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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자사고 논쟁, 그 해법을 묻다

 

 

이광호 李光鎬

(사)함께여는교육연구소장 yeekho@gmail.com

 

 

165-교육시평_fmt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로 진보진영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논거는 자사고가 계층 간 단절과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결국 특목고·국제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한 계층의 대물림 현상을 고착화한다는 것이다.

도입 당시 이명박정부가 내건 ‘학교 다양화’의 기치와는 정반대로, 획일적 입시경쟁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자사고에서 국··수 교과수업의 비율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육부가 과도한 입시교육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고에 제시한 가이드라인(국··수 수업 50% 이내 편성)을 고려할 때, 자사고에 부여한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사실상 기존 입시교육의 강화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학생 선발, 선행학습 방지, 재정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2014년 재지정 여부를 평가받는 25개 자사고 중 17개교가 교육부의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게 이 단체의 분석이다(경향신문 2014.7.23).

여기에 특성화고(기존의 실업계고) 지원이 확대되면서, 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로 이어지는 전기모집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결국 그 나머지 학생들로 후기모집을 하는 일반고의 ‘공동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중·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전기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상황에서, 일반고의 교실에서는 정상적인 고교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인수분해를 모르는 학생에게 고교 수학을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학교현장으로부터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는 바다.

자사고 문제가 교육계의 쟁점으로 떠오른 건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으로 조희연(曺喜昖) 후보가 당선된 직후이다. 조후보는 핵심 공약으로 ‘자사고 전면 재검토’를 내걸었고, ‘일반고 전성시대’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은 전국 자사고의 절반인 25개교가 밀집되어 그 폐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또한 5년 주기의 평가와 재지정 규정(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 3)에 따라, 2010년 최초 지정된 자사고의 경우 올해 평가를 통해 2015년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는 선거공약으로서 매우 훌륭했다. 자사고를 선호하는(혹은 진학하는) 집단보다는 자사고를 비판하는(혹은 진학하지 못하는) 집단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공약이 취임 후 정책으로 전환되고, 또한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자사고 평가에 따른 재지정 취소 가능성을 제시하며 일반고 전환시 최대 14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자사고 교장단과 학부모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말았다. 이는 선거 당시 ‘다수의 여론’과 전혀 다른, 사회자본과 문화권력을 지닌 ‘소수의 위력’이다. 결국 조교육감은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2016년으로 연기했다(연합뉴스 2014.7.25).

자사고 존폐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우리는 ‘자사고가 일반고 공동화, 혹은 공교육 전반의 황폐화의 주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자사고를 폐지하고 그 재학생을 일반고에 배정한다면, 일반고의 수업이 살아날까? 중학교 졸업생의 다수가 진학하는 일반고의 공동화, 혹은 교실 붕괴는 결국 초·중학교 교육 실패의 결과가 아닌가? 또한 연간 수천만원의 학비가 들어가는 제주, 송도 등지의 국제학교나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만 진학하는 특목고에 비해, 자사고에 입학하는 학생·학부모의 욕망은 비교적 ‘순진’한 게 아닐까? 실제 내 주변의 자사고 학부모(이들 중 상당수는 공교육 교사다) 중에는 ‘이미 붕괴된’ 일반고의 현실을 피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을 가진 분들이 많다.

난마(亂)처럼 복잡한 한국교육의 현실에서 자사고 문제는 극히 제한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진보진영은 그동안 ‘고교 평준화’라는 박정희(朴正熙) 시대의 담론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고교 평준화가 평등권의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 외에, 교육과정의 획일화를 가져온 게 현실이다. 여기에 대학입시가 결합하여, 전국의 고등학교 교실을 EBS 문제집이 도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준화된 일반고’에서 대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 혹은 특정 교과의 좀더 심화된 배움을 희망하는 학생이 선택할 수업은 거의 없다. 변화된 사회상황과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에 따른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탓에 많은 학생들이 무기력과 일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반고 공동화, 공교육 황폐화의 주범이 아닌가? 이같은 상황에서 이른바 ‘고교 다양화’라는 담론이 보수진영에서 제기되었고, 그것이 상류층 학부모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특목고·자사고를 거쳐 국제학교까지 고교 서열화를 낳은 것이다.

자사고 폐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일반고 전성시대’는 무엇인가? 보수진영이 고교 다양화라는 명분으로 진행하는 고교 서열화에 맞서 평준화체제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교육운동진영에서는 이를 ‘수직적 다양화’가 아닌 ‘수평적 다양화’라고 불러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위학교 내에서 최대한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여 다양한 진로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단위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교과에 대해서는 지역 공동으로 개설·운영하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예컨대 일반고에 직업교육과정을 개설하거나, 인근의 특성화고에서 교과를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특정한 교과에 대해 심화학습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 단위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과정 클러스터’라는 명칭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이 그 사례이다. 인근의 여러 고교가 각기 다른 심화선택교과를 개설하고, 타 학교 학생들도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확대하면 지역교육지원청에서 직접 교과를 개설·운영할 수도 있다. 단위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심화선택교과, 혹은 사교육 수요가 많은 예체능 실기수업, 논술수업 등이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그동안 말로만 주장되었던 지역교육청의 학교교육지원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효과도 있다. 진정한 지역교육‘지원’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세종시교육청은 ‘캠퍼스형 고교’와 ‘수요 맞춤형 특성화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캠퍼스형 고교는 인문학 중점고, 외국어 중점고, 과학 중점고, 예술 중점고, 직업계 특성화고 등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학교 4~5개를 하나의 대학 캠퍼스처럼 한 공간에 설립하여, 공간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고(도서관, 체육시설 등의 공동활용), 학생들의 다양한 교과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수요 맞춤형 특성화고’는 성인 대상 직업교육기관(폴리텍)과 지자체의 평생교육을 연계한 새로운 모형의 직업교육 모델을 만든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새로운 고교체제와 교육과정은 고교 평준화 체제 속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실현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반고 전성시대’의 핵심이다. 자사고 폐지는 이러한 새로운 고교교육의 패러다임과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