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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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천 余泰天

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등이 있음. ipoet@hanmail.net

 

 

 

여자의 바깥

 

 

한 여자가 울고 있다.

그러니 여기 이 말은

온전히 그 울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울음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날렵한 눈과 시원한 이마를 지나

점점 커지는 여자의 둘레

쌓이고 쌓인 여자의 바깥을 천천히

눈물이 덮고 있다.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공손하게 쓸어올리는

저 검은 머리카락이 조용히 빛날 때

나는 마지막인 것처럼 어둠 깊숙이 손을 넣어

여자의 차가운 가슴을 만져본다.

 

단 하나의 문장도 완성할 수 없는

납작한 감정

어느새 다 새어버린 여자가 바닥에 누워 있다.

더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평평해진 여자가

젖은 눈을 깜빡인다.

 

떨리는 손가락으로도

파닥거리는 목덜미나 가냘픈 입술로도

재구성할 수 없는 여자

오직 기우뚱한 침묵으로

문장을 만드는 여자

 

나는 그 여자의 바깥에 서서

열심히

한 여자의 크기를 재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네번째 독서

 

 

속삭이듯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서투른 감정이 피어나도록

적당히 표정은 숨긴 채

뭐라도 좋으니 제발 얘기 좀 하세요.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의 저녁은 영도의 어둠에 가까워

우리의 나머지는

세상의 모든 손과 가능한 모든 귀를 의심합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우리의 목도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름과 이름 사이에 끼어 있는

생각의 비밀 하나

우리는 슬프게도 아무도 아니랍니다.

단지 아무도 아니어서

변함없이 그뿐이어서

거울 앞에 선 우리의 아침은 상징적으로 가난하고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상상력으로

점점 말라갑니다.

 

식히기 위해 잠시 냉동실에 넣어둔 생각

두번째 비밀은

등을 돌린 오래된 우리의 당신에게 있습니다.

 

생각은 친친 감긴 목도리처럼 길어만 가고

음흉하고 냄새나는

이름과 이름 사이에 부끄럽게도

우리의 적당한 비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