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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신미나 申美奈
1978년 충남 청양 출생.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shinminari@gmail.com
은행알의 맛
당신은 하루에 딱 열개만 먹으라고 말했다 신문지를 펼쳐놓고 펜치로 은행 껍데기를 쪼개 은행알을 입에 넣어준다
조그만 박 같은 껍데기가 딱딱 벌어지는 소릴 들으면서 당신과 나는 눈짓도 낭비하지 않고 괜한 몇마디 말도 섞지 않는다
이 맛은 어떻게 왔을까, 공룡이 지나가던 중생대 은행나무 그늘에서 왔을까 공룡의 성대는 불룩한 자루처럼 길쭉할까
당신의 옆모습은 그저 무심결이네, 방금 거대한 황금빛과 공룡의 긴 꼬리가 머릿속을 빠져나간 줄도 모르고
내일 또 우리는 은행알을 먹겠네, 당신과는 상관없이
식도를 타고 구불구불하게 내려가는 과거의 먼 길을 생각하면서
초식공룡의 위장 속에 남은 풀씨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잠이 들겠네
안식일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
옷장을 열었다가 그냥 닫고
교복 치맛단을 접어 입었다
매미껍질이 나무에 달라붙어 있었다
칼로 가른 듯
등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서울에서 온 목사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했다
그것이 믿음이라 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날
신도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아름답고 무서웠다
엄마한테 얘기했지만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마늘만 깠다
물에 불린 마늘 껍질이 쏙 빠졌다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이곳으로부터 천국은 얼마나 멉니까
동생이 혀를 동그랗게 말아
침방울을 날리는 사이
여름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