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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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약동하는 기억의 문학

황석영 문학이 서 있는 자리

 

 

사또오 이즈미 佐藤泉

아오야마가꾸인대학(靑山學院大學) 문학부 일본문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漱石 片付かない近代』 『戰後批評のメタヒストリ近代を記憶する場』 『國語敎科書の戰後史』 『異鄕の日本語』 등이 있음.

 

 

『손님』(창작과비평사 2001, 일역본 『客人』, 岩波書店 2004)에서 받은 충격에 대해 쓰고자 한다. 침울한 꿈을 기술하면서 시작되어 떠들썩한 굿판에 이르는 이 작품은 창작활동이 그대로 살풀이굿이 되기도 하는 문학의 존재방식을 경탄할 만한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냉전이 불러온 믿기 어려운 폭력과 그 폭풍 한복판에 놓인 인간 ‘기억’의 곤란함을 보여주고, 나아가 ‘되새김’의 리듬을 가르쳐주었다.

기억, 특히 전쟁의 기억에 관해 우리 사회에서는 곧잘 ‘기억의 풍화’라는 식으로 말한다. 바위에 아로새겨진 글자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며 마모되어가는 것처럼 한때는 선명했던 기억도, 시간과 함께 스러져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자연의 이미지를 유용하는 기억의 표상이란, 사실에 비추어도 잘못됐고 이론적으로도 뒤집혀 있다.

기억과 망각의 과정은 자연의 과정이 아니고, 현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되새긴다는 것이 창고 안을 뒤지듯이 과거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황석영(黃晳暎)의 창작활동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되새긴다는 것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다. 일찍이 볼 수 없던 것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눈에 들어온다는 것, 어떤 일의 잠재적인 의미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 어째서 전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던가를 깨닫는 것, 다시 말해 과거를 상기한다는 것은 과거에 관계되는 것 이상으로 현재에 연관되는 행위인 것이다. 현재를 위기로 감지한 사람들이 그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문맥에서 기억을 기억해간다. 이 동아시아의 작품은 기억이 이렇게 지극히 동적인 프로세스라는 사실을 문학적 실천 그 자체로 보여준다. 갱신된 틀 안에서 자신을 새로이 표상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되풀이하여 새로 낳아간다. 역사를 상기하고 재기억하는 운동은 종속되지 않는 주체화를 향해 가는 실천이며, 그런 까닭에 그 자체의 역사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황석영에게서 그것은 문학사와 겹치게 된다.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기억을 갱신하는 운동

 

황석영은 자신의 문학세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계기로 베트남전쟁을 누차 언급한다. 이 작가는 1967년부터 일년 남짓 베트남전쟁에 해병으로 종군했다. 당시 한국에서 참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의 십자군’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전반적으로 ‘남베트남의 패망’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베트남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고, 자주적인 민족통일, 민족해방의 한 준거로 본다는 인식은 성립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작가가 베트남의 전장에서 보았던 것은, 자기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베트남 민중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조선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생각함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작가는 폭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몸을 웅크린 채,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내 민족의 분단문제와 민족문제를 문학으로 표현하리라고 맹세했다고 한다(와다 하루끼(和田春樹)와의 대담, 『손님』 일역본 수록). 베트남 전쟁은 곧 한국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서운 깨달음의 순간이었으리라. 역사의 외부에 몸을 두고 제2차 대전 후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사람은, 베트남과 한반도가 모두 냉전의 대립구도를 강요당해 분단문제를 떠안게 되었다는 것, 그 현상을 공통분모로 삼는 해방이라는 과제를 또한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인식은 옳다. 그러나 그러한 올바름이 역사를 움직이는 일은 없다. 자신을 살아 있는 역사의 바깥에 둠으로써 얻어낸 명석한 관찰이며 올바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자는 어떤가? 실제 전장에서 한국 병사라는 피압박자는 베트남의 피압박자에게 몹시 가혹했다.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가 역사의 행위자인 경우, 거리를 두고 베트남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없이 사무치게 참고가 되지만, 인식하기 지극히 곤란한 베트남전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엔 한국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너무 컸다.

하지만 광주항쟁 이후, 미국은 더이상 한국전쟁을 함께 치른 우군이나 민주주의의 나라가 아니었고 광주시민에 대한 토벌작전에 ‘고’(go) 사인을 보낸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시선 전환은 해방 후 역사에서 획기적 변화이다. 현재를 사는 자가 절박한 위기감을 지니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움켜낸 기억은 사상(思想)이 된다. 갱신된 역사적 문맥 아래 베트남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625419는 자각적인 역사경험이 되어갔다.

이러한 약동적인 기억 작업은 스스로에게 자기의 역사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새로워진 역사 속에 스스로를 거듭거듭 새로 낳아가는 행위이다. 약동감으로 가득 찬 자기창출 운동은 마침내 이른바 공적 역사를 새로 쓰는 역사학의 작업에도 깊이 관여할 만한 힘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의 규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의 사업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때까지 중요한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전쟁범죄 행위는 한국의 사회적 감성 자체를 구조화해가고 있던 냉전 규제 아래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빨갱이’라는 이항 대립구도가 지배하는 곳에서 ‘우리 편’의 문제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사실이 밝혀진다는 것은 단순히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는 것이라기보다 이러한 이분법에 의해 세부적인 것까지 통제당해온 사회적 심성과 정서를 재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은 과거의 표상인 것 이상으로, 그보다 더 많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감성의 표상이다. 기억을 갱신하는 운동은 자신들의 감성과 주관성을 다시 엮어내는 것, 자기 스스로를 고유한 문화와 운동의 주체로서 만들어내는 자기창출 행위가 된다. 그런 까닭에 역사의 새로운 조망은, 동시에 문학적 창조의 지평 또한 열어젖힌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우러지는 기억의 광장

 

한국전쟁은 세계사적으로 냉전시대의 시작을 결정적으로 알리는 전쟁이었고, 동시에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의 조그만 반도에서 일어난 국지전이기도 했다. 그 반도 안의 작은 마을에는 어린 시절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던 아저씨를 살해한 기억, 이웃을 위해 희생된 사람의 기억, 일인칭으로 된 무수한 고통의 기억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도대체 어떤 소설미학이 이러한 사건들의 중층성을 일체화된 문학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선은 국면에 따라 반도 전체를 롤러로 밀어대듯 왕복했고 그럴 때마다 끔찍하게 많은 주민이 피난민이 되고 학살당했다. ‘부역자’ 혹은 ‘협력자’가 때마다 달라지는 전국(戰局)에 의해 집단처형이나 보복폭력으로 희생되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동족상잔’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며 또한 천박하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분단을 심화시켰다. 이 침묵의 질은 물리적으로 경과하는 시간에 따라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기억의 시간을 채우게 하는 것일까?

한국의 민주화에 공명이라도 하듯이 동유럽의 민주화도 가속되었다. 이러한 연관은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는 정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때 사람들의 잠재적 역량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부숴버릴 정도까지 상승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확실히 의식하기 전에 사람들은 2차대전 후의 국제질서가 깊은 밑바닥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땅울림을 스스로의 발걸음 소리로 듣고 있었던 것이리라. (물론 우리는 이미, 그후의 세계가 민족주의의 분출로 괴로워했고, 초대국의 일극주의에 고통스러워했으며, 세계화한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서 온전히 불행해졌음을 알고 있다.) 『손님』 뒤에는 『바리데기』(창비 2007)가 쓰여야만 했다. 냉전의 악몽에서 깨어난 자는 후기근대의 또다른 악몽 속에 있었다. 그렇다면 각성이란 환상이며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늘 자기 고유의 세계를, 또다른 방식으로 꿈꾸고 있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기억의 문학은 애처롭게 죽어간 자들이 꾸었던 꿈과 지켜지지 못했던 약속을 되새기고, 일찍이 일어났던 사건의 잠재적인 의미를 상상 속에서 꽃피우려 하는 것이리라.

황석영은 이 무렵, 한국정부의 허가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귀국할 수 없는 상황 속에 5년 동안이나 망명자로서 독일, 미국 등지에서 유랑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작가는 동서독일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역사의 벽이 열리는 곳에 함께 있었다.

『손님』의 등장인물 중 하나는 “때가 무르익었다”(175면, 이하 인용면수는 한국어판에 따름)고 말한다. 때가 되었고 닫혀 있던 것을 열어젖힐 준비가 갖추어졌다. 열려고 하는 것이 동서독일의 장벽일까, 남북의 경계선일까? 양쪽 모두이며, 어느 쪽도 아니다. 『손님』에서 열리는 것은 때가 무르익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유명(幽冥)의 경계이다. 요섭 앞에는 죽은 형 요한이 때때로 나타나고 또한 형의 손에 죽은 이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말을 걸어온다. 지금 학살박물관을 견학하는 단체,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자들인가? ‘소메 삼촌’ 역시 나날의 풍경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농사일을 하고 있으면 그들이 줄지어 건너편 논둑길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기만 하던 죽은 자가 이제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나타나면 만나면 되고,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면 된다. “인차 세상이 바뀔라구 허넌지 부쩍 나타나구 기래.”(174면) “그 일얼 겪은 사람덜으 때가 무르익었단 소리디. 이제 준비가 되었단 말이다.”(175면)

이처럼 『손님』은 되새김의 리듬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한다. 문학적 사건으로 묘사되어야 하는 것은 세계정치의 재편보다는, 그때까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지표를 살랑살랑 떠돌고 있던 이들의 기억의 해방이다. 세계사의 때가 무르익고 준비가 갖춰지며, 하나의 광장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불안한 발걸음으로 모여들면 그곳에서 비로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에게 화자이며 청자가 되어 기억의 광장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학적인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일인칭으로 끔찍한 폭력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전쟁은 환갑이 지났건만 아직도 끝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것은 현시점에서 암울한 문학일 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님』에는, 동시에 뭔가 억누를 수 없는 약동감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이 작품이 실제 작품되기까지의 기억의 운동, 기억의 갱신작업을 암묵적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우리가 그 사실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적 경험이 문학화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심미적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1950년대의 전쟁과 완성된 작품 사이의 거리는, 아무래도 멀리서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거리와는 다르다. 『손님』의 작가에게 문학창작이란 역사와 기억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것과 별개가 아닌 것이다. 이 비길 데 없는 소설미학은, 특히 일본의 문학환경에 몸담은 자를 전율케 한다. 물론 일본문학 역시 미적 완결을 목적 삼지 않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지만 그것은 자주, 근대후기에 들어선 어떤 사회에서나 유통 가능한 감성 표현을 패키지화한 문화상품으로 완성하려는 과제와 동일시되고 있다. 이러한 관찰이 틀렸다면 다행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미적 완결과 역사적·정치적 항쟁이라는 다이너미즘이 일체가 된 듯한 작품을 갖지 못했고, 게다가 그러한 결핍을 자각할 만한 계기조차 문화 내부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

 

 

새로운 리얼리즘과 공동체 사상

 

과거를 새로운 맥락에서 파악하고, 자신에게 역사를 부여하며, 그리하여 자신을 거듭 낳아간다. 역사의 비참함에서조차 인간은 변할 수 있으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이 동적인 과정을 체현하는 것이 작품 속 ‘이찌로오(一郞)’라는 죽은 자와 그 이름의 궤적이다. 해방 전 그는 집도 절도 없는 머슴이었고 이름조차 없는, 아무도 아닌 자였다. 새로운 지배자로 찾아온 일본인이 ‘이찌로오’라는 이름을 그에게 주었지만, 서류의 기입 예로 곧잘 사용되는 이 이름은 고유성과는 반대되는 무엇인가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존엄성의 박탈, 피지배의 기호와도 같은 이 이름은 그의 동일성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여전히 문자=흔적으로서 잔존한다. 이것은 모욕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일까? 하지만 글을 익히고 자유와 권리의 관념을 알게 된 그는 이 이름=문자를 유지한 채 인민위원회 대표인 ‘박일랑’으로 스스로를 바꾸어간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으며, 전에 일어난 일들은 후에 일어난 것들 속에 축약되어 계승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도 시간도 축적도 없고 성장도 없어지리라. 피지배의 경험조차 존엄으로 바꾸어버리는 역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본질적인 해방이기에 또다시 엄청난 폭력에 떠밀려가게 될 이 인물의 운명은 유난히도 비통하다.

작품은 참극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서로 다른 행위자가 거기 참가하고, 따라서 내적으로는 다수인 듯한 사건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일까?

그곳에 함께 있던 자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한다. 일반적으로는 그것이 증언이 지닌 진정성의 구조이다. 하지만 관찰주체와 그 대상이라는 인식론적 도식에는 개인주의와 사적 소유의 이미지가 들러붙어 있다. 이 도식이 ‘사건’의 내적 다수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유일하고 불가분한 그곳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보다는, 내적으로 다수인 사건의 진실을 목격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왼눈과 오른눈조차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니. 이에 관하여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문화는 나와 당신은 어차피 다른 것을 보고 있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광장의 문화에서는, 왼눈과 오른눈이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세계를 입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집단성과 공동성의 인식은 주관・객관이라고 하는 인식론과는 다른, 사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이딸리아 철학자 마우리찌오 라짜라또(Maurizio Lazzarato)는 바흐찐(M. Bakhtin)의 대화론을 문학이론을 넘어서는 사회철학, ‘사건’의 철학으로 읽었다. 라짜라또가 그려내는 ‘사건’의 철학에서 인식이란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 사이의 협동작업, 각각 다른 뇌를 모아내는 ‘뇌의 협동’으로 이해된다(『사건의 정치학』(La politica dellevento)). 기억은 어떨까? 기억이란 어떤 경우엔 개개인의 뇌에 저장된 채, 뇌의 소유자가 사라짐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의 협동에 의한 기억 작업은, 사건을 사건으로, 있던 사실을 있던 사실로 그려내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의 지평을 그려내고, 그리하여 행위자들의 주관성을 변화시켜간다. 사건을 사건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협동에 의해서다. 『손님』에서는 이들이 모두 같은 평면에 모여, 죽은 자가 일인칭으로 이야기하면 그의 동료가 대꾸하고 그를 살해했던 가해자 역시 일인칭으로 말한다. 이 평면에서는 각 사람이 상승(相乘)적으로 듣는 주체이자 말하는 주체이다. 사건에 숨어 있던 잠재적인 의미를 끌어내고 사건을 그때마다 새로워진 틀로 다시 이해하며, 사건의 의미를 협동에 의하여 내적으로 심화시켜가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기독교인—가장 먼저 서구사상에 접할 수 있는 입장이었던 부유한 지주층인 이들에게 토지해방이란, 한때 머슴이었던 글씨도 못 읽는 무식한 종놈에게 자신의 토지재산을 몰수당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한때의 주인과 대등한 위치에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야 천지가 뒤집힌 것과 마찬가지다, 무질서를 불러온 ‘빨갱이’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글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다른 화자라면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생각해보라우, 너이덜이 반말지꺼리나 하구 아무 생각두 없넌 반편이라구 여기던 이찌로가 글얼 읽게 되어서. 박일랑이라구 제 이름얼 쓰게 되었디. 해방언 이런 거이 아니가.”(138) 한편에는 ‘십자군’과 ‘사탄’이라는 이분법으로 모든 세부를 뒤덮어버리는 사고가, 다른 쪽에는 사람이란 역사 속에서 변해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고가 있어 함께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평면에 모여 하나의 마당을 열고,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통적인 리얼리즘문학의 이념으로 본다면 우선 객관적인 사실의 전체가 존재하고 각 부분들은 그 전체 속에서 적절한 위치와 비중을 부여받으며 배치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다루려는 사건의 경우, 그러한 구축법은 애당초 의미가 없다. 이 광장에서 하나하나의 기억 이야기는 사건의 경위라든가 그것을 조건 짓는 구조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증언들은 그야말로 “꿈에서처럼 앞뒤 순서도 없고 연결도 되지 않는 장면들이 어떤 곳에서는 자세하게 아니면 확 건너뛰어서 펼쳐졌다.”(195면) 그것은 꿈의 논리와도 닮아 있다. 이 리얼리즘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 짜여 들어가 있던 잠재적인 의미를 끄집어냄으로써, 전혀 다른 사고의 배치로 나아가는 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다행히도 신천(信川) 양민학살 사건은 실증사학에 의해 검증이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사건에는 역사로서 기술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진실은 내부에서부터 이야기되어야 하건만 죽은 자의 경험은 절대적으로 단독이다. 작가 자신도 적고 있듯이 이 사건을 쓰기 위해서는 리얼리즘의 쇄신이 필요했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사람들의 상상력이라는 토양과 공동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총 12장의 구성이라는 것은, 황해도의 ‘손님굿’ 형식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죽은 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끝없이 번역되어 퍼져나갈 이 세계적 문학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번역 불가능성이, 바로 이 기억의 문학을 본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 능력도 없고 한국 민중문화에 관해 극히 제한된 지식밖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나는 분명 초점이 어긋난 것을 느낄 것이며 이는 아쉬운 일이다. 다만 그것이 바로 세계문학의 의미 가운데 하나면 좋으련만 싶기도 하다. 예전에 43사건과 광주항쟁을 다룬 마당극을 본 적이 있다. 학살의 희생자, 창백한 망자들이 조금씩 천천히 그 몸을 일으켜 사무친 원한을 풀어나가고 마지막에 가서는 힘차게 춤추기 시작하여 관객을 매료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거리가 전혀 달랐다. 나는 경악했다. 『손님』의 리얼리즘은 곧잘 ‘마술적’이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말해진 적 없는 망자의 기억, 숨겨진 참극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는 문화에서 이것은 생활과 감성의 참된 현실, 참으로 리얼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함께 모이는 꿈의 장면에서도 사람들의 기억은 어느 개인의 뇌에 갇혀 있지 않으며 그것을 말하고 듣는 공동의 마당을 열어젖힌다. 그것은 화해나 용서 같은 과제를 미리 설정한 뒤 하는 작업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실재하지 않고 이 마당과 함께 드러나는 기억이란, 그때마다 더욱 심화되고 입체화되어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며 끝없이 열려 있는 과정인 것이다. 이 공동의 마당은 항상 동적인 과정 속에 있고 그런 까닭에 전체라는 것을 지니지 않는다. 새로운 리얼리즘이 새로운 공동체의 사상과 더불어 창출되는 것이다.

 

 

황석영 문학에 이어져온 삶과 문화의 혁명

 

황석영이 말하는 ‘광주 공동체’는 당황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광주에선 물론 전투가 있었고 학살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경험한 닷새간의 자치 기간,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 그것 때문에 작가는 광주의 이 시기를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미 혁명이었다. 많은 지인과 친구들이 희생당했고 작가는 자기 혼자만 살아남은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절망의 경험은 동시에 어지럼증이 날 듯한 환희의 경험과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는 절망은 절망이고 환희는 환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것을 하나로 이야기할 만한 언어를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 속에 때때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리베카 쏠닛(Rebecca Solnit)은 그러한 절망 속의 희망에 주목하는 독특한 감성의 저널리스트인데, 그녀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A Paradise Built in Hell, Viking Penguin 2009, 국역본 펜타그램 2012)는 20113월 지진 후 일본사회에서 널리 읽혔다. 관리사회에서 정동(情動)의 흐름은 끊임없이 조정되고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것이 박살나고 세계의 의미가 벗겨졌다고까지 여겨질 때, 코드화되어 있던 우리의 정동은 일단 해제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동료의 분노 속에 반영하고, 안타까움을 그중 가장 강한 안타까움으로, 사랑이나 희망을 가장 생기있는 빛깔로, 증오는 덮어 감추어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감지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에 있어서, 우리는 자기 감정의 강도를 동료의 감정의 강도에서 찾아내고, 그리하여 일상에서 스스로 포기했던 존엄을 마침내 발견하게 된다.

광주의 ‘공동체’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다만 그 예시적(豫示的)인 혁명의 기억을 기반 삼아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정권을 잡는다는 생각을 넘어, 누가 정권을 잡아도 상관없을 듯한 또 하나의 문화적 편성을 유지하고 창출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그 점에서는 마음이 몹시 흔들린다. 문화써클을 기반으로 생산・소비의 공동체가 구상되고 민중문화운동이 조직되며, 가는 곳마다 모든 집회에 마당굿이 등장했다고 한다. 광장에 참가한 사람들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는 자이기도 한 문화 형태가 상기되고 창출되었다.

문화를 예술적 재능이나 기능의 소산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완성된 문화상품에 다름아니게 된다. 이미 거기 무언가를 덧붙일 수 없으며 그저 소비할 수밖에 없는 완성품으로. 하지만 사고팔기 위한 상품으로 문화를 파악하는 일을 멈추기만 하면 얼마나 풍요로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문화 창조 속에서 사람들은 상황의 주인공이 되고 자신을 표상하며 그리하여 스스로를 되풀이하여 새로 낳아간다. 그 통로가 열린다면 이미 혁명은 도래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를 조직하듯이 정치가 조직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혁명은 끝내 가짜 혁명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문화이며 혁명일지 나는 아직 제대로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의 문학작품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예컨대 『손님』이 쓰이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풍요로운 공동성을 예시적(預示的)으로 발견해낼 수가 있다.

거슬러올라가 읽자면 『무기의 그늘』(초판 형성사 1985, 창작과비평사 1992, 개정판 창비 2006, 일역본 『武器影』, 岩波書店 1989)이나 『오래된 정원』(창작과비평사 2000, 일역본 『かしの庭』, 岩波書店 2002)도 다수의, 그리고 다층적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전장에 한국군 병사, 해방전선의 도시게릴라, 베트남 정부군 장교, 탈주병, 베트남 상인이 있는데, 그들은 어떤 대목에서는 일인칭으로 말하고, 다른 곳에서는 삼인칭으로 서술된다. 그들의 표층적 언어와 숨은 동기, 동요하는 사고와 과감한 행동은 사건을 구성한다. 짧은 꿈 같은 나날을 보낸 연인들은 과거의 추억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산다. 서로를 잊을 정도로 이질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다시 만날 기회조차 이미 영원히 잃어버릴 참이다. 그런 연인이 서로 겹치는 일이 결코 없는 시간경험 그대로, 하지만 동일한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고,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룰 만한 장을 구성하는 일은 결코 없다. 하나의 소설 속에 서로 다른 언어, 알알이 솟아나는 말들의 짜임은 저 너머 타자와의 만남, 만남 없는 만남에 의해 출현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세계문학의 성좌, 그 북극성의 자리에서

 

나는 『손님』을 일본어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읽는 것일까? 나는 어디까지나 초점이 어긋난 독자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작품이 그 고유의 장이 아닌 또 하나의 장에서 읽히고, 초점이 어긋나게 읽힌다고 하는 사실이 여전히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

현재 세계문학이란 한때의 교양주의적 ‘명작’ 혹은 영문학이나 독문학, 불문학 등 국명을 앞에 단 각국 작품들을 긁어모아놓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국가와 국가 사이, 국제적 질서관계에서 근대국가체제와 포스트근대 세계질서의 폭력에 저항하고 그 틀에 수렴되지 않는 또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 그것이 우리 시대의 세계문학인 것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의 문학, 나아가 43사건의 문학, 국가 창설을 둘러싼 폭력을 기억하는 문학은 그런 까닭에 국가의 형성을 이미 완료된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과정으로 사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학은 본질적으로 국민문학이 아니기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편에서 영국의 비평가 몰턴(R. Moulton)의 고풍스런 세계문학에 대한 정의를 떠올린다. 그에 따르면, 세계문학이란 개인이 각자의 국민적 견지에서 본 전세계의 문학이라고 한다. 자국 문학을 기준으로 각각의 세계문학상을 그려낸다는 것, 즉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밤하늘에 펼쳐진 세계문학의 별자리를 올려다본다는 것이다. 다른 밤하늘에는 또다른 별자리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황석영은 베트남의 전장에서 이 전쟁이 한국전쟁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베트남은 다른 장소에도 상기될 기회를 열어두고 있다. 식민지시대에 지아비가 일본 군속으로 끌려갔던 여성의 기억 속에서는, 1960년대 말 미국에 의해 아들이 베트남에 군인으로 끌려갔던 기억이, 역사경험으로서 이중으로 겹쳐 있는—재일조선인 시인 허남기(許南麒)의 「화승총의 노래(火繩銃)」 속 삼대에 걸친 봉기의 네거티브필름 같은 기억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베트남전쟁의 아메리카제국에 예전의 일본제국이 중첩되는 것이다. 『무기의 그늘』은 묵설법(默說法)으로 일본을 묘사한다. 한국군 병사는 하루치 목숨의 댓가가 1달러 남짓, 그 핏값으로 그들은 미국 PX의 라디오니 티브이, 냉장고를 산다. 그것들은 모두 일본제품이었다—일본 독자는 베트남전쟁의 ‘특수 수요’를 지렛대 삼아 고속성장을 실현해온 일본경제의 전후사를 이면으로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거기서 기억을 거슬러오를 마음만 있다면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은 급속한 전후 부흥을 이룩했음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다. 황석영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베트남 민중의 모습에서 한국전쟁을 발견했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일본에도 베트남전쟁은 곧 한국전쟁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집합적・사회적 기억 속에 ‘조선전쟁’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 가까스로 기억에 남은 것은 ‘조선 특수’뿐이다. 일본은 타자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잇달아 타자의 죽음에 기생했지만 그것을 치욕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적 번영의 서곡으로만 기억했다. 아마 지금도 우리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제주도 43사건을 평생의 문학적 테마로 삼았던 김석범(金石範) 선생은 ‘기억의 타살, 기억의 자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일단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제주도 사람들은 우선 가차없는 폭력으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또한 그후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자신의 경험, 그 눈으로 본 것이 대부분 언어의 영역을 넘어가 있던 탓도 있다.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것, 표상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내부에 끌어안았다. ‘망각’을 축으로 삼아 그 정신을 구축한다는 것은 어떤 사태일까? 한편에서 무엇인가를 결코 기억해내지 않으려 애쓰다가, 끝내는 무엇을 잊으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주체란, 과연 어떤 주체일까?

동아시아는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일찍이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체제하에 형성되고 그러한 잘못된 유산 위에 냉전기의 미국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겹쳐 덧바른 헤게모니 공간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구조를 일체화된 전략 공간으로 시야에 담고 있었지만 일본은 미일관계의 틀 속에 스스로의 ‘세계’를 가두었고 동아시아를 부인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은 미국의 냉전전략하에서 자신이 지고 있는 객관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현재 일본문학의 궁핍함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백지도 위에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계(主題系)를 설정하여, 『손님』에 이르기까지의 약동하는 되새김의 리듬을 두고, 또한 ‘기억의 타살, 기억의 자살’이라는 고통을 둔다. 아니면 타이완의 문학, 예를 들어 1950년대 백색테러의 기억을 묘사한 란 보저우(藍博洲)의 기록문학 『포장마차의 노래(幌馬車)』—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원작이다—를 그 지도 위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손님』에서는 ‘자유의 십자군’이 상륙하여 38도선을 넘은 195010월의 어느날이 살육의 ‘고’(go) 싸인이 되었지만, 같은 날 중국군의 방향 전환이 촉발되어 타이완에서 국민당에 의한 백색테러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한반도에도 타이완에도 자신의 죽음을 죽지 못한 무수한 망자가 있어 거기 내던져진 때의 자세 그대로 땅속에 잠들어 있다. 또 하나의 동아시아 냉전의 지도는, 땅속의 죽은 자들이 꾸던 꿈의 기억 지도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하여 그려진 1950년대의 기억 지도 위에서 치욕을 번영으로 바꾸어버린 일본은 뻥 뚫린 공허로 보인다. 여기서는 망각 자체가 망각되고 되새김의 기회는 거듭 놓치고 말았다. 기억 없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우리의 밤하늘에 걸려 있는 세계문학의 별자리에서, 무엇보다도 되새김을 통하여 스스로를 거듭 낳아온 황석영의 작품이 북극성의 위치에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번역 | 서은전주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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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제는 「動的記憶黄晳暎文學っている」으로, 본지의 요청에 따라 집필된 것이다. ⓒ 佐藤泉 2012 / 한국어판 ⓒ 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