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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걱정이다, 정부 대학개혁안
박주용 朴珠龍
창비 계간지출판부 편집자 munjibang@changbi.com
대학은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화두다. 지난 몇년 새 ‘반값등록금’을 향한 요구는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기보다 이제 대중교육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학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열망이 더해져 여러가지 진풍경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최근 불거진 교과서 논쟁을 보자.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는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채택률 0%대를 이끌어낸 또다른 결정적 요인은 ‘수능에서의 유불리’라는 판단기준이었다. 집권 보수진영의 이념적 공세마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출세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철저히 무력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대학에 얽혀 있는 문제는 많다. 공동화 위기를 겪는 지방대의 문제는 수도권 집중과 지역 균형발전에 직결된다. 사학재단 운영상의 여러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사학법 개정을 두고 벌어진 격렬한 대립이 이를 방증한다. 대통령조차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대학이 대대적인 개편 바람에 내몰리고 있다. 핵심 원인은 학령인구의 급속한 감소다. 2013년 11월 21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소속 야당의원 일동과 4개 교수단체가 주최한 ‘대학 구조조정 토론회’가 열렸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첫해부터 대학 구조개혁안 마련을 위한 정책연구팀을 발족시켜 해외사례 수집 및 각계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는 그 결과로 나온 연구팀의 정책제언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자리였다. 토론회에서는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정책제안 외에도 부정비리사학 정상화, 지방대학 육성 및 지원, 대학평가 방안 등 다양한 주제의 의견이 오갔다. 두명의 발제자와 여섯명의 토론자가 긴 시간 대학개혁을 논했지만, 다양한 차원의 산적한 문제가 쏟아져나와 구체적인 쟁점을 토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정부의 구체적인 안이 윤곽을 드러낸 만큼 세부 논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최근 교육부는 연구팀의 제언을 바탕으로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2014.1.28, 이하 ‘정부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예측에 따르면, 2013년 약 63만명인 고교졸업자 수가 2023년 40만명으로 감소함에 따라, 55만명 수준인 현재의 대학정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18년에는 고교졸업자 수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이라는 대전제를 수행하기 위한 단계별, 등급별 감축방안이 눈에 띈다. 정부는 2023년까지 세 분기로 나눠 전반적인 대학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5개 등급으로 차등화해 정원감축을 강제할 예정이다. 최우수 등급을 받은 대학은 ‘자율적으로’ 감축하고, 등급이 낮을수록 감축규모도 커지는 ‘적자생존’ 방식이다.
여기서 관건이 될 평가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평가에 정성(定性)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기 전까지 적실성을 쉽게 낙관할 수 없을 듯하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이른바 ‘명문대’ 목록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특성화’나 ‘정성평가’ 같은 모호한 정책방향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의가 생긴다면 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개편의 핵심목표가 정원감축에 있는 한, 예상되는 여러 난점도 강제력을 행사해 처리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방안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대학은 대규모 정원감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립대와 수도권 대규모 사립대 몇몇은 존폐위기를 맞는 단계까지 내몰리지 않겠지만, 지방 소규모 사립대를 비롯해 상당수의 대학이 생존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지방대는 철저히 등록금 중심의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이런 한계를 인식했는지, 이번 개편이 비록 현실에 대응하는 차원이긴 하지만 이를 기회로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여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력을 평가하는 ‘공정한’ 기준으로 든 ‘특성화’는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새롭지도 않다. 공허한 특성화 구호를 내세워 이미 얼마나 많은 지방 사립대들이 학과를 통폐합하고 ‘실용적’인 분야들로 체질을 바꿔왔는가. 또 그 효과는 과연 무엇이었나.
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다른 방안은 이미 차고 넘친다. 가령 대학구조 개편을 비리 사학재단을 퇴출시키고 사립대를 공영화함으로써 고등교육 공공성 회복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윤지관 「한국 사립대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참조)이 여러차례 제기되었다. 또한 학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국립대학 통합운영안(또는 통합네트워크)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 현 고등교육 체제의 대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야권의 정책토론 의제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이 이러한 논의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정부안에서 비리사학 문제의 유일한 대안으로 보이는 ‘부실대학 자진퇴출 경로 마련’은 이미 2000년대초부터 추진된 정책이지만 알다시피 이러한 방식으로 ‘출구전략’을 시도한 경우는 드물다. 국립대학 운영 주체로서 이를 고민한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특히 학벌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은 정부안의 결정적인 한계다. 대학구조 재편이 불가피해진 근본요인으로 꼽을 만한 저출산 추세와 수도권 집중은 사실 학벌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특성화와 경쟁력 강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구호와는 달리 개혁할 의지가 희박함을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이번 정부안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다. 실질적인 내용은 그저 앞으로 대학정원을 몇명 감축할지에 관한 것뿐이다. 곧이어 구성될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활동에 쉽사리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다. 누구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다이어트’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임시방편에 의존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교육의 판 자체를 바꾸려는 발상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출산율 저하와 자살률 고공행진같이 사회의 존폐를 위협하는 각종 이반현상은 학벌, 지역불균형, 과도한 경쟁체제, 공교육 부실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에 따른 증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대학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처방전이어야 한다. 그만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중요하다. 향후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시행되는 과정을 당사자의 시선으로 지켜보자. 화려한 ‘상아빛 망대’는 더이상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 더 높고 튼튼한 망대로 새롭게 태어나 넓고 자세히 세계를 살피는 대학이 되도록 사회적 역량을 모을 필요가 있다. 대학의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