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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책에 따라 살기”

유리 로뜨만의 문화유형론과 ‘러시아’라는 유령에 관하여

 

 

김수환 金修煥

한국외대 러시아학과 교수. 저서로『사유하는 구조』 등이, 역서로 『기호계』가 있음. lotmania@hufs.ac.kr

 

 

1. post-script 2014

 

“책에 따라 살기”는 9년 전인 2005년에 내가 한 학술지에 발표했던 논문의 제목이다.1) 사실 이것은 18세기 러시아에서 문학이 가졌던 역할과 위상을 논하는 한 글에서 로뜨만(Yuri Lotman)이 직접 사용했던 표현이다. 로뜨만은 당시 문학 텍스트가 실제 독자가 아니라 이상적으로 구축된 독자의 형상을 지향했으며, 실제 독자들 역시 이런 이상화된 모델을 일종의 규범으로서 적극 받아들였기에, 사실상 “독자들에게는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아갈 것이 요구되었다”2)라고 주장했다. 2005년 당시의 나는 “러시아적 문화유형의 매혹과 위험”이라는 부제 하에, “책에 따라 살기”라는 독특한 화용론적 모델의 매혹적인 ‘앞면’과 더불어 그것의 위험한 ‘뒷면’을 생각해보려 했다.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같은 제목을 단 또 한편의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글에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나는 텍스트를 대하는 저 독특한 러시아적 태도를 러시아문화의 유형론적 특성과 관련시켜 분석할 것이다. 어정쩡한 중간항, 절충과 타협의 결과로서의 제3항을 거부하는 전형적인 러시아적 입장이 삶과 예술의 경계, 책과 현실 간의 거리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그들의 태도와 맞물려 있음에 주목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로뜨만의 문화유형론3) 중 가장 흥미로운 지점으로 간주되는 러시아문화의 “이원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재고해볼 것이다.

둘째, 나의 의도는 같은 제목의 두 글 사이에 가로놓인 의미심장한 ‘격차’를 성찰해보는 데 있다. 나는 지난 9년 동안 내 생각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처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보여주고, 그 현기증 나는 ‘거리’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 글은 우리를 거쳐간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간략한 회고담이자, 9년 전 내 글에 대한 후기(post-script)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러시아문화의 이원론적 성격을 바라보는 로뜨만의 미묘한 시각 변화를 확인하는 기회인 동시에 마치 ‘유령’처럼 귀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몇몇 개념들(유토피아주의, 파국, 종말, 광신 등)을 재성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책에 따라 살기”: 문학 이상의 문학

 

러시아의 문화적 삶에서 문학이 언제나 ‘문학 이상의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져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사회적 가치의 중심 기제로서 문학이 지니는 특별한 위상은 지난 200년 동안 전 유럽에 걸친 보편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문학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러시아적 태도는 그중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경우에 속한다. 뿌슈낀(A. Pushkin) 이후의 러시아 인텔리 계층은 자신의 문학을 문화의 얼굴이자 심장으로 여겨왔다. 개인성, 자유, 도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철학적・이념적 사유는 예외 없이 러시아 ‘문학’이라는 심장부를 통과했다. 만일 서구에서라면 철학자나 비평가, 혹은 정치가나 법률가가 해결했을 문제, 언론인이나 역사가가 담당했을 일이 러시아에서는 문학의 대상이 되었고 작가에 의해 처리되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비평가 벨린스끼(Vissarion Belinsky)는 러시아인을 “책을 읽는” 민족으로 정의했다. “오직 러시아문학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자만이 러시아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민족을 결정짓는 요인은 피도 계급도 아닌 독서의 재능인 것이다.”4) 19세기 러시아문학의 ‘작은 인간’(가령, 도스또옙스끼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제부슈낀)은 같은 계급의 프랑스인과 달리,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꿈꾸는 것은 훌륭한 글쓰기(의 재능)이다.5) 러시아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종의 비공식적 권력, 말하자면 ‘두번째 정부’로 간주되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제의 통치자들 역시(예까쩨리나 2세부터 레닌에 이르기까지) 부단하게 스스로를 문학가로 표상하려 했다. 레닌은 문학비평가, 스딸린은 언어학자였으며,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는 현대예술 비평가였고,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는 직접 소설 3부작을 쓴 작가였다.6) 요컨대 문학이면서 동시에 언제나 ‘문학 이상의 어떤 것’이어야 했던 러시아문학은 철학적 사유의 시험대이자 사회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으며, 민족의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이자 미래를 향한 예언의 기초였던 것이다.7)

‘뿌슈낀—우리의 모든 것’ 혹은 ‘뿌슈낀 공동체로서의 러시아’ 같은 유명한 구절이 함축적으로 요약하는바, 이런 극단적인 ‘문학 중심주의적’ 태도는 흔히 근대 러시아사회가 처했던 역사적 조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사회적, 법률적, 경제적 기제의 자율적 성장이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제정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문학은 그들 모두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체물’로 기능해야 했으며, 그런 점에서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기능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과 작가에게 ‘그보다 더한 어떤 것’을 요구하는 이런 관념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문학이 경험적 현실보다 더 높은 어떤 진리와 관련된다는 사고를 중세적 가치구조의 연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신성한 ‘말’(logos)의 힘과 권위에 의존했던 중세의 종교적 권위성의 자리를, “신성함의 자리는 결코 비워지는 법이 없다”라는 원칙에 따라 다름 아닌 ‘말’의 예술, 즉 (세속)문학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성스러운 텍스트들을 대체하면서, 문학은 그것들의 문화적 기능을 상속받았다. 18세기에 일어난 이 대체는 이후 러시아문학의 영속적인 특징이 되었다.”8)

하지만 이와 관련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로뜨만에 따르면 이 문제는 러시아적 근대의 특정한 세계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목할 것은 문학에 대한 이런 태도가 추상적 이념의 세계와 물리적 경험 세계 간의 안티테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물리적 삶과 이상적 세계는 각기 독자적인 닫힌 세계로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의 이상적 질서는 아직 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반드시 도래해야 하는, 말 그대로 완전히 ‘지상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러시아의 근대적 세계감각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세계의 창조 과정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 러시아에서 문화는 아직까지 건설된 바 없으며, 이제 바야흐로 ‘창조’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에 놓여 있다. 이 인식이 문학을 신성시하는 중세적 태도와 결합되었을 때, 진리탐구의 수단으로서 문학이 지니는 실질적 중요성과 가치는 명백해진다. “러시아의 문화적이고 도덕적인 건설의 길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길이 지니는 목적과 그것의 최종적 형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문학, 곧 책과 무대다. 18세기의 인간은 바로 문학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신적 체험의 모델과 행위 규범들을 길어올렸던 것이다.”9)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문학(및 작가)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은 원칙적으로 창작을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단지 작품을 창조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그런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 자체를 창조하는 자이다. “작가는 문화적 상황을 뒤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창조한다. 그는 텍스트를 창조해야 할 필요성뿐 아니라 그것을 읽을 독자들, 나아가 그런 문화 자체를 창조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한다.”10) 이는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관계에 있어, 동시대 서구예술의 일반적인 규범에서 보면 완전히 ‘뒤집혀진’ 상황을 창출한다. 예컨대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독자(구매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창조해내야 하는 목표로서의) 미래의 이상적 독자를 지향하게 된다. 다시 말해 텍스트가 그 내부에 상정하고 있는 것은 현실의 독자가 아니라 이상적으로 구축된 미래의 독자 형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 문학을 대하는 독자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실제로 그러한 (이상적인) 독자가 ‘되는 것’,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문학작품이 제시하는 모델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었다. 요컨대, 독자에게는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 것”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여기서 책의 세계, 이념의 공간은 현실과 따로 존재하는 이상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 따라 현실을 재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원칙이자 프로그램(모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책에 따라 살기”라는 독특한 (화용론적) 모델은 러시아문화의 근본에 뿌리박힌 특정한 구조적 모델과 분명하게 공명한다. 현실을 기준으로 이상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이상을 기준으로 현실을 변혁하려는 지향, 현실 자체를 이상적으로 바꿔놓으려는 강력한 지향을 지니는 이 특정한 구조를 로뜨만은 “이원적 모델”이라 불렀다. “책에 따라 살기”의 모델은 바로 이 “이원적 모델”의 흥미로운 분신이자 그것의 결과인바, 전자는 후자에 대한 이해 없이 결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

 

 

3. 러시아문화의 “이원적 모델”: 종말론적 유토피아주의

 

“이원적 모델”이란 무엇인가? 1977년에 발표한 한 논문11)에서 로뜨만은 러시아문화를 서구의 “삼원적 모델”과 구별되는 “이원적 모델”로 규정한 바 있다. 이원적 모델의 특징은 “가치의 중립지대”로서의 중간항을 모른다는 것이다. 서구 가톨릭에서 내세는 천국, 지옥, 그리고 연옥으로 구성되는데, 이때의 연옥이란 일정한 시험을 거친 후에 내세에서의 구원이 허용되는 ‘중립적’ 행동의 영역을 말한다. 가치의 중립지대는 미래의 시스템을 숙성시키는 구조적 비축(備蓄)의 영역으로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속성을 보장해준다. 이와 달리 러시아 정교(正敎)의 세계관은 명확한 이원론에 기초한다. 러시아 정교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중립지대를 만들지 않았다. 때문에 이 모델은 새로운 것을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연속’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의 종말론적 ‘교체’로서 사고한다. 새로운 세계, 그것은 오직 과거의 철저한 파괴를 통해서만, 말하자면 구세계의 종말론적 폐허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

중립지대를 모르는 양극단의 입장, 로뜨만이 말하는 이원적 구조의 ‘원형적’ 모델은 정교 시스템에 기초했던 중세 러시아에서 발견된다. 원칙상 대립되는 두 문화영역, 즉 성()과 속()의 ‘양극적 배치’로써 실현되는 러시아 중세의 시스템에서 “문화의 기본 가치들은 명확한 경계에 의해 분리되어 가치론적 중립지대를 알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계 속에 자리잡고 있다.”12) 문제의 핵심은 이런 이원적 사회구조하에서 “문화적 역동성의 형태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라는 점에 있다. 거기서 “변화는 선행단계로부터의 과격한 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이원적 구조하에서 모든 변화는 연속성을 결여한 과격한 단절로서 표상된다. 모든 새로움은 오직 과거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로써만 달성될 수 있는바, 이는 베르쟈예프(Nikolai Berdyaev)의 다음과 같은 저명한 언급이 잘 보여준다. “단절은 러시아 역사의 특징이다. (…) 러시아의 역사에는 다섯개의 시대(끼예프, 타타르 지배, 모스끄바 공국, 뾰뜨르, 쏘비에뜨)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시대는 서로 상이한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전혀 새로운 러시아로 나타난다. 러시아의 발전은 파국적이다.”13)

체계의 중립지대를 보존하는 서구식 삼원 모델과 러시아식 이원 모델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파괴의 성격과 범위에 있다. “삼원적 구조는 이전 시기의 일정한 가치들을 체계의 중심부로부터 주변부로 이동시키면서 보존해낸다. 반면에 이원적 체계의 이상은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올바르지 못한 과오로 간주해 모조리 파괴해버린다.”14) 다른 한편으로, 삼원적 사회구조에서는 가장 격렬하고 심오한 폭발조차도 사회 층위들의 복잡한 풍요로움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물론 중심구조는 그런 격렬하고 재앙적인 성격의 폭발을 경험할 수 있고, 그 굉음이 문화의 전 지층에 울려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삼원적 구조하에서 기존 체계의 모든 구조가 완전히 몰락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허위로 판명될 뿐인) 자기기만이나 효과적인 구호에 불과하다.15)

요컨대 삼원적 체계하에서 폭발적 과정이 문화의 전 지층을 장악하지 못하는 반면에 이원적 체계에서는 폭발적 변화가 일상적 삶의 전 영역을 장악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원적 모델의 특징은 그 변화가 인류사를 통틀어 비교대상이 없는 독특한 체험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폐기되어야 하는 것은 역사적 발전의 어떤 구체적인 층위가 아니라 역사 자체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 그것은 ‘더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 곧 ‘종말’의 시간이 된다. 절대적 폐허로서의 종말, 그것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건이다.

삶의 현장을 끝없는 역사적 ‘실험대’로 바꿔놓는 이런 이원적 구조가 삶의 구체적인 풍경을 어떤 상태로 몰고 갔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그것의 다른 측면에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먼저 강조할 것은 이런 태도의 ‘원칙주의적’ 성격이다. 타협과 절충을 거부하는 정신구조의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이념에 대한 특수한 태도’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성적 가설이다. 그러나 때로 그 이념은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지적) 프레임을 넘어서 그에 따라 세계를 변화시킬 (현실적) 매뉴얼이 되기도 한다.

이원적 모델의 문화는 이념의 실현을 가설이 아닌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예컨대 ‘범인들의 도덕률을 초월할 수 있는 초인은 가능하다’는 니체적 명제를 19세기 러시아의 법과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죄와 벌』의 등장인물)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라. 그는 이러한 가설적 명제를 현실에서 ‘실험’하기 위해 직접 도끼를 손에 쥔다. 19세기 독일관념론이 실질적인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 진화한 곳은 러시아였다. 맑스의 이념이 혁명의 과업으로 실현된 곳도, 또 과격하기로 유명한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예술 프로그램이 현실구축의 강령으로 실험된 곳 역시 러시아였다. 라트비아 출신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에 따르면, 19세기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무엇보다 먼저 ‘행동’의 인간이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이 독특한 청년 무리는 “유럽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필적하지 못할 만큼 관념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고, 어떤 관념이 서구로부터 유입되는 즉시 과도한 열정을 품은 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재빨리 실용적인 것으로 바꾸어놓으려고 고심하는 그런 인물들”16)이다.

말하자면 여기서 이념은 그저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자체가 그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 목표이자 그를 위한 청사진이다. 주목할 것은 이념과 현실 간의 이런 관계가 ‘텍스트와 삶’이라는 또다른 이원항의 짝패라는 사실이다. 이념에 대한 태도는 결국 텍스트에 대한 관점과 다르지 않다. 이로부터 텍스트와 삶의 관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러시아적’ 태도가 도출된다. 이사야 벌린은 문학을 대하는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특징을, “삶과 예술을 가르는 경계를 고의로 뚜렷하게 긋지 않는 태도”라고 불렀다(이 점에서 러시아적 태도는 프랑스적 태도와 구별된다). 그가 “러시아인들의 공로로 생각하는 부분은 대단히 윤리적인 그들의 태도이다. 삶과 예술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서로 일치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윤리적이다.”17)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의 일치는 그러나 완벽한 묘사라고 볼 수 없다. 더 정확한 진단은 따로 있다. 일단 이념을 받아들이고 나면 (더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기에) 반드시 ‘그 이념에 따라 살 것’을 지향하는 태도, 즉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 것’을 지향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원칙주의를 지향하는 이원적 모델의 흥미로운 부산물, 그것이 바로 ‘책에 따라 살기’ 모델인 것이다.

 

 

4. 10년의 격차: ‘메시아의 귀환’

 

‘가치’에 대한 이런 원칙주의적 태도, “종말론적 유토피아주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런 러시아적 이원론에 대한 과거의 내 입장은 앞서 밝힌 대로다. 당시 내가 보기에 문학을 포함한 러시아예술을 대할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깊은 매혹은, 러시아의 역사를 관통해온 저 악명 높은 ‘원칙주의적 실험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글은 러시아적 태도의 ‘극단적 원칙주의’에 대한 내 나름의 반성적 성찰의 시도였던 것이다.

그 글을 쓰면서 나는 러시아의 실험적 삶이 동반해야 했던 온갖 구체적인 고통들을 생각했고, 구세계를 밑바닥까지 파괴한 후 그 폐허 위에서만 신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이원론의 모델이 러시아의 역사에 남긴 지속적인 상흔을 떠올렸다. 그리고 언젠가 로뜨만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세기의 포스트-쏘비에뜨 러시아가 마침내 이원론의 모델이 아닌 삼원론의 모델로, 계약과 합의, 절충과 타협에 기초한 새로운 시기로 이행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러시아의 문화사를 다룬 한 논문에서 내가 찾아낸 로뜨만의 아래 구절은 그러한 내 판단의 뚜렷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이원적 구조의 정치적 실현은 현실 속에서 다만 극단적인 독재를 야기할 뿐인 지상천국을 향한 희망 없는 시도이다. 바로 이로부터 문화의 두번째 층위, 즉 이념과 예술의 영역에서 이원적 구조가 지니는 의심할 바 없는 긍정적 의미와, 정치적 현실의 영역에서 그것을 실현하려는 시도가 지니는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한 위험성이 나온다. (…) 똘스또이와 도스또옙스끼 없는 삶이란 도덕적・정신적으로 빈곤한 것이 되겠지만, 똘스또이와 도스또옙스끼를 따르는 삶이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끔찍한 것이 될 것이다.”18)

그런데 9년의 세월이 흘러 또다시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내가 애초의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느끼며 스스로 놀라워한다. 똘스또이와 도스또옙스끼를 ‘읽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그들을 ‘따르려는’ 삶, 이 불가능한 원칙주의적 태도를 바라보는 내 시각의 변화에 대해 말하려면 아무래도 지난 10여년간 우리를 스쳐간 변화에 관해 짧게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18)

모두가 기억하듯이,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한국문단을 휩쓸고 지나간 게 지난 2006년의 일이다. 알다시피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종언 명제는 이른바 ‘근대문학’이 담당했던 비범한 위상과 역할이라는 전제에 근거했다. 그 전제를 한마디로 요약하기에 ‘문학 이상의 문학’보다 나은 표현을 찾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에 따르면 바야흐로 종언을 고한 것은 문학 자체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은 문학의 저 특별한 위상이다. 그러나 문학이 ‘문학 이상의 어떤 것’이 되기를 요구받고, 또 실제로 그렇게 기능할 수 있었던 시기가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 존재했던가? 이에 어떻게 답하든 간에, 러시아 근대문학이 이 전제를 ‘문자 그대로’ 실현하는 데 매우 가까웠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과연 코오진은 미련 없이 문학을 떠나 철학을 향해 나아갔던바, 사실 그같은 행보의 원형적 모델을 보여준 건 바로 19세기 러시아 작가 똘스또이가 아니었던가.

한편, 그로부터 5년 정도가 지나자 흥미롭게도 ‘종언’의 발신지였던 바로 그 나라로부터 사뭇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스로의 지나온 길을 냉정하게 회고하는 대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제 막 사상의 장에 발을 내디딘 젊은이의 목소리였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사람은 책을 성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왜 책에 쓰여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요? 왜 읽고서 옳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정보’라는 필터를 꽂아 무해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요? 아시겠지요. 미쳐버리기 때문입니다.”19) 다소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기개를 담아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역설하는 사사끼 아따루(木中)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어리석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20)

불과 5~6년을 사이에 두고 나타난 이 격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그보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이 설왕설래가 문학의 위상에 대한 논의를 거쳐 책읽기의 문제, 그러니까 책에 대한 수용자의 태도 문제를 곧장 겨냥하는 이런 현상을 과연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책읽기와 관련해 하필이면 그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광기’의 문제를 파고든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그저 예사롭게 넘길 수 있을까? 앞서 나는 ‘책에 따라 살기’라는 러시아문화의 화용론적 태도가 ‘극단적 원칙주의’와 ‘종말론적 유토피아주의’를 요체로 하는 이원적 모델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썼다. 지금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간주되어온 저 ‘책읽기 모델’의 부활이, 이제껏 묻혀 있던 또다른 많은 것들의 공공연한 귀환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중 대표적으로 두가지만 꼽자면 파국(혹은 종말)과 유토피아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지난 몇년간 국내외에서 꾸준하게 목도해온 모종의 경향, 그건 바로 이 두 단어의 공공연한 귀환이 아니었던가.

우리 시대를 사유하기 위한 키워드로 ‘파국(종말)’의 개념을 내세운 두권의 책이 연달아 출간된 것이 지난 2011~12년이었다. 『파국의 지형학』(문강형준 지음, 자음과모음 2011)과 『묵시록의 네 기사』(복도훈 지음, 자음과모음 2012)가 그것인데, 우리 시대를 둘러싼 각종 파국의 기미와 그에 관한 상상력의 다채로운 풍경을 따져 묻는 이 책들이 깔고 있는 공통의 전제는 ‘파국 혹은 종말의 감수성’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공통의 감수성은 이른바 ‘역사 이후의 멈춰버린 현재’라는 특정한 세계감각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그 세계에 대한 일정한 이론적 해석의 영향하에 도출된 산물이기도 하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특히 그의 메시아적 역사철학에서 출발하는 정치적 기획은 데리다(Jacques Derrida)와 아감벤(Giorgio Agamben) 같은 현대적 해석자의 경유를 거쳐 어느새 진보적 이론진영의 가장 중심적인 쟁점이 되었다.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명시적으로 드러내는바, 이들 논의에서 메시아적 시간성이란 현재를 지배하는 질서에 의해 규정되는 시간성과는 전적으로 다른, 어떤 근본적인 이질성의 도래를 향한 ‘급진적인 단절’의 요청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역사의 절단, 시간성의 분할, 말하자면 역사라는 기차를 멈출 진정한 단절의 사건을 요청하고 있다. 그것도 ‘도래할 메시아’의 이름으로 말이다.21) 대략 2000년대 중반경부터 뚜렷해진 이런 새로운 경향이 주는 ‘낙차’의 감각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지난 20세기 내내 파국이니 메시아니 하는 단어들(더 넓게는 신학적 패러다임 자체)에 부여됐던 뚜렷한 부정적 색채를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역사의 근본적 단절에 관한 사유, 로뜨만식으로 말해 ‘계승’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모든 사유형식은 안이하고 낭만적일 뿐 아니라 몹시 위험하고 유해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그것은 악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어쩌면 그것이 몰아내고자 하는 어떤 것보다 더 나쁜) 최악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유혹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볼 때, ‘(정치)신학적 전환’이라는 새 경향이 애초부터 종말론과 불가분의 짝패를 이루었던 또 하나의 경향, 즉 ‘유토피아주의’의 귀환을 동반하게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지젝(Slavoj Žižek)과 바디우(Alain Badiou)를 위시한 진보적 이론진영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유토피아의 (재)발명’이다. 그들에 따르면, “역사의 종말”이란 기실 “유토피아의 종말”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바, 이런 거짓 신화와 맞서 싸우기 위해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유토피아의 (재)발명,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유토피아적 제스처”다. 20세기가 남긴 최악의 이름들, 가령 전쟁, 인종주의, 전체주의 따위의 단어와 결부됐던 유토피아주의는 이제 ‘괴물과도 같은’ 광기의 주체성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 되어 공공연히 귀환했다. 때로는 ‘정치적 계산’의 좌표계를 돌파하는 레닌의 선택으로, 때로는 절충적 실용주의의 위안을 거부하고 강경하고 고집스러운 윤리학을 되풀이하는 안티고네와 바울의 행위로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말에 『광신』(후마니타스 2013)이라는 책이 번역되었다. “우리의 정치적 어휘 사전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혼란스러운 용어 중 하나”이면서 언제나 “유토피아적 오만함이나 전체주의적 망상의 기운”을 풍기는 이 저주받은 개념에 대한 계보학을 지향하는 이 책에서, 광신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을까? 광신은 “어떤 원칙과 믿음에 있어 타협을 거부하는 태도”22) 혹은 그에 따른 “신념의 윤리”로서 규정된다. 그것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모든 반대자의 의견이나 믿음을 파괴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종교적 정신의 정치적 도착(倒錯)이자 신의 규율에 대한 파괴적이며 전염적인 집단적 고착”23)이다. 그럼 천년왕국운동에서 시작해 계몽주의와 칸트, 헤겔, 맑스, 그리고 오늘날의 메시아(주의)에까지 이르는 이 특별한 계보학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광신의 긴 역사를 (…) 단순히 묵살하거나 병리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타협의 거부, 원칙의 긍정, 격정적 당파성은 현 상황의 급진적 변혁을 갈구하는 모든 정치의 계기들이다.”24) 요컨대 싸워야 할 전투가 있는 한 광신 없는 역사는 없다는 것,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지금껏 약술한 몹시 빈약한 요약만으로도 “책에 따라 살기”라는 동일한 제목 앞에서 지금 내가 느끼는 현기증 나는 격차가 어느정도 전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 뿌리깊은 러시아적 이원론에 대한 20세기적 해석을 공유했던 내가 21세기에 경험하고 있는 이 당혹스러운 거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지난 9년간 우리에게는, 그리고 이 세계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만일 내가 지금 이 순간 9년 전의 글을 다시 쓴다면, 그때와는 사뭇 다른 접근을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분명 나는 “책에 따라 살기”라는 러시아적 모델의 현실적인 위험성이 아니라 그와 같은 강박의 ‘불가피성,’ 혹은 최소한 그것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관해서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5. 문화와 폭발: 러시아라는 유령

 

그런데 러시아식 이원론에 대한 이런 ‘양가적’ 감정과 태도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로뜨만에게도 해당되는바, 어떤 점에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로뜨만 자신이다. 죽기 1년 전인 1992년에 로뜨만은 자신의 마지막 저서를 출간했는데, 그 책은 『문화와 폭발』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에서 로뜨만은 문화의 역동적 전개과정을 “점진적(gradual) 과정”과 “폭발적(explosive) 과정”으로 구분하는데, 전자의 과정이 ‘계승’과 ‘연속성’에 기초한다면 후자의 과정은 ‘단절’과 ‘혁신’에 기초한다. 로뜨만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이 두가지 메커니즘의 동시적 혹은 순차적 작동에 기반한다. 그런데 제목이 보여주고 있듯이, 로뜨만의 이 ‘마지막’ 책은 역사의 불연속성과 급격한 단절을 본질로 삼는 폭발적 과정의 창조적 잠재력에 온전히 바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폭발이란 곧 ‘결절(結節)’의 국면에 다름 아니다.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문화의 자기인식의 연속적 과정 중에 갑작스레 발생한 파국의 순간, 바로 그게 폭발이다. 이전의 모든 과정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순간, 미래의 방향이 비결정성의 문턱에 머무는 ‘정지’의 순간이 바로 폭발의 국면이다. 그런데 역사의 예측 불가능한 도약과 변화를 겨냥하는 이 개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원적 문화모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러시아문화는 스스로를 폭발의 범주 속에서 인식한다.”25) 러시아문화야말로 문화의 폭발적 전개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그렇다면 로뜨만은 생애 말년에 이르러 러시아문화의 이원적 구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한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로뜨만의 입장이 여전히 조심스럽다. 러시아문화의 근간에 뿌리박힌 이원적 정신구조의 흔적과 그 영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는, 문화의 폭발적 전개에 뒤따를 수 있는 현실적 위험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그는 폭발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과 부정한다는 것은 같지 않다. “폭발은 복잡하고 양가적인 가치다. 이원적 문화 맥락에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민감하지만 그럼에도 로뜨만은 폭발적 국면을 사랑한다. 그런 파열의 순간들에서만 잠재성의 직접적이고 풍부한 증식이 가능해진다. 이 잠재성들은 아직 조직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점진적 과정들의 실용적이고 예측 가능한 산물인 것도 아니다. 약간의 민족적 자긍심을 곁들여, 로뜨만은 이원적 환경이 부서지기 쉽고 파국적이긴 하지만, 그에 본질적인 ‘심오한 위기’가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오기 쉽다고 인정한다.”26)

요컨대 “기호학적 지층에 뚫린 창문”27)으로서 폭발은 불가피하다. 예술이 그렇듯, 폭발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죽음과도 같은) 동어반복으로부터 구해내는 절대적 계기다. 만일 그 창문이 없다면, ‘기호계’ 역시 존속할 수 없다. 창문(폭발) 없는 기호계(문화)는 더이상 약동하는 생성의 메커니즘이 아닌 죽어버린 감옥일 뿐이다. 폭발에 뒤따르는 “심오한 위기,” 그것은 (연속성의 삼원 모델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근본적인 혁신”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28)

1992년 그해 로뜨만은, 언젠가 쏘비에뜨라 불렸던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유토피아 기획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폐허’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는 그 몰락이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낳게 될 진정한 폭발이길 기대했다. 1년 후인 1993년 데리다는 『맑스의 유령들』을 썼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5년에 한 평자는 당대의 묵시를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상실해버린” 억눌린 상상력으로 진단했다.29)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이 흘렀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오히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쉬워진” 오늘날 한켠에서는 ‘레닌을 반복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더는 아무도 ‘책에 따라’ 살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는 유토피아적 이념의 현실화는커녕 유토피아의 가능성 자체를 믿지 않게 된 것처럼 보인다. 부분적인 보완과 개선은 가능할지라도 현실의 근본적인 변혁이란 절대 불가능하며, 그런 변혁의 시도는 더욱 끔찍한 파국과 불행(가령 파시즘)을 가져올 뿐이라고 굳게 믿게 된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정녕 종말론적 유토피아주의, 저 오래된 파국의 상상력은 이 끔찍한 ‘노년의 세기’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소개한 파국에 관한 책의 한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다. “모든 파국은 유토피아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그 계기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설사 실패하여 모든 것이 조각난다 하더라도(역사는 그런 실패투성이다) 그 조각난 ‘어제’가 반드시 되살아나 그 조각으로 시스템을 찢는 ‘지금’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30) 이는 결국 모든 것의 절멸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독이면서 약인 파국의 이중성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독/약으로서의 파국, 곧 파국의 ‘파르마콘’(pharmakon). 하지만 나로서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러시아 출신의 예술사가이자 미디어학자인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1980년대 후반에 “서구의 무의식으로서의 러시아”31)라는 테제를 내놓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적인 어떤 것)는 서구적 의식이 애써 억압하고자 하는 중대한 ‘타자’에 해당하며, 그것은 때가 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모든 ‘귀환’의 풍경을 러시아적인 어떤 것의 되돌아옴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단지 광기와 극단이 아니라, 이성의 중핵에 존재하는 본질적 타자로서의 그것, 바로 ‘러시아라는 이름의 유령’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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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환 「책에 따라 살기: 러시아적 문화유형의 매혹과 위험」, 『러시아연구』 15권 1호, 서울대 러시아연구소 2005, 35~59면.

2) Ю. М. Лотман, “Очерк по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е XIII века,” Из истории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том IV (М., 1996), 112면.

3) 유리 로뜨만의 이론이라 하면 흔히 구조시학(詩學)이나 기호학적 문화이론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둔 이들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분야는 따로 있다. 그건 로뜨만의 문화사 읽기, 그중에서도 문화유형론(typology of culture)이라 불리는 영역이다. 문화유형론은 사상사에 토대를 둔 문예학자 로뜨만의 본래적 정체성을 제일 잘 보여주는 분야이며, 동시에 기호학자 로뜨만을 여타 기호학자들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독창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바로 이 영역에서 발언할 때 로뜨만은 가장 인문적이며 제일 그답다. 관련된 복잡한 이론적 전제들을 제쳐두고 핵심만 요약하자면, 문화유형론은 특정 문화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 곧 문화의 ‘자기이해’를 다루는 학문분야다. 문화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자화상’을 기호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 한마디로 문화적 ‘자기기술’(self-description)의 메커니즘에 관한 학문이 문화유형론이다. 그런데 유형론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이 기술의 유형(type)을 따져 묻는 접근법이기에 본질상 ‘비교학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문화유형론과 관련된 로뜨만의 다양한 분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특정 유형으로서의 ‘러시아문화’다.

4) C. Ю. Бойм, Общие места: мифология повседневнойжизни (М., 2002), 125면에서 재인용.

5) 제부슈낀이 편지 상대자인 바르바라에게 최종적인 이별통보를 받고 슬퍼하는 대목을 보라. “아아, 사랑하는 바르바라, 안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 편지가 마지막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내 문장도 틀이 잡혀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아, 아니에요. 문장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단지 당신에게 몇줄이라도 더 쓰고 싶은 것뿐입니다. 아아, 나의 귀여운 바르바라, 나의 그리운 바르바라, 나의 사랑하는 바르바라!” (강조는 인용자) 이 소설의 가장 안타까운 대목 중 하나는 실제로 그의 문체가 작품의 말미에 이를수록 현저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6) C. Ю. Бойм, 같은 책 126면.

7) B. Gasparov, “Introduction,” Iurii Lotman The Semiotics of Russian Cultural History: essays, Ithaca, 1985, 13면.

8) Ю. М. Лотман, “Очерк по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е XIII века,” Из истории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том IV (М., 1996), 89면.

9) 같은 글 110면.

10) 같은 글 107면. 18세기에 책의 출간부수가 실질적인 판매량, 즉 실제로 그것을 구입한 독자들의 수와 무관했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출간부수는 실제로 책을 구입할 독자들의 수요를 예상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 즉 ‘있어야만 할 독자들’의 수를 가리켰다.

11) Ю. М. Лотман, “Роль дуальных моделей в динамике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совместно с Б. А. Успенским),” История и типология русскойкультуры (СПб., 2002), 88~116면. 국역본으로는 로뜨만/우스펜스키 「러시아 문화의 역학에 있어 이원적 모델의 역할(18세기 말까지)」, 『러시아 기호학의 이해』, 이인영 엮음, 민음사 1993, 44~96면.

12) Ю. М. Лотман, 같은 글 89면; 국역본 46면.

13) Н. А. Бердяев, “Русская идея,” О России и русской философской культуре: философы русского после октябриского зарубежья (М.,1990), 44~46면. 국역본은 니꼴라이 베르냐예프 『러시아 사상사』, 범조사 1985, 14~17면. 그런데 사실 논문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로뜨만의 진짜 관심은 이런 파국적 단절 모델의 이면(裏)을 향해 있다. 그에 따르면 외견상의 불연속성 아래에는 최초 모델의 변형된 무한반복이 놓여 있다. 즉 러시아문화사의 각 단계에서 확인되는 ‘새로움’을 향한 강력한 지향은 전 시기에 대한 과격한 거부의 몸짓을 통해 역설적으로 “옛것의 발생기”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역사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서 표상했던 뾰뜨르 이후의 18세기 근대문화는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전통적인’ 문화였다. ‘서구적인 것’이라고 주관적으로 체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옛것의 뒤집힌 반복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로뜨만의 날카로운 통찰은 “역사적 전통은 전통과의 단절이 주관적으로 의도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반대로 혁신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전통’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자주 노출시킨다”(Лотман, 같은 글 115면; 국역본 96면)라는 데 있다. 단절과 연속성, 혁신과 전통의 미묘한 착종을 바라보는 이런 관점은 당연히 ‘역사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서 스스로를 유표화한 또다른 체계, 즉 동시대 쏘비에뜨 사회를 향한 암묵적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14) Ю. М. Лотман, Культура и взрыв // Семиосфера (СПб., 2000), 141면.

15) 가령 정치, 국가구조, 넒은 의미에서 전 문화의 공시적 폭발을 동반했던 나뽈레옹 제국의 몰락은 지대 소유권을 건드리지 못했다. 크롬웰(Oliver Cromwell)의 유토피아나 자꼬뱅 독재처럼, 삶의 모든 공간을 절대적으로 재건하려는 시도조차 본질적으로는 삶의 지극히 제한된 영역을 장악했을 뿐이다. 일찍이 까람진(Nikolai Karamzin)이 지적한 대로, “국가 집회나 극장에 열정이 들끓고 있을 때조차 빨레루아얄 지역의 빠리 거리에선 정치와 동떨어진 즐거운 삶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책 147면.

16) 이사야 벌린 『러시아 사상가』, 조준래 옮김, 생각의 나무 2008, 214면.

17) 같은 책 221면.

18) Ю. М. Лотман, “Механизм Смуты,” История и типология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СПб., 2002), 45면 (강조는 인용자).

19)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2012, 37~38면.

20) 같은 책 43면 (강조는 인용자).

21) 물론 이들의 논의가 “메시아의 귀환”으로 한꺼번에 뭉뚱그려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의식 자체는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는 자신의 이론적 맥락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이를 전유한다. “메시아주의적 전회”로 불리는 진보 정치철학의 새 경향을 벤야민, 데리다, 아감벤의 논의를 중심으로 ‘시간성’의 차원에서 고찰한 글로 정정훈 「시간과 메시아: 메시아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오늘의 문예비평』 2011년 가을호 98~120면을, 벤야민과 하이데거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를 중심으로 ‘메시아주의적 정치’의 철학적 원천과 대안을 모색한 글로 진태원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 『철학논집』 34권, 서강대 철학연구소 2013, 155~95면을 참고할 수 있다.

22) 알베르토 토스카노 『광신』, 문강형준 옮김, 후마니타스 2013, 12면.

23) 같은 책 14면.

24) 같은 책 410면.

25) Ю. М. Лотман, Культура и взрыв // Семиосфера (СПб., 2000), 148면.

26) Caryl Emerson, “Pushkins Anzhelo, Lotmans Insight into It, and the Proper Measure of Politics and Grace,” Lotman and Cultural Semiotics: Encounters and Extensions, Andreas Schönle ed.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2006, 104면.

27) Ю. М. Лотман, 앞의 책 30면.

28) ‘폭발’ 개념과 관련해, 과연 로뜨만이 러시아의 이원론에 대한 과거의 비판적 관점을 수정했는지의 여부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논쟁적 테마다. ‘폭발’ 개념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그것이 보여주는 로뜨만의 변화된 인식 문제에 관해서는, 졸저 『사유하는 구조』, 문학과지성사 2011, 12장(「로트만의 폭발」)과 곧 출간될 『문화와 폭발』의 국역본(아카넷 2014) 역자해제를 참고할 수 있다.

29) 크리샨 쿠마르 「오늘날의 묵시, 천년왕국 그리고 유토피아」, 『종말론』, 맬컴 불 엮음, 문학과지성사 2011, 255~87면.

30) 문강형준, 앞의 책 110면.

31) Борис Гройс, “Россия как подсознание Запада,” Искусство утопии (Москва, 2003) 150~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