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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곽효환 郭孝桓
1967년 전북 전주 출생. 1996년 『세계일보』, 2002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인디오 여인』 등이 있음. kwakhwan@hanmail.net
하늘 길의 사람들
차마고도1
이 길의 역사는 사람이다
산이고 강이고 협곡이고 고원이다
남과 서로 경계를 지으며 고원과 대륙이 만나는
첩첩이 그리고 아득히 가파른 산맥으로 흐르는
히말라야 산맥 줄기 여기저기 경이로운 삶이 있다
구름 아래로 발원하는 거대한 세개의 물길
거대한 그러나 이름 없는
계곡에서 계곡으로
설산에서 설산으로
강에서 강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실핏줄처럼 만들고 이어온 길 위에
피고 지고 다시 피었다 진 사람들
회족이고 태족이고 이족이고 백족이고 묘족이고 장족이고 납서족이고 하니족이고 수족이고 와족이고 도룡족이고 또 노족이고 라구족인
너이고 나이고 우리인
토번이었고 변방이었고 티베트였고
혁명의 성지였고 불안한 자치주이고 고원이고 대륙인 이곳
말과 차와 소금을 따라 오고간 퍽퍽한 발길들
검게 그을린 말간 얼굴들
아름다운 그러나 너무도 가혹한 험로의 기억을 찾아
아직도 만인총 위에 울고 있는
머리털과 눈썹과 수염이 온통 하얀 팔 꺾인 신풍의 노인*에게
무명의 사람들, 그 삶들이 서사인 길을 묻는다
* 백거이의 시 「折臂翁」의 ‘請聞新豊折臂翁’에서 인용. 오지 운남에서 일어난 큰 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돌로 쳐 자신의 팔을 꺾었다는 신풍에서 온 노인에 관한 구절이다.
만춘
강물도 바닷물도 느릿느릿 몸을 섞는
남도 강어귀
언덕을 하얗게 뒤덮던 배꽃 분분히 졌어도
새벽 강은 다시 안개를 밀어올리네
노오란 유채꽃 피워올리네
청보리 진초록으로 몸서리치면
먼 산 아래 양귀비 각혈하겠네
강물도 바닷물도 붉게붉게 물들겠네
물안개 길어올리는 포구
나룻배 한척 젖은 그물을 던지네
물과 뭍의 경계가 혼몽한 어디쯤
뭍바람 등에 지고
안개 자욱한 강둑길을 걷는 사내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