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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캐롤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 강 2012
작가의 일생을 완성하는 평전
김연수 金衍洙
소설가 larvatus@netian.com
1987년 가을, 레이먼드 카버는 쎄인트 조셉 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새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의 서재에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카버의 책들이 쭉 꽂혀 있었고 책상에는 스미스 코로나 타자기가 있었다. 이 서재에서 그는 재수록작과 신작을 포함해서 모두 37편의 작품을 수록한 선집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의 마지막 교정지를 검토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988년, 그의 마지막 한해가 시작됐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는 카버가 직접 따온 쿤데라(M. Kundera)의 글이 제사(題詞)로 실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단 한번의 삶만 사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전의 삶들과 비교할 수도 없고 다가올 삶들 속에서 완성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캐럴 스클레니카(Carol Sklenicka)가 쓴 941페이지짜리 전기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Raymond Carver: A Writer’s Life, 고영범 옮김)은 그 단 한번의 삶을 완성시키는 책이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전기가 가능한 데는 십년이 넘는 자료조사와 수백명의 인터뷰를 거친 캐럴 스클레니카의 노고가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한편으로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의 삶이 그의 문학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전적 형태의 소설가에 속하기 때문이리라. 그 삶은 “제퍼슨 학교의 오학년생인 그는 152.5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60킬로그램(…) 뚱보였”다고 시작하는데 이 문장은 끝까지 이 책의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한다. 삶이 작품에 선행하는 작가의 전기는 작가의 삶을 텍스트에 맞춰서 재구성하려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이 실수를 피해가려면 텍스트와 실제 삶의 균열 부분을 면밀하게 탐색해야 할 텐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그 부분에서 가장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건 『대성당』이 출간되기 이전까지 그의 작품에 깊이 관여한 편집자 고든 리시의 존재 때문이다.
리시와의 갈등은 세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출간할 때 극에 달해 카버는 리시의 편집을 두고 “그건 나의 한 부분, 영적인 부분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곧 카버는 마음을 바꿔 “당신이 신경을 써줘서 너무나 고맙고 또 영광일 따름이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리시에게 보냈다. 두번째 소설집까지는 그의 역할을 받아들인 것이다. 스클레니카는 카버가 왜 네번째 소설집 『대성당』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즈음 카버의 삶이 어떤 식으로 변화를 일으켰기에 급기야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을 펴낼 때는 두번째 삶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제사를 붙이게 됐는가를 건조하게 뒤쫓을 뿐이다.
이 ‘건조함’이란 오직 자료와 증언의 인용으로만 구성된 문장들에서 나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뜻한다. 어쩌면 카버 자신도 몰랐을 수 있었던 카버의 삶이 이 두꺼운 책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예컨대 소설선집 『픽션』의 서부 지역판 출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버클리의 듀런드 호텔 바에서 도널드 바쎌미를 만났을 때, 바쎌미는 마티니 넉잔을, 카버는 그레이프프루트 주스와 스미노프 보드카 더블을, 카버의 아내인 매리앤은 스카치 씽글을 마셨다고 쓸 정도다. 반면에 어떤 증언이나 자료로도 파악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문다. “늦여름에 레이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아테네와 로마에 잠깐 다녀왔는데, 그게 누군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자료와 증언만으로 카버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그간 카버를 둘러싼 신화를 완전히 벗겨버린다. 가장 먼저 고든 리시의 역할을 축소하고, 다음으로 그간 그에게 내려졌던 미니멀리즘이라는 평가를 무화시킨다.
덕분에 리시의 그늘에서 벗어난 뒤의 카버, 그러니까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테스 갤러거를 만난 뒤의 ‘좋은 레이먼드’에 이 전기의 방점이 찍힌다. 여기가 바로 이 전기를 둘러싼 논쟁의 지점이다. 텍스트와 유족의 증언이 충돌할 때, 과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이 문제는 아주 미묘한 것이어서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카버처럼 미국문학의 일이라면 우리로서는 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문학에도 이 문제를 깊이 다룰 수 있는 문인, 그러니까 작품에 선행하는 삶을 살았던 작가가 있다. 예컨대 이상(李箱)의 「오감도」를 아내였던 변동림이 항일시로 해석했을 때, 문학평론가 임종국이 냉소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변동림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과연 내가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증언한 것이 망발인가, 아니면 도식적인 추단만으로 항일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망발인가.” 우리에게도 증언과 자료만으로 이상의 삶을 재구성한 전기가 있다고 상상하면, 이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우리에게는 증언과 자료만으로 채운, 900페이지가 넘는 이상 전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점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부럽다. 카버의 문학이 대부분 그의 삶을 원천으로 삼았다는 사실 외에도 이 책은 문학에 뜻을 둔 한 청년이 어떻게 사회와 제도 안에서 위대한 작가로 성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카버가 마침내 리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작가로 성장하는 후반부의 몇몇 장들에서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덕분에 이미 읽은 카버의 작품과 삶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비평적 독서는 점차 그의 삶을 하나의 성장담으로 읽으려는 향유적 독서로 바뀐다.
그 와중에 미국의 문학제도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일은 짭짤한 부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 두가지를 소개하자면, 1983년 카버는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에서 주는 스트라우스 기금을 받았다. 이 기금은 매년 3만 5000달러를 세금공제 없이 최소한 오년 동안 지급하는데, 이런 조건이 있었다. 보수를 받는 직업을 갖는 것, 자신이 쓴 책에서 나오는 수익 외에 한해 1000달러가 넘는 수입을 얻는 것을 금지한다. 그 기금은 소설만 쓰게 하는 기금인 셈이다. 또 하나는 카버가 한해 동안 쓰는 모든 작품을 자기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조건으로, 원고 게재를 거절할 때마다 700달러를 사례금으로 주겠다는 『뉴요커』의 제안이다. 좋은 소설을 쓰게 하려는 미국문학계의 노력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