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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013년체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
교육의 2013년체제를 만들자
이기정 李基政
서울 창동고 교사. 저서로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국어공부 패러다임을 바꿔라』『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 『학교개조론』 등이 있음. gaedong11@naver.com
무엇을 얼마나 이룰 것인가
국민이 교육의 2013년체제1)에 요구하는 과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바꾸는 것,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 붕괴되어가는 학교 교실을 되살리는 것. 이 세가지가 아닐까. 입시와 사교육, 그리고 학교 붕괴는 그동안 (초·중등)교육에 대한 논의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주제였다. 이것들은 분명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교육에서의 2013년체제는 그 해결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2013년체제 또한 교육부문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그 성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과도한 목표 설정은 잘못된 정책, 잘못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목표를 냉철하게 한정해야 한다.
입시교육의 문제
입시 위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의 편협함이다.2) 주입식 교육, 암기식 교육, 창의력을 말살하는 교육 등으로 흔히 얘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시교육의 편협함에서 벗어나는 것, 이 과제에서 우리의 전략적 목표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입시 문제로 골치를 앓는 우리에게 ‘입시의 폐지’는 매력적인 유혹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깔끔하고 단순한가. 물론 입시 폐지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그것만이 입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들의 눈에는 이 글에서 제시하는 모든 정책이 시시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입시의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그 가능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모든 곳에 인재를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돈과 권력과 인기가 몰린 곳에 가기를 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인재의 배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을 최소화해 사회 통합을 유지하려면 사회구성원들이 승복할 수 있는 어떤 룰이 필요하다. 이때 시험이라는 수단이 그 룰로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대학진학 단계의 인재배분 과정에서는 시험이 가장 덜 나쁜 방법일 수 있다. 대학진학 단계에서 시험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인재를 배분하는 것은 더 큰 악을 부를 수 있다.
대학진학은 인재의 사회적 배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사실상의 첫번째 과정이다. 고교평준화를 통해 고교입시는 폐지해야 하지만, 대학입시는 그 필요성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물론 대학진학이라는 단 한번의 과정으로 인생의 너무 많은 것이 결정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그것은 입시의 폐지가 아닌 다른 방법을 써서 해결해야 한다. ‘패자부활전’이 널리 존재하고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돈과 권력과 명예의 격차가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을 통해 말이다.
대학입시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완전한 폐지는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교육정책은 대학입시의 폐지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세울 수밖에 없다. 즉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입시교육의 폐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입시와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여기서 우리의 전략목표는 ‘절반의 해결’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머지 절반에 대한 토론과 부분적 성취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입시교육의 편협함을 상당부분 극복해낼 수 있는가? 절반의 해결은 가능한 것인가?
흔히 입시교육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차원의 교육이 존재할 수 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의 교육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4차원 이상의 고차원적 교육은 입시를 넘어서야 비로소 가능하고, 입시에 얽매이는 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3차원적 교육까지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대한민국 학교 교육은 과연 몇차원 교육일까. 3차원적 입시교육을 하고 있을까. 그래서 이제는 4차원적 교육으로 발전해야 하기에 입시의 폐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일까. 혹시 우리는 3차원은커녕 2차원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1차원적 교육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1~4차원이란 교육의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말이 아니다. 1차원 교육에도 잘하는 교육과 못하는 교육이, 4차원 교육에도 잘하는 교육과 못하는 교육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틀, 곧 패러다임이다.)
편의상 시험을 가지고 설명해보자. 대학입시에는 세가지 시험이 존재한다. 학교 시험(내신),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논술). 이중에서 원론적 측면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학교 시험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당위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시험 자체만 보았을 때 셋 중 가장 차원 낮은 것이 학교 시험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가장 차원 높은 것이 대학별고사다. 즉 1차원-학교 시험, 2차원-대학수학능력시험, 3차원-대학별고사, 이런 도식화가 가능하다.3)
교육적 측면에서 가장 가치있는 학교 시험이 가장 저차원이라는 것은 큰 문제다. 학교 시험은 1980년대에 존재했던 학력고사와 비슷한 차원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학력고사는 수능시험보다 단편적인 암기지식이 훨씬 많이 요구된다. 주어진 교재를 달달 외우는 단순 성실성이 가장 필요한 시험이다. 창의적 사고력은 특별히 요구되지 않는다. 교사는 교재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은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험이다. 그러니 학생들을 가장 수동적으로 만드는 시험이기도 하다. 교과서나 교재에서 그대로 출제되어 학생들은 폭넓은 교양 습득을 위해 노력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4) 이러한 학교 시험의 패러다임은 80년대의 학력고사 패러다임과 매우 유사하다.
시험은 수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학교 시험의 기본 패러다임이 1차원적이라는 것은 학교 수업의 기본 패러다임 또한 1차원적임을 말해준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부 교사들의 영웅적인 노력에 의해 입시의 틀을 넘어서는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주류가 아니며, 영원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환경에서 그런 수업은 지속과 확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학교 수업의 주류는 1차원 패러다임의 수업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와 학원을 통틀어도 입시수업을 넘어서는 고차원적 수업은 존재할 수 없다. 학원은 기본 성격상 두 발을 모두 입시에 담글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입시에 한 발은 담그지만 그래도 다른 한 발만은 입시를 넘어선 곳에 두는 것은 학교 수업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 수업은 고차원적 패러다임은 커녕 1차원적 수업에 두 발 모두를 담그고 있는 것이다.
학교 수업이 그 한 발을 입시에 걸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수능시험이나 대학별고사여야 한다. 오래전에 폐기처분된 80년대 학력고사 패러다임의 시험에 발을 걸쳐서는 안된다. 앞으로 학교 수업이 그 한 발을 입시(수능시험과 대학별고사)에 걸치지만, 다른 한 발만은 입시를 넘어선 곳을 향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교육에 큰 발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사교육 문제
입시교육과 마찬가지로 사교육 문제 또한 절반의 해결이 목표일 수밖에 없다. 사교육 번성의 원인 중 그 절반 이상은 교육 외적인 곳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사교육의 번성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사교육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사교육 문제의 온전한 해소는 2013년체제의 성공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물론 사교육 번성의 또다른 원인은 학교 교육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학교 교육을 개혁함으로써 사교육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절반 정도의 문제 해결, 이것이 우리의 전략목표다.
학교 교육이 사교육 문제를 불러온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앞에서도 말했듯이 1차원적 패러다임의 학교 수업은 수능시험과 대학별고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학생과 학부모는 입시 준비를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교사가 현재의 방식으로 수업을 열심히 잘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수업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것이 1차원적 패러다임에 그친다면 여전히 그 수업은 수능시험과 특히 대학별고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5)
둘째, 학교 수업의 패러다임을 떠나 학교 수업 자체가 부실하다. 수업의 패러다임도 중요하지만 그 틀 안에서 잘하고 못하고도 중요하다. 학교 수업은 대개의 경우 학원에 비해 많이 부실하다. 학교의 붕괴니 교실의 붕괴니 하는 말이 나오는 현실이다.
셋째, 학교 수업은 학생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다. 학습속도가 빠른 학생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공부하는 것이 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 물론 학습속도가 느린 학생이 자신의 수준대로 공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학습속도가 빠른 학생이 자신 역량에 맞게 공부하려면 사교육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학습속도가 느린 학생도 학교 수업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는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학교 붕괴의 문제
학교 몰락이니 교실 붕괴니 하는 말이 등장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조금씩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물론 편차는 있다. 초등학교보다는 중・고등학교의 교실이 더 심각하다. 여학생의 교실보다 남학생의 교실이 더 심하게 무너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강남보다는 강북에서 그 정도가 더하다. 이렇듯 다양한 사정이 있지만 그 기본 방향은 학교 교실이 붕괴되어간다는 것이다.
수업이 붕괴되면 수업의 차원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사치다. 수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저차원이냐 고차원이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시교육이냐 입시를 넘어선 교육이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교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은 교육의 그 어떤 다른 문제보다 위중하다. 따라서 학교 수업을 살리는 것만은 절반의 성공을 목표로 삼아선 안된다. 학교 수업이 살아나지 않고는 모든 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실의 붕괴는 전적으로 학교에서 비롯된 문제다. 사회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 것이다.
교육의 2013년체제는 교실을 온전히 살려낼 때 성립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의 전략적 목표는 절반의 성공일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학교 수업을 살려내는 완전한 성공이어야 한다.
학교 교육을 바꿀 정책들
입시교육과 사교육, 학교 붕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각각의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가? 만일 그래야 한다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학교의 무능이라는 문제다. 입시교육과 사교육 문제는 상당부분 학교의 무능에서 비롯하고, 교실 붕괴는 전적으로 학교의 무능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의 무능은 교사 개개인의 무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육의 제도와 시스템과 문화의 무능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교사들이 모두 유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교사라도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3차원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도 1차원적인 수업밖에는 할 수가 없고, 탁월한 재능을 가진 교사도 학원강사보다 못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학교가 유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유능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가 심각할수록 사람들은 만능의 해결책을 원하게 마련이다. 여러 문제를 단번에 풀 수 있는 만능열쇠 같은 정책이 존재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수십가지 정책을 체계적으로 실행해야 문제를 어느정도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정책이 다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큰 정책은 존재한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효력이 큰 정책 세가지 ‘Big 3’를 얘기하겠다.
중・고등학교의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
학생들은 저마다 학습하는 능력과 속도가 다르다. 학습에 대한 의지도 많이 다르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이것을 완전히 무시한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이것은 비극이다. 특히 학습속도가 느린 학생에겐 무서운 비극이다. 학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학교는 그러한 학생을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6)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은 지겹고 어렵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수학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7)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학생이 수학을 똑같이 높은 단계까지 공부해야 한다. 수학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거나, 잡담으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든 떠들든, 학교 수업은 이들을 배려할 수 없다.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 교사의 능력이나 자비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학생의 학습 능력과 속도를 상당부분 고려하는 맞춤형 수업이 기본 형태다. 핀란드 고등학교의 경우만 해도 수업이 학년제가 아닌 학점제(단위제)로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여 선택한 교과의 학점(단위)을 취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수학의 경우 최저 6단위, 최고 11단위를 취득하도록 되어 있는데 수학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내용이 평이한 6단위만 들어도 된다. 요컨대 능력과 필요에 맞는 수업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정된 학년체제가 존재하지 않으니 졸업도 학습속도가 빠른 학생은 2년 만에, 더딘 학생은 4년 만에도 할 수 있다. 학생의 능력에 따른 맞춤형 수업은 기본이고, 학생들이 자신의 사정을 고려하여 졸업시기까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8)
초등학교에까지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을 도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속도를 최대한 고려하는 것이 옳다. 다만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그것이 현재의 학년・학급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나을 뿐이다. 물론 이 또한 학급당 학생수가 획기적으로 감축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 제도는 한편으로는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 학교 수업의 높은 단계에 빨리 도달하기 위한 사교육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더 크다. 공교육에서 지금보다 빠른 속도의 공부가 가능하다면 굳이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억지로 높은 단계의 학교 수업을 따라잡기 위한 사교육도 불필요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이 살아남으로써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 제도는 학교 교육의 혁명적인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제도가 정책적으로 도입되지 않고서는 학교 교육이 사교육과의 경쟁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단순히 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을 지금보다 상당히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다른 정책들만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사교육과의 경쟁까지 염두에 둔다면 이 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 없이 학교 수업의 차원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금의 내신제도에서는 교사가 수업과 평가에 대한 온전한 권한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고차원적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졌더라도 저차원적 수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무학년 학점제가 실행되면 교사들은 수업과 평가에 대한 온전한 권한을 갖게 될뿐더러 고차원적 패러다임의 수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교사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그들의 수업이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학교 교육의 차원은 높아질 수 있다.
이 제도의 파급력은 매우 크다. 하지만 다른 제도에 비해 도입하기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의 학교 내신제와 전적으로 상충된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내신제의 특징은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강제하여 일렬로 줄 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이 시행되면 이런 방식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우리 현실에서 내신제 자체의 무력화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도 대학 진학에서 학교 성적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처럼 획일적인 수업과 시험을 통해 학생을 줄 세우지는 않는다.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도 이러한 길을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시험으로 줄 세우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내신제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진영의 상당수가 그러하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가 직면한 냉엄한 현실이다. 교사에게 온전한 평가 권한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도 현재의 내신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내신제에서는 교사가 수업과 평가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갖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진보진영이 현재의 내신제를 옹호하는 이유는 불평등의 완화효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학력이 높은 강남 학교의 1등이나 학력이 낮은 강북 학교의 1등이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이것은 분명 학교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현행 내신제는 학교를 무능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학교가 무능할수록 입시에 대한 사교육의 영향력은 커지며, 이에 따라 학교내 불평등은 심화된다. 한 학교에서도 빈부격차는 꽤 크다. 학교가 무능하면 내신제의 불평등 완화효과를 사교육의 불평등 심화효과가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무학년 학점제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다른 몇개의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우선 고교평준화 제도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 평준화 지역을 확대하고 기존의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사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 등은 원칙적으로 모두 일반고등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이 시행되면 현재의 내신제는 폐지되고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내신제 자체의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는데 특목고와 자사고의 존재는 이런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그리고 특목고와 자사고가 있다면 어찌됐든 고교입시도 존재하는 것인데 이는 중학교에서 무학년 학점제를 시행하는 데 커다란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9)
다음으로 교과서 자유발행제 및 자유선택제가 시행되어야 한다.10)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이 성공하려면 학습능력을 고려한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자신의 수업 패러다임에 맞는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과서는 종류는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천편일률적이다. 어떤 과목의 경우 종수가 20여종이나 되기도 하는데 살펴보면 그게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는 교과서 선택권이 있지만 교사 개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래서 지금의 교과서제도는 학교 수업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다.
학급당 학생 수 20명으로 감축
고차원적 수업이 가능하려면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것은 과도기를 거치지 말고 단번에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아야 한다. 학급의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낮춘다면 학교의 수업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학생 수를 감축하려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교실의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의 부족이다. 학급의 학생 수를 20명으로 줄이려면 지금보다 70% 정도의 교실과 교사가 더 필요하다.
교실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것은 현재의 교실 1개를 반으로 쪼개서 2개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학급당 학생 수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보다 물리적으로도 훨씬 용이하다. 왜 그런가? 한 학급의 학생 수를 25명으로 줄인다고 하자. 이런 방침을 세운 학교에는 교실이 지금보다 평균 30~40% 정도 더 필요하다.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이 경우도 교실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25명 학급으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절반만한 교실은 25명이 생활하기에 너무 비좁다. 교실 가운데에 선을 그어놓고 책상 배치를 해보면 알겠지만 25개의 책상을 놓는 경우 계산이 잘 안 선다. 2개 교실을 셋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교실의 모든 벽을 허무는 큰 공사를 해야 한다. 학교의 교실을 다 뜯어내고 2개 교실을 3개로 만드는 공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학교는 온통 공사판이 될 것이다. 비용도 엄청나겠지만 무엇보다 몇달 정도 휴교를 하지 않고선 완성이 어려운 공사다. 교실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운동장에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 건물의 층수를 높이는 것이다. 둘 다 현명한 방안이 못 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역시 학교가 1년 내내 공사중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학교 운동장이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장은 가급적 그대로 유지하여 학생뿐 아니라 지역주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부작용을 감수할 바에는 차라리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 학급의 학생 수를 단번에 2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1)
이에 비해 교사의 부족은 해결이 상당히 어렵다. 물론 돈이 무한정 많으면 간단하다. 30만명 정도의 교사를 신규로 채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 정도의 교사를 충원하려면 매년 십몇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정부의 부담이 크다. 국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의 세가지 방법으로 그 부담을 분산하면 된다.
첫째, 학생의 수업시간을 20% 정도 줄인다.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이면 수업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 상당수 교사는 수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꿀 것이다. 그러므로 교실의 학생 수가 획기적으로 줄면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줄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습득할 수 있다. 수업시간을 감축해도 수업의 질 향상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교사의 수업시간을 20% 정도 늘린다. 교실의 학생 수를 감축하면 교사는 수업하기가 지금보다 한결 쉬워진다. 같은 수업이라도 노동강도가 현저히 약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교사에게 노동강도 약화라는 이익을 제공하는 대신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부담을 요구할 수 있다. 일종의 빅딜인 것이다.
셋째, 10만명의 교사를 새로 충원한다. 대략 현재 교사 수의 25% 정도다. 신규 교사의 충원 비용은 약 4조원으로 예상된다. 4조원의 교육예산이 증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교육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게 된다.
교육 중심의 학교제도 구축
학교의 기본 제도와 운영을 보면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기본 제도가 교육외적 업무12)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육외적 업무가 교육 위에 군림하고 있다. 교장·교감으로의 승진도 교육외적 업무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가능하다. 학교의 제도가 교사로 하여금 교육보다 교육외적 업무에 더 많은 열정을 바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 문제는 학교 교육을 망치는 주요 원인으로 끊임없이 지적되어왔다. 그런데 이것이 다수 국민에게는 단순히 교사의 업무를 덜어주는 문제로만 인식되었다. 긴 방학이 있고 퇴근도 빠른 교사들의 일을 더 줄여줄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을 적지않게 불러왔다. 내가 이 정책을 주장하면서 매번 느끼는 바는 역시 프레임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교사의 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기본 제도와 문화를 교육 중심으로 바꾸는 것임에도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항상 업무 경감의 차원으로 환원돼왔다. ‘교사의 업무 경감’이라는 프레임은 아직도 사람들의 사고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강조하건대, 업무의 양을 줄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의 기본 운영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사의 교육외적 업무 전체를 별도의 조직에 이전해야 한다.
이 정책은 교원 성과급제를 폐지하여 그 성과급을 업무전담 직원 5만명을 고용하는 데 필요한 예산으로 사용한다면 쉽게 시행할 수 있다. 교원 성과급은 1조원이 훨씬 넘는다. 업무전담 직원 5만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이는 물론 교사들의 소중한 생활자금이다. 그런데 교원 성과급제가 불러온 것은 교육을 더 잘하기 위한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성과급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이다. 차라리 없애는 것이 교육에 더 바람직하다. 이 돈으로 업무전담 직원을 채용한다면 교사들은 잡무에서 벗어나 교육에 전념할 수 있고, 학교의 기본 제도와 운영을 혁신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이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그리고 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일자리 나누기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Big 3’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연 4조원 정도다. 대신 대한민국 학교의 교육환경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한다. 그리고 교사 10만, 업무전담 직원 5만을 합해서 1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 정도 예산으로 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 교육의 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높일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 아닐까.
마치며
여기서 제시한 방안들은 교육의 2013년체제가 필요로 하는 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더 많은 제도가 체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입시가 존재하고 대학 서열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교육정책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 모든 제안이 전부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제시된 방안은 어떻든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입시가 사라진다고 학교 교육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 서열이 없어진다고 해서 학교 교육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학 서열이 없어지고 사회구조가 바뀌어도 학교 교육은 여전히 저차원적이고 무능할 수 있다. 입시가 존재하든 말든, 대학 서열이 존재하든 말든 학교를 바꾸는 정책들은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좋아지고 사교육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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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일대 전환을 이룬 것은 ‘87년체제’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하듯이, 2013년 이후의 세상 또한 별개의 ‘체제’라 일컬을 정도로 또 한번 크게 바꿔보자는 것이다.”(백낙청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실천문학』 2011년 여름호 363면) 가슴 설레는 말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87년에 그랬던 것처럼 또 한번의 커다란 변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교육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사실 ‘87년체제’의 교육분야에서는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일어난 만큼의 큰 변환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매우 커졌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교육의 ‘2013년체제’에서는 교육의 ‘87년체제’에서 못다한 것까지 한꺼번에 이루어야 한다. 물론 그만큼 더 어려운 과업이 될 것이다.
2) 입시교육에서 파생하는 또다른 사안은 문제는 사교육 문제다. 하지만 이는 독립적으로 살펴봐야 할 주제다. 그래서 일단 이 부분에서는 입시교육의 편협함(정확하게는 학교 교육의 편협함)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자연스럽게 사교육 문제의 해결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 문제의 상당부분이 학교 교육의 편협함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3) 현재의 논술시험 내용이 과연 충분히 좋은가, 더 좋은 문제를 출제할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은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술시험의 패러다임이 학교 시험의 패러다임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대학의 논술시험은 지나치게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단지 출제의 난이도 때문에 차원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4) 졸저 『 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 미래인 2008, 61면.
5)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학교 시험과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다행히 입시의 논리와 배치되지 않는다. 학교 수업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입시와 배치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학교 수업의 차원 향상이 입시 준비에도 이익을 준다면 성공은 어렵지 않다. 학교 수업을 2, 3차원으로까지 높이는 것은 입시 준비에도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다.
6)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의 학습능력과 학습속도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획일성에 있다. 시민 마라톤대회를 생각해보자. 모두 풀코스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풀코스, 하프, 10km 등의 여러 단계가 있다. 심지어 5km 단계도 존재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이러한 마라톤대회의 정신을 닮아야 한다. 왜 모든 학생이 풀코스를 목표로 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역량에 맞는 단계에서 그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7) 학습능력을 고려한 단계별 수업의 필요성이 가장 큰 과목은 수학이라 생각한다. 수학 다음은 영어, 그 다음은 과학(그중에서도 물리와 화학)이 아닐까 한다. 체육과 예술(음악, 미술)의 경우는 단계별 수업을 할 필요성이 전혀 없을 것이다. 단계별 수업의 필요성은 고등학교에서 가장 크고 중학교는 그 다음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에까지 단계별 수업을 도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초등학교에서는 현재의 학급・학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8) 후쿠다 세이지 『핀란드 교육의 성공』, 나성은・공영태 옮김, 북스힐 2008, 95면.
9)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이 성공하려면 고교평준화는 강화되고 특목고는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고교평준화 정책이 무학년 학점제를 위한 것은 아니다. 고교평준화의 확대 강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는 앞에서 대학입시를 필요악이라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교육을 편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입시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면 없애는 것이 좋다. 그런데 대학입시는 없애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고교입시는 고교평준화를 통해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무엇보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0) 현행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검정(檢定) 교과서를 인정(認定) 교과서로 완전히 전환하고 그 기준을 신축성있게 잡는 것도 좋은 방안일 수 있다. 이때 교과서 발행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보다 특별히 더 어렵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정부의 지원을 통해 교과서 발행을 한층 쉽게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11) 졸저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인물과사상사 2011, 40면.
12) 교육외적 업무의 공식 명칭은 교무행정 업무다. 흔히들 잡무라고 부른다. 나는 그동안 졸저에서 이것을 사무행정 업무라 불러왔다. 병원의 원무과나 국회의 사무처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의사의 환자 치료가 교사의 교육활동에 해당한다면 병원의 원무과가 하는 일은 교사의 교육외적 업무에 해당하고, 의원의 입법활동이 교사의 교육활동에 해당한다면 국회 사무처의 일은 교사의 교육외적 업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필자는 학교로 출근하면 ‘국어과(부)’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다. 2012년에 나는 ‘체험활동부’로 출근했다. 다른 교사들도 모두 각자의 업무부서로 출근해서 근무한다. 의사가 병원 원무과에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사무처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일이 학교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