰 산은 바위나 계곡 하나로 유명해지지 않는다. 진정한 거인은 주특기가 없다. 이것이 ‘낙타의 비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나는 그때 몽골에서 열달을 살았다. 한국의 인터넷 매체에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낮에는 초원을 돌고 밤에는 누리꾼에게 자랑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아시아의 중세를 그린다고 하면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의 상(像)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념이 자리잡는 것이다. 나는 가톨릭과 비(非)가톨릭의 싸움으로 얼룩진 골방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유목민과 농경민이 부딪쳤던 광야의 중세를 그리고 싶었다.

현지에서 유목민중 생활사를 취재하는 과정은 한없이 어렵다. 나의 신체에 새겨진 ‘협역 다수의 문화’는 ‘광역 소수의 대지’에 내놓으면 너무나 유치해진다. 여기서 슬쩍 귀띔을 하자면 그곳은 한국의 작가들이 단체로 찾아가서 퍼다 써도 될 만큼 신화가 남아돈다. 그래서 이야기꾼은 ‘이곳’보다 ‘저곳’을 좋아하나보다. 유럽 최초의 소설들은 무한해 보이는 세계를 편력하는 여행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얻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과 아무런 경계도 없는 공간은 그러나 결코 미래가 그치지 않을 유럽의 한가운데’(이건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패권자의 세계가 아니라 국경의 세속성을 지워버린 어린왕자처럼 지구별의 가난한 성자들의 삶에 몰두하고자 했다.

 

대지의 유구함에 비추어 인간의 삶은 매우 유한하다. 그 짧은 생애에 겪게 되는 적막과 소란, 두려움과 위안, 출생과 이별의 시간은 어느 나라 말로 옮겨도 상관없다. 한국문학이라 해도 좋고 아시아 지역문학이라 불러도 무방하며 세계문학이라 해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내 고향의 장터를 목격해버렸다. 지금은 할머니의 젖가슴처럼 되어 있을지라도, 고향 장터가 그냥 오지의 재래시장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계 시장경제체제에 흡수된 약 40억 인구의 삶의 거점이라는 사실, 그래서 나의 밀래미도 부끄러운 기억 속에 숨겨둔 전라도의 시골장터가 아니라 지구의 보편적 삶의 장소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인 한명이 사망하는 것은 한개의 도서관이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인류의 문명이 대지를 잃어가는 속도는 너무도 빠르다. 인간의 사유는 깊고 넓어진 것이 아니라 미궁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신체의 수명은 길어지고 인식의 크기는 작아졌다. 거기에서 오는 문화적 재앙에 우리는 무척 둔감하다.

“오늘날에는 자아에 조금만 상처나 고통이 가해져도 그것이 영원한 중요성이 있는 것처럼 현미경을 대고 검토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독, 주관, 개인주의를 거의 신성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펜 속에 모여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우리가 서로를 질식시켜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우리의 고독에 대해 푸념하고 있다.”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말이다.

디지털문명이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인간과 대지가 전혀 별개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육지에서는 대형 지진이 일어나고, 바다에서는 쯔나미가 몰아닥치며, 사막에서 황사가 일어 도시를 위협해도 인간 정신은 문명의 어항 속에서 지느러미 자락만 파닥거린다. 존재의 미천함을 탄식하고 만다. 그래서 문학은 변변한 대지의 정신 하나 얻지 못하는 지적 오락물로 끝없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아직도 ‘미(Me) 밀레니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자기연민에 시달리는 사춘기적 문학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아시아와 신화적 상상력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대지가 아직 가까운 주변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