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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호승 鄭浩承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포옹』 등이 있음. si7273@naver.com
득음정(得音亭)
인간은 없고
새들만 노래하는
아득한 득음폭포
먼 득음정
인간의 판소리는
들리지 않고
폭포수로 쏟아지는
새들의 득음
시계의 잠
누구나 잃어버린 시계 하나쯤 지니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잃어버린 시계를 우연히 다시 찾아
잠든 시계의 잠을 깨울까봐 조용히 밤의 TV를 끈 적이 있을 것이다
시계의 잠속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눈물 속에 당신의 고단한 잠을 적셔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의 시계는 눈 덮인 지구 끝 먼 산맥에서부터 걸어왔다
폭설이 내린 보리밭 길과
외등이 깨어진 어두운 골목을 끝없이 지나
술 취한 시인이 방뇨를 하던 인사동 골목길을 사랑하고 돌아왔다
오늘 내 시계의 잠 속에는
아파트 현관 복도에 툭 떨어지는 조간신문 소리가 침묵처럼 들린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너의 폭탄테러에 죽었다가 살아났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플라스틱 물병을 베고 잠든
노숙자의 잠도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고
내 시계의 잠 속에는 오늘
폭설이 내리는 불국사 새벽종 소리가 들린다
포탈라 궁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젊은 라마승의 선혈 소리가 들린다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를
부지런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 애인들이 보인다
스스로 빛나는 눈부신 아침햇살처럼
내 가슴을 다정히 쓰다듬어주는 실패의 손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