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13년 6월 5일 회의를 갖고 백낙청 최원식(문학평론가), 김사인(시인), 공선옥(소설가)을 제28회 만해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심사위원회는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3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는 만해문학상의 규정에 따라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추천한 아래 11권의 작품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고형렬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 김기택 『갈라진다 갈라진다』, 김정환 『거푸집 연주』, 이상국 『뿔을 적시며』, 이성복 『래여애반다라』(이상 시), 권여선 『비자나무 숲』, 김애란 『비행운』, 박민규 『더블』, 은희경 『태연한 인생』, 정지아 『숲의 대화』, 조갑상 『밤의 눈』(이상 소설)
7월 17일 모임에서 심사위원 각자가 대상작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주고받으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 결과 고형렬 시집, 박민규 소설집, 조갑상 장편으로 화제가 집중되었다. 세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토론이 진행되면서 결국 심사위원들은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여 역사적 사실을 힘있고 실감나는 서사로 형상화해낸 귀한 열정과 공력을 높이 사 조갑상 장편 『밤의 눈』을 제2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기쁘게 합의했다.
심사평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본심 대상으로 올라온 시집들이 모두 저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특히 이상국 『뿔을 적시며』와 고형렬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가 그랬다. 하지만 소설 쪽 성과가 유달리 풍성한데다 지난 두회 잇달아 시인이 수상한 만큼 이번에는 처음부터 소설가로 기우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풍성하고 각기 특색있는 성과 중에서도 끝까지 주목받은 것은 박민규 소설집 『더블』과 조갑상 장편소설 『밤의 눈』이었다. 박민규는 그간 문단경력이 만해문학상 규정에 미달해서 제외되었을 뿐 수상후보가 될 만한 작품을 이미 여럿 발표했고, 『더블』도 내용과 형식의 다양함이나 독창성에서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왕성하게 작업 중인 젊은 작가를 굳이 2010년 출간 저서로 시상대에 올리기보다 앞날의 한층 빛나는 성취를 기대해보기로 했다.
조갑상의 『밤의 눈』은 한국전쟁이 나던 해 이른바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을 정부가 대량 학살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소설이다. 이렇게 말하면 고발 위주의 르뽀를 연상할 수 있으나, 『밤의 눈』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뛰어난 장편소설이다. 특히 학살 당시를 다루며 전체의 거의 3분의 2 분량을 차지하는 제2부 ‘그 해 여름 1950’은 이 작품의 백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진행 속에서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들도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로 부각되고, 르뽀로는 재생할 길이 없는 피살자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요 희생자들을 가장 뜻깊게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결말이 불만스럽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불만스러운 끝맺음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결함을 확인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서툰 처리일 수도 있다. 『밤의 눈』의 결말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일종의 에필로그인 제5부에서 유족회 활동을 했던 옥구열이 부마항쟁을 맞아 저 하늘에 새겨두고 싶은 단 하나의 마음이 “유족회 일이 반국가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기 생전에 밝혀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이라고 다짐하는 말로 소설이 끝나는데, 비록 그로서는 절절한 소망이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작품의 의미를 요약하는 결론처럼 들려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소설 자체의 진실이 소급해서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에필로그에 또 하나의 주인공—이며 어떤 의미로 더 비중이 큰 인물이고 어쨌든 아무런 후일담 없이 잊혀질 수는 없는—한용범의 시선을 담은 한 토막이 추가되기만 했어도 쉽게 보완되었을 법한 결함이다. 『밤의 눈』이 완벽한 작품이 아닐지라도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소중하고 탁월한 성취임은 확실하다고 믿어 수상작으로 뽑는 데 기꺼이 합세하였다.
최원식(崔元植) 문학평론가
올해는 시보다 소설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추천된 시집들 모두 중견의 위치에 걸맞은 고투를 보여주고 있지만, 시집 전체의 수준이 기중 가지런한 이상국에게도 어떤 관성이 간취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소설은 신진에서 중진에 이르기까지 실패조차 의미있는 성취의 부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모색들이 종요롭다. 자기로부터 나와 타자를 영접하는 실험에 들어선 권여선, 자신이 공들여 구축한 틀을 버리고 발랄한 서사적 모험을 선택한 은희경, 그리고 빨찌산 후일담에서 오늘의 사회생태로 이동 중인 정지아 들도 흥미롭거니와, 김애란과 박민규와 조갑상의 작업에 나는 유의했다.
등단 10년을 맞이한 김애란과 박민규는 우리 소설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신진이다. 김애란의 단편집 『비행운』(2013)은 팽팽한 현재성으로 빛난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호흡을 정묘하게 그려내는 본령은 그것대로 지키면서 판타지 또는 사실주의로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성큼 다가선 작가의 자세가 미쁘다. 그런데 뜻이 세서 소설의 결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게 더러 눈에 띈다. 박민규의 『더블』(2010)은 ‘형식의 앙가주망’을 위한 일대 연구실이요 대규모의 헌정이다. SF, 무협지, 포르노 등 장르문학에서부터 「무진기행」 『백경(白鯨)』 「별」 『고도를 기다리며』 등 유수한 국내외 고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서사를 다시 쓴 탐욕이 경이롭다. 스스로에게 부과한 혹독한 도제시대를 마감하는 입사식인 듯도 싶은 이 단편집의 위치를 상기할 때 누구보다도 새로운 정치를 맹렬히 실험 중인 박민규의 다음 작업을 기다리는 게 그럴듯하다.
낙동강전선 남쪽의 대진읍을 축으로 6・25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건실한 사실주의 수법으로 다룬 조갑상의 장편 『밤의 눈』(2012)은 일견 다큐적이다. 각 장에 연도를 명기함으로써 은폐된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힌다는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은 우리의 선입견을 무찌른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밤의 눈’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학살이 일어난 송산고개에 솟은 달인데, 작가는 무시무시하게 고독한 그 달이 되어 사건의 핵심으로 직핍하던 것이다. 인민군의 남진이 낙동강에 가까워오면 올수록 한층 한층 강화되는, 특히 민간에 의한 폭력의 광기를 여실히 복원한 이 장편은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조차 어떤 체제의 희생자임을 냉철하게 드러낸다. 정전 60년을 맞이함에도 왜 한국사회 나아가 한반도 전체가 여전히 불안한지 그 근원을 다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오롯함에도 부마항쟁(1979)으로 끝나는 결말은 허전하다. 현재로 가는 출구가 충실하지 않은 탓일 터이다.
토론 끝에 『밤의 눈』을 수상작으로 삼는 데 나도 기꺼이 동의했다. 조갑상 형의 수상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공선옥(孔善玉) 소설가
박민규와 조갑상 사이에서 꽤나 고민했다. 박민규는 그 필체에서나 소설적 감각에서나 상상력에서나 거의 천의무봉에 다가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박민규는 소설을 정말 잘 쓴다. 소설가란 모름지기 이 정도의 ‘박학다식’, 이 정도의 ‘판타지’, 그리고 이 정도의 현실감각 정도는 갖추고서야 비로소 소설가이지 않을까. 아무튼 박민규는 굉장하다. 심사장에서도 발언했지만 내가 일찍이 단편적 풍문에 의해 박민규에게 가졌던 ‘인간에 대한 편견’조차도 그의 잘 쓴 소설들로 인해 말끔히 해소되어버린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그의 그러한 ‘최첨단 모던 이미지’(?)가 그의 소설가다움을 더욱 드러내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민규는, 박민규의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 지형도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작가이고 작품이다. 60년대 김승옥 이래로 당대 소설은 박민규로 인해서 비로소 진정한 ‘근대’를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다.
조갑상의 소설을 읽는 일에는 상당한 끈기가 필요했다. 그의 글에는 기교가 없다. 아예 없다. 담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갈수록 재주 많은 사람들의 경연장처럼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문학판도 예외가 아닌 작금이라서 조갑상의 우직함이 더 돋보인다. 세상에 필살기 하나씩은 갖추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조갑상의 소설은 그 반대로 아무것으로도 무장하지 않되, 무장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조갑상은 소설가가 아닌 ‘소설가의 자세’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조갑상은 ‘슈스케’ 식 경연장 밖에서 홀로 오연하다.
조갑상과 박민규는 극단이라면 극단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 두 작가가 더 뚜렷해 보였다. 박민규는 글을 참 잘 쓴다. 그리고 조갑상은 좋은 작가다.
옛날부터 늘 너무 잘하면 더 기대하게 되고 더 조마조마해진다. 그 기대감이, 그 조마조마함이 결국 박민규보다 조갑상을 선택하게 했다. 무엇보다 박민규는 아직 젊으니까.
김사인(金思寅) 시인
조갑상의 소설은, 제 철이 지나 아무도 찾지 않을 듯한 구식 옷을 의아할 만큼 진지하게, 최신의 유행 따위에는 조금도 주눅 드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입어내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러 애써 흉내낼 수 없는 위엄과 진실성이 그 지리하고 어눌한 차림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조갑상의 이 낡은 듯 신선한 미더움은 시류의 날렵한 글쓰기들이 미치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10여년 전의 창작집 『길에서 형님을 잃다』에서 이미 독특하게 우직한 호흡으로 한 아름다움을 이룬 바 있는 조갑상의 보폭은 이번 장편 『밤의 눈』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체념과 퇴폐에 직면한 부스러기의 일상들과 내면, 그에 대응하는 선병질적 과민함이 대세를 이루는 시절에 드물게도 그의 소설쓰기는 ‘깊이 체화된 공공성’이라 부름직한 감각 위에서 이루어진다. 덕분에 그것은 불가피하게 구시대적이라거나, 단조롭고 무뚝뚝해 보인다거나, 때로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냄새가 풍긴다는 오해도 살 법하다. 그러나 지엽적 오해를 넘어선 자리에 조갑상의 소설들은 묵묵히 우뚝하다. 저 현란한 변모의 몸짓들에도 정작 세상의 속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세상의 참된 변혁이란 조바심으로 어리광 부릴 단판 승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전히 지금 이곳의 이름이 무엇인지, 혼신의 힘으로 묻는 가운데서만 우리의 문학다움은 간신히 지탱될 수 있다는 것을 『밤의 눈』은 웅변하고 있다.
물망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것이라 할 것 없이 각각의 방식으로 충분히 귀하고 아름다워 경의에 값하는 노작들이었다. 고심 끝에 나는 이상국의 시집 『뿔을 적시며』와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을 앞손가락에 꼽고 회의에 참석했지만, 토론이 진행되면서 다수의 의사가 조갑상의 장편 『밤의 눈』에 기울면서 나 또한 동조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위의 이유로 매우 흔쾌했다. 이 조금도 새롭지 않은, 그러나 진지함과 정중함으로 가득 찬 작업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 또한 만해문학상의 아름다운 전통일 것이다.
해당 시기의 중요한 문학적 성취에 주목은 하되, 돌아보면 만해문학상이 꼭 작품의 성취라는 좁은 울타리에만 매여온 것은 아닌 듯하다. 이것은 문학의 의미를 협의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운영위원회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원천적으로는 만해의 생애 자체가 생각처럼 단순한 홑겹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집 『님의 침묵』의 이례적인 성취 역시 역설적으로 만해가 시 또는 문학에만 전문적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아님으로써 가능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고, 만해의 시대와 삶과 문학이 지니는 이런 중층성과 배리(背理)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운용할 것인가에 만해문학상만의 묘(妙)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상소감
면책받을 수 없는 과실에 대한 귀중한 질책
조갑상 曺甲相
195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아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 웃기」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장편소설로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가 있고, 산문집으로 『이야기를 걷다』가 있다. 요산문학상, 이주홍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성대 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한국전쟁 중의 민간인학살 문제, 그중에서도 국민보도연맹(보련) 가입자들에 대해 내가 처음 쓴 소설은 「사라진 하늘」이라는 단편이다. 1989년에 발표했지만 민간인 희생 이야기를 들은 것은 훨씬 더 오래전이다. 전쟁 때 돌아가신 친척 어른 한분이 계시는데 보련에 들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련이 뭔지는 몰라도, 돌아가신 날조차 정확하지 않아서 집을 떠난 날을 기일로 삼아 제사도 한동안은 쉬쉬하며 모신데다 산소도 허묘를 썼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었다.
『밤의 눈』은 그뒤 몇편의 보련 관련 단편을 발표하면서 쓰기 시작했지만 작업의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길을 잃고 내 자신의 게으름에 넘어질 때면 감당할 수 없는 소재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집필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베트남에 몇달 머물다 돌아온 뒤부터였다. 전쟁의 상흔과 그 고통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는지도 모른다.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임에도 수상을 허락한 이유가 분단이 야기한 민족 비극의 한 장면을 그려냈다는 데 대한 격려임을 잘 안다. 그리고 더 나은 작품을 쓰라는 독려의 뜻도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다. 사실 등단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겨우 몇권의 소설책밖에 내지 못했음은 어떤 이유로도 면책받을 수 없는 과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오를 씻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열정을 다시 모으고 시간을 아껴 이 무잡한 시대를 견디고 이겨낼 작품 쓰기에 매진하라는 질책이기에 오늘의 수상이 내게는 더욱 소중하기만 하다.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 글쓰기에 열심인 동료들과 이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