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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서효인 徐孝仁
1981년 광주 출생.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이 있음. seohyoin@gmail.com
우리 동네에 왔던 괴상한 선원들은 모두
보트피플이 온다. 검정 전기해파리를 닮았다. 척추부터 전해오는 죄책감이 고래를 춤추게 했다. 스파크처럼 바다 한가운데 접선하여 서로의 손목을 붙잡는다. 네 손과 내 손 모두 소금처럼 새하얘질 때까지. 손가락까지 닿지 못하고 멈춘 피들은 모조리 그 색이 그 색이다. 무섭고 뜨겁고 버거운
포경선이 온다. 선정적인 두께의 씨가를 닮았다. 혀끝으로 전달하는 친근함이 고래를 방심하게 했다. 먼바다의 기근에 시달린 자들, 담배처럼 얼굴부터 붉어진다. 태양이 떠오를 시간이다. 곡선의 움직임에 따라 같은 증상의 멀미에 시달렸다. 오래도록 굶은 귀에서 쏟아지는 재와 연기, 억지 기침 뱉으며
그린피스가 온다. 딱 한번 걷어차고픈 엉덩이를 닮았다. 한없이 푸른 책임감이 고래를 숨차게 했다. 대머리 살인마를 좇아 뒷걸음으로 왔다. 웃기 위해 얼굴이 굳었다. 한때는 비장한 동지였고, 이제는 청량한 동료다. 굳기 위해 웃으며 뒷걸음, 뒷걸음. 용서와 화해로 닳고닳은 엉덩이를 털며
쇄빙선이 온다. 다가올 여름이 두려운가. 답을 정해놓고 던지는 질문이 고래를 미치게 했다. 깨진 얼음은 날카롭지만 알고 보면 녹는다. 녹으니까 네가 참아. 그것이 여름이 가진 활달한 성격이었다. 얼음을 갈며 팥처럼 명확한 인과관계를 강조한다. 조각난 빙하의 연대를 살피느라 눈이 시린
경비선이 온다. 어딜 가는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문 고래가 뿌리의 뿌리의 뿌리를 찾아 꼬리를 움직인다. 뿔이 없다. 부딪히는 곳마다 공허다. 하얗게 질린 손 위로 재와 연기가 솟아오른다. 같은 색감과 취의(臭衣)를 지녔다. 마음을 주어 분류하지 않는다. 직관하는 나침반에 따라
부유하는 자들이 뒤섞이는 동네의 거대한 파도를 본다. 우리를 집어삼킬까? 갑판 아래 흐르는 피는 정직했다.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동네에 그들은 좌초되었다. 뱃머리가 거진 다 잠겨서야, 우리는 정말이지 똑 닮았구나, 느낀다. 우리는 진짜 어디로 가나, 묻는다. 고래는 처음부터,
저글링
두 개의 손목
세 개의 밀감
남쪽의 섬 같은
곡선을 따라 떠오르고 가라앉는
세계의 온갖 것들
섬과 해구, 화산과 현무암,
혀와 욕, 거북이와 모래,
하수구와 머리칼, 자궁과 후레자식
너랑 나,라고 말하면
이미 모든 것
단단한 밀감과 밀감
민감하게 벌어지는 입
회전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겁이 드나들었다
떨어뜨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으깨진 과일에 더이상 미련은 없다
미안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 미욱한 발끝
볼 필요 없다 고개를 들고 오직 위를 봐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허공을 돌아 손바닥으로 돌아오는
새벽의 알람시계
다음의 미안이 오기 전에 나는 이만 가야지
너랑 나랑은 만나면 곤란
여진과 마그마, 해녀와 죠스바
녹색당과 포경수술, 민물생선과 설치류
홍어와 싼티아고, 두 손과 두 발
서로를 밀며 완성하는 세계의 온갖 것
두려움 없는 중력의 사이사이
귤 셋
사이좋게 악수하며
저글, 저글 그리고 저글링
손목이 죽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