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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민족’으로 동아시아와 만난다는 것
2014 인터아시아 청년학자포럼 참관기
백지운 白池雲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제국의 눈』 『열렬한 책읽기』 『리저널리즘: 동아시아의 문화지정학』 『위미』 『귀거래』 등이 있음. jiwoon-b@hanmail.net
2014년 3월 28일과 29일 양일간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인터아시아 청년학자포럼’이 개최되었다. 주제는 ‘동아시아로부터 다시 보는 한국의 지식담론: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 이 회의는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현대사상 청년학자포럼’(2013.8.27~28, 주제는 ‘1980~90년대 한국 지식담론의 재고: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의 결과발표회에 해당한다. 한국의 특정 담론을 주제로 한국·중국·대만·일본·오끼나와·홍콩의 소장학자 20여명이 참석한 이 회의가 열리게 된 상황을 설명하기 앞서, ‘인터아시아스쿨’(亞際書院, Inter-Asia School, http://www.interasiaschool.org)에 대해 잠시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터아시아스쿨은 국제적 민간 학술조직으로 2012년 상하이포럼(10.12~19, ‘World in Transition, Imagination in Flux: Asian Circle of Thought 2012 Shanghai Forum’)을 기점으로 정식 설립되었다. 인터아시아스쿨의 결성취지는 아시아 사상 연구를 위한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새로운 지식생산의 방식을 탐구하여 식민주의, 전쟁, 냉전이 아시아 지역에 조성한 소통의 장벽과 그로 인한 사상적 곤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이란 근대 이래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축적된 비판적 사유와 실천, 담론을 포괄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아직 사상으로 체계화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지적·담론적·실천적 자원을 말한다. 각지의 자원들을 동아시아 사상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인터아시아스쿨의 궁극적 목표다.
인터아시아스쿨에서 현재 진행 중인 주요 프로젝트로는 ‘서천중토’(西天中土, West Heavens)와 ‘아시아현대사상’(Modern Asian Thought, 약칭 MAT)이 있다. 중국-인도 간의 학술·예술 교류인 ‘서천중토’는 2010년부터 추진된 것으로, 2012년 상하이포럼에서 MAT가 결성되면서 양자가 인터아시아스쿨의 골간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아시아 청년학자포럼(약칭 청년포럼)은 바로 이 MAT의 일환이다. 그밖에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 행사(2006)로 출발해 독자적인 연대활동사업으로 이어져오는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회의’도 또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
아시아의 소장학자들로 결성된 청년포럼은 우선 각 지역의 사상자원을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그동안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국제회의가 열렸지만, 각지의 구체적인 지식 및 실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동아시아 연구는 피상성을 벗기 어렵다는 경험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번째 포럼 장소를 서울로 정한 데는 한국이 동아시아 담론의 발신자인 만큼, 그것이 제기된 지적·실천적 맥락을 공부하고 싶다는 구성원들의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을 한국의 지적 맥락에서 떨어뜨린 채 텍스트만 가지고 외국 학자들과 읽고 토론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피상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동아시아론의 연원이라 할 민족문학론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청년포럼은 첫째날 강연과 둘째날 집중인터뷰로 구성되었다. 강연은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 논쟁의 중요한 논객이자 활동가였던 김명인(金明仁)·유중하(柳中夏) 교수가 맡았다. 전자가 ‘80년대 민족민중 문학론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전체 논쟁과정을 정리하고 이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평가했다면, 후자는 동아시아연구의 참조체계를 위한 시안으로서 남한문학과 대만문학, 대륙문학과 북한문학에 대한 비교연구의 방법을 제안했다. 둘째날은 백낙청(白樂晴) 교수와 최원식(崔元植) 교수에 대한 참석자들의 집중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주제는 각각 ‘민족문학론에서 분단체제론으로’와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였다. 이 인터뷰를 위해 참석자들은 사전에 두 사람의 주요 저작을 읽고 질문지를 제출한 상태였다. 이날 인터뷰는 사전질문지에 대한 대답과 그에 대한 추가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14년 항저우 청년포럼을 소개하기 위해 서두가 길었다. 비록 갓 출범했지만, 동아시아 선배학자들의 오랜 교류와 실험, 시행착오의 축적으로 결성된 인터아시아스쿨 및 MAT라는 기반 위에 이루어진 이 회의의 역사성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2013년 서울포럼에서 민족문학론과 동아시아론에 관한 논문을 읽고 강연 및 인터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한 참석자들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14년 2월까지 각자가 이해한 만큼,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곳의 지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고민한 만큼 글을 써서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사실 모두가 각자 소속된 대학과 연구기관의 업무로 분주한 가운데, 아무런 강제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극히 제한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청년포럼의 결과보고회라 할 항저우 청년포럼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약속한 때가 되자 참석자들이 하나둘 글을 보내왔다. 총 13편의 글이 모였고 그외에도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의엔 불참하지만 추후에 글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도 있었다. 의례적인 여느 국제회의와 달리 이 모임이 장래에 학문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기대로 다져져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항저우 청년포럼 회의구성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생략한다. 다만 한국 측에서 서영채(徐榮彩)·유희석(柳熙錫)·이정훈(李政勳)·임우경(任佑卿)과 필자가 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했고 송가배·박은석 두 박사생이 함께했음을 밝혀둔다. 백영서(白永瑞) 교수는 둘째날 토론에 합류했다. 이 회의의 주제는 한국의 민족문학론과 동아시아론이었지만, 각 학자들의 발표 내용은 이에 제한하기보다 자유롭게 열어둔 상태였다. 흥미롭게도 회의는 한국, 중국, 대만, 오끼나와, 그리고 일본 자이니찌(在日) 문학 등의 맥락에서 ‘민족’ 혹은 ‘민족문학’을 되돌아보는 것에 집중되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민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고 쓰더라도 개념이 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족문학’만 해도 시민, 민중, 민족 개념이 뒤섞여 있었던 만큼, 문제는 각 지역에서 문학과 사회운동의 주체를 무엇으로 호명했는가였다.
논의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분명 ‘민족(문학)’은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다. 1990년대 탈근대의 물결과 함께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각지에 ‘민족’에 대한 비판과 해체의 바람이 거세게 지나간 터였다. ‘동아시아’가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도 바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민족’을 화두로 각 지역이 서로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더 정확하게 말해 ‘민족’을 둘러싼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서로 어긋나는 불협의 틈 속에서 동아시아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이 감지되었다는 것이 이번 회의가 가져온 뜻밖의 성과였다. 논의를 거듭하면서 필자는 민족을 극복하자는 그간의 주장이 공허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구축되어온 민족의 과정, 그 내부의 운동성과 반동성의 각축, 자기분열 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깊은 이해를 뛰어넘은 채 논의되는 민족의 초월이란 그야말로 관념적인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극복을 논하면서 우리는 서구의 이론을 봤을 뿐 동아시아를 참조하지 않았다. 민족국가를 극복하려는 학문적 작업은 민족국가의 인식틀을 넘어서지 못했고 동아시아는 여전히 동아시아인의 사각지대였다. 그 점에서 민족국가를 포기하면 동아시아론은 그 자체로 경직되거나 다시 민족국가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중국학자 장 즈창(張志强)의 발언은 되새길 만한 것이었다. 민족국가를 넘어 동아시아를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민족국가를 간단히 생략해서는 결코 생산적 진전을 얻을 수 없다는 역설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민족’에 각인된 균열의 양상은 다양했다. 중국혁명의 역사경험과 문학경험의 괴리를 예민하게 감지한 허 하오(何浩)나 혁명시기 ‘중화민족’과 소수민족 간의 괴리로부터 ‘민족문학’ 구성의 난제를 떠올린 주 위(朱羽)의 문제의식에서는 기성 중국학자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신진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긴장된 갑론을박이 오고갔음도 기록해둔다. 이는 혁명 혹은 혁명문학이라는 이념의 순결성을 지키려는 사회주의권 청년학자의 신념과 그 속에 은닉된 균열을 파헤치려는 학문적 진지성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은 오끼나와와 일본 자이니찌 학자들과의 토론이었다. 이들은 민족국가의 변경(邊境)에서 민족에 대한 상상과 관념이 뜻밖에도 중심부 못지않게 절박하고 또 억압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자이니찌 문학에서 ‘조선부락’1)이 ‘이향(異鄕)’으로서의 ‘민족의 핵’으로 기능했다는 오세종(吳世宗)의 발표가 흥미로웠다. 현상이 복잡하기는 오끼나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일어난 오끼나와의 민족의식이 사실은 일본과 미국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역설에서 오끼나와의 운동은 출발한다. 민족국가의 변경에서 생산되는 민족의식의 경험은 민족을 반성적으로 접근하는 다른 시야를 요청했다.
토론시간에 오끼나와 학자 신죠오 이꾸오(新城郁夫)가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이나 다른 지역의 ‘민족/문학’에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 있느냐고. 다시 말해, ‘민족’이 자기 내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가해자라는 의식, 즉 폭력에 대한 자의식을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생소한 질문에 나는 언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민족’이 한때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제국주의나 국가권력 같은 외부의 억압에 저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족’은 자신이 억압받는 자임을 전제한다. 그런 점에서, 피억압민족 간의 연대를 주장했던 ‘제3세계론’ 또한 본질적으로는 민족담론과 연관선상에 있는 것이다. 저 강대한 중국에 아직도 자신이 (서구에 억압받는) ‘약소민족’이라는 관념이 고집스레 잔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편, 탈근대 바람을 타고 온 민족해체론도 따지고 보면 안으로부터가 아닌 바깥에서 진행되었다. 즉 국가와 제도 같은 신체 외부의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주입된 것이 민족이며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피해자이고 고통받는 자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동아시아를 말하기 위해 항상 서양을 경유해왔다. 서양의 근대를, 서양적 인식론과 사유방식을 비판해왔다. 이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내면의 욕망을 분석하는 것에서 동아시아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생각해보면 동아시아에는 ‘정상적’ 민족국가가 드물다. 분단국인 한국과 북한이 그렇고, 국제사회에서 독립국 대접을 못 받는 대만이 그러하며 오끼나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본 역시 헌법개정을 놓고 ‘정상국가’를 향한 욕망에 지펴져 있다. 모두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억압받는다는 감각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약자인 오끼나와가, 자신이 대동아전쟁의 가담자이자 베트남전쟁의 근거지라는 가해의식으로부터 타자와의 연대를 타전한 점은 우리 모두가 겸허하게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각자가 다른 싸움의 터 위에 구축한 ‘민족’의 보이지 않는 안쪽에 끌어안고 있는 상처와 억압, 폭력의 기억을 상호 참조하면서, 억압받았다는 감각 그리고 억압했다는 감각을 객관화하고, 어떻게 그로부터 연대의 가능성을 끌어낼 것인가. 동아시아론은 바로 이런 물음으로부터 새로운 도약의 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은 궁극적으로 반성하고 극복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두차례의 청년포럼을 거치면서 필자는 우리 담론계나 학계가 ‘민족’을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지식계에서 ‘민족’은 한물간 구닥다리일지 몰라도 동아시아의 현실은 여전히 그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요청하고 있지 않은가. 동아시아론은 ‘민족’을 통과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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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일동포 거주지 부락. 일본에서 ‘부락(部落)’이란 피차별민의 집단거주지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