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예년보다 다소 적은 총 121편의 응모작 가운데 네편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본심에서 수상작 선정 여부를 두고 고심한 작품은 사실상 단 한편이었다.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긴 했지만 다섯명의 심사위원들이 합의에 이르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심 후보작 네편을 중심으로 심사위원들의 독후감을 간단히 옮겨적는다.
조석신의 『트라이앵글』은 익숙한 소재를 대중적인 장르소설의 틀로 풀어낸 작품이다. 자수성가한 한 중년 남자가 어느날 문득 삶의 허무와 마주치고, ‘잃어버린 시’를 되찾기 위한 인위적 자극의 방편으로 위험한 ‘살인 게임’을 벌인다는 이야기. 그러나 문장의 밀도, 인물의 조형, 사건의 짜임새, 결말의 설득력 등 기본적인 소설공학의 측면에서 미숙한 점이 지적되었다.
문신의 『삼일공동주택』은 제목에서 짐작되듯 공간이 사실상의 주인공인 소설이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옛 영화를 잃고 흉물로 전락한 ‘삼일주택’을 소개하는 작품의 도입부는 네편의 후보작 가운데 가장 박력있고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강렬한 도입부 이후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다소 식상했고 그들이 벌이는 이런저런 사건들에 무리한 대목이 많았으며, 문장의 밀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사실 퇴락한 공동주택이라는 소설 공간은 다소 뻔한 일들이 벌어질 무대가 될 공산이 큰데, 이 작품의 서사는 결말부의 ‘반전’까지 포함해서 이런 예측 가능한 테두리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관습적 상상력의 뛰어넘는 발상의 파격과 장편의 서사를 감당할 만한 지구력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김영의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는 안정된 문장과 담담한 어조로 주인공의 미니멀한 삶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이 작품의 서사는 대필 알바가 주업인 삼십대 여성 화자를 통해 전달되는데, 내면의 목소리에 사로잡힌 그녀는 주변 인물들과 온전하게 공명하지 못한다. 삼총사 모녀나 치킨 박, 후배 S처럼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 여자의 마음속에서 점점 무뎌지고 녹이 슬어가는 얇은 쇳조각”에 관해 말하기 위해 반드시 주요 캐릭터의 잠재적 가능성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어느 누구라도 마음 한구석에 “얇고 예리한 쇳조각”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일상의 편린들을 소박하게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좀더 시야를 넓혀 주요 서사를 중심으로 플롯을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수상작은 청년 세대의 고통과 혼란을 경쾌한 화법과 발랄한 유머감각으로 담아낸 김학찬의 『풀full빵』이다. 붕어빵 명인의 아들이 타꼬야끼 장수로 자립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소재에 대한 장악력이 좋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간결한 대화를 위주로 전개하는 스토리텔링 솜씨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재치있는 발상과 기발한 화법의 이면에는 이 시대의 젊은 세대가 당면한 고민을 따뜻하게 성찰하는 진중하고 균형 잡힌 문제의식 또한 갖추고 있다. 세목의 질감과 소박한 결말 등 보완이 필요한 대목도 있지만, 『풀full빵』은 이런 약점을 상쇄하는 특별한 매력과 활기를 보여준다. 그 매력과 활기는 주로 이 소설이 설정한 주인공-화자의 독특한 위치에서 나온다. 그는 확신에 찬 계몽적 주체가 아니라 불안한 비정규직 세대이고, 고백하는 1인칭이 아니라 대화를 즐기는 3인칭이며, 미성숙한 화자가 아니라 의뭉스러운 이야기꾼이다. 속이 꽉 찬 이 스물아홉살 청년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덤덤한 적극성과 타인에 대한 은근한 연대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새로운 사회적 자아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기도 한다. 수상자 김학찬씨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버지 세대의 유산을 삐딱하게 이어받는 주인공처럼 한국소설의 전통을 가로질러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강영숙 은희경 조해진 진정석 천운영|
수상소감
김학찬
1983년 경북 고령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한국시리즈 6차전을 보고 있었다. 5차전까지 박석민의 타율은 7푼 1리였다. 4회 초, 조용하던 박석민이 투수의 공을 관중석으로 받아넘겼다. 박석민이 홈플레이트를 밟았을 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 참 다행이었다. 당선을 전하는 전화는 그뒤로 한시간쯤 지나서 왔다.
잘되지는 않고, 쓰는 것도 힘들고, 공부가 본업인 대학원생인데, 괜히 우체국에 갈 때면 부끄럽고 짜증도 나고, 재미있는데 왜 안되는 걸까, 그런데 사실 내가 봐도 안되는 이유가 있긴 하고, 안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고, 그래, 재미없고 쓰기 싫은 논문이나 써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했다가 역시 그런 거지 하면서 찌질거리기도 하고……
운 좋게 잘 맞았다. 타자가 만든 안타보다 상황이 만든 안타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시작도 못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다. 홈런을 친 박석민은 MVP가 되지 못했다. 더 잘 친 이승엽이 뽑혔다. 하긴, 그렇지. 그래도 내 마음에 내가 진 빚을 갚은 걸로 만족한다.
진부한 감사의 말을 해야겠다. 부모님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다른 말은 거짓말 같다. 문학과 글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주신 고형진 선생님. 배운 대로 정확하고 꼼꼼하게 읽고 쓰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권창수 집사님. 어떻게 보답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요즘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 동학들. 정연 치범 원술 지혜 미진 현지(이상 나이 순). 사실 공부는 핑계고 노는 게 목적인 것 같지만…… 친구들, 다 잘 살고 있겠지? 결혼한 녀석들은 어서 주니어를, 안한 녀석들은 생각 좀 해봐라. 태어나줘서 고마워, 조카 동하. 누나와 매형도 고맙지만 조카에게 묻어가자. 이걸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번 기회를 주자고 말씀하셨을 게 분명한 심사위원 선생님들, 선택을 후회하시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내 글을 믿어줬던 수경아. 나도 나를 못 믿는데…… 너를 부르고 감사의 말을 마친다.
다음 타석에 설 때, 안타를 쳤으면 좋겠다. 눈을 크게 떠야겠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