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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새 정부에 바라는 중등교육 개혁

이기정, 이범, 김진우의 제안을 중심으로

 

 

홍인기 洪仁基

경기도 고양시 상탄초등학교 교사,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hateduk@naver.com

 

 

1. 들어가며

 

2012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대통령 선거로 뜨거운 계절이 될 것이다. 대선은 국가의 주요 의제들이 논의되고 다음 정권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다. 새로운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이전의 실책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육정책에 있어서 이명박정부는 한 사람의 리더십을 임기 내내 유지했다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대선 준비과정에서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사회수석, 교육과학기술부의 ‘실세 차관’에서 장관까지 임기 5년 동안 이주호(李周浩)라는 한 사람의 리더십을 통해 교육정책이 펼쳐졌다. 이주호 장관이 17대 국회의원 시절 펴낸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학지사 2006)라는 책은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 로드맵이었다.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 펼칠 수 있는 변화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보수의 가치를 이보다 더 힘있게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 일관성과 지속성이라는 면에서는 평가할 부분이 있는 반면 소통의 부재와 교육현장의 괴리 현상은 최고조에 달한 시기이기도 하다.

정권 초기의 정책공청회에서 입장권을 발행한 사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소통이 부재한 정책은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일으켰다. ‘학교자율화’ 정책은 ‘학교장 자율화’ 정책에 머물렀다. 일제고사나 각종 학교정보 공시, 학교평가를 통해 학교 간 경쟁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려 했으나 교육과정의 획일화와 암기식 교육의 회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의 역량은 더 낮아졌다. 성적 중심의 경쟁과 사교육비 감소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보니 이상한 형태의 집중이수제가 도입되어 학교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최근 이에 대한 반성으로 새로운 정부에서 실천되어야 할 교육정책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기정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창비 2012), 이범 『우리교육 100100답』(다산북스 2012), 김진우 『나와라! 교육대통령』(좋은교사 2012)이 그것이다. 세 저자 모두 교사나 학원강사로서 교단에 서본 경험이 있어 학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쉽게 읽혀지며 그렇기에 주장하는 정책들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소신과 열정으로 교육문제에 접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기에 좌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면 중도 실용주의에 가깝다. 좌우를 넘나들며 객관적인 자료와 정보에 근거해 교육정책을 세우려고 노력해온 덕분에 이들의 발언은 보수나 진보 어느 쪽이 정권을 잡더라도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많다.

이 글에서는 세 사람이 생각하는 중등교육의 개혁 방향을 살펴보고 그것의 정치적 합의과정에 필요한 국정과제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밝히려 한다.

 

 

2. 중등교육 개혁의 외적 요인

 

세 사람이 펼쳐내는 중등교육의 개혁방향은 크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교교육과정 운영과 관련된 내용과, 학교가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외적인 요인에 대한 내용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모든 요인들은 서로 연관돼 있기에 먼저 이해가 쉬운 고입체제 정비, 교장공모제, 행정업무 전담제 같은 교육외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후반부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과 이와 관련된 대입제도의 변화를 함께 다루기로 한다.

 

선지원 후추첨 고교선발제

중등교육의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을 옭아매는 대학입시 문제를 해소해야 하지만 고교입시의 문제도 역시 해결해야 한다. 대학입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왜곡하고 있다면 고교입시는 중학교 교육을 왜곡하고 있다.

고교입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세 저자가 제시한 고교입시의 방식은 선지원 후추첨이다. 세 사람의 공통된 핵심주장은 이명박정부하에서 훼손된 고교 무시험 배정 정책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선지원 후추첨이란 학생들이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고등학교에 지원한 후 추첨을 통해 선발이 결정되는 제도다. 고등학교 입학단계에서는 선발을 위한 어떠한 시험도 필요하지 않으며, 외국어고등학교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도 지금처럼 외국어를 많이 배우는 교육과정을 유지한 채 이 제도를 시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진우의 경우 어떤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나 열정을 가진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면 시험제도가 아닌 입학사정관제 같은 특별전형을 통해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교무행정업무의 정상화

이기정은 교무행정업무에 교사들이 주력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는 현재 교원들이 받고 있는 성과급을 내놓아 모은 예산으로 교무행정업무를 전담할 인력을 채용하자는 과감한 ‘빅딜론’을 제안한다. 교사가 본연의 업무인 가르치는 일에 전문성을 쌓기보다 교무행정 처리에 몰두하고 이것이 이후 승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교직문화로는 더이상 학교교육의 질이 나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학교를 ‘행정중심’에서 ‘교육중심’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교무행정을 교사에게서 분리하는 방식으로 정상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평교사가 지원 가능한 교장공모제

평교사에게 교장 지원자격을 주는 교장공모제의 시행 확대 또한 세 저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항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교사의 승진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축적된 근무평정 점수에 의한 승진이 아닌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일정 경력 이상의 교사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부여하는 교장공모제를 만들었다. 이명박정부에 들어서 이 제도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왜곡되고 축소되어 지금은 결원 교장이 발생한 100개의 학교 중 2개의 학교에서만 평교사가 지원 가능한 교장공모제를 실시할 수 있다. 교장의 인사이동이 필요한 학교의 수가 초등 및 중등 각각 50명이 넘지 않는 지역교육청의 경우 이 제도를 실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는 혁신학교 중에는 대부분 평교사 출신의 공모제 교장이 근무하는 곳이 많은 반면 교장자격증을 가진 채 공모제를 통해 부임한 교장들에게서는 긍정적인 사례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많은 교장들이 승진과정에서 관료제도에 적응하면서 혁신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기존의 승진제도와 공모제 방식의 승진제도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 실험할 기회를 이명박정부 5년 동안 잃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중심의 학교평가

마지막으로 평가에 관한 부분이다. 김진우는 특히 그의 책에서 여러차례 학교평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학생·학부모 만족도 중심의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성과급이나 교장·교감에 대한 교원평가도 학생·학부모의 만족도 중심으로 실시하여 학교평가의 효율성을 기할 뿐 아니라 학교가 교육청을 중심으로 한 관료체제가 아닌 학교구성원의 만족도 중심으로 움직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3. 학교교육의 질 높이기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을 수학능력시험보다 못한 학력고사식의 시험문제를 통해 학생들을 서열화한 교육, 배움의 기쁨이 사라진 교육이라고 평가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이나 교장공모제 확대 등 외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학교교육이 나아지지 못하리라는 것에 세명의 저자는 뜻을 같이한다. 이들에 따르면 교육의 내적 변화는 외적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일정부분 실천 가능한 일이다.

 

무학년 학점제와 교사별 평가

이러한 인식 아래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학교교육의 혁신에서 ‘무학년 학점제’가 최종적인 단계라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무학년 학점제로 가기 위해서는 교사별 평가, 논술형 내신시험 도입,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사용에 대한 교사의 선택권 강화,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권 강화 등의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이 중에서 무엇이 우선이고 나중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씩 생각이 다르지만 각각의 정책 도입에는 모두 찬성을 표한다.

‘교사별 평가’라는 용어는 설명이 필요하다. 교사별 평가의 반대말은 ‘학년별 평가’다. 예를 들어 중학교 2학년 10개의 반이 있다면 2~3명의 국어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시험은 2학년 학생 모두 같은 문항으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치른다. 이렇게 해야 과목별 전체 석차가 나올 수 있다. 이때 같은 학년을 맡은 국어교사들이 어떤 시험을 치를지 협의한다. 시험 문항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교과서다. 따라서 시험을 치르는 자기 반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과서의 구석구석을 상세하게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정상분포곡선을 그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난이도를 높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시시콜콜한 내용이라도 시험 문제로 등장시켜야 한다. 또한 다른 반을 맡은 교사가 어떤 문제를 낼지 알 수 없기에 교과서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의 자율성을 가지기보다는 주어진 교과서를 꼼꼼하게 가르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한편 교과서에서 만들 수 있는 시험 문제의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내신시험을 쉽게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면 학원에 가서 족집게 강의를 들으려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기도 한다.

‘교사별 평가’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시험문제를 담당교사가 출제하는 평가방식이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 각자의 노력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을 전개할 수 있다. 많은 교사들이 새로운 교육방식을 시도하려고 해도 동료교사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좌절하는 겨우가 많다. 교사별 평가는 학교 시험이 논술형으로 바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이런 방식으로 평가를 할 수 없는 이유는 고입과 대입을 위해 한 학년이 같은 시험을 보고 그 결과로 전체 등수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무학년 학점제’라는 용어도 설명이 필요하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이기정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 앞부분의 거의 절반을 할애해 무학년 학점제를 중심으로 여타의 중등교육 개혁방안을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무학년 학점제는 마치 대학에서와 같이 고등학생이 필수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도 대안형 특성화고인 이우학교나 자율형사립고인 한가람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선택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턱없이 적다. 이범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필수교육과정의 양이 너무 많다. 이범은 고등학교에서 필수교육과정을 완전히 없애자고 하고, 김진우는 그 비율을 50%로 감축하는 안을 제시한다.

이우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새로운 교과목(가령 ‘SNS와 시민생활의 변화’)을 개설하고 싶어도 거기 필요한 교과서를 교사가 임의로 만들거나 대학교재를 활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검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검인증을 받는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억원의 비용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만으로 교재 채택이 가능한 ‘창의적 재량활동’으로 수업을 대체해 운영하는 학교도 있으며 대표적으로 이우학교의 경우 다른 학교에 비해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이 몇배가 넘는다. 이처럼 교과서 자유발행제도나 교사의 교재 선택권도 무학년 학점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신과 대입시험의 논술형 전환

마지막으로 설명이 필요한 용어는 ‘논술형 시험’이다. 세명의 저자는 학생을 평가하는 데 가장 적당한 형태로 ‘논술형 시험’을 꼽는다. 시험은 형태면으로 볼 때 학력고사가 가장 낮은 수준이고 그 다음이 미국의 SAT를 모방한 지금의 수능시험, 가장 좋은 방식이 논술형 시험이다. 우리나라는 대입이 모든 교육을 좌우하기 때문에 결국 그것이 논술형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대입시험과 내신시험을 모두 논술형으로 바꾸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이기정의 경우 논술형이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지금의 고등학교가 논술형을 준비할 능력이 부족하고 그 변화 과정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누가 어떻게 이 시험을 출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아쉽지만 포기해야 할 목표라고 본다. 이범은 대입에서 교과목별로 논술형 시험을 도입함으로써 내신시험을 논술형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진우의 경우 좀더 세밀한 경로를 제시하는데, 우선 수능시험을 두 종류로 나누어 수능 I은 자격고사로서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고 수능 II는 논술형으로 출제함으로써 대학별 고사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수능 I이 쉬워지고 수능 II가 어려운 논술형으로 당락을 좌우하게 된다면 내신시험은 자연스럽게 논술형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4. 교육의 ‘가치 경쟁’ 시대를 열자

 

세명의 저자가 내놓은 중등교육 개혁정책은 모두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워낙 이념과 지역의 갈등이 심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그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이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조직될 것이다. 중등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는 정책을 정교하게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시·도교육청과 반대하는 시·도교육청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정부에 의해 추진될 때 반대측은 순교자적인 자세로 그에 저항하고 정책전환기의 혼란을 극대화하며 언론의 힘을 통해 정책을 무력화하려고 들기 쉽다. 따라서 정책만이 아닌 정치적 과정으로 새로운 교육정책을 펼쳐나갈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무상급식의 경우 애초 진보진영에서 나온 정책이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가가 주도하기보다 경기도 교육청이 실천을 통해 그 효용성을 검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은 우리나라의 교육의 가치경쟁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6명이나 당선되면서 이명박정부의 성적 중심의 경쟁과 진보진영의 창의력 중심의 협동이라는 두 가치가 지자체에 따라 경쟁하는 형세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핀란드 교육 역시 역사적으로 경쟁과 협동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부딪쳐왔고, 오랜 시간의 논의 끝에 교육에서는 경쟁보다 협동이 중요하다는 데 국가적 합의를 이루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핀란드 교육을 만들었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61위)를 통해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핀란드처럼 교육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치 경쟁의 과도기가 필요하다. 6·2지방선거는 국민이 교육의 가치 경쟁을 경험하게 만든 역사적 계기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국민이 만들어낸 교육의 가치 경쟁에 역행하여 오히려 교과부 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여러 입법조치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20112월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에 교원능력평가 조문을 신설하여 평가 실시의 주체에 교과부 장관을 포함하고 평가의 원칙·항목 등을 정하여 교육감의 자율권을 제한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지방교육행정기관 재정투·융자사업 심사규칙」을 개정하여 자체심사 대상을 ‘교육감이 실시하는 사업비 10억 이상 100억 미만’에서 ‘5억 이상’으로 낮춤으로써 교과부 장관이 더 많은 심사권을 가지게 되었다.

20128월에는 교과부가 학교폭력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조치사항의 학생부 기록 방침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가해학생 졸업 후 5년간 기록이 보존되는 조치를 놓고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이 권고를 수용하여 학생부 기록을 보류하자 교과부는 경기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교육감·대변인·학교장 등 직무유기와 명예훼손 고발 10명, 경기도 교육국장·대변인·교수학습지원과장·학교장 등 중징계 14명, 교육장·교감·교사 등 경징계 27명, 교감·교사 경고 33명,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비리 사안도 아닌 일로 이 정도의 대규모 징계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큰 그림을 그렸던 이주호 장관(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교육인적자원부를 해체하고 시·군구 교육청의 기능을 축소해 교수지원업무만 맡도록 하겠다고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후 교과부를 해체하기는커녕 자신이 그 부처의 차관과 장관을 역임하면서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교육감을 견제하기 위해 장관의 권한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조치는 교육자치의 정신을 무시할 뿐 아니라 임명직 장관이 선출직 교육감을 지휘함을 통해 국민의 대표성이 높을수록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헌법적 원칙을 역행하고 있다.

새로 탄생하는 정부는 교육의 가치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핵심적인 사항 몇가지를 제안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교육감 권한 강화

교과부 권한 축소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교육을 좌우하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교육정책을 펼치기 위해 위원회 방식의 정책수립기구가 필요하다. 교과부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집행기구로 바뀌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진보진영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제시되고 있다. 향후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더라도 중앙집권적 방식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이기길 바란다.

아울러 선출직 교육감과 임명직 교과부 장관의 권한관계가 법률적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임명직이던 시절 교육감이란 교과부 장관의 명령을 집행하는 하위기관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육감이 선출직으로 바뀌고 교육자치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정해진 이상 교육감의 위상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며, 각종 교육법에서 교과부 장관과 교육감의 역할 구분도 명확해져야 한다. 교육감이 현재 정무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너무 부족하다. 교육감 혼자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무직의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특별교부금 재원 2%로 축소

교과부 장관이 시·도교육청에 나누어주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특별교부금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4%로 되어 있다. 2012년의 경우 13485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특별교부금의 재원을 2%로 줄일 것을 제안한다. 특별교부금의 절반 축소는 한마디로 교과부의 교육청 통제력을 반감하는 것과 같으며 그런 만큼 선출직 교육감의 권한은 확대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통제력 저하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주민의 교육감 선출권에 의해 상당부분 완화될 것이다. 교육자치가 강화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교과부가 이전의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강화한다면 교육자치가 왜곡되고 학교 현장도 신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과부가 교육청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려 들지 말고 협의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가 정권이나 교과부의 영향을 덜 받고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려면 교과부는 자신의 힘을 줄이고 교육청 및 학교와 수평적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별교부금을 줄이는 것이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도 교육청 평가를 학부모 만족도로 단순화하기

교과부는 매년 시·도교육청을 평가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많게는 10배의 차등을 두어 전년도에 사용하지 않은 재난대비용 예산을 나눠준다. 그런데 올해 학생들의 자살로 문제를 일으킨 대구교육청이 1등급을 받은 반면 진보교육감이 일하는 시·도교육청들은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까닭은 평가기준의 많은 부분이 정부의 교육정책을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2011년 평가지표를 분석해 보면 전체 점수의 43%(1000점 중 430점)가 정부 정책을 얼마나 잘 수용했는지 묻고 있다. 이에 반해 부모의 만족도 조사는 5%(50점), 학생의 만족도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학생의 건강·안전과 관련해서는 7%(70점)만 배점된다. 유니세프가 제공하는 학생 관련 지표 27가지 중 2가지 정도만 들어 있는 형편이다. 최악의 내용은 ‘공직윤리 및 청렴도’ 평가인데, 그 지표에서는 ‘청렴도 지수 및 향상도’(20점)보다 ‘공직윤리 및 국가교육정책 수용도 평가’(30점)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청렴도보다 국가교육정책 수용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시·도교육청을 유인하는 수단은 현재로서 예산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가치를 강압하는 것만 되풀이할 뿐이다. 교육감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기본적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고 그 평가는 학생・학부모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심판받아야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대한민국 중등교육은 한단계 더 의미있는 성장을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