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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영민 高榮敏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이 있음. amond000@hanmail.net
국립중앙도서관
허공에 매화가 왔다
그리고 다시, 산수유가 왔다
목련이 왔다
그것들은 어떤 표정도 없이
가만히 떠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개를 쭈욱 빼고 내려다봤다
그저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매화가 먼저 가고
목련이 가고
산수유가 갔다
구호
필리핀 정부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이슬람민족해방전선 수니파 무장 반군들에게 우리나라 구호기관이나 선교단체가 보내주는 옷은 큰 인기다 수류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한 게릴라 지도자는 ‘개봉동 조기축구회’라고 쓰인 운동복 차림이다 그 옆에 심각한 표정으로 M16 유탄발사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안전제일’이라는 한글 구호가 큼직하게 박힌 모자를 쓰고 있고, 또다른 무장 반군은 ‘서울검찰청 녹색어머니회’라고 인쇄된 여성용 의류를 입고 있다 그들 뒤로 맨몸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함께 서 있다 아무런 글씨도 없는 민소매의 청년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걸어나왔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다시 총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