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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해람 朴解纜
1968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가 있음. marahtz@hanmail.net
尺牘揷入春書1
꽃가루의 효능은 사월
그 시기에 출시된 허공은 무겁고 나무들의 몸 안으로 가려움이 옮겨 다닌다
나무들이 흔들려 허공을 긁고 있다
시원해지는 바람.
담장 안으로 꽃잎 지는 소리가 뛰어든다
걸음이 없는 것들에게
봄 한철이 줄지어 방문한다
잠자던 바람이 일어나는데 봄은 아주 우연한 계절이다
한철 분주한 허공의 편도
멋모르고 뿌리내린 것들은 멋모르고 기다리는 일뿐
오다가다 허공에서 만난 사이
토닥토닥 봄날을 단장해본들
咯血의 자리에는 늘 咯血이 피는 일
꽃들은 늙어서 허공을 살짝 밟아가고 떨어지는 것들은 제 스스로의 목이 시들었기 때문이다
「尺牘- 수두 꽃이 시들어간다고 하나 실은 얼굴이 앞서 시드는 것을 그대도 아는 일. 비벼대는 일이 없으면 꽃의 粉 또한 기침이나 불러들여 만발할 것을. 手應手答은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일. 意思 없이 열리는 마음에 봄날은 그 花奢를 뽐낼 뿐이지. 그대를 만나고 수없이 뒤척였으나 깨어나지 않는 잠도 있다는 것을 봄날 꾸벅꾸벅 졸면서 깨닫는다. 그대 봄은 너무 노련해져 향기가 없으니 속히 알아채길.」
무분별 암호들이 적힌 春書는 다 읽을 시기가 있는 법, 때를 놓치면 번져 흐릿해진 문장들이 뚝뚝 지고 만다.
담 너머로 날리는 흰 얼굴이 목 빼어 훔쳐본다
꽃가루의 효능은 허튼 꿈.
不倫
봄날이 며칠 지나갔는데도 저 꽃들은 여전히 숨어 있다
짧은 순간 피었다 사라지는 붉은 꽃
터지기 직전의 만개를 제 몸 안에 잡아두고
제 스스로 숨어 있는 꽃
흔한 바람과 나비가 아닌,
한 생의 무게가 봉오리를 살짝 건드리는 때를 위해
오래 잠복해 있는 地雷花
그 소리는 산을 돌아 몇代 후의 메아리로 핀다
마음이 산산 터지는 소리가 있다면 그와 흡사할 것이다
저 먼 나라 팔레스타인에서는 그 꽃을 캐는 아이들도 있다 그 뿌리는 너무 가늘어 우연이 몇갑자 흘러야 보인다는데, 목발은 꼭 뿌리 없는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데, 걸음은 꼭 나중에 생긴 발을 앞세운다는데 나는 겨우,
너라는 지뢰를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 피해 다녔던 운 좋은 날들은 다 그렇게 지나갔다.
결국 나는 너를 밟았다
숨어 있는 것들과 눈 마주치지 않는 생이 얼마나 될까
인정이 많은 바람만이 그냥 지나갈 뿐
모든 開花는 파편을 만들어낸다
한번 터지면 뿌리도 꽃대도 없는 不倫
제 그림자 위에 떨어지는 꽃잎
봄날이 깨진 저 스스로를 이어붙이고 있다
한번 밟으면 더이상 옮길 수 없으니, 절룩거리는 한때의 異國을 바라볼 것이고
밟혀야만 피는 꽃을
花藥향 진동하는 봄날이 밟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
홀로 오래 서 있는 한쪽 발과 온몸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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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독삽입춘서(尺牘揷入春書): 암호로 씌어진 짧은 쪽지가 첨부된 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