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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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金明哲

1963년 충북 옥천 출생. 2006년『실천문학』으로 등단함. gaugaun@hanmail.net

 

 

 

뿌리가 자라는 이유

 

 

칼싸움은 끝났다. 부서진 칼자루와 칼집이 교정(校庭)에 흩어져 있었다. 흙먼지가 저녁노을에 떠다니거나 축구골대 안에서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부상당한 아이들이 있었으나 손등을 긁힌 정도였다. 안티푸라민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초전에 포로가 되었다. 내 칼의 칼자루를 내가 쥘 수 없었다.

 

놀이터에서 어깨가 굽은 아이와 차양 모자의 아이가 칼싸움을 한다. 구부러진 막대기와 부러진 대걸레 자루가 허공에서 부딪친다. 아이가 아이의 손등을 친다.

벤치에 앉아 있던 내 오후의 끝에서 불꽃이 튄다. 칼자루는 언제나 저쪽이 쥐고 나는 골목까지 밀리다 포로가 된다. 내가 선택한 저쪽이 나의 종지부를 찍는다.

아이가 악, 소리친다. 울면서 떠나는 아이와 아이가 헤어진다.

 

패전의 멍에를 쓰고 돌아본 포플러는 교정의 절반이었다.

나무에 나뭇잎 수만큼의 작은 새들이 깃들어 있었다. 노을이 나뭇잎 사이를 깊거나 얕게 쪼아대다 사라졌다.

하늘과 땅과 내 운동화 한짝이 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새는 보이지 않았고 검은 부리 같은 칼끝 같은 새소리만 허공을 가득 찔러댔다.

 

 

 

자상(自傷)

 

 

내원사 가는 길

초겨울인데 여우처럼 눈이 내리고 있다

내 목덜미는 뭉툭해지고

변온동물처럼 발이 낙엽 속을 파고들고 있다

 

소형 주차장 한귀퉁이로 바람이 몰려가고

바람을 따라 낙엽과 햇빛이 몰려가고

바람과 햇빛을 따라 흰여우들이 몰려가고

 

중년의 사내가 맨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다

맨발 맨살들로 흩어져 있다

 

선상지(扇狀地)처럼 등 안쪽에서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눈이 떠지질 않아 돌무덤을 막고 있는 바윗덩이 같아 갇혔어 나를 만질 수가 없어 손바닥에 짚이는 파충류의 표피 누가 나 좀 불러줘 흔들어줘 씻어줘 누가 나 좀 터뜨려줘

 

사내의 미간에 하얗게 힘이 들어가고 있다

 

와불(臥佛)이네, 여우들의 웃음소리에

사내의 사래 치던 손에서 풀려나는 깨진 소주병, 움찔,

여우들은 흩어지고

 

바닥에 떨어진 혈흔과 그 위로 얼핏, 떨어지는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