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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오봉옥 吳奉玉
1961년 전남 광주 출생. 1985년 16인 신작시집『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로 등단. 시집으로『지리산 갈대꽃』『붉은산 검은피』『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등이 있음. obh419@hanmail.net
거미와 이슬
거미의 적은 이슬이다
끈끈이 점액질로 이루어진 집은
이슬의 발바닥이 닿는 순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눅눅해진 거미줄로는
그 무엇도 붙들 수 없어
허공을 베어 먹어야만 한다
거미는 숙명적으로
곡마단의 곡예사가 된다
가느다란 줄에 떼지어 매달리는 이슬을
곡예사가 아니고선
다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의 살은 공처럼 부드럽다
곡예사는 이슬을 발가락 끝으로 통
통 퉁겨보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톡
톡 내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크게 만들어놓은 뒤
새총을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다시금 새하얀 구슬들로 쏟아지게도 한다
이슬을 다 걷은 거미는
괜시리 한번 거미줄을 튕겨본다
오늘도 바람이 불면 그물망 한 가닥
기둥처럼 붙잡고 흔들릴 것이다
그뿐인가,
팽팽한 줄이 퍼덕이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수평선
단발머리 소녀들이 촛불로 만든 수평선!
태양도 품어 바글바글 끓게 하고
끝내는 붉은 노을로 철철철 넘치게 하는 수평선
똥새도 비단구름도 잠겨 흘러가게 하고
지나가던 달님도 붙잡아 넋놓고 바라보게 하는 수평선
툭 건들면
물고기 몇마리 파다닥 뛰어오를 것 같은,
아니 망망한 그 속을 들추면
살아 있는 영혼들이 일제히 허연 배때기를 뒤집고
찬란하게 솟아오를 것 같은
너울너울 수평선
출렁출렁 수평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둥둥 떠다니던 나를
꽃상여 타고 떠날 때까지 둥둥 떠다니라고
오늘도 나뭇잎처럼 떠 있게 하는 수평선
열댓살 먹은 소녀들이
훅 불면 꺼질 듯한 촛불을 들고 만든 것이어서
엿처럼 눈물처럼 한없이 녹아들다가도
팽팽히 살아서 다시금 나아가게 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