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외 『창비세계문학』 1~11, 창비 2012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창비세계문학’
이재영 李在榮
문학평론가, 성신여대 강사 poesie21@gmail.com
드디어 창비에서 세계문학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근년에 한국 도서시장에서는 세계문학 출판이 매우 활성화되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장에서의 성공이 불확실한 가운데 큰 규모의 기획과 인력이 투입되는 이런 작업에 출판사들이 나서주는 것이 분명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창비가 세계문학 작품집을 출판하기 시작한 데는 각별한 관심이 간다. 이는 창비가 그간 한국문학에 주력해오면서 세계문학 분야에서는 활동이 다소 뜸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찍이 백낙청(白樂晴)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쌍을 내세우면서 기존의 세계문학 관념에 맞서 민중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수용과 가치평가를 주장한 이래 이 개념에 깃들어 있는 서양중심적 사고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근래에는 계간 『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에 마련된 세계문학 특집 이후로 세계문학 관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활발히 이어져 2010년에는 『세계문학론』(김영희・유희석 엮음)이라는 단행본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런 논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창비의 세계문학 작품집이 어떤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선보이는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민족의 국지적인 상황을 토대로 하되 현 자본주의체제의 전개에 맞서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인 반체제적 문제의식”(김영희 「지금 우리에게 세계문학은 무엇인가」, 앞의 책 17면)을 반영하여 지금 여기의 현실에 조응하는 세계문학 작품집이 펼쳐진다면, 이야말로 한국에서 내놓는 ‘최신 버전’의 작품집이 될 것이다.
이제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은 더이상 자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세계문학은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국제적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며,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세계의 문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작품, 보편적인 문제의식과 관점에 도달한 작품’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러한 규정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어떤 작품이 ‘국제적으로 널리 확산’되는 데는 작품 외적인 상황이 개입하기 마련이고, 그 점에서는 줄곧 서양문학이 유리했다. 또한 ‘높은 예술적 가치’라는 것이나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고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수(單數)로서의 ‘세계문학’은 서양의 정전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놓고 다른 관념과 구상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이념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니 시대와 지역, 집단의 문제의식과 가치관, 문학관 등의 차이에 따른 복수(複數)의 ‘세계문학들’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런 차이들이 충실히 반영될 때에야 ‘세계문학’은 막연한 교양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한국의 세계문학’을 얼마나 일구어왔는가. 우리 고유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선별하여 내어놓는 세계문학 작품집은 우리의 문학적 역량을 시험하는 잣대이자 한국문학계의 권리이며 의무라 할 것인데, 지금까지의 작품집들은—제3세계의 문학을 수용할 때도—서양문학계의 시각을 재생산하는 데 그친 바가 크기 때문에 ‘한국의 세계문학’은 여전히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따라서 기존의 세계문학 관념을 비판해온 창비에서 내놓는 세계문학 작품집이 이 과제를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장기적으로 지켜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우선 이번에 선보인 열편(10종, 11권)의 작품들 가운데 그 첫번째 책인 『젊은 베르터의 고뇌』(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를 중심으로 잠정적인 개관이나마 간략하게 해보고자 한다.
창비세계문학의 제1권으로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선택된 것은 얼핏 앞서 말한 기대에 어긋나 보인다. 서양문학이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 ‘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유수한 서양 문학작품 대부분이 유용성을 숭배하고 물신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비판적 전통을 우리의 시각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수용과정에서 그런 성질들이 희석되고 무력화되었다면 이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사랑은 개인적 차원의 연애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습과 전도된 가치에 매몰된 사회에 대한 베르터의 격정적인 비판의식이 전제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아가 베르터가 내세우는 자연, 소박함, 민중, 가슴, 감정, 개인성 등은 목적에 대한 성찰 없이 근면과 절제,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무장한 채 기성체제 안에서의 성취를 추구하는 시민이 일구어낼 사회에 대한 거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이미 자본주의사회의 의식세계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예고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면서도 이렇게 시민사회의 사회적 상황에 저항하는 초기의 의식을 보여주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창비세계문학으로 접어드는 현관으로 선택한 것은 적절한 일이다. 더러 혼돈된 관념이 나타나고 괴테 자신의 주인공에 대한 거리두기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원문을 임홍배(林洪培)의 번역으로 충실하게 옮겨냈다. 작품 후반부에서 베르터가 읽는 오씨안(Ossian)의 노래들은 특히 번역이 간단치 않은데, 독일어권 문학의 번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역자 중의 한 사람인 임홍배는 여기서도 특수한 어조를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구사해내었다. 다만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는 일반 독자에게 전제하기 힘든 선지식이 필요한데, 역주가 생략된 것이 다소 아쉽다 하겠다.
전체적으로 일별한 결과 1권에서 확인되는 충실한 짜임새와 높은 번역의 질은 11권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자들의 역량의 소산이기도 하겠지만, 평자 역시 경험한 창비의 섬세한 교열작업이 특히 이런 대규모의 작업에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11권까지 수록된 작품들을 어권으로 분류해보면 독일어권이 둘, 스페인어권이 하나, 영어권이 하나, 러시아어권이 둘, 프랑스어권이 둘, 일본어권이 하나, 중국어권이 하나다. 초역인 『라데츠키 행진곡』(요제프 로트 지음, 황종민 옮김)은 독일어권 문학에 속한다. 이로 보건대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의지는 일정하게 반영되었으나 발간사에서 예고한 바대로 제3세계 문학의 수용을 통해 “세계문학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듯하다. 물론 저항적 흑인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미국의 아들』(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이 영어권 문학의 첫 작품으로 선택된 데서 나타나듯이 서양문학을 선별하는 기준에서도 이미 창비의 시각이 확인된다. 창비가 새로 그릴 세계문학의 지형도는 앞으로 목록이 확장되면서 본격적인 면모를 드러낼 테지만, 과거의 지형도에서 백지로 남아 있던 숱한 지점들을 채워넣는 힘들고도 값진 작업에 충실하면서도 신속하게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창비세계문학의 다분히 금욕적인 표지 디자인은 작품과 번역의 질로 승부하겠다는 결의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우직한 승부에서 창비세계문학이 자랑할 만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문화 적대적’인 당대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값진 기여를 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