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2013년체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

 

새로운 사회모델과 도시비전

주택정책과 재정비사업을 중심으로

 

 

변창흠 卞彰欽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저서로 『저성장시대의 도시정책』 『위기의 부동산』, 『토지문제의 올바른 이해』(이상 공저) 등이 있음. changbyeon@sejong.ac.kr

 

 

1. 서울시에서 시작된 2013년체제의 실험

 

지난 130일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은 취임 후 3개월간의 경청과 토론과정을 거쳐 뉴타운사업과 재정비사업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발표했다. ‘서울시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 구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정책에서는 기존의 소유자 중심, 사업성 기준의 전면 철거형 정비사업을 거주자 중심, 주거권 기준의 공동체・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박시장은 뉴타운・재개발사업으로 고통받는 시민에게 시정책임자로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시작했던 뉴타운정책이 10년 만에 후임 시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업임이 확인되었으며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재정비정책은 서울시의 의지만으로 절대로 실현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중앙정부가 기존의 뉴타운・재정비사업에 대해 인식을 전환해야 할 뿐 아니라, 서울시가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 정비사업이 추진 가능하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 발표 이후 국토해양부는 뉴타운사업의 매몰비용 부담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뉴타운사업과 정비사업은 토지 등의 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해서 추진하는 민간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 매몰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비구역의 과다지정에 대해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고 비용도 분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이명박정부와 시민후보 출신 서울시장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넘어 재정비사업과 주택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뉴타운사업이 종전대로 추진되면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는 데는 누구나 동감하지만 이 사업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의 권력 재편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제활성화와 부동산시장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추진해온 정책수단들을 폐기하고 서민의 주거안정을 보장하도록 전환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정치세력이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서울시는 전국의 도시와 주택 분야에서 발생한 문제와 모순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이 문제 해결의 압력이 가장 큰 지역이기도 하다. 뉴타운사업은 서울시에서 시작되어 국회의 법률 제정을 거쳐 도시재정비촉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확대됐지만, 서울시에서 뉴타운사업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기에 그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박원순 시장이 그 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서울시는 도시 및 주택정책에 관한 한 2013년체제의 실험장이자 선도적 공간이 되고 있다.

 

 

2. 도시부동산정책에서 구체제의 극복 과제

 

87년체제의 부동산정책과 그후

사회경제 분야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체제로 흔히 거론되고 있는 것이 87년체제다. 한국사회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성과를 낳았지만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민주화세력도 독재와 반민주에 대한 저항을 1차적 목표로 형성되었기에 대안적인 사회경제질서를 도출해내는 주체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사회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고 실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활동가들은 노동, 농업, 도시 등 각 분야 실천의 현장으로 뛰어들었고, 연구자와 대학원생 등은 사회경제체제의 모순 극복과 대안 마련에 전력하게 되었다. 이른바 학술운동이라 불리는 연구실천운동을 기치로 내건 학술단체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결성되었다.

도시부동산 분야에서 1987년 이후의 제도적 기반은 이러한 실천적인 노력보다 사회경제적인 여건 변화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3저호황’으로 부동산투기와 주택가격 폭등, 전세대란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1989년 분당, 일산, 산본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과 주택 200만호 공급 구상을 발표했다. 그해 정기국회에서는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로 대표되는 토지공개념 3개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개발이익을 활용하여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 건설방식은 그후부터 최근까지 ‘팽창시대’에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주택의 대량생산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요촉진정책, 분양주택 위주의 공공주택정책 등이 이 시기 정부 조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국민임대주택 건설과 주택바우처 제도도 발표되었지만 실효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러한 정책구조가 지닌 취약성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1997IMF 관리체제가 되면서 분양주택 위주의 주택공급 확대로는 주거안정을 실현할 수 없었다. 공공임대주택이나 주거급여 같은 전통적인 정책수단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데다 주택수요의 위축으로 정상적인 주택공급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국가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도시부동산 분야는 일자리 창출과 시장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우선적인 규제완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토지공개념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제도들은 대부분 폐지되거나 대상이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발표된 정책들은 이명박정부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발표하거나 추진해온 것과 유사한데, 소형주택 의무공급제도 폐지나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분양가 자율화, 청약자격 완화, 민간임대주택사업자 자격 완화, 양도소득세나 취등록세 감면 등이었다. 이 정책을 시행한 결과 부동산시장의 극단적인 파국은 피했지만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극복해야 할 구체제의 구조와 한계

김대호(金大鎬)1987년 이후 지난 25년을 성찰하면서 우리가 당연시해온 많은 것들, 즉 철학・가치・제도・이념 등을 구체제(ancient régime)라고 단언한 바 있다.1) 박원순 시장이 뉴타운대책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하자”고 제안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도시주택 분야에서 우리가 가장 익숙해 있으면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1987년 이후 정착되어 최근까지 도시개발사업을 정당화해온 것은 주택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안정화의 논리였다. 주택공급을 확대하면 가격이 안정되어 주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택정책의 핵심적인 지표는 주택의 양을 평가하는 주택보급률이나 1인당 주택면적, 인구 1000인당 주택수 등이다. 주택의 건설만 늘면 이 지표는 높아지고 주거안정이라는 정책목표는 자동으로 달성된다고 본다.

주택공급은 수도권 외곽의 신도시 건설과 기성 시가지 내의 재개발사업의 두 방식이 경쟁적으로 활용되었다. 1980년대말 1기 신도시에 이어 참여정부에서는 수도권 외곽의 2기 신도시 건설을 통해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서울시는 규제 완화를 통해 후자인 기성 시가지 내 주택공급을 추진했다. 이것이 이른바 뉴타운사업이다. 2기 신도시는 서울 도심에서부터 거리가 멀어진데다 주택수요가 위축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뉴타운사업 역시 과도한 구역지정과 주택수요 위축에 따른 사업성 부족으로 전면 재검토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다음으로 강조되었던 것은 사유재산권에 입각한 도시개발사업과 주택정책이다. 박원순 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하면서 소유권 중심의 사업을 주거권 중심의 마을공동체 활성화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개발사업은 재산권을 보유한 토지 등의 소유자만 사업주체로 인정하고 세입자와 임차상인은 보상의 대상으로만 규정했다. 뉴타운지구의 경우 전체 거주자의 약 72%가 세입자임에도 가옥주와 토지소유자만 추진위원과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재정비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소유자의 재산권과 거주자의 주거권이 대립할 때 주거권을 우선하겠다는 원칙은 기존의 개발사업이나 재정비사업의 관행에서 볼 때 혁명적인 선언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사업구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헌법으로 보장된 주거권을 주택법이나 개별 개발법에서 구체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의 재정투자 없이 추진하는 주택공급과 재정비정책의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택지개발사업은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으므로 수익성이 확보되는 지역에서만 추진된다. 재정비사업 역시 민간에 의해 수행된다는 이유로 공익성이 아니라 사업성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이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지역이 우선적으로 정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비가 시급한 지역도 사업성이 부족하면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주택공급의 확충과 자가주택 증대, 수익성 위주의 개발사업을 뒷받침하는 주된 논리는 건설산업 활성화론이다. 건설산업은 주택공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경기침체기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의 육성을 목표로 한 주택정책 논리는 개발 방식이나 시기, 규모 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을 지속적으로 팽창시키는 것이 마치 시장정상화와 주거안정을 가져오는 방안이라며 포장되어왔다.

 

 

3. ‘신정상시대’의 도시개발

 

주택시장의 정상화

역대 어느 정부나 주택정책의 목표를 주택시장 안정과 주거수준의 향상으로 설정해왔다. 주택시장 안정이란 주택가격의 변동폭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주택시장 정상화라고도 한다. 특정 시기에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를 촉진하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주택금융이나 세제(稅制) 등을 통해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주택시장의 정상화란 가격수준의 안정뿐 아니라 주택시장의 구조와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 가치로 여겨져왔다. 이명박정부는 그동안 부동산정책을 발표하면서 항상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시장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면 정상화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시장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규제를 배제하는 논리로 변질되어 온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정부는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명분으로 참여정부 기간에 도입했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 부담금을 감면했으며, 건설산업 지원정책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조치들을 시장정상화라고 한다면 참여정부 기간에 채택됐던 부동산제도들은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은 어떤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보아왔는가? 부동산시장의 정상화란 가격상승기보다는 침체기에 가격이 재상승하거나 거래가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가격이 가구주의 구입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어도 이 가격이 하락하면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식하고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부동산 거래빈도와 이주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전년도나 최고빈도 거래연도에 비해 거래량이 적으면 부동산시장이 죽었거나 얼어붙은 것으로 본다.

또한 전국에서 수천군데의 정비구역이 동시에 지정되어 재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더라도 사업 진척이 늦어지면 비정상으로 본다. 뉴타운지구의 경우 전체 주민의 대부분이 세입자로 구성되어 있어도 가옥주로만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결성하고 분양주택 위주의 주택을 건설해 나눠가져도 정상적인 재산권 행사로 본다. 수십년간 상가에서 점포를 개설하여 상권을 발전시켰더라도 토지주나 점포주가 아니면 점포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유재산권의 정당한 행사로 본다.

부동산시장의 정상화라는 개념에는 고성장시대 또는 부동산 팽창시기의 가격수준으로 상승하는 것, 부동산가격이 투자자의 수익률을 확보할 정도로 상승하는 것, 부동산이 상품으로서 활발히 거래되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개념에는 무주택자의 부담능력이나 세입자의 희생, 상가임차인의 노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신정상시대의 등장과 기존 개발의 한계

과거 팽창형 부동산개발 패러다임이 더이상 존속되기 어려운 여건이 도래하고 있다.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과거 같은 급속한 소득증가는 불가능해졌으며 경제규모가 커지더라도 더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도 팽창형 부동산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15.2%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2010년부터 본격화됨에 따라 부동산 구입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총인구는 2018년부터, 주요 주택수요층인 40~50대의 인구비중은 2015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각종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수요를 창출해왔던 공공부문이 부채누적과 재정적자로 과거의 역할을 떠안기가 어려워졌다.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과 부동산시장 위축으로 인한 관련세수의 감소까지 겹쳐 인위적으로 개발수요를 창출할 능력도 상실했다. 결국 시장이나 주민의 구매능력이 확대될 때까지 사업 추진을 늦추거나 주민의 구매능력에 맞는 대안적인 부동산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지역, 세대, 계층, 기업규모에 따라 양극화가 고착되어 안정적인 성장의 잠재력을 떨어뜨려왔다. 이 양극화에는 수도권으로의 이익 집중, 현세대에 의한 미래자원의 과도한 사용, 상위계층 위주의 개발제도로 인한 하위계층의 과도한 부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평등거래 등이 포함된다. 세계경제도 장기적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을 특징으로 하는 ‘신정상(new normal)시대’를 맞게 되었으며, 해외부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도 성장저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2)

따라서 앞으로 부동산시장에서 ‘신정상’이란 과거 거품성장시대의 팽창지향적, 파괴지향적, 규모지향적인 개발과 성장을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개발수요 부족과 개발이익 상실이라는 현실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거품가격과 개발이익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공존을 통해 사회적 자산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역량을 키우는 대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인구구조가 급변하고 저성장이 일반화되는 신정상시대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기존의 개발방식으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 충분한 개발이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 추진력을 얻기 어렵고 외부인을 유치하기 위한 상품을 만들기에는 수요가 너무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발방식을 도입하고 새로운 개발주체가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도시 개발

그동안 우리의 도시는 부동산 상품개발과 주택건설을 위한 공간에 불과했다. 장기적인 비전과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 개별 사업의 타당성을 기준으로 개발되어온 것이다. 도시개발의 목적은 마을공동체가 아니라 부동산 상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은 사라지고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만 남았다. 수십년간 거주하고 영업해온 세입자와 임차상인은 배제되고 외지소유인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제 도시개발사업은 주민이 공동체를 위해 서로 학습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상품은 표준화된 부동산 매물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기초하여 조성된 차별화된 장소 자체여야 한다. 또한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개발 후 청산하는 사업구조가 되기 어렵고 지속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방식이 채택되어야 한다.

이제 구체제에 의한 개발과 결별하고 주택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하며 새로운 정비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이 점에서 박원순 시장이 제시한 거주자 중심, 주거권 중심, 공동체・마을 만들기 사업으로의 재생정책 전환은 올바른 방향임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주민 손으로 복지, 생태, 일자리가 갖추어진 마을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마을은 주민참여의 실험장이자 자기실현의 공간이며 분권의 최소 단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작은 마을들이 모여 생활권이 형성되고 기초자치단체가 되고 도시가 된다. 마을은 화합과 소통을 통해 불안과 단절의 문제를 해결해낸다.

이에 따라 주택정책의 주체는 시장과 공공부문의 지루한 대립을 극복하고 대안적인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동안 주택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시장을 강조할 것인가 공공의 역할을 강조할 것인가, 정책방향 측면에서는 공급확대를 지향할 것인가 수요억제를 지향할 것인가에 따라 크게 ‘시장지향적 주택공급・개발확대주의’와 ‘공공개입형 성장관리・수요관리주의’가 대립해왔다. 시장지향은 주택시장에서 양극화와 주거불안을 낳았고, 공공개입은 재정능력의 한계로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이제 사회적 경제의 주체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4. 주거안정을 위한 도시・주택정책의 과제

 

주거안정성 지표의 개선

현재 전국의 자가주택 점유율은 2005년의 55.6%보다 오히려 떨어져 2010년에는 54.2%에 불과하며 수도권은 46.4%, 서울시는 41.1%로 더욱 낮은 편이다. 주택의 지속적인 건설에도 불구하고 가구분화로 1~2인가구가 급증하면서 자가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전체 가구 중에서 안정적으로 주거를 보장받는 비중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주택정책의 최우선 가치는 주거안정을 확보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평가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택정책의 핵심적인 지표였던 주택보급률이나 1인당 주택면적, 인구 1000인당 주택수와 달리 안정적으로 주거를 보장받은 가구의 비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가주택 보유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자가주택 촉진정책은 주택가격의 상승을 유발해 오히려 주거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음을 2000년대 초반 이후의 미국이나 영국, 스페인 등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정책은 개인이 주택을 구입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저렴한 주택의 공급을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가주택 점유율을 통한 주거안정에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는 공공임대주택의 재고 확충이다. 공공임대주택의 확보는 진보와 보수의 견해차를 넘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만능열쇠로 평가받고 있지만,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재원과 부지의 확보, 관리운영비용, 입주자 선정 등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도 공공임대주택의 장기적 목표로 전체 주택재고의 12%를 설정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15%, 민주노동당은 20~30% 수준이다. 그러나 전체 주택재고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임대주택의 과도한 목표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치적 슬로건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2014년까지 전체 거주가구 비율 기준으로 7%, 2018년까지 10% 수준으로 설정하되,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관리를 통해 세입자의 주거안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간임대주택의 관리를 통한 주거안정 보장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보장받지 못하는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다는 취지로 제안된 것이 계약임대주택이다. 이는 서울시가 장기안심주택이라는 명칭으로 제도화한 것으로, 전세주택 및 월세주택 임대인이 임대주택이나 주택 중 일부에 대해 지방세나 임대소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감면받거나 지자체 및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축, 수선,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일정한 임대료 인상률로 장기임대를 하도록 지자체와 민간임대주택 소유자가 협약을 체결한다. 장기적으로 계약임대주택은 민간임대주택의 10%, 전체 주택의 5%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간임대주택 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임대용으로 사용하는 모든 주택의 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 임대주택 등록은 다주택자에게 임대소득세 부과를 의미하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주택에 대해서만 다주택 보유에 따른 양도소득세 등을 완화하되 임대소득세는 부과하여 임대주택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임차인의 재계약권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독일의 경우 자가주택 거주율이 40% 수준에 머물지만 비교적 주거안정이 확보되는 이유는 준()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임대주택과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현재 2년의 계약기간 동안만 적용되는 연간 5%의 임대료 상승률 제한도 갱신된 계약기간 내에 보장될 필요가 있다.

 

정비사업의 개선방향

앞으로 재정비사업은 물리적 환경의 개선이나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도 열악한 상황에 있는 지역과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복지사업이자, 주민의 거주여건과 함께 생활여건, 취업,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정비하는 지역의 재활성화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재정비사업은 일자리 창출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및 사회적 기업 육성 등의 생산적 복지와 교육환경 개선 같은 ‘근로복지 연계 주거지 재생사업’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재정비사업의 추진 목적을 주민의 주거복지와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것이다. 소형 평형주택과 임대주택의 공급, 소득규모별 임대주택 임대료의 차등지원, 순환재개발 및 단계적 개발 등이 원주민의 재정착률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에 의한 사업 추진이나 공공지원이 필수적이다.

공공부문이 정비사업을 주도하거나 공공지원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사업지구의 지정이나 사업시행에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물리적 노후도 등에 따라 일정기준 이상의 정비구역을 지정하고 사업성에 따라 정비사업 추진의 우선순위가 결정되어서는 곤란하다. 우선순위의 기준으로는 건축물의 노후도와 호수(戶數)밀도, 과소필지 등의 물리적 기준을 전제로 지역주민의 평균소득, 취업률이나 고용률, 세입자의 비중,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등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행중인 정비구역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통해 종합순위를 부여하고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재정비사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가 발표한 실태조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정비사업 추진과 지원을 위한 조직체계

도시환경 개선이나 주택공급의 목적만을 위해 정비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이 사업이 공간구조나 주민의 주거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이 사업은 도시의 구조개편과 경쟁력 높이기,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종합적인 재생사업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건설 확대나 건설산업 육성이라는 제한된 목표를 가지고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국토해양부보다 더 큰 안목을 가진 기구가 전체 사업을 주관할 필요가 있다. 정비사업에서 도시의 경쟁력과 자영업의 육성, 교육과 문화시설의 확충, 주거복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혹은 총리실 산하에 ‘도시재생본부’(가칭)를 설치하여 종합적인 정비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도시재정비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권역별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사업 추진과정에서 투명성 확보와 행정 지원을 위해 ‘도시재생지원단’(가칭)을 설치해야 한다. 이 기구는 도시의 종합적인 정비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므로 범정부 차원에서 운영되는 종합기구로 가동되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재정비사업 전체는 기존의 주택정책실에서 담당하되 중간지원조직으로 도시재생 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재정투자 확대

그동안 주택정책은 민간부문이나 공사가 개발이익을 활용하여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투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개발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공사나 지방공사의 부채 누적으로 지속적인 재투자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재정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2011년 국토해양부의 예산 중 도시재정비사업 지원을 위한 재원은 500억원에 불과했으며, 국민주택기금도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건설 지원, 주택구입 융자 지원 등에 주로 배분되어 재정비사업에 대해서는 주택개량자금 지원금 100억원에 그쳤다.

최근 뉴타운사업의 부진에 따라 기반시설 설치비용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이 부문에 거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정적인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어디에 무슨 기준으로 지원해야 할지,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지역재생사업에 연간 2조원 이상의 예산을 반영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체 재정비사업에 대한 종합조사 및 평가를 통해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순위가 높은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광역지자체는 의무적으로 도시재정비 특별회계를 확충하고, 기초지자체는 주거환경 정비기금을 확충하여 안정적으로 재정비사업이 추진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회적 주체가 참여하는 재정비 모형

현재의 주택재정비사업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공공부문이 주도하여 정비사업을 시행하되,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적인 지원을 확대하여 사업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모든 정비사업에 참여할 여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준공공단체가 참여하는 방안이다. 토지 등의 소유자가 소유권에 기반하여 설립하는 조합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지자체, 공공기관, 자원봉사조직, 전문가, 민간기업, NGO가 지속 가능한 발전과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별도의 주택개발 및 관리주체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주택협회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과 개량 및 보수, 공공임대주택 신축 등의 재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기초지자체별로 최소 2~3개 이상의 비영리 주택협회가 사회주택을 건설하고 관리한다.3)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비영리조직인 커뮤니티 개발회사(CDC)가 재정비사업을 수행해왔다. 이 회사는 주거지역 재정비뿐 아니라 산업단지 및 쇼핑센터의 건설, 보육과 직업교육 등 종합적인 지역개발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른 정비기관과 차이가 있다.

이들 비영리 주택기구의 역할은 주택의 공급과 개량, 임대주택의 공급과 관리 등에 있어 우리나라의 주택 공기업(LH 등)과 큰 차이가 없다. 단 이들 조직은 공기업이라기보다 자발적 사회운동조직의 확대이며, 따라서 영리나 사업규모보다는 주민의 참여와 공동체 유지를 중시한다. 주택협회나 커뮤니티 개발회사는 개발사업과 임대주택 관리를 수행하는 주체라기보다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지역공동체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주체가 전체 주택재고의 10% 이상을 공급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수출 위주,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수도권과 지방, 수도권에서는 서울과 주변도시,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기타 지역 간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체로부터 부분을 볼 것이 아니라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마을은 그 부분의 가장 작은 공간단위가 된다. 마을 속에서 일자리, 주거안정, 도시재생, 사회적 소외 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전체의 참여와 복지, 일자리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1) 김대호 2013년 이후: 희망코리아 가는 길, 백산서당 2012.

2) 조명래 「저성장과 도시 패러다임의 전환」, 조명래 외 저성장시대의 도시정책, 한울 2011.

3) Ouwehand, A. & G. van Daalen, Dutch Housing Associations: A Model for Social Housing, DUP Satellite 2002. 국역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부동산 개발: 네덜란드의 주택정책과 주택협회』, 주택발전소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