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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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金善泰

1960년 전남 강진 출생. 199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간이역』 『동백숲에 길을 묻다』 등이 있음. stkim@mokpo.ac.kr

 

 

 

낚시 유배

 

 

그리움 도지면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몸을 빠져나와

남해 어느 바닷가 갯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거야

바다를 사랑한 죄로 스스로 유배라도 당한 듯

낚싯대 하나 황홀히 드리우고 있는 거야

마음이야 늘 지치고 허기졌으니

그렇게 종일토록 외로움만을 낚아올려도

행복하겠다 오히려

불타는 낙조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이

속세로 유배를 떠나는 것처럼 끔찍하겠다.

 

갯바람 살랑거리면

마음은 벌써 몸을 저만치 버려두고서

갯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 하나 드리우는 거야

지금껏 살아온 날들과 과감히 결별하면서

남은 생을 즐거이 유배당하고 싶은 거야

이승이 모자라면 저승의 시간까지라도 가불하여

거기 황홀히 몰입하고 싶은 거야 그리하여

순식간에 물속으로 빨려드는 어신찌처럼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해도

한세상 충분하겠다.

 

 

 

목포 앞바다

 

 

대반동 언덕에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목포 앞바다는 무슨 말을 가르치는 교실 같다

거기에는 철썩철썩 매를 때리는 선생님이 있고

찰랑찰랑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있다

바람이 잔잔할 때는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발음하다

바람이 거세지면 앙칼진 소리로 입에 흰 거품을 문다.

 

대반동 언덕에 앉아 들여다보는 목포 앞바다는

한권의 책이다 푸르게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책이다

오늘도 자강불식의 파도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오늘이 어제의 등을 떠밀 듯 책장을 넘기고 있다

반복이 아닌 전복의 책장을 받아 넘기고 있다

황혼 무렵엔 낡은 서책을 불태우기도 한다.

 

대반동 언덕에 누워 가만히 귀 기울이노라면

목포 앞바다는 24시간 성업중인 뮤직댄스홀 같다

거기에는 노래하고 춤을 추는 어머니가 살고 있다

뱃속에서부터 저절로 해조음 태교를 받고 태어난

바닷가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가무에 뛰어나다

모두가 바다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