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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함성호 咸成浩
1963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함.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이 있음. haamxo@gmail.com
나라는 모순에 대하여 너
1
결국 외계를 향해 쏘아올린 우리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꽃돔도 아니고, 놀래기도 아니고, 지렁이도 아니고, 달팽이도 아닌
2
우리는 우리를 인류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뭐란 말인가?)
3
이슬람으로 개종하려다가, 하루 다섯번의 기도가 너무 귀찮아 그만두었다
자카트와 지하드의 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아직도 여행중인가요?
4
한 학교 후배가 좋아졌어. 걔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복도로 불러낸 적이 있어. 그러고는 무슨 얘기를 할까 하다가, 뭔가 사소한 것을 가지고 걔를 야단치기 시작했지. 그러는 동안 (걔를 너무나 만지고 싶어져서) 그만, 때리고 말았어. …감미로운 순간이었어.1)
5
틀렸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버릴 수 없는
6
(대체로) 두 팔에 달린 열개의 손가락, 두 발에 붙은 열개의 발가락,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한 입으로 말하고, 두 성(性)을 가진-아닌 것으로만 정의되는2)
…무수한
7
어떤 추억이 태양계를 벗어나며 잠깐 뒤돌아본, 소금처럼 빛났을
짧은,
8
우리는 우리를 간혹
나라는 모순에 대하여 너라고 부른다
내가 풍선을 불어줄게
나는 올라가 붕붕, 나른한 오후를 배회해
피아노의 ‘라’는 무중력의 발자국 소리
오늘은 구름이 정육면체로 떠다니다 정십이면체로 변하네
그 사이로
물오른 녹(綠)의 가지를 섞고 있는 버드나무처럼
얽히고;絲 있는 빛의 그물;彖
나는 비행기야 비행기-,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 줄 아는 유일한 짐승이지
닥쳐, 커튼과 환풍기가 얘기하고 있잖아
소파는 가재미처럼 누워 있는 게 좋아
그만해, 곧 추락할 거 같애
술과 약이 필요해-손을 들어 만져봐 저 강을
허공에 떠서 흐르는
하나, 둘, 셋,
움직이지 않는 춤
악기처럼 아직〔未濟〕과 이미〔旣濟〕에서 누워 있잖아
그러면 우리 좋아하는 음을 만들까?-양화는 남려(南呂)에서 서강은 황종(黃鐘)으로 번지는,
출렁이는 음들로 고운 색조화장을 해줄게
작고 예쁜 솜털을 간지럽히는 파장을 듣자
노랑은 지금, 파랑은 나중, 초록은 방금 지나왔고,
빨강은 기억나지 않는 눈물
제일 아픈 색은 보라지-, 너무 뾰족해, 너무 뾰족해
울지 마, 내가 풍선을 불어줄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빨간 풍선, 부풀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
보석으로 뒤덮인 나뭇가지에서 둘이
세상 모르고 잠든
비행기 날개에 씌워줄 모자를 짜자
밤을 휘어서, 별과 도시의 불빛을 녹여
개미들이 좋아하는 평면의 도시를 만드는 거야
-꽃잎처럼 숨어 있는
겹겹의 차원을 열어-
(조심 조심)
서로 부딪치지 않게
라, 라, 라,
비행기가 비행기의 길을 가게
풍선이 풍선의 길을 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