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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동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사계절 2013
발생한 사실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민환 金玟煥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ursamajor@dreamwiz.com
인혁당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지불한 배상금 중 일부를 환수해야 한다는 최근의 법원판결이나, 제주4・3평화공원조성 3단계 사업의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가 ‘상식 수준의 정의’를 수립하기 위해 수행한 과거청산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한 그러한 장치의 ‘사회적 기반’이 심각하게 약화된 것처럼 보인다. 국가기관의 방관 혹은 소극적 대응을 배경으로 ‘국가범죄’의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이같은 악의적 조롱이나 사건에 대한 의도적 왜곡은 과거청산 작업의 의의를 부정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피로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청산 작업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기존의 성과를 지키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한 단락이 마무리된 과거청산 운동의 성과는 겨우 “발생한 사실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407면)는 단계에 다다랐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가장 우선적으로 상정한 독자는 “‘국군은 선하고 빨갱이는 나쁘다’는 한국의 국가 신화, ‘한국전쟁은 인민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었고, 인민군은 매우 잔인했다’는 공식 기억의 일방적 주입과 왜곡된 역사교육 때문에 이러한 사건(한국군과 경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인용자) 자체를 모르는 90퍼센트 이상의 한국인들”(139면)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이 책의 지은이가 강한 어조로 전하는 여러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독립운동가였지만 ‘예비검속’되어 죽임을 당한 김정태(金廷泰)의 아들 김영욱, 문경 석달동에서 1949년 12월 24일 발생한 학살사건의 현장 생존자이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통과의 주역 중 한명으로 그 법이 통과되었을 때 종로 네거리에서 14년 기른 머리를 자르고 56년 묵은 한이 울음으로 터져나온 채의진, 강화 서영선과 완도 김보희, 청도의 박희춘, 정근욱・서병규, 지금은 돌아가신 이태준 경산 유족회장, “아버지가 (자기) 대신 살해된 뒤로 가족들에게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고 그후에도 어렵게 살았으며 당시에도 단칸방에 혼자” 살다 진실규명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366면) 청주의 김진선 등 학살의 피해자 혹은 유족의 ‘구체적인’ 사연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은이가 ‘네번째 학살’이라고 부르는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 첫번째 학살은 직접 학살이고, 두번째 학살은 4・19혁명 직후 시작된 유족회 활동과 진상규명 활동을 5・16쿠데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탄압한 것이고, 세번째 학살은 유가족을 연좌제로 묶어 탄압한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학살은 “민주화된 이후에도 과거의 억울한 일에 대한 진상규명 탄원이나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각종 행사, 교과서나 언론에서 이 내용을 충분히 적시하거나 알리지 않은” 우리 사회가 자행한 학살이다.(383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학살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대개의 사회적 쟁점에서 ‘알지 못함’은 그 자체로 ‘죄’가 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특히 그렇다.
다음으로, 유족들은 지은이가 왜 ‘당사자주의’ 운동 및 당사자주의 행정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면서 피해자 가족이 ‘민원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슬퍼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책임지지 않는 국가, 사과하지 않는 국가는 언제나 이러한 개인 보상이라는 행정편의와 사탕발림으로 피해자들의 모든 요구를 잠재우려 한다. (…) 당장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사실상 강자인 국가의 보상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입었던 모든 피해와 고통을 돈 몇푼과 맞바꿔버리는 셈이다. 이렇게 주어진 돈은 그후 추가 진상규명 운동의 걸림돌이 된다.”(429면) 왜냐하면, “폭력에 짓눌린 유족과 우리 시민사회를 깨어나게 하고 국가를 새롭게 개조하는 것”(431면)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을 ‘이익집단’의 운동으로 바꿔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아마 시기적인 차이 때문인 것 같은데, 법원의 판결에 의해 국가로부터 보・배상금을 받은 유족들 중 일부가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시민사회로 환원하겠다고 한 결정을 전달하지 않고 있다. 고양 금정굴 유족회와 채의진 등 일부 유족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과 같은 그 돈을 우리 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고양’하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그것이 ‘유족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탄생과 활동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논쟁해야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선제적으로 혹은 방어적으로만 다뤄진 지은이 자신과 진실화해위에 대한 비판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나눌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지은이가 이 책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지점이 있다면, 그것 역시 수면으로 올려 논쟁해야 한다. 회고록이라는 특성상 이 책에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사건의 선택과 배제, 과장과 축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과거사 정리’ 작업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는 이 책의 대의에 온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진실화해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이 책을 매개로 수행해야 할 의무이다.
평자 역시 스스로 제기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에 참가한 ‘시민운동세력’의 균열이라는 쟁점을 드러내고 싶다. 이 책은 공무원, 연구자, 시민운동 활동가 등 진실화해위 조사관 각각의 특징 및 차이점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내부의 균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평자는 다른 영역의 시민운동을 하다 진실화해위에 들어온 사람이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아무리 진실을 조사한 것일지라도, 대통령께 누가 되면 안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의 내부 입장 차이는 논의하기에 따라 매우 많은 쟁점과 결부되겠지만, 일단은 문제제기 차원에서 진실화해위 스스로 자신의 대의를 축소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점만 지적해두자.
지은이의 말처럼 “진실화해위의 활동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거장에 불과하”(430면)기 때문에, 한 정거장 더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말끔하게 지워진 것 같은 다양한 ‘균열’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사회의 과거청산 운동은 이제 겨우 출발단계에 서 있는 셈이다. ‘언제까지 과거사 퍼먹고 살 건가’라는 보수세력의 질문에 “상식 수준의 정의”(432면)가 수립될 때까지라고 답하고, 이 정의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이 책을 읽고 논쟁해야 한다. 이 책은 비판당하면 당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특이한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