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과 현장
대한민국 관료제의 대수술을 제안한다
이동걸 李東傑
동국대 초빙교수. 금융연구원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lee.dong.gull@gmail.com
대한민국 관료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많이 지적되어왔다. 관료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국민적 공감대도 상당히 형성되었다. 세월호참사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관료제의 문제와 그 개혁 방향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대한민국 관료제가 일으키는 갖가지 병폐를 경직적인 직업공무원제도를 가지고 분석·설명하려고 한다. 세월호참사도 극도로 경직적인 직업관료제하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 폐단의 한 사례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분석과 설명에 근거해 우리나라의 현행 직업공무원제 가운데 중상위 직급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이를 대체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박근혜정부도 세월호참사 이후 관료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월호참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료가 문제였고, 그같은 비극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관료개혁을 하는 것이라면 세월호참사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관료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는지, 그리고 현행 제도상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모르면서 어찌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철저한 원인규명을 꺼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전문가의 의견과 국민의 중지를 모은 것도 아니다. 며칠 만에 밀실에서 졸속으로 만들어 서둘러 개혁안을 발표한 것을 보면 단지 정치적 책임회피가 목적인 것 같다. 박근혜정부의 관료개혁방안에 진정성과 실효성이 담길 수 없는 이유다. 필자는 그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려고 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무릇 쉬운 개혁이란 없지만, 그중에서도 관료개혁은 특히 어려운 과업이다. 그 대상이 권력을 행사하는 힘센 집단이라는 점, 그리고 개혁안을 집행하고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당사자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등 몇가지 특별한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몇가지 개혁의 원칙도 제시하려고 한다.
현행 관료제는 어떤 병폐를 일으키는가
미국의 신학자 겸 정치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그의 명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932)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으로서의 관료와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관료는 전혀 다른 행동양태를 보인다. 개개인의 성향, 인품, 도덕성 등과 무관하게 관료는 조직의 생리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집단으로서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병폐를 낳았다.
첫째, 우리나라의 공무원집단은 전체로서, 그리고 각 부처별로 우리 국가체제에서 고정불변의 권력조직이 되었고, 그 결과 공무원이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 또는 ‘행정부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공무원집단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교체되지 않는 집단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는 공무원의 신분 및 정년 보장의 취지가 변질된 결과로, 공직이 이른바 ‘철밥통’이 되면서 생겨난 폐해다. 공직에 부여된 권력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이 없거나 또는 의무와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불균형적인 체제(즉 무책임한 체제)로 공직사회가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관료집단은 자신의 사적 이익이 국민의 안전과 이익에 우선해서 나타나기 쉬운 조직으로 변질되었다. 즉 집단이기주의(부처이기주의)가 발현되기 쉬운 조직으로 구조화되었고, 국민에 대한 봉사와 무관하게 공직이 유지·보장됨으로써 공무원집단 스스로의 이익을 쉽게 마음껏 추구하기 좋은 환경이 제공되었다. 조직의 전체 이익에 반하지 않는 이상(즉 소속 조직에 충성하는 한) 하부조직 또는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추구 행위가 조직 내부에서 상당부분 허용되고 있으며 이는 부처 간에, 또는 부처 내의 국(局)·과(課) 간에 영역(공무원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와바리’)을 인정하는 폐습으로 고착되었다. ‘잘못된 목적함수’(국민복리 대신 공무원 자신의 복리를 정책선택의 목적으로 삼는)와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공무원은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는 반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열심히’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내려놓지 않는 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행사되기 마련이다.
셋째, 공무원집단은 어느 누구에게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통제되지 않은 자생력을 가진 권력조직으로 성장했다. 관료에게 ‘대통령은 5년짜리, 국회의원은 4년짜리, 외부에서 임명된 장관은 1년짜리 임시직’이지만 공무원은 ‘종신 정규직’이다. ‘임시직’이 ‘종신 정규직’ 공무원에 대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통제를 할 수 없다.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조금만 잘 버티면 모든 것이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간간이 시도되는 공무원에 대한 개혁도 ‘공무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실정이니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 개혁’의 허구성은 공무원연금 개혁, 개방형임용제, 부처 조직개편 등의 사례에서 이미 여러번 목도되었다.
넷째, 민관유착 등 부정부패가 일상화·심화되었다. 이른바 ‘관피아’ 현상(또는 모든 권력기관을 포괄하는 ‘낙하산’ 현상)은 민과 관 쌍방의 이해가 합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둘은 관의 압력과 횡포에 민이 일방적으로 굴복하거나 희생당하는 관계가 아니다. 관료 입장에서는 퇴직 후에 고액보수, 지위 유지, 권력에의 복귀 등을 위해 ‘갈 자리’가 필요하고, 산하단체 및 공기업은 물론이려니와 사기업 입장에서도 퇴직 고위관료 유치는 수익성 높은 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민간 쪽에서 권력기관에 대한 로비, 이권청탁 및 ‘보험’(문제발생시 무마용)을 위해 정부 및 국회 출신의 영향력있는 인사를 적극 물색·유치하는 경우도 많다. 관료는 권력 또는 권력에의 ‘연줄’이 경쟁력과 이권이 되는 경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재직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퇴직 후 고액 재취업 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이들을 받는 기관은 비정상적인 이권 확보를 위해 이를 적극 이용함으로써 민관유착이 심화되었다. ‘공직 퇴직 후 거액 보수’는 편법적·우회적인 방법에 의한 거액 뇌물수수와 다름없다.
다섯째, 집단이해, 집단이권이 강화되면서 공무원조직은 거대한 기득권집단이 되었고, 그러면서 보수화되어갔다. 개개 공무원 또한 이념적으로 보수 편향성이 강해졌다. 기득권집단은 일반적으로 기득권의 관점에서(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더 가지기 위해서) 행동하므로 자연스럽게 보수화된다. 공무원집단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공무원집단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또는 자신과 직간접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정책 사보타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러한 정책 사보타주는 집단의 보수성향화에 의해 자연히 진보적 정책에 대해 더욱 심하게 행해진다. 관료집단은 심지어 진보적 성향의 정부가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 공무원은 보수적 성향의 정부에서 훈련받고 일한 경험이 더 많아 자연히 보수적 성향의 정책에 익숙해져 있고 따라서 경험과 훈련을 거친다 해도 진보적 성향의 정책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여섯째, 관료조직을 한축으로 하는 보수적 권력동맹체제가 구축되었다. 기득권집단은 자신의 권익을 유지·강화·확대하기 위해 유사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끼리 연합하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보수집단들은 목적이 대체로 단순·명확하고 성향도 비교적 동질적이므로 연합하기 쉬울 뿐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한 주고받기식의 흥정에도 능한 편이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보수관료-보수언론의 삼각 권력카르텔이 구축되었고, 그 외곽에서는 이를 이념적으로 지지·지탱하는 보수 지식인·교수 등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계,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 지식인은 때로 보수 관료집단을 공개적으로 맹렬하게 비판하고 관료개혁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면에서는 돈독한 동업자적 관계를 맺고 상부상조하는 관행이 유지되어왔다. 카르텔화한 권력은 보수 기득권집단의 권력과 이권을 더욱 강화했고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더욱 어렵게 했다. 곧 공무원조직이 진보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된 것이다.
병폐의 핵심 원인은 경직된 직업공무원제도
우리 사회에 나타난 이 모든 관료적 병폐는 근본적으로 직업공무원제도에서 비롯한다. 물론 직업공무원제는 많은 장점을 가진 제도로서,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환경에서 직업공무원제도가 변질·왜곡되어 장점은 점점 죽고 단점만 커졌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직업공무원제도가 경직되면서 우리 관료조직이 영영 변하지 않는 무책임한 권력조직이 되고, 윤리적으로 둔감한 보수 기득권집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관료경화증’이 병폐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직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이고 그런 자리를 평생직업으로 보장하는 것이 직업공무원제도이다. 따라서 직업공무원의 권력 오·남용을 확실히 통제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부기구 또는 제도적 견제장치가 없을 경우 문제발생은 피하기 어렵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공직자의 권력 오·남용과 사유화에 따른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이론적으로도 지대추구이론(rent-seeking theory)이나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 theory),1) 비대칭적 정보에 의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2) 규제의 포획(regulatory capture)3) 이론 등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성숙된 선진사회에서는 그래도 투명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통제 또는 견제장치를 갖추어 ‘관료경화증’의 부작용을 풀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예부터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에 젖어 있던 우리 사회에서는 권력에 대한 성숙된 민주적 통제 및 견제 장치와 전통이 미처 정착되기도 전에 비민주적 권위주의 독재정부하에서 ‘권력을 정년까지 확실히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커왔다. 독재정부하에서 직업관료는 독재권력 행사의 야전부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료에 의한 권력의 오·남용 및 사유화는 특히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 전반에 ‘관’ 우위 사고가 보편화했고 공무원집단은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그러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릇된 특권·선민의식을 지닌 일부 직업관료들은 자신이 일상적·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증상이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 행정도 심각하게 변질·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세월호참사를 보라!). 풍족한 공무원연금을 받으면서도 퇴직 후 재취업하여 수억원, 심지어는 수십억원의 보상을 받는 것을 일말의 윤리적 가책감 없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무원의 신분 및 정년, 그리고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이유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안정적으로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국민에게 변함없이 봉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직업공무원(특히 일반행정직)은 전문성을 쌓는 것도, 국민에게 변함없이 봉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 임용제도(고시제도)가 종종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임용고시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널리 인재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서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는 제도이므로 그 자체로서는 배타적이지도 폐쇄적이지도 않다. 없어질 염려 없는 직장에, 적지 않은 보수를 주고, 큰 잘못 없으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퇴직 후 풍족한 연금까지 주는 요즘 그리 흔치 않은 일자리에 대해 경쟁적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한다는 면에서 힘없고 배경 없는 일반 서민에게 오히려 한가닥의 희망을 주는 것이다. 최근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100대 1을 상회하는 것을 보아도 그 인기를 알 수 있다. 다만 경쟁에서 탈락한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시간, 노력, 비용을 낭비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지 그것이 관료적 병폐의 원인은 아니다. 문제는 임용 후 공무원체제 운영의 폐쇄성·배타성과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구조 때문에 이 집단이 변질된다는 점이다. 고시공무원 집단의 패거리주의로 인해 소수의 비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다수에 동화되거나 아니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이유로 임용의 관문이 실질적으로 고시로 제한되고 있다.
공무원체제가 배타적·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현행 직업공무원제도하에서 통상적으로 공무원이 매우 좁은 의미로 정의된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 결과 공직 등용·진출의 기회가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외부인사의 중상위 직급 공직 진출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막히게 되었다. 중상위 직급에 높은 진입장벽을 쌓음으로써 직업공무원은 임용과 승진 기회를 실질적으로 독차지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경쟁이 없기 때문에 직업공무원이 권력을 독점하기 좋은 체제를 만든 것이다. 공직에 관심에 있는 유능한 외부인사가 경력의 중도에서 공직참여를 꺼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직업공무원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개방형 공무원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공무원이란 일반적으로 ‘임용고시 합격+공무원 연수+정부조직법상 각급기관 소속+평생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 즉 직업공무원만을 말한다. 이러한 협소한 정의에 해당하는 직업공무원들 간에는 강한 연대감과 동질성을 유지하는 한편, 비고시 출신으로서 일정기간만 공무원으로 일할 것으로 예정되는 공직 임용자에 대해서는 ‘외부인’ 또는 비정규직 ‘2등 공무원’으로 취급하여 각종 불이익을 주는 등 배타적으로 대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권리(공무담임권)는 헌법으로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다(제25조). 그러므로 방법, 형식, 기간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라도 공무를 담당하면 공무원이 되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공무원’을 정의하기에 앞서 우선 ‘공무’(국가가 행하는 공적 업무)를 정의하고 그다음 소정의 법률에 따라 그 공무를 행하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폭넓게 정의하는 것이 옳다. 이에 따르면 공직은 모든 직급에서 모든 국민에게 폭넓게 열리게 된다. ‘관료경화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선진국의 경우 공무원을 이처럼 매우 폭넓게 개방적·포용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우리의 헌법정신에 따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우리나라의 직업관료만이 이를 싫어할 뿐이다.
박근혜정부 관료개혁방안에 대한 평가와 비판
지금까지 알려진 박근혜정부 관료개혁방안의 골자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강화(대상기관 확대, 대상기간 연장, 업무관련성 판단기준 확대, 공직유관기관 공무원 임명 배제 등),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5:5 비율 채용 두가지로 요약된다. 그외에 해양경찰청 해체 및 국가안전처 신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제정이 있다.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은 전형적인 졸속 정부조직 개편안으로서 언급할 가치가 별로 없다. 부정청탁금지법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부와 여당의 미온적 태도로 원안 처리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이 법안은 공무원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부정행위를 바로잡는 매우 중요한 장치로서 가급적 빨리 처리하되 추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강화는 ‘관피아’를 막겠다는 취지가 좋고 이전보다 진일보한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퇴직공무원의 우회 취업과 로비활동을 막지 못하면 ‘관피아’ 방지의 실효성이 반감되고, 둘째, 관피아를 막는다고 해도 다른 ‘낙하산’을 막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박근혜정부의 개혁방안에는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없다.
퇴직공무원의 취업제한 대상이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편법이 여전히 많다(소형 법무법인 또는 사설연구소를 통한 기업 로비행위 등). 따라서 퇴직공직자의 로비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한층 강력한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불법 로비행위의 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공무원연금을 박탈한다든지 하는 제재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로비를 받아준 현직 공직자에 대한 징계도 대폭 강화하여야 한다(‘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또한 관피아가 없어진 공백을 다른 권력기관이 메울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위험도 있다. 판검사의 경우 재취업 제한이 쉽지 않고, 우회 취업도 가능하다. 정치권 인사의 경우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아 ‘정피아’가 관피아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부 언론사 논설위원들의 사외이사 취임 등 ‘언피아’도 민관유착 못지않은 ‘권언(權言)유착’ 또는 ‘관언유착’으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5급 민간경력자 채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관료개혁방안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이 방안에 의하면 매년 평균 3~5명의 민간경력 5급 채용자를 각 부처에 투입하여 이들로 하여금 내부로부터 관료개혁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전혀 현실성이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안전행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5급 민간채용의 비율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2017년에 5:5 비율을 맞출 경우 5급 민간경력자는 올해 100명에서 2017년 245명으로 늘어난다. 이 인원이 15부 2처 18청 7위원회에 분산 임용되면 올해 부처당 약 2.4명에서 2017년 5.8명으로 평균 3.4명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5급 이상 일반직공무원은 총 20,292명이며(2012년말 현재), 15부 2처 18청 7위원회를 기준으로 보면 기관당 5급 이상 일반직공무원 수는 평균 483명이다. 따라서 평균적으로 보면 장관 이하 선임 사무관까지 상급자가 483명이나 있는 기관에 민간경력 5급 신입 사무관을 매년 평균 3~5명 투입하는 셈인데, 이들 극소수의 신입 사무관을 통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한 명령조직을 내부로부터 혁신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5급 채용 민간경력자는 생존하기 위해 기존의 공채 공무원조직에 동화·편입되든지 아니면 도태될 것이며, 대부분은 전자를 선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경우 이들은 민간의 경력을 활용하여 공직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민관유착을 심화하는 통로가 될 것이 우려된다. 현행 개방직 직위제도가 원래의 취지와 달리 민간→공직→민간으로 순환함에 따라 민관유착의 연결고리로 악용된 사례와 유사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개방직 직위제도가 실패로 드러났듯이, 5급 민간경력자 채용확대도 관료개혁이라는 취지와 달리 되려 민관유착을 심화시키면서 실패할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정부의 관료개혁방안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과 부작용을 무시한 채 만든 졸속방안으로 실패가 예견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정부가 과연 관료개혁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관료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이고 진지한 성찰이 없었고, 근본적인 방안을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성공적 관료개혁을 위한 기본원칙
개혁은 본질적으로 힘든 과업이다.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4)이다. 또한 비용은 소수에게 집중된 반면 혜택은 다수에게 분산되는 인센티브 구조상 개혁의 대상인 소수가 다수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5) 하물며 그 소수가 권력을 갖고 있는 유능한 관료집단이라면 더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따라서 관료개혁이 성공하려면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끈기를 가지고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 더불어 성공적인 관료개혁을 위해서는 몇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안으로부터의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 관료개혁은 외부에서 강제되어야 한다.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기득권을 가진 집단(권력을 행사할 줄 아는 대단히 유능한 집단)은 그걸 뺏기지 않기 위해 개혁에 거세게 반대하고 저항한다. 관료집단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자발적으로 개혁을 할 리도 없고, 내부에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이 있다 하더라도 조직논리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혁은 외부로부터 투입된 그룹에 의해 강제되어야 한다(그 그룹은 개혁에 대해 외부로부터 광범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둘째, 혁명과 달리 밑으로부터의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개혁은 위에서부터 실행해야 한다. 조직(특히 명령조직) 내에서 힘이 약한 하급자들은 조직의 개혁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
셋째, 소수에 의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개혁에는 임계치가 있다. 위로부터의 개혁이라 하더라도 최상급자 몇명이 끌고 나갈 수는 없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추진세력이 일정수준의 규모를 넘어야 하고 과감하게 단기간에 투입되어야 한다. 새 피를 조금씩 수혈해서 구질서의 때를 씻으려고 하면 새 피가 먼저 더러워지거나(기득권에 동화되거나) 도태되기 때문이다.
넷째, 단계적, 점진적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개혁에는 속도가 있어야 한다. 소규모로 나누어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개혁을 하면 개혁에 대한 반대, 피로감, 내성 등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다섯째, 개혁도 오래되면 변질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감시뿐만 아니라 끈기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여섯째, 외부적 강제만으로는 관료개혁을 완료할 수 없다. 내부의 인센티브 체계도 바꿔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관료개혁은 외부로부터 중·상급자들이 일정규모 이상 투입되어 과감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료·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개혁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함께 새로운 조직원뿐 아니라 기존 조직원의 행태를 바꿀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부여되어야 한다.
책임공무원제도 도입과 정치발전 방안
앞에서 설명한 바처럼 우리나라 관료제의 문제는 상당부분 공직의 폐쇄성과 배타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관료제를 개혁하려면 우선 공무원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관직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 국민은 누구나 공무원이 되어 관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정의를 ‘공무를 행하는 자’로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공직의 각 단계에서 자유롭게 공직에 진입할 수 있도록 수평적 개방성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임용방법도 다양화·유연화해야 한다. 공직의 각 직급에서 개방성이 확보되면 현재와 같은 공무원 임용고시제도는 유지되어도 무방하다. 하위직급에 대해서는 임용고시제도를 더 확대하고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개방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그렇더라도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은 갖추어야 한다.
공무원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바꾸면 현재 법적으로 공무원으로 인정되지 않는 공무 담당자(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기타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공적기관 직원 등)에게도 공무원의 지위가 부여된다. 이들을 공무원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함과 아울러, 이들 기관의 각 직급에서 개방성을 높여 기관의 폐쇄성으로 인한 조직 내 집단이기주의를 해소해야 한다.
사회와 국가경제 곳곳에 퍼져 있는 관료제의 병폐를 씻어내기 위해 현행 직업공무원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관료제도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단편적인 소규모 개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근본적이고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일정 직급 이상의 중상급직에 대해 직업공무원제도를 폐지하고 가칭 ‘책임공무원제도’로 개편한다. 정책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중상급직위 공무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책임공무원으로 전환하여 대통령 또는 집권정당과 진퇴를 함께하도록 한다. 대통령과 함께 진퇴하는 이러한 교체임용제는 정책의 책임성을 강화할 뿐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선거에서 선택한 정책을 정부와 집권여당이 일관성 있게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 대상 직급은 3급 이상에서 시작하여 4급, 5급 일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이 경우 공무원 임용시험은 현재와 같이 실시하되 임용기간은 10년 이내로 제한하거나 또는 일정 직급(책임공무원 대상이 되지 않는 직급) 이하로 제한한다. 다만 하위직·특수직·전문직에 대해서는 직업공무원으로서 신분과 정년을 보장한다.
둘째, 이러한 새로운 제도하에서 정권교체로 물러난 책임공무원 중 상당수를 정당이 정책개발인력으로 흡수·고용할 수 있도록 정당에 대해 일정수준으로 국고를 지원한다. 이로써 정당 간의 정책개발 경쟁을 촉진하고 정당정치가 생산적인 경쟁의 장이 되도록 한다. 특정 정당에 고급 지원인력이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함으로써 정당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정책정당화를 통해 정치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일도 도모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 확대, 다당제 등의 정치개혁과 함께 다양한 정당의 정책개발능력이 제고되면 다양한 사회집단의 정치적 요구가 정책화되어 국가운영에 수렴될 수 있다. 각 정당에 모인 우수한 인력은 우리 정치권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인재풀로서의 역할도 한다. 현직에서 교체된 책임공무원은 각자의 이념과 철학에 따라 각 정당에 분산되므로 관료집단이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게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건전한 균형 잡힌 사회가 되도록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정당 국고지원에 따른 재정부담은 생산적 정치, 효율적 국정운영의 과실(果實)에 견주어볼 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며, 특히 공무원연금을 절약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순 부담액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다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정부혁신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셋째, 공무원연금제도를 폐지하고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중상위직급 공무원에 대한 직업공무원제도가 폐지되면 공무원연금제도는 무의미해진다. 책임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 공무원이라 하더라도(그리고 직업공무원제도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노후연금 수준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금 적자에 따른 재정부담 해소를 위해서도 공무원연금 개혁은 필요하다.
관료개혁은 행정직 공무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판사 및 검사도 전원 개방직, 임명직으로 전환하고, 지법원장 및 지검장은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로서 다양한 사건에서 다양한 집단을 접한 경험을 쌓은 신망있는 사람이 판검사로 임명 또는 선출된다면 우리 사법제도가 특정집단에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관료개혁 방안이 과격하고 실행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실행 가능한’ 개혁방안이라는 것은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개선에 그칠 뿐이며 관료집단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어렵더라도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세월호참사보다 훨씬 큰 비극이 닥칠지도 모른다.
--
1) 정부가 특정인이나 특정기업에 배타적 권리(인허가 또는 독점권)를 주거나 정책적으로 재정지원(보조금 지급 또는 조세 및 관세 감면) 등을 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경제학에서는 불로소득이라는 의미에서 ‘지대(地代)’라 한다. 지대추구 행위는 이러한 특혜성 이익을 얻기 위하여 개인이나 기업이 정부에 행하는 로비활동 등을 말한다. 정부의 행위에는 이러한 특혜성 이익이 발생하므로 관료 또는 정치인이 공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공공선택이론은 이러한 이기적 집단으로서의 관료 및 정치인의 행위를 설명한다.
2) 주인이 대리인에 대해서(또는 관리자가 피관리자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함으로써(즉 비대칭적 정보)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문제를 일반적으로 ‘대리인 문제’라 한다. 이 경우 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인이 잠재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이를 ‘도덕적 해이’라 한다.
3) 감독자가 향응, 금전적 보상 또는 퇴직 후 취업 등을 댓가로 피감독기관에게 포획되어 피감독기관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4)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강정인·김경희 옮김, 까치 2008, 44면.
5) 맨커 올슨(Mancur Olson)의 ‘집단행동의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