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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문학, 다시 현실을 묻는다

 

작가들이 만난 현실

 

손홍규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등이 있음.

 

정지 鄭智我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르뽀집 『벼랑 위의 꿈들』 등이 있음.

 

함성 咸成浩

1963년 강원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 등이 있음.

 

정홍수 鄭弘樹

1963년 부산 출생. 문학평론가.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평론집 『소설의 고독』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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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사회) 오늘 좌담은 작년 『창작과비평』 겨울호 특집 ‘고달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우리 시대의 문학’의 문제의식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난번 특집은 최근의 소설 작품들,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르뽀르따주 장르 등을 통해 작금의 암울한 시대현실에 대한 문학의 대응 양상을 살펴본 기획이었습니다.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언제든 진지하게 묻고 따져보아야 할 과제겠지만, 이즈음 새삼스럽게 문학의 정치성이나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묻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다양한 물음이 제기되어온 맥락에 대해서는 굳이 재론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촛불시위가 있었던 2008년인가요, 진은영(陳恩英) 시인이 이곳 『창비』 지면에 ‘시인의 정치참여와 참여시 사이의 괴리’라는 질문을 들고 나온 이래 ‘문학과 정치’ 혹은 ‘문학적인(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교섭 양상을 두고 많은 비평적 논의가 있었습니다. 9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을 경유하여 다시 한국문학의 주요 의제로 등장한 이같은 ‘현실의 귀환’은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에 있는 지금 우리 시대의 어두운 현실이 용산참사나 쌍용차사태 같은 데서 보듯 어떤 임계점에 다다른 듯하다는 위기의식을 너 나 할 것 없이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만큼 지난 대선에 대한 기대랄까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것 같고요. 우리 사회의 양극화나 분단체제의 위기 심화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세력이 다시 집권을 연장하게 된 대선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어쨌든 박근혜정부의 출범은 다시 그 자체로 우리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 텐데요, 요 며칠새 북핵문제로 한반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면서 그 가능성이야 극히 낮다고는 해도 ‘전쟁’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지금 우리 현실이 얼마나 위태롭게 지탱되고 있는지 막막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만하면 ‘문학과 현실’ ‘문학과 정치’의 문제를 다시 질문해보려는 오늘 좌담의 시의성은 차고 넘친다고 해야 할 텐데요, 돌아보면 그간의 논의가 비평적 동어반복에 갇혀 있는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창작현장에 있는 작가와 시인 분들을 모시고 구체적인 실감을 동반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좀더 진전된 논의를 끌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 계신 문인들은 오늘의 시대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실감이랄까 현실 인식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걸로 좌담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지금 문학은 어디에 서 있나

 

손홍규 요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꽤 고독한 행위인 것 같아요. 단순히 얘기해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사회현실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도 사회가 반응을 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았는데, 외려 지금 작가의 정치적인 인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고, 작가들 중에도 그런 문제를 천착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하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문학적 행위 자체가 더 고독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는데요, 이전 시대의 전형적인 고뇌가 작가라는 존재와 사회의 대립 때문에 느껴지는 고통이나 고독이었다면, 지금은 대립 이전에 이미 작가와 사회가 분리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괴리를 느낀다는 건 그전에 접합지점이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살을 맞대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느껴지는 감각이 전해지는 건데, 지금은 글쓰기가 사회에 속한 행위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원천적으로 부여되었던 의미가 있잖아요. 그런 정치적・사회적 의미 같은 게 많이 박탈되고 희석되어서 오히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나 사이의 동질성이 약화된 것 같아요. 제게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이전 세상보다 더 낯설어 보이거든요.

정홍수 처음부터 상당히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네요.(웃음) 정지아씨의 르뽀집 『벼랑 위의 꿈들』(삶창 2013)을 읽어보니까 그 제목 그대로 꿈조차 꾸기 힘든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에 정말 한숨이 나더라고요. 이야기를 좀 이어주시죠.

정지아 저는 손홍규씨와 달리 굉장히 낙천적이지만, 문학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거나 축소되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해요. 거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매체의 발달인 것 같고요. 또 1970~80년대에 진지한 소설들이 많이 읽혔다고 하는데, 그때는 어쨌든 이른바 인텔리겐차가 독재에 항거하고 민중을 이끌었던 시대였고, 그 과정에서 문학이 독재정권에 의해 왜곡된 사실, 혹은 눈에 보이는 사실의 이면을 선봉에서 알리는 역할을 해왔고, 문학작품 고유의 역할 이상의 선동·선전의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역할이 너무 과중해져서 문학으로부터 멀어졌던 시기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역할을 문학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서 하고 있죠. 예전 같으면 삐라나 선전물이 했을 일을 SNS를 통해 각자 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에 요구되던 긴박한 선전의 요구는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면에서 르뽀조차 옛날처럼 무언가를 급박하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미적 구체화가 되기 전의 현실을 SNS보다 좀더 깊게 쓰는 정도가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문학의 위상이나 역할이 대중의 역할 변화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지점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도 아직 그 지점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문학의 역할이 없어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물론 오늘날의 대중이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진지함과 미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소설을 읽어주느냐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희망이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언제는 현실이 비참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까.

『벼랑 위의 꿈들』을 쓰면서 희망과 꿈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예전엔 더 많았죠. 그래서 저는 이 시대가 암담하다거나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이전과 같은 명료한 대안이 없을 뿐이고, 또 명료한 대안이 없는 것조차 저는 발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맑스주의가 그려왔던 세계가 단순명료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다양한 층위를 놓친 측면도 분명 있어요. 인류가 그것을 역사 속에서 검증해오기도 했죠. 그래서 당장 섣부른 대안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지금의 금융자본주의가 다변화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렇게 쉽사리 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 태도도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쉬운 답을 구하기보다는 헤매고 견디면서 나아가는 과정도 언젠가 돌아보면 진보·진화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낙관적인가요?(웃음)

정홍수 정지아씨와 손홍규씨 두분이 넓게 보아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면, 함성호 시인은 그간 혼성적인 언어실험을 바탕으로 낯설고 전위적인 시를 써왔습니다. 건축가이면서 건축평론을 쓰기도 하시죠. 평소에도 기발한 생각으로 좌중을 압도하곤 하는데, 조금 다른 진단이 있으실 것 같네요.

함성호 저는 건축일을 하다보니 자본의 흐름에 아주 민감한데요. 제가 상대하는 건축주들은 주로 벼랑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일본에 의해 개방된 이래로 지금까지 한반도는 외세가 계속 장악해왔습니다. 구한말까지 만들어진 민족자본이 기독교자본이나 일제 식민지 지배세력에 붙지 않으면 다 죽어버렸고, 해방된 다음에는 기독교자본과 결합한 쪽만 살아났죠. 그게 지금까지 계속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지아씨도 말씀하셨지만 문학뿐 아니라 문학 외부의 상황도 사실은 150년 가까이 변함이 없다는 거죠.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정점인가, 바닥을 칠 대로 쳤나. 우리를 둘러싼 외부조건이 계속 그대로인데다가 엘리뜨는 무능하고, 문학도 그 안에서 현실적 감각 같은 걸 기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사실 엄정하게 보면 우리 문학이 뭘 건져냈는가, 자문해보면 참담합니다. 형제들끼리 피 터지게 싸워놓고 인간성의 보편에 다가가는 전쟁문학 하나 건져본 적이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현실 대응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80년대에 문학이 했던 역할이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고 달라지는 게 참 이상한 거죠. 문학이 가진 본래적 의미는 계속 이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세계 금융자본주의에 휩쓸리면서 변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대선구도 속에서 제가 가장 절망했던 건, 투표권이 생기면서부터 제가 계속 지지했던 김대중(金大中)씨가 1997년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나서 대뜸 ‘신지식인’ 얘기를 꺼냈을 때예요. 지식을 달러로 환산하겠다는 거죠. 거기에 너무 질려버렸어요. 그런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결국 문학도 돈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변했고, 아시다시피 출판도 달라졌죠. 상업출판 쪽으로 완전히 쏠렸고, 작가들이 거기에 휩쓸려 전속계약하듯 작품을 생산해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제가 볼 때 지식은 돈이 안되는 게 맞아요. 그래야 가장 느린 걸음으로 가장 빠르게 현실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학은 이 느린 걸음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입니다. 문학의 외부적인 상황과 문학이 같이 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문학은 그런 외부적인 상황을 견제하는 본래적 의미를 굳건히 지켜야 하는데 그 의미를 상실해버렸죠. 지금 현실의 문제는 거기에서 온다고 봐요. 문학이 본래의 의미를 스스로 던져버린 거.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은 그걸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거죠.

 

가능한 변화와 근본 변혁 사이에서

 

정홍수 현실과 문학의 관련 문제는 뒤에서 본격적으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현실 진단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기로 하겠습니다. 2012년 『창비』 겨울호에 실린 리베카 쏠닛(Rebecca Solnit)의 「당신의 승리들을 점거하라」 「우리의 가두행진에 내리는 비」는 오늘 좌담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월가 점거’ 일주년을 기념하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경제정의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열망, 자본주의가 초래한 광범위한 고통에 대한 인식에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공통의 토대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확인한 것은 특별한 수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필자가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대목, 작은 승리들을 소중히 기억하고 챙기면서 더디더라도 한발 한발 희망의 길을 밟아나가자는 이야기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바깥은 없다, 이제 사실상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전제해놓고 거대한 절망과 비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우리 평단이나 작품에서 어떤 ‘포즈’처럼 자리 잡은 느낌이 없지 않은 터라, 작은 희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는 필자의 주장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희망적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해 못 박지 않는 것이자 가능성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을 의미하며, 변화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헌신함을 의미”한다는 리베카 쏠닛의 이야기가 그런 것일 텐데요, 여기서 ‘가능성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이야말로 문학이 응당 지키고 키워나가야 할 자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함성호 시인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함성호 저도 균형 잡힌 글이라고 생각했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사실 그런 글이 좀 위험하기도 하죠. 이제 선()적인 나아감이 아니라 점()적으로 번져나가자는 얘기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라도 흠잡아서 꼬집을 수 없는 글이고 정말 옳은 말인데, 그래서 오히려 읽고 나서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진 편이라 애도 안 낳고 국민연금도 안 냅니다. 왜 제 인생을 국가가 관리하려 하느냐는 생각 때문이지요. 내가 늙어 어디 가서 죽든지 말든지 국가는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신 쏠닛의 에쎄이를 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쏠닛은 ‘점거하라’ 운동이 태어난 지 일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아직 성에 찰 만한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전 이제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쏠닛이 얘기한 것처럼 “오바마가 뭘 잘했니 뭘 못했니”라는 식으로는 이제 그만 떠들고요. 어차피 지금은 민주주의를 놓고 정부와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정부시책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비판적 입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과는 별도로 우리끼리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해요. 지금은 만들 때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지난 오년간 겪었고 앞으로의 오년이 예상되듯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싸움만 하다 지쳐서 결국 남는 게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들어라!’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무엇에게도,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아 일단 쏠닛의 글에 이를테면 장기적 전망 혹은 체계적 대안이 없다는 데 대해서는 다들 공감할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 전세계의 진보진영에서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만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죠. 어쨌든 전체적 전망의 결여라는 점에는 저도 동의하는데, 동시에 저는 갈등을 왜 못 견디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갈등이 쌓이고 축적되어서 충돌하는 힘이 생겨나 이전의 씨스템을 뛰어넘는 것이 혁명일 텐데, 이런 혁명이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쉽게 답을 구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손홍규씨가 낯선 현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해방 직후부터 민주화 전까지 우리 사회 지식인과 문인 들이 느꼈던 현실의 암담함, 현실과의 괴리가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경제나 사회씨스템이 그때보다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가 역사상 전대미문의 고통스러운 현실일까요? 복잡해졌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과정도 더 복잡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대다수의 사람은 고통을 체감하며 살고 있고, 그 고통이야말로 나아가게 하는 진정한 힘일 거예요. 한 예로 ‘점거하라’와 비슷한 시도는 한국에서도 무수히 많았다고 생각해요.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 농성도 완벽한 승리는 아니지만 부분적 승리는 이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 시민의 동참을 끌어냈죠. 그 연대의식은 예전처럼 조직화된 게 아니었어요. 대표적으로 제주 강정마을이 있는데, 강정에 운동권 세력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다분히 자발적인 참여예요. 환경운동가 몇 있고 평화운동가도 몇 있지만 상당수는 그냥 강정에 왔다가 이 아름다운 곳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희망에서 시작해 몇달 몇년째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더 놀라운 건, 강정이 상당히 잘사는 마을이라는 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찾아온 시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거죠. 이를테면 타지인과 어울려서 같이 밥을 해먹고 김치 담가다주고 전 부쳐주는……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공동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쨌거나 거기에서 아름다운 강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과정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뭉쳐서 서로 힘을 주고받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시도가 지금은 물론 작고 미약하지만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80년대에 수십만 군중이 한꺼번에 나가서 얻었던 승리, 정권을 뒤바꾼 승리감, 그것도 사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나온 결과물이잖아요. 지금도 작은 희망들이 분명히 사방에서 자라고 있어요. 제가 르뽀를 쓰면서 잊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속옷장사 하시는 분이었는데 매장이 컸어요. 아마 저보다 훨씬 더 잘사는 분일 거예요. 그분이 매장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싸우고 계셨는데, 같은 이유로 싸우다 패배한 다른 시장의 상인들이 마치 자기 싸움인 것처럼 참여하고 있더라고요. 이유는 단순명료했어요. 우리는 이미 망했지만 너희라도 승리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 이랬다는 거예요. 사실 그 사람들은 다들 제법 성공한 자영업자인데 어쨌건 대자본 앞에서 연대의식이 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작은 시작들을 소중히 여기는 이 자세는 상당히 긍정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작은 시작이 대중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저는 가장 주목해야 하는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손홍규 저는 쏠닛의 글을 읽고 두가지가 떠올랐는데요, 먼저 「우리의 가두행진에 내리는 비」는 이른바 극좌파에 대한 비판인데, 김소진(金昭晉)의 단편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91)이 떠올랐어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밥풀떼기’로 표현되던 이들을 당시의 운동권, 민주화세력이 사실은 노골적으로 배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이나 인식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통합진보당은 물론 어떤 당의 당원도 아닙니다만, 지난 대선에서 그랬고 통진당이 생기고 나서 특히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따돌림 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옳고 그름의 문제도 있겠으나 같은 진보에 선 사람들이 어떤 세력을 따돌리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정도의 관용조차 우리 안에 설 자리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겉으로는 진보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안에 또다른 식민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80·90년대 운동권이 밥풀떼기를 밀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어 사실 그 글의 견해에 그렇게 크게 공감하진 못했어요. 물론 쏠닛이 비판한 건 이른바 모험주의라 칭할 수 있는 지식인들의 극좌적 경향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변화를 추구하는 자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변화를 추구하는 자들을 배제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보였거든요.

그리고 「당신의 승리들을 점거하라」를 읽고 떠올린 건 황석영(黃晳暎)의 단편 「객지」(1971)였어요. 「객지」에 보면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는 말이 나오죠.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는 유격전이 아니라 진지전의 시대다’ 같은 이야기, 뭔가 가능한 변화를 추구하고 성과나 승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전진하라는 메씨지죠.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는 건 다른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다르게 얘기하면 그 희망이 사실은 다른 희망을 살해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는 희망이 사실 가능하고 근본적인 변화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거죠. 전략적이고 큰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변화들이 이루어지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당연히 점진적인 상황의 개선이 뒤따르겠죠. 하지만 그런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가능한 변화만 주장하는 건 의도와는 달리 진짜 희망 자체를 압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객지」의 주인공 동혁이 더 큰 희망을 살해하면서 작은 희망에 만족하는 인물은 아니죠. 하지만 대체로 이런 화법을 동혁과는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에 언급한 거예요.

저 역시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고, 세상이 어떻든 잘 놀다 가자는 쪽에 가깝습니다.(웃음)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사회지형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민주당이 권력을 10년이나 잡았고 그사이 많은 걸 경험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그건 상대적으로 가능한 변화라고 여겨졌던 김대중·노무현정권이 우리에게 그 가능한 변화들이 더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명박과 박근혜는 어차피 우리 삶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잖아요.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권은 절대악이라기보단 이를테면 순수한 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삶의 조건을 제한하는, 세상은 원래 그러지 않았느냐는 것처럼, 우리가 늘 겪을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그런 세계에서 가능한 변화들이 점진적이지만 궁극적인 변화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보니 지금 위기감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치적 실천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

 

정홍수 사실 이 문제만 가지고도 종일 토론을 할 수 있겠지요. 뭐, 그렇다고 해도 결론을 내리기야 힘들겠지만요. 며칠 전에 영국의 전 총리 새처(M. Thatcher) 여사가 세상을 떴잖아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대처리즘의 문화정치』(한나래 2007)라는 책에서 읽은 인상적인 사례가 있어요. 새처 집권 시절 런던광역자치구는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런던광역자치구에서 대중교통요금을 인하하고 더 값싼 여행이 가능하도록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걸 단지 시민들의 ‘주머닛돈 아끼기’란 측면이 아니라 ‘요금이 공정한’(fares fair) 사회라는 대안적 비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자 계층이나 경제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도시를 돌아다니며 어느 만큼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지하철과 버스에서 폭력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수적 효과였다고 해요. 스튜어트 홀은 바로 이런 과정이 정치를 통해 변화를 실감하는 구체적인 경험이며, ‘새로운 주체들’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심성을 구축하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당시 영국 좌파들 내부에서는 이걸 일종의 개량주의라고 매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문인들이 주도하는 작은 정치적 실천의 움직임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용산참사 때의 ‘69작가선언’, 송경동(宋京東) 시인이 아이디어를 낸 ‘희망버스’, 그리고 최근의 예로는 ‘강정평화책마을 만들기’ 운동, ‘젊은 문인 137인 선언’이 있습니다. 쌍용차 투쟁과 관련한 공지영(孔枝泳)씨의 르뽀르따주 『의자놀이』(휴머니스트 2012)나 정지아씨의 이번 르뽀집도 작지만 의미있는 작가적 실천이라고 생각되고요. 손홍규씨는 지난 대선 때의 ‘젊은 문인 137인 선언’ 때문에 지금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고 있나요?

손홍규 지난 43일 검찰이 저를 불구속기소했습니다. 경찰에 한번, 검찰에 한번 갔는데 다 진술 거부했어요.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과정을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먼저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09년 말씀하신 ‘69작가선언’이 있었죠. 선언에 참여한 작가들이 유례없이 폭넓은 토론과 합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는데, 이번 ‘137인 선언’은 그걸 염두에 두긴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어요.

정홍수 좀 조급하게 진행된 건가요?

손홍규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해서 결국 작가 개개인의 자율성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서명하고 동참하는 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을 보인 거예요.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주변에 얘기를 하면 다시 그들이 또 자신의 지인들한테 전하는 형식이었는데 저는 그걸 최종적으로 수합했을 뿐이죠. 어쨌든 그 과정에서 작가들의 반응이 아주 민감했어요. 프랑스 철학자 랑씨에르(J. Rancière) 식으로 얘기하면 사실 137인의 선언은 ‘문학의 정치’라기보다는 ‘정치의 문학’에 가깝잖아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서 외려 ‘문학의 정치’를 봤어요. 그런 과정 자체가 작가 개개인에게 영향을 줬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런 실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도 아무런 실제 행위가 존재하지 않던 때와 비교해보면 그들의 글쓰기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년 1214일 경향신문에 정권교체를 바란다는 광고를 내고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한 뒤 올해초 137인 선언에 참여했던 이들 중심으로 여기 세교연구소에서 간담회를 했어요. 육칠십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오히려 선언에 동참하는 행위 자체는 부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자리였어요. 작가들 스스로 촉수를 내밀어서 세상에 악수를 청한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세상이 그에게 스며드는 것이기도 하죠. 작가한테 세상이 스며들어온다는 건 창작의 문제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참여한 이들이 보여준 열의와 다양한 의견을 보면서 이런 체험과 과정이 어쩌면 글 쓰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창작의 부분인데도 그동안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괴리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었죠. 실제 우리가 글을 쓰려면 원고지와 펜이 있어야 되잖아요. 원고지나 펜처럼 그런 행위도 창작의 필수요건인데, 우리가 그동안 정치적 실천을 문학과 유리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제해버린 탓에, 일상에서 늘 이뤄지는 것인데도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니었나, 그런 정치적 행위의 본래적 의미를 깨닫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정홍수 앞으로의 과정은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요?

손홍규 그 간담회에서 결정을 했어요. 저 하나만 고발이 되는 건 부당하다, 만약에 이것이 불법이라면 이 선언에 참여한 사람 모두를 고발해야 한다, 우리는 그 처벌을 피하지 않겠다, 그렇기 때문에 손홍규는 선언에 참여한 한 사람일 뿐이지 137인의 대표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술을 거부하겠다, 이렇게 결정했죠. 그래서 경찰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했고 검찰조사 때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검찰이 저만 불구속기소했죠.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겁니다. 그래서 불법이라면 당연히 처벌받겠지만 그럼에도 작가들이 왜 이런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국민이 판단해달라, 이렇게 할 생각입니다.

정홍수 얼마 전 강정평화책마을 현판식(2013.3.2)에서 평화책마을 설계에 대한 함성호 시인의 프레젠테이션을 봤는데 그 상상력이 정말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인의 감수성, 문학적 상상력이 우리 삶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지점이 있다면 저런 거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지금은 뭔가를 만들어야 할 때라는 이야기의 구체적 실천으로 보이는데요. 강정에도 여러번 다녀오셨죠?

함성호 강정평화책마을은 몇몇 문인들이 모여서 발의를 했고, 이후 강정에 내려갔죠. 그때 전성태(全成太) 소설가가 우리 대표로 강정주민들에게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때는 그날 일정에 늦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우리가 너무 늦게 왔구나 싶더군요. 해군기지 공사가 7년 전에 시작했는데 작년에 갔으니 늦었죠. 그동안 문인들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내려갔는데 그렇게 구체적인 안건을 가지고 간 건 처음이었어요. 아까 손홍규씨가 얘기했듯이, 이명박도 지금 우리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고 그밖의 여러 정치적 상황도 그렇죠. 우리가 왕벚나무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그런 현실에 대해 반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느낌이 없으면 예술가가 아니잖아요. 강정마을에 내려가서 보니 공사차량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아서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경찰이 나와 그들을 떼어내 집어던지다시피 하죠. 갑자기 사람들이 대오에서 팍 튀어나와 날아가는 거예요. 전 너무 놀랐는데 거기 있는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사실 그런 공사 현장은 제게 아주 익숙하죠. 저는 레미콘 트럭이 들어오면 반기는 사람이에요.(웃음)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 어떻게 콘크리트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다룰 수 있는지, 분노했습니다. 사람이 아닌 콘크리트를 지키기 위한 공권력이 과연 우리가 선택한 정부가 할 일인가?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개발독재의 한 단면이고, 그 부정적인 단면에 익숙해진 우리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정적인 관습은 마땅히 떨쳐버려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이삼십년 동안 살던 동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 공간이 사라진다는데 플래카드를 내걸어요. “축 환영, 재개발 확정.” 이런 현실이 되어버린 거죠. 그리고 그런 현실이 강정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난 거예요. 개발독재의 부정적인 삶의 조건들이 우리한테 그냥 스며든 건지 비수처럼 찔린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여기서는 어떤 이론도 공론도 필요 없고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알다시피 자연오염보다 더 무서운 게 문화적인 오염인데 그 문화적인 오염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 간 작가들이 다 공유했죠.

강정평화책마을 만들기 모임은 형식을 갖춘 조직이 아니라 그런 ‘느낌’을 갖고 뭉친 사람들이에요. 같은 느낌으로 뭉친 유대 혹은 그 유대를 바탕으로 뭉친 연대라서 남들이 볼 때는 가까스로 유대고 가끔가다 연대이기도 한데,(웃음) 어쨌든 내면의 끈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같이 일을 해가다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면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우리는 문인이니 이 일이 정말 자기 삶과 문학에 위해가 된다는 판단이 든다면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봐요. 손홍규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실천이 작가 자신의 문학적 의식을 더 공고히 할 것이라고 믿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제주도를 자주 다니다보니 제주도 말[]에서 제 시의 모습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훈민정음에서 없어진 자모음을 살리는 작업을 조금씩 했지만, 강정평화책마을 만들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현재는 쓰지 않는 자모음을 시에서 살려볼 생각입니다. 지금도 제주도 사람들의 육성을 녹취하면서 우리말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는 중입니다.

 

우리 시대의 르뽀문학이란

 

정홍수 지난번 『창비』 특집에서 평론가 복도훈(卜道勳)씨가 다루기도 했지만, 최근 르뽀문학이 집중적으로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암울했던 80년대에 실천적 글쓰기의 한 장르로 르뽀가 주목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2010년대에 다시 귀환하고 있는 르뽀문학의 분출에는 착잡한 느낌도 갖게 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이 다급하고 절박하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정지아씨는 이번 르뽀 작업을 하면서 어떠셨나요. 얼마 전 신작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 2013)를 내기도 하셨는데, 소설 창작과 대비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지아 사실 제가 무슨 큰 뜻을 가지고 르뽀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전남 구례에 내려가 사는데요. 부모님이 나이 드셔서 내려가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20대 시절 『노동해방문학』(1989~91년 ‘노동해방문학론’을 주창하며 발간된 문예편집자)을 통해 이런저런 정치적 경험을 그야말로 전면적으로 했고, 그것이 일정 부분 제 문학에 도움이 된 동시에 한계로 작용한 측면도 있죠. 또 저는 어쨌거나 빨치산의 딸이었고 아직도 빨치산의 딸인데,(웃음) 그래서 역사성이라는 것,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거의 핏줄처럼 타고난 것 같아요. 20대까지는 제가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했는데 돌이켜보면 이데올로기 편향적인,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일상적인 것이 거세된, 그런 삶을 살아왔어요. 그것이 저라는 개인에게 준 영향도 컸고 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죠. 그래서 제 소설 속의 인물이 굉장히 건조하고 너무나 숭고한, 어찌 보면 살이 없는 인간 같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나 자신을 좀더 거리를 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골로 내려갔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이 현실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산골에 들어가 있지만 르뽀를 통해 현실과 연결되는 가느다란 끈을 만들어둔 거였어요. 또 어쨌든 현실의 전선에 서 있는 이들과 교류하는 것이 작가로서 지켜야 하는 마지막 끈이라고 생각해서 이들을 만난 거예요. 저는 『노해문』 때는 ‘주문생산식’으로(웃음), 노동자를 딱 한명 취재하고 나서 노동해방적 관점에서 소설을 쓰라고 하면 그날 밤에 단편을 한편 완성시키기도 하고, 공동창작도 해봤어요. 그러면서 이것이 정치선전물이 아니라 과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죠. 지금은 제 것으로 완전히 녹여내지 않으면 글을 안 쓰는데, 이 르뽀집 중에서 소설화된 것은 한편쯤 있는 정도예요. 어쨌든 그때 함께했던 이들의 삶은 제 안에서 끊임없이 반추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정홍수 르뽀문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복도훈씨는 르뽀의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증언과 슬로건의 언어’를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증언’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감벤(G. Agamben)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증언을 검토하면서 이야기하는 대목, 그러니까 증언의 상황 자체에 증언의 불가능성이랄까 증언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내재되어 있다는 지적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가령 그렇다면 그 쉽게 증언되지 않는 지점이 곧 문학이 도전해볼 수 있고,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르뽀의 필요성을 인정할수록, 문학이 할 일도 그만큼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지아 긴급한 시대의 요구라는 건 언제나 있는 거니까요. 긴급성이 요구될수록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는 당연한 거고요. 저로서는 미학적 완성도로부터 일정 정도 자유로우면서 긴급한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는 최소한의 문학적 태도가 르뽀인 셈이에요. 증언의 상황 자체에 증언의 불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에는 일정 부분 동감합니다. 저의 첫 장편 『빨치산의 딸』(실천문학사 1990) 역시 그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빨치산의 딸로서 고통 혹은 왜곡 속에서 살아온 제가 고작 스물넷의 나이에 객관성이나 전체성을 획득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겠죠. 그래서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는 두고두고 『빨치산의 딸』이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그 시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삶이든 역사든 언제나 모순의 연속이며, 그 모순 속에서도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때로는 중요한 무엇을 희생하면서도 말이에요. 그 시절 희생한 미학적 완성도와 전체성, 객관성에 대한 죄의식이 오늘날 제 소설을 쓰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르뽀는 작가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일 겁니다. 꼬박꼬박 르뽀를 찾아서 읽는 사람들이 소설의 독자보다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도 그 증명일 것이고요. 이를테면 국가인권위에서 기획했던 박영희씨의 『길에서 만난 세상』(우리교육 2006), 『보이지 않는 사람들』(우리교육 2009) 같은 책들은 고정독자가 있어요. 오늘날 소설이 우리가 처해 있는 이 각박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갈증, 그래서 내 현실을 누군가 제대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죠.

정홍수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런 논의를 자꾸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건 지금 우리 문학이 세상의 불행과 아픔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손홍규 저도 정선배님 책을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고 아까 언급된 복도훈씨 평론에서의 증언과 슬로건, 왜 요즘 르뽀문학이 재조명되는가에 대한 견해에도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좀 있어요. 예전에 ‘벽시도 시다, 구호도 시다’ 하면서 르뽀를 적극적으로 문학의 층위로 수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전문작가가 아닌 민중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래서 가장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가장 진정성있는 글이 나올 수 있는 장르기 때문에 관심을 뒀던 거죠. 그런데 요즘 논의를 보면 ‘르뽀문학이 예전보다 늘어났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살아 있네’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르뽀가 민중의 것이 아닌 작가의 것이 된다는 말이죠. 르뽀라는 장르에서 성취할 수 있는 진보성이나 지향성을 볼 때 어떻게 대중 스스로 말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 논의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함성호 아까 정지아씨가 르뽀의 다양한 취재내용을 소설에 얼마나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는데, 저는 그게 완벽히 녹아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올해 『창비』 봄호를 보니 바흐찐(M. Bakhtin) 관련 평론(변현태 「바흐찐의 소설이론과 그 현재적 의미」)에 나오는 ‘개구멍’ 이야기가 재밌더군요. 작가가 주인공의 삶을 형식화할 때 그 주인공은 개구멍을 통해서 빠져나간다는 얘기인데, 그건 르뽀나 소설뿐 아니라 모든 장르에 있는 특성이에요. 누구는 언어의 불가능성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개구멍을 얼마나 잘 빠져나가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정지아씨 르뽀집을 읽고 많은 도움이 됐어요. 비정규직 문제 같은 것에 대해 저는 깊이있게 이해하진 못했거든요. 태생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살아와서, 그리고 자발적 비정규직이라서요.(웃음) 하지만 차별이라는 인간조건의 현실 인식을 하는 데 르뽀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정홍수 중국의 젊은 감독 지아 장커(賈樟柯)가 만든 「24시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어요. 마오 쩌둥이 주도한 대약진운동 시절 군수공장이었던 곳이 ‘24시티’라는 현대식 주거타운으로 재개발되는 이야기인데요, 감독은 철거를 앞둔 공장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십년씩 일했던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등장하는 노동자들 중 몇명은 실제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배우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페이크다큐(fake-docu)인 셈이지요. 감독은 이에 대해, 카메라가 다가가면 실제 인물들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지점이 생겨서 더이상 카메라가 인물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배우라는 허구 혹은 상상력을 통해 인물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인 진실 혹은 리얼리티라는 이야기인 거겠죠. 르뽀냐 소설이냐는 질문이 상황에 따라서는 어떤 선택지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인간 진실의 포착을 위한 글쓰기로 결합되어야 하고, 그게 진정한 문학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의 편린에서 포착하는 삶의 진실

 

정홍수 이제 오늘 논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데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현실 인식이나 문학에 대한 생각이 실제 창작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 녹아들고, 또 어떤 고뇌나 갈등을 수반하는지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해봤으면 합니다. 오늘 좌담에서 세분 창작자들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먼저 소설 쪽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정지아씨는 정통 리얼리즘 계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번에 나온 신작 소설집 『숲의 대화』를 읽어보면 타자나 세계를 보는 시선이 전보다 유연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아픔과 슬픔을 찾아내고 거기에 공명하고자 하는 태도야 일관된 것이라 하겠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고,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전작 『행복』(창비 2004)이나 『봄빛』(창비 2008)에서 어떤 대상으로서 ‘아버지의 세월’과 화해가 모색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소설집의 「목욕 가는 날 」에서는 세 모녀가 늙었거나 혹은 늙어가는 알몸으로 함께 세월의 무게를 받아내고 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런 질문도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작품들이 너무 단정하고 안정적인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그간 정지아씨가 써온 리얼리즘적 방식, 이런 맥락에서라면 사실주의적 창작방법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지만요, 그런 것에 작가 스스로 답답함 같은 것을 느낀 적은 없는지 하는 것입니다. 「봄빛」에서 치매증상을 보이는 늙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반찬타령 대목은 제가 언젠가 짧은 글로 쓴 적도 있습니다만, 거기서 ‘뚜부’라는 단어는 표준어 ‘두부’로는 도무지 전달할 수 없는 삶의 비애를 표현해낸 바 있습니다. 앞서 나온 바흐찐 이야기와 연결시킨다면 ‘이질적 발화’의 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번 소설집에도 그런 노력이 여러 곳에서 보이기도 합니다만. 소설을 써나가면서 창작방법이나 형식과 관련해서 부딪치는 고민 같은 것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정지아 고민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태생적인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나 감각적인 글을 꽤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것과 가능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어쨌든 제가 쓴 「풍경」 같은 소설이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사실주의적인 글이 될 것인지 뭐가 될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써요. 그냥 일상에서 만나는 이야기나 대사 같은 것들, 예를 들면 ‘뚜부’ 이야기 하나가 「봄빛」을 쓰게 만든 장면인데 다른 부분은 사실과는 매우 다르기도 하죠. 어떤 대사나 인물이 그물망에 걸리면 소설을 구상하는 데 3년에서 5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핵심적인 인물이나 에피소드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으면 다른 것들이 하나씩 와서 붙다가 어떤 순간에 한 단락 정도의 문장이 떠올라요. 그러면 쓰기 시작하고, 시작만 하면 진척이 빠르거든요. 「풍경」 같은 경우는 하루 만에 썼고 『숲의 대화』도 아주 빨리 썼는데, 뭐랄까 저는 한 인간으로서 현실을 살고 있고 그 현실을 제가 살아온 총체로서 매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에는 창밖의 바람만 보고 사는데요,(웃음) 바람을 보면서 그것과 연관되었던 제 모든 삶의 면면이 다 떠오르죠. 그것을 오늘 해석하고 내일 또 해석하는 것이고 그 해석의 층위가 쌓이면 어떤 글이 하나씩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도 이것이 오늘의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하는 고민은 하지 않고 다만 한순간 한순간 사람을 만나고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혹은 하나의 사건이나 신문지상의 기사를 볼 때 그것을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사유하고 감각할 뿐이고 그것들이 쌓이면 글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정홍수 가령 제가 정지아씨의 신작을 읽는다고 할 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내 마음이 충만해지고 푸근해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데 그 기대를 거의 배반하지 않는단 말이죠.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그런 기대를 배반하는 게 좋은 문학이 아니냐는 질문도 하죠. 단지 내용의 문제 말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든지 언어까지 포함해서 이질성을 끌어들이는 문제가 문학과 정치,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문제에서 여러차례 제기되었고, 리얼리즘을 ‘재현의 사실주의’로 축소해 말하고자 하는 쪽에서 리얼리즘을 공격할 때 자주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봄빛」에 대한 평문에서 ‘재현’이라는 말을 일부러 쓰기도 했는데, 사실 제대로 된 재현이라면 거기 응당 문학적 창조행위가 수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 작품집에서 어떤 마음의 결이랄까 하는 것을 그 재현의 과정에 중층적으로 포개려는 작가의 노력을 읽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정지아씨의 작업이 더 깊어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언어 내부의 이질 발화나 다양한 이질적 층위의 도입에서 우리 삶의 진정한 형식에 방불한 리얼리즘의 형식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바흐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기존의 소설 형식을 깨어나갈 여지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정지아 이질적인 것, 새로운 형식을 가져다 쓰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용을 우선시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직 내용조차도 자유롭게 다루지 못해요.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제게는 더 중요한 것 같고요.

정홍수 자기검열 같은 것인가요?

정지아 이를테면 제 삶을 돌아보면서 어느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 삶에 부족한 것은 애교다!’(웃음) 제가 애교를 못 떨어요. 이를테면 대학시절에 남자애들이 가방 들어준다고 하면, 왜? 내가 들 수 있어. 데려다준다고 하면, 왜? 나도 혼자 갈 수 있어. 이런 태도로 살아왔는데, 마흔서너살쯤엔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애교라는 게 안되는 줄 혹은 옳지 않은 줄은 알지만, 이게 어쩌면 우리 인생을 견디게 해주는 중요한 힘이라고요. 애교가 변형되면 개성이 되는 것이죠. 이건 내용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안되는 일을 하게 만드는 방식인 것이지 내용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이걸 머리를 써서 만들자면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은 내용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걸 끌어들일 자신이 없지만, 어쨌든 노력하고 있고 애교를 연습하고 있고 그래서 언젠가는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거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게 중요한 몫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의 제게는 애교, 달리 표현하자면 ‘쓰리 쿠션’이 중요한 성장의 포인트인 셈이에요. 워낙 직구밖에 날려본 적이 없어서.(웃음)

또 하나는, 아니 그렇다면 리얼리즘을 제외하고 딴 것들 중에는 얼마나 좋은 작품이 있는지, 그리고 그게 이 시대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묻고 싶은데요. 이 질문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개인이나 제 작품을 놓고 하는 비판이라면 수용할 수 있으나 리얼리즘 전체를 비판한다면, 수긍할 수 없어요. 저는 리얼리스트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리얼리스트이고 싶지도 않아요. 그걸 뛰어넘는 사람이고 싶은데, 어쨌든 리얼리즘에 대한 공격에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있어요.(웃음)

 

현재를 환기시키는 서사와 재현방식

 

정홍수 손홍규씨는 이른바 ‘2000년대 작가군’ 내에서도 시대현실과의 비판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에 대해 좀더 많이 발언하는 쪽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아주 묘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단 말이죠. 한번 읽어서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신작 소설집 『톰은 톰과 잤다』(문학과지성사 2012)에 실린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이라는 작품을 보면 처음에 ‘그’로 나가다가 ‘나’가 살짝 들어와서 시점을 이중화해요. ‘나’가 ‘그’를 관찰하는 별개 인물인지 ‘그’의 분신인지 마지막까지 확정되지도 않고요. 「얼굴 없는 세계」 같은 경우도 ‘작가의 말’에서는 용산참사를 지켜본 이후의 무력감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그런 언급이 없다면, 소설 속의 무력감을 용산참사와 연결시켜 이해하기 힘듭니다. 다만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배경이 된 도시가 차갑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이 작품도 읽기 어렵기는 마찬가진데, 노인을 ‘그’라고 지칭해서 한참 읽다보면 ‘그’가 할머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노인과 아들, 손자의 관계도 아주 모호하죠. 서사를 단선적으로 진행시키지 않고 겹에 겹을 두르고, 시간도 뒤섞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타자처럼 몸으로 관통한다는 상상력도 썩 낯선데, 그 함의를 한참 곱씹어보게 만듭니다. 바흐찐에서 시작된 앞의 논의를 이어본다면 이질적인 층위들을 소설의 형식에 많이 집어넣고 있죠. 소설의 의미망이 풍성해지고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인 시선도 있는가 하면 너무 모호하기만 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미로가 조금 과잉되게 설계되면서 꼭 필요한 소설의 명징함마저 흐리는 측면은 없는가 하는 지적일 것입니다. 어쨌든 소설의 전언만이 아니라 그 형식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홍규 그렇게 거시기한가요?(웃음)

정홍수 소설이 쉽지가 않아요. 어떤 작품은 몇번을 읽었는데, 내가 바본가 하는 생각도 듭디다.(웃음) 통사구조도 묘하게 비틀죠. 그게 체화된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비튼다는 느낌이 들고 우회로를 계속 만들면서 중간중간에 시적인 문장이 돌출된다든지 그런 대목이 많아요.

손홍규 문장의 차원에서 그렇게 느끼시는 건 아마 제가 산문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산문성과 산문정신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해요. 산문정신은 제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에 끈질기게 다가가려는 태도죠. 그러다보면 그게 산문성으로 표현되는데, 그 산문성이 사실 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문장에서 은유를 구사하지는 않아요. 직유를 구사하지. 답답한 산문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부러 시적인 것들을 차용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런 느낌, 뭔가 장면에서 어떤 의미가 스스로 돋아나올 수 있게 이미지적인 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아마도 문장이, 좋게 얘기하면 의미가 풍성해지는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답답해 보일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글을 쓰면서 계속 고민해야 하고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저도 인식하고 있고요.

정홍수 극복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손홍규씨가 찾아낸 중요한 문학적 스타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잘 숙성시켜나가야 할 작업 아닐까요.

손홍규 정홍수 선생님 같은 전문가마저도 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시니까.(웃음) 제가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가면 “소설이 어려워요, 못 읽겠어요” 그래요. “그럼 읽을 만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투명인간」은 알겠는데 나머지는 다 모르겠대요. 그래, 고등학생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대학교에 가서 어떠냐고 물으니까 역시나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투명인간」만 알겠대요. 그런데 전문가마저 그러시니까 이건 뭔가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거죠.(웃음) 『봉섭이 가라사대』(창비 2008)에 실린 소설을 쓰던 때에는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세계, 물론 촌놈이니까 촌에 더 가깝겠죠, 그런 세계를 재현하려는 욕망이 강했어요.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가 곧 미학의 문제라는 생각에 그런 작업을 했지만 썩 잘한 것 같지도 않다보니 뭔가 놓친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의 20대, 문청이자 운동권 시절의 얘기를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피해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결국 그건 문학으로 돌파해야 할 문제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 이번 소설집 『톰은 톰과 잤다』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서 다양한 시도로 나타났다, 이런 정도로 변명할 수가 있겠네요.

어쨌든 소설은 30년 전의 이야기든 당대의 이야기든 우리 삶의 이야기여야 하고 현재를 환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1990년대 얘기를 쓰면서 그걸 그 자체로 다루면서도 어떻게 2010년대의 삶과 맞닿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요, 과거와 현재의 동질성을 조직하는 방식을 꿈이나 미로의 개념에서 찾았어요. 이런 개념 안에서는 그 시대 자체가 공간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사를 구축할 때는 시간을 염두에 둔다기보다 차라리 물질적인 공간처럼 생각하고 쓰거든요. 공간이라는 것이 시간이 통과하는 자리잖아요. 소설에서 시간이 통과한 흔적이 담긴 공간을 담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야기가 좀 복잡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내가 잠든 사이」 같은 작품을 쓸 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는 방식 자체를 그냥 잊어버렸어요. 어떤 공간에 이야기를 집어넣는다고 생각하고 과거와 현재를 조합했죠. 물론 현재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틈틈이 과거 이야기를 넣는 것과, 현실과 과거를 한데 놓고 화투장 늘어놓듯이 펼쳐놓는 차이가 있죠. 저는 후자 같은 태도로 접근했고, 그랬을 때 과거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가 좀더 잘 드러나지 않나 싶어요.

 

인간 욕망의 맨얼굴을 직시하며

 

정홍수 2000년대 시가 이른바 ‘미래파’를 중심으로 상당히 낯선 감각을 끌고 들어왔고 거기에 대해 지지와 비판의 목소리가 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함성호 시인은 사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원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키르티무카』(문학과지성사 2011)는 오랜만에 나온 시집이죠? 서정적인 시적 화자에서 멀찌감치 비켜선 채 비()시적인 것들이나 다른 장르의 언어를 혼성한다든지 하면서 문명 비판의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해오지 않았습니까. 2000년대 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본인의 시작업과 연결시키면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동시적인 추구가 시에서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함성호 『키르티무카』는 제 네번째 시집이에요. 그동안 인간의 욕망이라는 문제를 천착해왔어요. 대학 다닐 때는 사회과학서적을 들입다 읽으면서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문제를 탐구하다 뭔가 대안이 없을까 해서 이슬람 자본주의도 공부해보고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결국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에 매달리게 됐습니다. 첫번째 시집(『567천만년의 고독』)에서는 인간의 가장 부정적인 욕망이 발산하는 현실자본주의의 대척점으로서 신화적인 세계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화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을까를 이어서 고민했죠. 두번째(『 타즈마할』)에서는 그러면 내가 원하는 자본주의 세상을 만들어보자 해서 ‘성 타지마할’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는데 결국 그 공간에서 현실자본주의를 묻어버리고 싶었죠. 자본주의를 묻어버리고 인간의 순수한 욕망만을 건지려 했습니다. 그 광기의 난장에 탐닉하다 세번째(『너무 아름다운 병』)에서는 타인과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봤고, 그 다음에 네번째에서는 정말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에 몰두했어요. 『너무 아름다운 병』이 2001년에 나왔고 『키르티무카』가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나왔죠. 그 10년 사이에 제가 설계사무실을 차려 독립했는데요, 거기서 건축주들을 만나면서 인간 욕망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된 거예요. 임대 목적으로 짓는 것이 아닌 자기가 살 집은 ‘꿈’입니다. 그 꿈이 결국 자신의 욕망인 거죠. 집을 지으면서 펼쳐지는 천태만상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밑바닥을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맨얼굴을 10년 동안 관찰하면서 말하자면 르뽀를 낸 것인데 전혀 주목을 못 받았어요.(웃음)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 병』이 나올 즈음인 2000년대에 새로운 시인들이 출현했죠. 이 시인들의 시는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현실을 구축하거나 자기 내면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그 내면을 만져볼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시들이 하나둘씩 나왔죠. 그때 전 어떤 시를 읽고 “이건 좀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까지 했어요. 그것은 전 시대의 시인들이 버린 시였어요. 만약 낙선작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 심사위원이 있다면, 그가 바로 저였습니다. 제 결론은 그거였어요. ‘새롭다, 그러나 불온하지 않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문학이 원하는 세상이 있으면 문학이 반대하는 현실도 있을 텐데 반대하고자 하는 대상을 긴장하게 하거나 떨게 하지 못하는 문학이라면 좀 이상한 거 아니냐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보기에 ‘미래파의 소란’ 같은 것은 어느정도 잠잠해진 것 같아요. 미래파라고 불린 2000년대 시들이 새롭지만 불온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문학적 현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그런 현실을 잃어버린 채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닿지 않는 어둠을 만졌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실패한 거죠. 그 실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는 그 이후의 시들이 말해줍니다. 가령 김상혁(金祥赫)이라든가 박연준(朴蓮浚)의 시를 보면 자기가 절실하게 겪었던 개인적인 문제들, 너무 간명하고 알기 쉬운 것들이 나오는 거죠. 물론 여전한 어둠이지만 우리가 조금씩 만질 수 있는 세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봐요. 황인찬(黃仁燦)의 생경함은 오히려 익숙함 때문에 발생하죠. 거기에 덧붙이면 정영효(鄭永孝)의 익숙함은 오히려 기이할 정도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이제 새로운 시인들은 미래파와 달리(그들은 이렇게 불리길 거부합니다) 아주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 낯섦은 효과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삶인 것이죠. 그들은 현실자본주의를 겪고 있고, 거기서 싸우고, 거기서 희망합니다.

정홍수 새롭지만 불온하지 않다는 말씀이 최근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문학적 의제의 한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단순한 현실 재현, 이런 것은 새롭지 않다고 보고서 새로운 언어실험으로 달려갔는데 그러면서 현실을 잃어버린 거죠. 이게 극단화되면 불온성, 즉 제대로 된 의미의 문학적 정치성이 생겨날 수 없는 거겠죠. 랑씨에르 같은 이는 ‘예술적 자율성’과 ‘예술적 타율성’ 사이에서 계속 왕복하는 긴장 속에서만 참된 미학적 정치성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된 문학적 정치성이라면 그것이 다시 삶으로 개입해 들어와야 하고, 그렇게 해서 바뀐 삶을 가지고 다시 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너무 이상적이긴 합니다만.

함성호 저는 요즘에 극단적으로 나는 내면이 없다, 바깥만 존재한다는 생각도 해봐요. 우리가 내면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 바깥이 만들어내는, 바깥이 우리에게 투영돼서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손홍규씨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위험성도 있지 않나 싶었어요. 아까 공간 얘기를 했잖아요. 시간을 배제하고 보면 공간이라는 것이 정치하게 만져져야 하는데,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앞서는 게 아닌가 싶었죠. 반면에 정지아씨의 「목욕 가는 날」 같은 경우는 등장하는 세 사람, 나와 언니 그리고 어머니가 맺는 관계의 구도가 아주 다양하게 펼쳐지죠. 앞서 바흐찐이 얘기한 개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다양함이 읽혔습니다. 각각의 육체에 대한 서술을 포함해서, 인간을 바라보는 엇갈리는 시선들, 그럼에도 한 식구로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점, 이 셋에 대해 정치하게 접근하지 못했다면 얻어낼 수 없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문학

 

정홍수 오늘 논의를 좀 모아간다는 의미에서 아까 나왔던 바흐찐 이야기를 더 해봤으면 합니다. 바흐찐은 20세기 초반에 나름대로 소설을 재정의하려고 했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테마가 이질적인 발화, ‘소설적 말’이라고 하는 것인데, 작가는 중심에서 자꾸 그 말들을 끌어모으고 단일화시키려고 하는데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개구멍’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죠. ‘개구멍’, 그러니까 소설이 포착하려는 대상에는 그 포착을 벗어나는 잉여가 있다는 이야기가 요즘 정신분석 담론에서 말하는 실재(the real)의 이야기와 겹치는 듯도 해요. 어쨌든 종결짓고 형식화하려는 작가의 시도에 저항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거고, 그 다층적이고 복수(複數)의 저항하는 삶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자리에 소설의 말, 소설의 리얼리즘을 구축하려고 한 게 바흐찐 소설론의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함성호 아까 실재라는 말을 하셨잖아요. 라깡적 의미에서 실재라고 하는 걸 그냥 현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문학이라는 것이 현실에 어떻게 언어로 접근하는가를 늘 고민하잖아요. 저는 소설과 시를 이렇게 구분해봅니다. 현실과 언어가 계속 빗나가는 것을 언어의 불가능성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그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해 접근하다가 결국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고 봐요. 물론 처음과 똑같은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소설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계속 돌아갔다가 왔다가 또 벽에 부딪혀서 돌아오기 때문에. 그런데 시의 경우에는 언어의 불가능성으로 뛰어들어가버리죠. 거기에서 언어의 불가능성을 살아버리는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요즘에 소설이나 시를 보면서 느끼는 건 뭐냐면, 적어도 우리가 그 첫 출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왔지만 그 언어로 나타내려고 하는 현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는가예요. 다시금 현실의 얼굴을 정말 조목조목 뜯어보자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얘기지요. 사물을 오래오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러나 요즘 문학뿐 아니라, 학문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이걸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먼저 이 현실의 얼굴을 직시해야겠지요. 그걸 바탕으로 하는 실험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지 몰라도 계속 살아 움직이는 실험실의 유기체가 될 겁니다.

손홍규 얼마 전 창비세계문학 씨리즈로 나온 코바야시 타끼지(小林多喜二)의 『게 가공선』(1929)을 최근에 읽었거든요. 아주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어떤 충격을 받았어요. 이미 우리에게서 사라졌거나 극복되었다고 여겨지는 미덕들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현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키더군요. 그 작품이 발표된 당시에 반대쪽 비평가들이 ‘리얼리티가 없다’ ‘충분히 리얼하지 못하다’ ‘실제로 게를 가공하는 모습 등을 잘 그려내지 못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고 해요. 그런 비판에 작가가 반박하기도 했다는데,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사실 그 논쟁이 작품의 핵심에 도달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인식의 차이가 오늘날 리얼리즘의 특성 혹은 리얼리즘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 그게 무엇인가. 낡고 오래된 단어를 빌려 쓰자면, 저는 당파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당파성이라는 것도 다른 모든 미학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작품에서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추구하지 않는데도 획득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두분께서 아까 실재나 현실 문제를 언급하셔서 말씀드리면, 저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진짜 현실이 있나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이 물건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림으로 그린다, 글로 쓴다고 해도 현실이 아닌 거잖아요. 현실은 닿을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이를테면 개인의 인식을 거치지 않는 현실은 없다는 거죠. 내가 생각한 현실은 이렇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순수한 형태의 현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그렇다면 현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의 문제는 어쩌면 『게 가공선』 같은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에 달려 있는 거죠. 순수하게 소설로 소비하는 것과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거울로서 소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요. 『게 가공선』이 최근 일본에서 다시 씬드롬을 일으켰대요.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너무 흡사하니까 다시 주목받고 베스트쎌러가 됐죠. 그걸 보면서 결국 문학에서의 현실 문제도 그것을 어떻게 재현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 가공선』을 쓴 사람이 미래에 주목받을 걸 예견하고 쓴 건 아니잖아요. 오늘날의 독자가 거기에서 뭔가를 공감한다는 것은, 당파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가 느낀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 당파성이라고 한다면, 창작의 본질적인 문제인데도 저를 포함해 작가 스스로가 그것을 방법론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137인 선언’ 관련해서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데요, 당연히도 우리 안에 있는 건데 그걸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오류 말이죠.

정홍수 그 당파성을 김수영(金洙暎) 시인이 말했던 ‘온몸의 시학’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바흐찐 식으로 말하자면 삶의 온전한 형식을 받아내는 것으로서 소설의 자리 말입니다.

정지아 방금 말씀하신 대로 언어의 불가능성을 어떤 작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불가능성만 강조하는 태도는 현실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는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인간과의 소통이나 세계와의 소통에 있어서 상당히 충분하기도 하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언어가 오늘날까지 존립할 수도 없었겠죠. 그래서 언어를 다루는 업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불완전성을 한탄하기보다 더 객관적으로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바흐찐 얘기에서 작중인물이 개구멍으로 도망간다고 했을 때 작가가 자신의 인식수준에서 현실과 인물을 통제하려고 하고 그만큼만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때로 현실의 힘이 작가를 압도하는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요즘 구례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가끔 만나요. 평소에 제가 놀지 않는 방식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요. 저는 얘들의 노는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자기네가 무식해서 미안하다고 제 손을 잡고 삼십분씩 이야기를 하는데, 하도 그러기에 제가 “내가 대학생 때 혹시 너를 무시했니? 미안하다. 살아보니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똑같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때까지 저한테 말을 한마디도 안하던 그 옆의 남자애가 “그러제잉. 여자는 결정적일 때 잘 자빠져야 써” 이러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한 문장으로 얘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에 무릎을 쳤죠. 그런 한마디가 저를 압도했고, 언젠간 한편의 소설로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이 아닌 건 지금 쓰면 현재의 제 수준에서 자꾸 통제하려고 들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그 말을 화두로 삼고 지내다보면 그에 합당한 인물들이 제 안에서 스스로 자라날 것 같고요. 저로서는 개구멍을 볼 수 있는 눈을 스스로 키워내는 게 바로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두분은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시는 것 같은데 저는 불가능성을 모르지 않지만 염두에 둔 적은 없어요. 그건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고 다만 얼마나 더 접근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 같고요. 제 경우는 친구들이 제게 하는 속어를 섞자면 ‘좆나 빠른 달팽이’처럼(웃음) 부지런히 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전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를 둘러싼 문학제도의 현실

 

정홍수 이제 마지막으로 창작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학장의 현실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기에는 문예지 중심 문단 씨스템의 문제를 포함해서 문학출판 시장의 문제, 독자의 변화, 인터넷과 SNS 등 문학 유통 양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모인 세분 모두에게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할 테고요.

함성호 문학출판이 상업화된 지는 사실 꽤 됐잖아요. 제가 보기엔 90년대 초중반부터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말하자면 현실자본주의체제 안에 출판이 들어와서 같이 돌아가는 거죠. 그 와중에 작가들도 끼어들어 그 소용돌이에서 같이 춤추는 상황입니다. 시는 워낙 안 팔리니까 시장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고, 문제는 소설이 될 것 같아요. 소설시장을 두고 돌아가는 형태를 보면, 이게 미술시장하고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갤러리에서 전속작가를 하나 들여놓고 작업실 얻어주고 돈 지원해주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마저 가져가서 팔아버리고 하는 식으로요. 그런 미술시장의 판을 출판시장이 점점 닮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더 심각한 건 출판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사회적 공기(公器)의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지금 우리 현실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내야 하는데 그게 사라져버리고 상업논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요. 왜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겠어요? 다른 미디어가 많아졌으니까 그런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기본적으로 내야 할 책을 안 내기 때문이에요. 그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해요. 상업출판에 휘둘리면서 작가들이 자기 작업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도 답답해서 요즘 글 쓰는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인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책으로 출간하는 건 출판사가 하도록 하고 전자책 같은 형태는 우리가 만들어서 직접 유통하자는 얘기도 하고 있어요.

손홍규 사실 출판상업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출판사에만 책임을 씌운다는 혐의가 있어요. 외려 작가들 문제가 더 클 수도 있죠. “당신의 인물이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당신의 인물을 자유롭게 하라”고 했던 싸르트르의 말은 단지 소설의 인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자유는 투쟁이나 고통, 희생 없이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작가회의 사무처에 있다보니 작가들의 생존조건 문제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등단한 지 얼마 안된 20대 후배 작가들뿐 아니라 저와 비슷한 연배까지도 생계가 위태로워요. 대부분의 작가들의 삶 자체가 고통스럽다보니 작가들이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된다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고, 그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런 문제에 대해 말을 아낀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판상업주의가 아니더라도 작가는 충분히 고통받는 존재니까요. 그래서 지금 작가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는지 제시하는 동시에, 작가들 스스로가 지금의 출판시장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도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지아 구례에 있으면 돈이 안 들어오지만 서울만 안 오면 돈 쓸 일도 없어요. 옆집 아저씨가 저보고 “원래 작가는 가난한 거 아니여? 너무 잘사는 거 아니여?” 이러시더군요.(웃음) 누가 저한테 책만 써서 먹고살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던데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소설을 써서 먹고살 만큼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없고, 원래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죠. 다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 책이 백만부가 나가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건 좀 무서워요.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 나를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처럼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면, 안 팔리겠지만 팔리면 진짜 큰일이라고 정신이 번뜩 들 때가 있어요.(웃음) 물론 돈 들어올 상상을 하면 좋은데 그 뒷일을 생각하면요. 제가 이상한지 몰라도 저는 출판상업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날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대중 앞에서 과연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더 고민이고요.

현재 문학제도에 대해 한가지 덧붙이자면 좀더 새로운 층이 들어올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일간지 신춘문예에서도 주로 사오십대가 심사하잖아요. 결국 우리 세대의 미학으로 신인을 보는 셈이죠.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다보면 가끔 황당하고 엉뚱한데 현실에 정말 새롭게 접근하는, 이 세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을 볼 때가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10년을 가르쳐보면서 그런 글 두편을 봤는데요. 그런데 이런 글은 신춘문예에 내면 백이면 백 떨어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계속 써라, 계속 쓰면 어떻게든 출판시켜줄게”라고, 꼬드기면서 붙들고 있어요.(웃음)

정홍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지슬」을 보면서 제주도의 시간, 자연, 음식, 심성, 언어 등등 모든 삶의 요소가 4·3이라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해원의 미학으로 잘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대단한 형식실험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보는 내내 굉장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각과 인식의 쇄신이 함께 오는 느낌 말이죠. 이제 제게 4·3은 현기영(玄基榮) 선생님의 「순이삼촌」(1978)과 함께 영화 「지슬」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예술의 진정한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마침 오늘 많이 이야기되었던 바흐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변현태 선생의 글에서 그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 좌담을 마칠까 합니다. “바흐찐에게서 소설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질적인 감각은 새로운 미학 자체가 아니라 삶으로부터의 구체적인 감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 늦은 시간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교연구소 2013.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