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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용임 李庸任
1976년 경남 마산 출생.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함. yommimi@naver.com
가슴
수련의 두 줄기 시든 자리
향기의 소용돌이
빛의 기억이 성성한
이빨 가득한 그늘
네 안의 장미유곽으로 와요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물빛
만나는 무늬들 익사하는 오후
오래 고인 색을 빨아들이는
꽃잎, 닫히다 만 문
늙은 시인과의 대화
사기등잔에서 흘러내린
맑은 불빛
물에 씻긴 여름
자개항아리
뚜껑에 국화가 그려진 사탕통에서
그는 구멍 뚫린 주머니를 꺼냈다
화원의 자물쇠와
무희의 등뼈
사금을 캐는 계절의
49일간의 폭풍을
그림자만큼 헐렁한 주머니에서
그는 또 꺼냈다
머리에 총알이 박힌 자살인형들을
계단에 묻힌 시체를
벽장에 감춘 사생아를
당신의 연인은 누구입니까
그는 몸에 묻은 잔볕을 탈탈 털었다
묽은 빛이 걸어나가자
여든여덟개의 계단을 내려가
그는 물고기가 떠다니는 지하방이 되었다
또, 또요
격렬한 거리가 걸어나왔다
일요전쟁과 석간혁명이
호외를 알리는 딱새들의 해안이
피로 물든 흡연구역이
장미를 파는 노파들을 토해내고
우기와 부러진 우산을 건져내고
깨진 수조에 담긴 구름과 일요일을
맹인 동료들과 앉아 있던
귀머거리 주점의 나무의자를 꺼내놓자
그는 뜨거운 물을 마셨다
헤어질 시간일세
관에 드러누운 왼손과 악수하고
그는 마지막으로 밤을 꺼내
양뺨에 발라주었다
눈꺼풀을 내릴 때마다
거대한 흰 손이 보이는
물에 불은 손가락이
형체를 잃을 때까지 씻어낸
단어들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심장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