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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성은 姜聖恩
1974년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가 있음. mongsangs@hanmail.net
진눈깨비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슬퍼서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
사람들은 박물관의 공룡들처럼 텅 빈 몸을 가진다
영혼이 스친다는 건 무슨 말일까
며칠째 쌓였던 눈이 녹자 옆집 지붕이 검게 변한다
하얀 얼룩이 사라지자 검은 얼룩이
검은 얼룩이 사라지자 다시 하얀 얼룩이
이 계절 내내 번져간다
어떤 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자신을 본다
새들도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말이 사실일까
우리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겨울과 입맞춘다
우리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난과 입맞춘다
딱딱한 물을 나눠 먹자며 수시로 겨울은 창문을 두들겼다
겨울에 태어난 자들은 겨울이 나눠주는 물을 먹고
부러진 이 사이로 휘파람을 불었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한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겨울의 시신을 천천히 혀로 녹여먹었다
Le Rayon vert
에릭 로메르를 위하여
어떻게 저 많은 별들 가운데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눈이 내리고 수영을 하던 밤
햇빛이 내리쬐고 여행가방을 싸던 밤
시시각각 우리는 이렇게
질문도 없이 대답을 하지
이토록 가벼운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 충만한 투명함에 대하여
사계절 내내
곱슬머리가 부풀어 오르는 우기에도
털모자를 눌러 쓰고 걷던 혹한기에도
시시각각 우리는 이렇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지
이곳은 지구라는 별
네가 왔다
이토록 무한한 녹색 빛
이토록 정지된 푸른 시간
사계절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