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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혁신학교에 희망을 거는 이유
‘혁신학교’는 김상곤(金相坤) 경기도교육감이 2009년 공교육 혁신을 기치로 13개 학교를 지정하여 출발한 이래 경기도에서만 195개교로 확대되었다. 서울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에서도 지정 운영 중이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2015년까지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는 일반화 단계까지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의회의 혁신학교 조례제정 논란에서 보듯 이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교육정책은 국가의 주요 의제들 가운데 단연 첫머리에 놓였다. 교육개혁은 늘 직전 정권 정책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개혁정책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땜질식 처방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즉 교육의 문제를 입시제도의 문제로만 여기거나, 때로는 정치나 경제 논리에 입각해 국민적 분노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접근한 결과이다.
사실 교육혁신은 어렵다. 교육혁신은 관행과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교육문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수월성과 창의성을 표방한다. 이는 한국교육의 새로운 흐름이자 세계적 경향이다. 교육 구성원 모두가 교육의 주체이고, 교육의 비전을 공유하며,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결국 혁신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기획이다. 즉 교육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시도인 셈이다. 혁신학교에는 대체로 학급당 인원을 줄이고,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며, 1억원 내외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혁신학교는 학교 구성원의 참여와 소통, 교사들 간의 협력과 공유를 통해 단위학교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학교를 추구한다. 교육 시설이나 환경보다는 구성원의 열정과 헌신, 사람 중심의 조직문화 개선 의지를 학교 운영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 즉 학교조직 활성화와 윤리성 강화를 지향하는 학교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학교를 민주적 자치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교사의 열정을 요청한다.
물론 학교장의 리더십과 교사의 열정만으로 혁신학교가 성공하지는 않는다. 방향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독단의 리더십이 가져온 병폐도 있고, 관행의 벽과 과도한 격무에 그 뜻을 접는 교사들도 나온다. 기존의 교육활동을 유지하면서 또다른 사업을 추가하는 식이 많기 때문이다. 지원금이 목적인 학교는 기존의 시범학교처럼 전시성 행사로 흉내만 내다가 구성원 모두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혁신학교에 대한 예산지원이 과도해서 일반학교가 역차별 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산지원은 새로운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유인책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또한 혁신학교는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정치실험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보수성향 교육감들도 새로운 학교모델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면, 교육을 두고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일은 옳지 않다. 오히려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국가사회적 차원의 합의와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용어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부든 교육개혁은 시도했다. 문제는 얼마나 다양한 각도에서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의지를 가졌느냐이다. 혁신학교를 선도한 경기도교육청은 지속적인 확대 지정은 물론 고입체제 정비, NTTP(New Teacher Training Program) 도입, 행정업무 경감 등으로 이를 뒷받침해왔다. 무엇보다도 ‘교육과정-수업-평가’로 이어지는 교실수업의 변화에 집중했다. 또한 혁신학교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진로교육’이나 ‘생태교육’ ‘독서교육’ 지역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학습’은 아이들의 감성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잠재능력이 무엇인지를 체득케 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학교 교육활동이 일반학교와 다른 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며칠씩 고민하고 협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혁신학교를 방문해보면 수업의 변화를 실감한다. 협력수업을 지향하니 수업 참여율이 높다. 수업 참여도가 높아지니 교육 소외자가 없어지고 학생들의 자존감은 향상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한층 수업의 질적 변화를 고민하게 된다. 치열한 논의 끝에 나오는 집단지성의 결과는 학생들의 행복한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학교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때 우리 교육은 희망을 찾지 않을까 싶다. 혁신학교라고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과를 보이는 곳은 구성원의 의식이 다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를 지향한다. 특히 학부모들은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시야를 넓힌다.
무엇보다도 혁신학교를 성공적으로 보는 이유는 폐교 위기에 있던 농어촌 학교, 대도시 신설학교 등 소위 기피 학교들이 많이 지정받았다는 점이다. 폐교 위기에 몰렸다가 혁신학교의 모델이 된 남한산초등학교의 사례에서 보듯이 교육 구성원의 자발적 노력이 학교 변화의 열쇠이다. 이는 학교교육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노력한 결과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다 해도 혁신학교 지정 희망 비율이나 학생・학부모・교사의 만족도로 볼 때 혁신학교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혁신학교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혁신학교 기획이 모든 학교에서 들불처럼 번지게 할 유인책과 지속 가능한 질적 성장을 뒷받침할 구체안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대학입시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성공사례를 일반계 고등학교에까지 연착륙시킬 방안이 있는가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혁신학교 운영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교의 시스템 변화까지 일어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제로 혁신학교를 추진하고 있는 시・도교육청의 계획을 보면 체계적・지속적 변화를 추동해낼 방안의 구체성이 부족하다. 일반학교가 느끼는 역차별의식 해소, 25명 이하의 학급 구성, 여전한 예산 타령 등 어느 하나도 쉽게 해결하긴 어려워 보인다. 경기도교육청의 혁신학교 일반화 추진에 대해서도 준비 부족을 호소하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혁신학교의 기반이 자발성인데 교육청이 강력하게 주도할수록 그 철학이 훼손되는 모순이 생긴다는 지적도 아프다. 교육운동에 행정이 끼어들면 자발성보다 효율성이, 다양화보다는 표준화가 앞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를 몇몇 교육정책 입안자나 운동가의 잔치라고 혹평하거나, 교권침해나 학교폭력처럼 사회・경제적 환경까지 더듬어야 할 문제까지 혁신교육 기획과 연관지어 혁신학교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쪽에서도 혁신학교가 우리 교육에 새로운 가능성과 과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혁신학교의 철학과 현상이 우리 교육의 올바른 방향임은 동의하는 셈이다. 실제 혁신학교의 성과에 경각심을 가진 교육부도 공교육의 정상화를 목표로 혁신학교와 유사한 정책을 수립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제는 중등교육 전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제로 현장적합성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뒤따라야 할 시점이다. 학교별 특색을 고려하는 유연성, 교육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자발적인 연수 및 연구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문제는 추동력이다. 혁신학교의 정신과 도전이 옳은 방향이라면 국가교육과정의 준수와 교육자치 활성화 사이의 균형추를 위해서도 교육당국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대입제도, 교육의 여러 관행, 경쟁위주 정책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것이 교육당국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혁신학교로부터 학교현장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이 안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 존중받는 풍토가 조성되었고,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협력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몇몇 교사에 의해서만 실행되었던 교실의 변화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피로감을 주다가 끝내 와해되었던 것과 달리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면서 좋은 예후를 보이고 있다.
혁신학교 실험은 학교교육 체제의 전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공공성과 민주성이 실현된다면 온갖 갈등의 전람회 같은 우리 사회의 반목과 대립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해가는 방법을 미래세대가 체득할 수 있다. 이것이 희망교육이고, 우리가 혁신학교 일반화에 거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