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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자본주의, 전환의 계기들

 

실현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변모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뉴욕시립대학 대학원 교수. 지리학 박사이자 맑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저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1·2』 등이 있음.

 

*이 글은 원제 “Realization Crises and the Transformation of Daily Life”를 옮긴 것으로, 2016년 6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공개강연에서 발표한 글을 추후 수정 보완했다.

 

 

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단순한 사실 하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1900~99년 사이에 미국은 약 45억 톤의 시멘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2011~13년 사이에 중국은 약 65억 톤의 시멘트를 사용했다. 미국이 20세기 내내 소비한 것보다 40퍼센트나 더 많은 양을 중국은 단 3년 동안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시멘트 소비 확대는 전례없는 일이다. 미국 사람들은 시멘트가 대량으로 사용되는 것을 평생 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중국의 시멘트 소비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에 따라 어떤 환경적·정치적·사회적 결과가 발생했을지는 어느정도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하지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시멘트 사용량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한다고 해서, 내 입장이 반()중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석할 때, 종종 국가 간 경쟁의 결과나 국가 행동과 정책의 잘잘못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게 추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계는 흔히 (실업과 좋은 일자리의 감소 등) 국내 문제의 많은 부분에 대해 중국을 탓하곤 한다.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시멘트가 사용된다는 사실은 내 논의에서 부수적인 내용이다. 국가정책의 책임이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발생하는 문제들은 일차적으로 자본의 모순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반자본이지 반중국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사회과학의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약간의 불만을 표시하고 싶다. 내가 처음 학계에 발을 들여놓던 당시에는, 모두가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질문과 오랜 시간 씨름했고, 종종 꽤 과감하고 추측에 근거한 짐작들을 답으로 내놓기도 했다. 당시 나온 이야기들이 때로 과하거나 전혀 근거없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다소 교조적인 맑스주의적 독해의 결과였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차츰 주안점이 변화해왔다. 연구자들은 ‘왜’라는 질문을 점점 더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들은 ‘어떻게와 어디서’를 질문한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집중한 것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집중하면 현실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그 복잡성을 더 잘 파헤칠 수 있으며, 교조적인 주장의 연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우리는 더이상 계급투쟁의 추동력이나 조악한 기능주의 국가 행위이론 같은 거대한 설명을 앞세우지 않게 되었다. 대신 개발업자가 누구와 어떻게 협력하고, 또 어떻게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많은 물량의 시멘트가 필요한 초거대 건설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지, 그 ‘어떻게’를 소상하게 보여주는 식으로 서술하는 게 요즘 사회과학의 방식이다. 우리는 지역의 조건들을 더 면밀히 살피게 되었다. 문화적이고 환경적인 차이에 대해서도 훨씬 더 민감해졌다. ‘어디서’가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났다. (그리스를 예로 들 수 있듯이)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이라는 기본 동력과 그 사회적 결과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국민성을 논쟁의 장에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모든 작업은 거대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론에 매달리는 것이 ‘어떻게’나 ‘어디서’를 자세하게 따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푸꼬(M. Foucault)를 따라, 우리는 모든 메타이론에 회의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쪽 방향에 너무 치우쳐버렸고, ‘어떻게’와 ‘어디서’에 다소 과하게 집중하다보니 ‘왜’라는 질문을 아주 잊어버리는 지점까지 온 것 같다. 우리는 거대이론의 힘을 잠시 무시하는 게 특정 연구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아예 원칙적으로 배제해버린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몰두해온 누군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를 질문할 때마다, 거의 항상 “복잡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 자체로 충분한 답이라는 듯이 말이다. 거기에 대한 나의 말은 이렇다. “네, 복잡한 것은 나도 압니다.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해야만 합니다. 어떻게와 어디서의 복잡성에 너무 매여서 ‘왜’에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연구전략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거대이론을 개별 사례들과 연결해서 탐색한다면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층적인 질문들은, 사려 깊게 따라간다면 심층적인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아래의 이야기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도대체 그 많은 시멘트가 중국 도처를 뒤덮게 되었는가? 시멘트는 건설에 사용된다. 이는 명백히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 조성과 도시화, 물리적 인프라 건설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런 일들이 엄청나게 진행되어왔고, 몇년간 내가 방문한 거의 모든 도시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 가운데서도 단연 두드러진 수치를 보이는, 이제까지 가장 극적인 사례다.

건설에는 시멘트 말고 다른 것도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철강 생산과 소비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증가해왔다. 최근 세계 철강 생산 및 사용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의 것이다. 그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철광석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구리와 모래, 갖가지 광물 같은 많은 원자재들도 전에 없던 규모로 소비되는 중이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세계 주요 광물자원의 적어도 반, 때론 60~70%까지 소비했다.

원자재 가격은 최근까지 급등 추세를 보여왔다. 모든 곳에서 채굴작업이 가속화되었다. 지난 20년 정도는 정말 오랜만에 거래조건이 원자재 생산업자들에게 유리했다. 인도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산이란 산은 모두 광물을 찾는 사람들 손에 파헤쳐졌고 거기엔 온갖 정치적·경제적·환경적 결과가 따랐다. 중국이 도시화와 인프라 투자를 왜 그토록 막대하게 늘리게 되었는지 묻는 것은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움에 빠진 세계 자본주의가 지난 수년간 지금만큼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음도 분명하다. 베이징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작심하고 대공황으로부터 세계자본주의를 구해내려 한 건 아니었겠지만, 특히 세계경제가 2008년 이후 급추락하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중국의 행동은 그런 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나는 ‘어떻게’와 ‘어디서’를 파헤쳐 들어가려고 한다. 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고,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이는 전지구적 위기로 규정되었다. 1997~98년 동남아시아에서도 큰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지역적 위기로 규정되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내 야구 결승전을 월드씨리즈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위기 역시 세계의 위기라 부르고 싶어한다. 그것이 어느정도는 진실이기도 하다. 미국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경제 가운데 하나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한때의 유행어는 더이상 사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발 대란의 여파가 세계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또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국의 기관과 정책입안자 들이 위기를 세계화함으로써 그 영향을 세계 전체로 분산시키려 노력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있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다자간 금융기관과 금융연관성을 이용했다.

2007~2008년의 위기는 발발 초기까지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위기는 미국에서도 특히 남부와 남서부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대체로 이 지역 주택과 부동산 시장의 극심한 투기에 따른 결과였다. 2001년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투기자금이 미국 부동산시장으로 쏟아져들어왔다. 당시 전세계에 잉여유동성이 넘쳐나면서, 그중 상당부분이 부동산시장에 흡수되었고, 부동산 가격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그러다가 주택 투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담보 대출 부분에 압류 위기가 닥쳤다. 집을 압류당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외출하거나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 소비시장이 붕괴했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그 소비시장의 주요 공급자는 중국이었다. 이것이 국지적 위기를 세계적 위기로 전환한 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또다른 고리는 금융체제를 통한 것이었다. 새로운 금융방식에 투자하라는 꼬임에 넘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잃었다. 부채의 상당부분을 보유한 은행들은 파산할 위험에 처했고, 소비자대출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대출 요건을 강화했다. 지금 막 큰돈을 잃고 일자리까지 잃은 상태에서, 대출까지 막힌 소비자들은 더더욱 외출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 소비재시장의 약세는 확산·심화되었다. 세계 전체가 끝없는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2008년 중국의 수출산업은 붕괴까지는 아니라 해도 실로 엄청난 수축을 경험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수출량이 2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중국 통계가 어느 만큼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기로 악명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일각에서는 2008~2009년 수출시장의 붕괴로 중국 내에서만 3천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3천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2천만 정도였다고 해도, 엄청난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정부는 전통적으로 잠재적 사회 불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그런데 3천만명의 실업자가 생겼다면, 실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중국정부가 당시 여러 조치를 취한 이유가 바로 이 명백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확신한다.

2009년 말 전세계 순실업 총계 추산치를 담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노동기구(ILO)의 합동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당시 실업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중국의 순실업자는 약 3백만명에 불과했다. 중국은 불과 1년 정도 만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27백만명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흡수해낸 것이다. 이는 전혀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 성과다.

그럼 중국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그토록 엄청난 잉여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었는가? 중앙정부는 기본적으로 돈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나서서 돈을 빌려주도록 했고, 가능한 한 많은 프로젝트와 초거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도록 종용했다. 지역에서부터 지방과 국가적 시도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이 경주되었다. 은행은 제한 없이 대출해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미국에서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나 재무부가 은행에 돈을 주면서까지 일반에게 대출해줄 것을 지시했지만, 은행들은 이를 무시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은행을 강제할 힘이 없다. 미국 은행들은 받은 돈의 상당부분을 기관의 악성 부채를 갚고, 심지어 자기네 주식을 되사들이는 데 썼다. 중국의 은행체제는 다르다. 정부가 은행가들에게 대출해주라고 하면, 그들은 거기에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확실히 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많은 대부호가 출현했다.

중국은 그렇게 대규모 도시화와 인프라 개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는 것은 물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망으로 국가의 공간경제(space economy)를 통합하면서, 남부와 북부의 시장을 더욱 긴밀히 연결하는 동시에, 내륙지방을 개발하여 연안지방과 내륙지방 사이의 격차를 줄여가는 것으로 그 막대한 노동력을 흡수해냈다. (고속철도 계획이 이미 1990년대에 수립되어 있었다는 데서 드러나듯) 중앙정부가 전부터 이같은 일을 하고 싶어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잉여와 잠재적 유휴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2007년까지 중국에 고속철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2015년에는 12천 마일 이상의 고속철도가 시속 200킬로미터의 속도로 모든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게 되었다. 어떤 잣대로 보나 이 역시 대단한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나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미국경제는 2차대전을 치르면서 폭증하게 된 생산력을 흡수해야 했고, 전쟁에서 돌아오는 수많은 퇴역군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퇴역군인들이 미국으로 돌아와서 1930년대 규모의 실업률에 직면하게 된다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심각한 결과에 봉착하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당시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와 그 자본계급을 괴롭힌 문제는 어떻게 하면 대공황을 피하고 이윤을 창출할 것인가, 어떻게 퇴역군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생산력을 흡수할 것인가, 얼마 전까지 소련과 연합해 전쟁을 치른 퇴역군인들이 실업자가 된다면 사회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까 같은 것들이었다.

그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나온 것이 매카시즘이라는 맹렬한 반공주의 운동을 통해 모든 좌파적 사고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 자체로 성공적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었다. 미국경제는 빠른 속도로 팽창해서 자본과 노동의 잉여를 흡수할 정도가 되어야 했다. 부분적으로지만 미국의 제국주의, 냉전, 그리고 (역시 반공주의적인) 군사주의적 팽창이 모두 경제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국은 대체로 자족적인 경제였으며 무역의존도가 낮았다. 따라서 경제는 미국 자체 내에서 팽창할 필요가 있었다.

1945년 이후 미국의 큰 성취는 건조환경과 도시화, 물리적 인프라, 그리고 어느정도는 고등교육체제 같은 사회적 인프라에 대해 막대한 투자의 물결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각 주를 잇는 고속도로 체계가 서부해안과 남부를 이어주었으며, 미국경제를 새로이 공간적으로 통합했다. 1945년의 로스앤젤레스는 큰 도시가 아니었지만 1970년에는 거대도시가 되었다. 고속도로나 자가용이 늘어남으로써 근교 주거지역이 등장했고, 그에 걸맞은 생활양식도 함께 나타나 거대도시 지역은 완전히 변모했다. 근교 주거단지에서 살아갈 경제력이 있는 유효수요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고소득의 일자리가 필요했다. 자본과 노동은 불안정한 타협을 통해 국가기구에 강제력을 행사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같은 소수자들이 배제되긴 했지만 백인 노동계급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1950~60년대는 여러모로 미국 자본축적의 황금기가 되었다. 강한 시민권운동과 도시 중심부에서 일어난 봉기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불만이 크며, 이민자층 역시 낙오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고속 경제성장은 백인 노동계급에 만족을 안겨줬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이 종합적으로 도시화와 건조환경 건설에 대한 투자를 통해 과잉축적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보고서가 이후 지적했듯이, 미국은 “주택을 건설한 후, 건설한 주택을 상품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바로 이런 위기 해결방식이 또다른 위기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실업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한 일은 사실상 미국이 2차대전 이후에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를 훨씬 더 빠르고 더 높은 비율로 해냈다. 바로 이 규모상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도시화를 이용해 경제적·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은 그전에도 여러차례 있었다. 1848년의 경제위기는 프랑스 빠리에서 노동계급 혁명과 부르주아 혁명을 촉발했다. 두 혁명 모두 실패한 후 1848년 쿠데타로 절대권력을 장악한 루이 나뽈레옹(나뽈레옹 3세)1852년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는 노동과 자본에 다시 일거리를 주지 못한다면 자신이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쌩씨몽(H. de Saint-Simon)의 유토피아 이론의 추종자였고, 연관 자본의 자금을 가지고 많은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벌였다. 이를 위해 그는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을 빠리로 불러들여 도시를 재건하고 개조하는 계획을 세우게 했다. 이 역시 이윤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잉여노동과 잉여자본을 흡수하려는 시도 중 하나였다. 프랑스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자본과 노동 모두 새로운 대로와 백화점 등을 건설하는 데 전량 투입되었고 수익도 좋았다. 도시의 일상은 ‘빛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소비주의로 변모되었다. 1848년 이후 자본과 노동 모두가 과잉축적으로 인해 겪었던 위기는 건조환경의 변모뿐 아니라 생활방식의 변모를 통해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이 당시의 규모란 1945년 미국이 이룬 성취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미국의 규모는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변모의 규모와 속도 근처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신규 건설을 위해서는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각 경우마다 이러한 노력을 떠받치기 위해 새로운 기관과 자금조달 방식이 만들어졌다. 빠리에서는 신용 중심의 새로운 은행업무 방식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증가하는 부채에 대한 우려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전면화되었다. 1867~68년 빠리에서 발생한 부채위기로 투기금융기관뿐 아니라 시 재정 역시 큰 타격을 받았으며, 오스만은 강제로 사임하게 되었다. 빠리 시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파산할 위기에 처했고, 실업과 불안이 뒤따랐다. 나뽈레옹 3세는 자기가 살기 위해 민족주의적 전략을 취했고, 이는 1870~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발발로 귀결되었다. 그는 전쟁에 패했고 영국으로 도주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프로이센이 빠리를 점령했을 때 빠리의 거주자들은 혁명에 성공했다. 1871년 빠리꼬뮌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봉기 가운데 하나였다. 민중은 약탈자 부르주아지와 자본가로부터 ‘자신들의’ 도시를 되찾은 것이다.

2008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은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그리스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유로나 달러로 채권을 발행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교역으로 외화를 충분히 확보해둔 덕에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중국은 자국 통화로 차입하는 게 가능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든 통화를 더 발행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1990년대 말처럼)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상환 부담을 줄이거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매우 낮은 나라였지만, 대규모 도시화와 인프라 투자에 몰두한 결과 2015년에는 부채비율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높아졌다. 중국은 미국이 전에 그랬듯이 “주택을 건설한 후, 건설한 주택을 상품으로 채우는 방식”을 통해 불황과 잠재적인 경기침체, 그리고 만연한 실업에 따라올 정치적 위협을 모면하려 했던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해서 2008년에 일어날 뻔했던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만 그랬던 건 아니다. 예컨대 2001년 위기를 겪었던 터키는 2007~2008년 같은 식의 대규모 도시화를 통해 문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에 구리, 철광석 등의 원자재를 공급했던 나라들 역시 큰 문제 없이 2008년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들도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었다. 광물이 풍부한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마찬가지로 형편이 좋아졌다.

한걸음 떨어져 이 시기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세계가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대규모 도시화와 인프라 확대가 진행되고 있고, 터키를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는 주요 도심에서 부유층을 위한 최고급 고층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전략을 채택해서 2007~2008년의 경제위기의 영향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공공지출 삭감과 공공부채 감축을 목표로 하는 긴축정치에 몰두해 있으며, 그 결과 이들 나라의 경제는 제로 성장에 묶여 있다. 이 지역에서는 대체로 이데올로기적인 이유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통설을 내세우는 긴축정치가 고착화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케인즈식 확장과 대비된다. 세계는 실질적으로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중국 진영은 국가에 의한 수요 창출에 의존하는 케인즈주의적 실천을 통해 팽창을 추구하는 반면, 서구 진영은 부채 경감을 목표로 재정정책에 초점을 두고 공급 관리에 치중하는 등 전반적으로 감축을 지향하고 있다. 공공정책과 정치도 그에 따라 달리 형성되었다. 중국 진영은 대규모 도시화와 인프라 투자를 통해 심각한 불황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해냈다.

그러나 1867년 오스만이 퇴진하고, 1960년대 말 미국에서 그간 흥청거리던 교외화 열풍이 사그라졌던 것처럼, 좋은 시절도 결국 때가 되면 끝나게 마련이다. 중국 역시 2013년 이후 쇠퇴의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으며, 건조환경에서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과잉축적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주택과 다른 물리적 인프라에 끝없이 투자를 확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투자회수율은 급락하고 있으며, 채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종류의 투자는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방의 국영기업 두바이월드는 파산위기에 처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터키의 짧은 호황은 끝났고 해외투자자들이 빠져나간 후 빈 아파트단지가 대지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같은 방식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음이 너무나 분명했고, 각자의 처지도 급변했다. 건설경기가 쇠퇴하면서, 시멘트나 철강의 잉여 생산능력은 이제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원자재에 대한 전세계적 수요가 급감하자 교역조건은 생산업자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변화했다. 2014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중국 시장이 더이상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세계 곳곳이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심지어 독일에서조차 중국에 대한 기계류 및 장비 수출 둔화로 인한 어려움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의 위기 경향은 계속해서 이동해왔다. 거시이론은 바로 이런 데서 유용하다. 거시이론을 통해 우리는 왜 위기 경향이 필연적으로 세계의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한 산업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끝없이 지리적으로 이동해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남부와 서부에서 일어난 주택위기는 뉴욕과 런던에서 금융위기로 번졌다가, 유럽과 북미 지역의 대출규제 강화로 이어졌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일반 대중의 생활수준을 급락시키는 국가부채 위기의 확산이 뒤따르는 식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 그 모든 댓가를 치르는 것은 대중이며, 자본은 구제받아도 대중은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그리스 사례에서도 확인되는 바다.

위기가 옮겨 다니기 때문에,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상식에 근거한 설명에 따르면 때마다 각기 다른 원인에 의한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위기가 이민자 탓이라는 둥, 복지 부정수급이나 불공정한 국제교역 경쟁 때문이라는 둥,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 난무한다. 유일하게 자본주의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제기하려는 논지는 위기가 옮겨 다닌다는 사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위기는 자본축적의 구조 그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주장 역시 거시이론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은 맑스(K. Marx)의 가치이론이었다. 이 내용을 읽고 또 읽던 중에 어느날 나는 맑스가 가치(value)뿐 아니라 반가치(anti-value)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반가치라는 개념은 간단하다. 자본가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자를 하며, 상품은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상품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면, 그 상품의 가치는 없는 것이 된다. 빠리의 변모나 미국 교외에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 그토록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모두 이와 관련지어볼 수 있다. 이동이 거의 없는 촌락 농민의 삶과 시속 300킬로미터로 전국을 쌩쌩 오가는 삶 사이의 문화적·심리적 간극은 엄청나다. 한때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불필요한 노동시간이 되어버렸다. 또한 잉여 자본과 노동은 인프라와 건조환경에 대한 투자로 흡수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에 따른 결과는 과잉 생산능력의 창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바로 이 문제로 지금 중국이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반가치는 도처에 존재한다. 새로운 가치생산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결국 가치하락으로 끝나게 된다.

이런 비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자들이 물질과 반물질의 충돌로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처럼 맑스는 가치와 반가치 사이의 역동적 관계로 자본주의의 동학을 설명한다. 슘페터( J. Schumpeter)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창조적 파괴’를 거론했을 때 의미했던 바도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자본은 미래가치 생산을 통해서만 환수될 수 있는 부채의 형태로 반가치를 체계적으로 생산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맑스이론의 매혹적 측면이다. 반가치는 가치의 기초다. 반가치 없이 가치는 없다. 여기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아직 더 발전시켜야 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을 통해 관련성은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7~2008년 위기의 원인은 앞서 2001년에 주로 주식시장에 집중되어 일어난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 그 자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당시 닷컴 경제가 붕괴하면서 주식시장의 자금이 빠져나왔고, IMF가 늘 불평하듯이 세계는 잉여유동성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 돈은 모두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그래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의장은 이자율을 내렸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부동산에 끌리기 시작했다. 주택 공급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동시에 소비자에게도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었다. 공급 확대를 가능케 한 것도 금융이었지만, 급증한 주택 수요 역시도 금융에 의해 지탱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부동산의 자산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러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필요하고, 이 새로운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결국 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용과 부채는 가치생산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가치를 창출하거나, 가치가 하락하거나 아니면 자본의 파괴까지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채무에 따른 상환부담에는 중요한 길들이기 효과가 있다. 빚을 지고 나면 채무자에게는 더이상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자본주의를 찬양하면서 내세운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본은 성경 말씀과는 달리 우리의 빚을 절대 사해주지 않으며, 우리는 미래가치를 창출해서 빚을 갚아야 한다.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고 담보 잡혀 있다. 은퇴할 때까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이 말에 수긍할 것이다. 빚은 우리를 미래의 가치창출이라는 특정한 구조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주택담보시장에 온갖 개혁들이 전면 시행되었던 1930년대부터 이런 결과는 익히 예견된 바였다. 30년에 걸친 상환을 통해 집주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사람들은 파업에 나서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의 전략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고 집을 사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체제를 지지하게 되었다. 더구나 집주인들 대부분은 교외에 거주했는데, 거기서 혁명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교외에 사는 이들에게는 자동차와 잔디 깎는 기계가 필요하다. 이들은 점점 더 좋은 집과 수영장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교외화는 사회적 안정에 엄청난 기여를 했고, 세계에 대한 특정한 관념과,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현 상태에 도전하기보다는 그것을 지지하고 싶어하는 정치적 감수성을 만들어냈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IMF는 사회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서 전세계에서 개인들의 주택 소유를 권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현재 주민들 전체와 공동체들을 불안정하게 하는 압류위기를 부른 과잉축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집을 압류당한 집주인들이나 점증하는 불안정성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온갖 미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D. Trump)와 티파티(Tea Party)는 물론,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와 그가 내세우는 정치혁명의 요구도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해결책이라 여겨졌던 것들은 이제 문제시되었다. 그리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미국의 학비 대출 사례에서도 어느정도 알 수 있듯이 인구 전체를 그들이 결코 갚을 수 없는 부채에 묶어놓는 것은 사회 안정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현재 존재하는 만성적 과잉생산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중국은 무엇을 하려고 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는 ‘공간적 해결’(spatial fix) 개념이 유용하다. 어디선가 잉여의 자본이나 노동이 존재하거나, 특정 영토 안에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결과 이윤 창출의 가능성이 부정적일 때, 자본가들은 그들의 잉여자본, 그리고 때로는 잉여노동까지도 수출하기 시작한다. 영국의 잉여 자본과 노동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아르헨띠나 등지로 향했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은 어디서 돈이 생겨 잉여자본을 상품 형태로 사들일 수 있었단 말인가? 영국은 이들 지역에 잉여 화폐자본을 빌려주어 철도와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통해 영국 철강과 기관차의 잉여생산분을 사들일 수요를 창출했다. 이는 결국 새롭고 역동적인 자본주의경제의 확대로 이어졌고,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영국 제국주의의 창조경제적 측면이었다.

또다른 측면은 훨씬 부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인도에서 토착적인 생산능력을 파괴한 후 자신들의 잉여생산물을 떠넘길 수 있는 예속적 시장으로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 방법은 영국 내 자본의 과잉축적이나 잉여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인도의 수요는 그다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온갖 물건을 생산해낼 것을 강요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중국에서 은을 구매할 자금이 되어줄 아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은 이 과정에서 인도와 중국의 부를 바닥냈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식으로는 대단한 부를 창출하지 못했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비역동적인 형태다.

영국은 인도를 통제했던 방식 그대로 미국의 산업발전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잉여 자본과 노동은 새롭게 팽창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구심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서 지속적인 수요가 창출되었고, 영국 상품들을 흡수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영국의 과잉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인도에서 부를 착취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았다. 유일한 문제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미국이 영국보다 더 강하고, 크고, 더 경쟁력 있는 경제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자 미국 역시 잉여자본이 조성되었고, 그 처리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미국도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제국주의적 방식의 실천들을 고안해냈다.

‘공간적 해결’ 과정을 통해 과잉축적 경향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말 일본은 잉여자본 수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흐름에 한국은 1970년대 후반, 대만은 1980년대 초반부터 동참했다. 이들 지역에서 흘러나온 잉여자본은 전세계로 진출했지만, 특히나 중국이 생산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 차례가 된 것이다. 그들은 시멘트와 철강 생산 등 많은 부문에서 과잉생산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잉여를 흡수할 것인가? 국가는 생산시설 폐쇄를 통해 이들 부문의 생산을 다소나마 축소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은 잉여 시멘트와 철강을 퍼뜨릴 기회를 찾고 있으며, 이미 여러 해법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내부 소비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영국과 프랑스 인구를 모두 합친 수에 필적하는 13천만명 규모의 도시 건설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중심은 베이징이 될 것이며, 투자는 고속의 교통과 통신을 중심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 도시 건설 기획이 많은 철강과 콘크리트를 흡수하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런 도시에서 이루어질 일상생활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지만 이것으로도 모든 잉여생산을 흡수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중국은 가능한 한 싼값에 잉여 시멘트와 철강을 해외에 처분하려 애쓰는 중이다. 중국 기업들은 동아프리카에서 중국산 시멘트와 철강을 사용하고, 해당 지역에도 잉여노동력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잉여노동력을 활용해 철도와 고속도로 및 물리적 인프라를 건설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중국의 자금과 시멘트와 철강을 이용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고속철도망을 통해 상하이에서 테헤란을 지나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까지 이르는 ‘실크로드’를 재건 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중앙아시아를 통과해서 유럽까지 가는 고속의 고성능 철도망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 그 경로에 있는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이미 건설 호황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중국에 시멘트와 철강의 잉여 생산능력이 없었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중국이 경착륙 가능성이 있는 자국 경제를 안정화하려는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공간적 해결’은 적어도 당분간 중국이 잉여자본의 과잉축적을 해결하도록 해줄 것이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좀 달라진 것이 있다. 빠리의 오스만 프로젝트는 도시 규모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일들은 전국 차원이긴 했어도, 거대도시 지역의 문제였다. 하지만 글머리에서 언급한 시멘트 사용량은 극적인 규모 변화가 전지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수치를 볼 때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제 한발 물러나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급격한 규모의 변화는 왜 일어났는가? “아니, 우리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라고 말하는 일이 그토록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사태를 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들 하면서, 미래가 이런 식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답은 자본축적의 본질과 관련이 깊다. 자본축적은 당연히 팽창과 관련되어 있으며, 결국 성장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가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일정 금액의 돈으로 출발해서, 시장에 가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하여 상품을 만든 후, 저녁에는 시작할 때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 상품을 판다. 즉 가치는 증가해야 한다.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에서라면, 모든 자본가들은 하루가 끝날 때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자본 축적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본이 복률(compound rate)로 증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누적성장률(compound growth rate)은 점점 가팔라지는 지수곡선들을 그리게 된다. 지수곡선은 처음 얼마간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나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르게 된다. 바로 그 상향곡선이 시작되는 시점이 지수곡선의 변곡점이다. 체스를 발명한 상으로 왕에게 쌀을 달라고 했던 남자의 유명한 일화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첫번째 네모에 쌀알 한톨을 놓은 것에서 시작해서, 매칸마다 쌀알의 수를 두배로 늘려줄 것을 왕에게 요구했다. 46번째 칸 정도에서 온 세상의 쌀 전부가 동나게 된다. 그러니 마지막 64번째 칸까지 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이것이 복률성장의 본질인 것이다.

복률성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를 중단시킬 법칙이 없다. 우리 모두는 경제를 가장 잘 성장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편성된 도시화 프로젝트들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성장을 원한다. 그러나 도대체 왜 우리는 성장을 원하는 것인가? 특히나 복률성장이 통제를 벗어나 결국은 불가능해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끝없는 성장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우리는 지구적 축적에서 변곡점에 도달해 있다. 만약에 우리가 실제로 시멘트 사용량을 두배 세배 늘린다면, 복률성장에 내재된 속성상 30년 뒤 우리 손자 세대 때는 시멘트가 귀까지 차오를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지금 당장 이 완전히 무분별한 성장 집착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이미 환경 문제는 심각하다.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온갖 잘못된 이유들로 인해 이미 성장률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게 환경에는 차라리 잘된 일이다.

반면 저성장을 경험해보지 않은 지역들이 오히려 환경적인 압박을 겪고 있다. 잉여자본이 향하는 곳 어디에서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중이다. 에꽈도르에 투자된 해외자본의 절반 이상이 중국계다. 유가가 폭락했을 때 에꽈도르는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얻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에꽈도르에서 사용되는 전기량의 약 60~70%를 담당하게 될 거대한 수력발전댐 등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에서 돈을 빌렸다. 실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에꽈도르에서는 안데스산맥을 넘는 고속도로도 설치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초거대 프로젝트는 중국의 철강과 시멘트로 건설되는 중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이 끝없는 성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러한 성장을 어떻게 통제하고 감소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과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오랫동안 데이터를 분석해온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에 따르면, 1780년 이후 지금까지 연간 누적성장률은 2.25퍼센트 정도였다. 1780년에는 2.25퍼센트의 누적성장률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1900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많은 지역이 아직은 자본축적 구조에 통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라. 중국이 자본주의체제 내로 들어왔다. 소비에뜨라는 제국은 붕괴하여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에 합류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자본주의 경제에 훨씬 더 깊이 통합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전세계의 임금노동자 수는 10억명 정도가 늘어서 총 30억명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3퍼센트의 누적성장률을 목표로 하겠다고 떠들어댄다. 말이 되는가? 미래에 대해 조금만 자세히 따져봐도 시멘트와 철강 통계가 보여주었던 것 이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우려스러운 징후들이 발견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경제를 다시 조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실마리가 될 만한 것들은 많이 있다. 에꽈도르나 다른 많은 지역에서 ‘부엔 비비르’(Buen Vivir, 좋은 삶)를 추구하는 미래를 건설한다는 이념을 내세우고, 이를 헌법의 목적에도 포함시켰다. 유엔개발보고서는 인간역량의 개발과 경제성장을 분리해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정책의 초점은 전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기업과 공유경제를 장려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좀더 좌파적인 입장에서 협동과 연대의 경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많은 노력들이 그저 듣기 좋은 수사에 그치거나, 심지어 다른 방식의 자본축적이 지속되는 양상을 가리는 가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세계의 자원 사용을 재편하고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현실과 레토릭 사이의 간극이 크다. 에꽈도르는 헌법에 ‘대자연의 권리’를 명시했다. 하지만 중국이 전세계를 무대로 흥청망청 써대면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공간적 해결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제껏 본 바처럼 많은 광물자원이 필요하다. 에꽈도르는 유가폭락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 상황에서 에꽈도르가 한 일은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다. 중국이 원하는 반대급부는 무엇인가? 그들은 에꽈도르 남부의 광물자원을 탐낸다. 하지만 그곳에는 많은 원주민 인구가 존재한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치적 투쟁이 일어나고, 원주민 지도자들이 살해되고 있다. 사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지만, 조만간 더 듣게 될 것이다.

이런 게 모두 복률성장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일단 복률성장을 관리하고, 궁극적으로는 억제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게 된다.

도시의 성장은 점차 잉여자본과 잉여저축을 투자할 가능성을 창출하기 위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살 만한 도시생활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또한 도시 부동산시장은 잉여저축을 가진 투자자들을 위한 시장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도시는 거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비단 뉴욕, 런던, 상하이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터키를 비롯해 최근 내가 방문한 모든 주요 도시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투자 가능한 잉여자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저축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사유재산제도 사이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많은 자본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는데, 특히 주식시장 등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집중되는 경향은 가속화되고 있다.

10년간의 투기행위 끝에 2007~2008년 전세계 곳곳에서 주택·부동산시장이 붕괴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부동산은 주요한 투자대상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는 그나마 부동산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잉여유동성을 흡수하고 저축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토지와 부동산의 선호도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

최근 중국은 개인자본의 수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현재 뉴욕 부동산의 주요 구매자 중 한 부류가 자국에서 돈을 빼내어 외국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중국인들이다. 아일랜드의 경제호황기에는 아일랜드로부터 뉴욕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쏟아져들어왔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이제 중국인들은 런던에서도 부동산을 사들이는 중이다. 억만장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상위 중산층(upper middle class)이 부동산과 토지를 닥치는 대로 사모으고 있다. 심지어 연금기금까지도 이쪽으로 점점 더 많이 흘러들고 있다.

2008년 이후 우리는 자본의 흐름이 시민들 다수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서 이탈해,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형태로 돈을 모아두고 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투자기회를 창출해주는 쪽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은 투기 목적으로 압류주택을 사들이는 헤지펀드에도 목표물이 되고 있다. 시리아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물론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세계 다른 지역들에서 부동산은 여전히 주된 투자수단으로 여겨진다. 금융업자들과 개발업자들은 인구의 대다수가 저렴한 주거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도 투자용 고급 부동산만 지어대고 있다.

여기서 도시계획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투자처를 찾는 중산층에 투자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다수 대중이 원하고, 필요로 하고, 욕망하는 바에 부합하는 대안적 도시화를 추구해야 할까?

현재 도시화과정의 방향 면에서 심각한 소외가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그렇게 보면 지난 15년간 세계적으로 발생한 주된 불만표출 행위 중 여러 사례가 도시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놀라울 것이 못된다. 2013년 터키 게지(Gezi)공원에서 일어난 항의시위는 무엇에 대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노동계급의 봉기가 아니었다. 이는 도시생활의 삶의 질 악화와 도시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견된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결여에 대한 문화적이고 대중적인 봉기였다. 요즘 미국정치의 갖가지 정신 나간 행태는 결국 주택 압류사태와 큰 관련이 있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삶과 서비스의 질 저하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팽배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압류사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잃었다. 집은 그들에게 주요한 저축 형태였고, 미래를 위한 금전 수단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강탈당해 화가 나 있으며, 비난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자라거나 심지어 공산주의적 태도라는 비난을 들을까봐 감히 자본을 탓할 수 없었다. 버니 쌘더스가 대단한 건 사회주의를, 그것도 특히 35세 이하의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 무엇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쌘더스는 학자금 대출을 없애야 하고, 고등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은 그러한 생각을 좋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사회주의라면, 그게 뭐 어떠냐는 게 젊은 세대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일수록 ‘왜’라는 질문을 더 제대로 잘 던져야 한다. 질문의 본질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맑스가 지적했듯이 축적을 위한 축적이 자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멘트가 우리의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생산을 위한 생산에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걸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적어도 끝없는 자본축적이라는 자본주의적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 우리의 경제를 완전히 다른 원칙에 따라 재편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자본이 만들어낸 많은 것들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다. 맑스도 그랬다. 나는 자본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 우리가 생각만 고쳐먹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이롭고도 유용한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고 배워도 되는 것이 있고 말하고 배우면 안되는 것이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경계가 완고하고 경직된 곳이 대학이다. 반자본주의는 대체로 정당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유일하게 말이 되는 관점이 바로 반자본주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 더욱 끔찍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다. 내가 여기서 기술한 사안과 문제 들은 그것을 다루어 마땅한 기관들에서조차 제대로 토의되지 않는다. 미국이나 다른 많은 지역에서 대학은 기업화했고, 신자유주의의 영향하에 있다. 대학은 끝없는 자본축적과 제한 없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영속화하기 위한 지식의 성채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에 대한 저항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여전히 어느정도는 열려 있으며 대학을 완전히 속박하는 것은 아마도 언제나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항은 미약한데, 이는 공적 지원이 삭감되고 대학이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금, 그리고 학자금 대출에 점차 의존하는 상황에서 투쟁이 점차 한쪽에 불리하게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의 짐을 진 학생들이 어떻게 세상을 뒤엎을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물론 전세를 역전시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러한 변화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동시에 급진운동이나 사회변화를 위한 정치적 기반 역시 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이 시대의 사회불만을 터뜨리는 세력들은 전통적으로 좌파가 상정했던 것과는 다른 사회계급들이다. 정치투쟁을 위한 계급 구성이라는 문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재구성은 현대 도시화의 경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는 전통적인 맑스주의 집단들과 견해차가 크다.

맑스는 노동과정에서 살아 있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서 가치 및 잉여가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자본』(Das Kapital) 제1권은 전체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제2권은 자본의 순환에 관한 것으로서, 시장에서 가치와 잉여가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과정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제3권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재분배에 관한 것이다. 맑스는 『자본』의 초고와 다른 여러 저작을 통해 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실현 사이의 모순적 통합’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요즘 제1권은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많이 읽힐 뿐 아니라, 훌륭한 책으로서 그에 합당한 존경을 받고 있다. 반면 제2권은 거의 읽히지 않는데, 미완성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문체가 건조하고 일부 내용은 그냥 잘 안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권을 읽지 않으면 자본의 순환을 이해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맑스주의자들 상당수는 제2권을 무시했고, 그래서 자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맑스는 『자본』 제11장의 첫번째 부분 말미에서 시장에서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면 생산과정에서 창출된 잠재적인 가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서 반가치가 등장한다. 이는 가치의 실현과정을 주의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맑스는 가치가 실현되기 위해서 언제나 지불능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새로운 결핍, 필요와 욕구가 만들어져야만 했던 것이 자본축적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런 결핍, 필요와 욕구를 생산하는 정치는 흔히 주목받지도 언급되지도 않고 지나갔던 갖가지 사회적 투쟁들로 점철된, 잔혹하면서도 흥미로운 역사였다. 그런 것들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는 진작 붕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불능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조차 만족될 수도 채워질 수도 없는 끝없는 결핍, 필요와 욕구를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끝없는 자본축적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경우에는 만족할 수 없는 필요를 창출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1945년 이후 미국 대중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된 교외주거단지를 건설하여 세계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던 사례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그뿐 아니라, 자본은 생산과정만큼이나 실현과정에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다. 노동자가 전보다 임금을 더 받는데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집세와 생활비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의 투쟁을 통해서 더 많은 임금을 얻어내도 자본은 실현과정에서 이를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요한 착취 형태가 뭐냐고. 아마도 사람들은 신용카드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라고 대답하거나, 집주인과 월세, 부동산 투기꾼, 온갖 부가수수료를 챙기는 통신사, 건강보험사, 지방세, 교통비 등을 언급할 것이다. 실현과정에서 사람들은 거의 강탈 수준으로 엄청난 금액을 뜯기고 있다. 실현을 둘러싼 투쟁의 정치는 어디서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가치의 실현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공간이 가치의 생산공간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중국의 폭스콘 사가 생산한 가치를 담고 있지만, 그 가치는 미국에서 애플 사에 의해 실현된다. 가치의 대부분은 중국의 직접생산자들에 의해 창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의 애플 사나 월마트 혹은 바나나리퍼블릭 같은 미국회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산업자본가의 활동에 의해서 창출된 가치의 많은 부분을 상인자본가들이 실현하게 된다. 많은 양의 부가 실현과정을 통해 창출되며, 다시 그 부의 상당부분은 도시의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을 통해 창출된다. 그러니 2013년 브라질이나 터키에서 일어난 것 같은 봉기들이 생산의 정치보다는 실현의 정치를 둘러싼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에서의 삶의 질에 대한 불만이 그러한 투쟁의 주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현대 정치의 많은 문제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물론,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 제2권과 3권을 주의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으며, 제1권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실현을 둘러싼 투쟁을 이론화하고 조직화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실현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계급의 구성과 생산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계층의 구성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현과정에서는 자본 대 노동의 대립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도둑질과 노략질로 피해를 입는 나머지 모두와 자본의 대립이며, 노동과 자본이라기보다는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싸움이다. 상위 중산층들도 구매자로서는 약탈적 상인들에게 대항하는 투쟁에 가담하기도 한다. 우리는 부동산 투기꾼들에 맞서는 투쟁에서 그들과 동맹을 맺을 마음이 있는가?

뉴욕에서 가족끼리 운영하는 작은 식당의 주인에게 가서 종업원들의 임금을 왜 그렇게 짜게 주느냐고 물어보라. 당장에 모르는 소리 말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여기서 엄청나게 착취당하고 있는 건 바로 나예요. 새벽 여섯시부터 여기 나와서 밤 열시 전까지는 집에 가지 못한다니까요. 정말이지 죽어라 일합니다. 제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면 “번 돈은 다 어디로 갔나요?”라고 물어보라. 그는 “은행에 대출이자 내고, 건물주에게 임대료 내고, 전기요금 내고, 나라에 세금 내는 데 다 나가요. 게다가 집주인은 바로 작년에 월세를 25퍼센트나 올렸는데, 꼼짝없이 낼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족기업들의 많은 수는 뉴욕시의 급등하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고 있다. 거기서 다시 그 사람에게 그럼 은행, 건물주와 세무당국에 맞서 연대하자고 제안한다면, 내 생각에 “네,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프롤레타리아를 정치변화의 중심이라고 보는 통상적인 전망에서는 많이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좌절감은 좌파적인 정치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우파적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나 티파티에 대한 지지는 어느정도는 이러한 불만을 포착한 데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시의 일상적 삶의 질과 관련된 심층적이고 복잡한 불만들을 제대로 다뤄줄 필요가 있다. 이 주장들을 부차적인 것이라고 묵살해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도시생활에서 왜, 그리고 어떤 식으로 그런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거기 실제 사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에 입각할 때 이러한 불만들이 정치투쟁으로 재조직화될 가능성이 있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본 대로 우리는 지금 현재로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기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추세를 뒤집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도시의 비성장을 바라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응답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키며, 환경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그런 도시에 살기를 원한다. 맑스가 전개한 흥미로운 개념이 있는데, 아마도 헤겔(G. W. F. Hegel)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헤겔은 ‘악무한’(bad infinity)과 ‘선무한’(good infinity)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선무한은 스스로를 영원무궁하게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선무한의 수학적 표현은 원이다.

그런데 원이 나선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태는 통제불능이 된다. 자본은 지금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다. 어떻게 해도 그 무한성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통제불능이 되는 것이다. 그저 멀리, 더 멀리 나아갈 뿐이다. 숫자체계는 악무한이다. 아무리 큰 숫자라고 해도 거기에 하나를 더 더할 수 있다. 그렇게 그저 숫자가 커지기만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알 수 없게 된다.

악무한이야말로 자본의 속성이다. 우리는 선무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맑스는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재생산의 본질과 사회질서의 재생산, 그리고 우리가 재생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 제1권과 2권 모두에서 그는 단순재생산의 선무한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문제는 재생산의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통제불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악무한과 대비되는 선무한에 대한 사고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나는 나선형으로 돌아나가 통제불능에 빠진다는 이 은유가 현재 지구적으로나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축적을 위한 축적을 통제할 수단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음매를 땜질하고 모서리를 다듬어도 이처럼 커다란 거시경제적 문제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현대 도시화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반자본주의적 시각이 그토록 핵심적인 이유다.

번역: 백영경(白英瓊)/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