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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화진 

1960년 경기 파주 출생. 1987년 『전환기의 민족문학』으로 등단. 장편 『철강지대』, 소설집 『우리의 사랑은 들꽃처럼』 등이 있음. jhuajin@hanmail.net

 
 
 

기억하나요

 

 

바람이 모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그랬을까. 그저 제 길 가는 바람의 뒷목을 잡고 대거리라도 하려 했는가.

“응?”

옆자리의 동행이 고개를 내 쪽으로 잠깐 돌렸다. 그녀의 두손은 교과서적인 각도를 유지한 채로 얌전히 운전대 위에 놓여 있었다. 후두둑. 몇점의 빗방울이 부딪치더니 앞유리의 경사면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동행이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 너머 어두운 하늘을 기웃거린다.

일기예보대로라면 태풍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물러가는 중이다. 차도 동쪽으로 가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할 즈음엔 바람 한점 없이 고요했는데 어느샌가 차가 태풍의 꽁무니 속을 파고든 모양이다. 바람과 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바람은 귓속이 울릴 만큼 난폭하게 차창을 두드리기도 하고 옆거울과 바퀴에 걸린 채로 새벽의 고속도로 위에 끌려가기도 한다. 쇳소리 비슷한 비명이 들리는 것도 같다. 내게 술기운이 남아 있는 걸 감안해도 분명 환청은 아니다. 바람이 뒤에서 밀면 차체가 살짝 좌우로 흔들리기도 했다. 간간이 비가 뿌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운전 중인 동행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교대할까?”

“농담이라도 고마워. 휴게소에 잠깐 들르지 뭐.”

동행이 마침 고속도로변 멀리 보이는 휴게소 표지판을 가리켰다. 살짝 웃는 입꼬리의 모양새가 그대로다. 소박하고 귀엽다. 우는 입꼬리도 변함없을까. 나는 잠시 그간 우리 사이에 비어 있던 세월의 거리를 잊을 뻔했다.

“어차피 여기서 잠깐 쉬어야 할 것 같아. 여기 지나면 두시간 동안 휴게소 없이 가야 하거든.”

동행이 가장자리로 차선을 바꾸며 말했다.

“커피 한잔해야겠어. 아니면 배도 부르니 졸음이 쏟아질지도 몰라.”

“그럽시다. 넉넉히 쉬었다 가지 뭐. 바람 잦아들 시간도 벌 겸.”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차 안에서 들리던 노래가사가 계속 귓전을 맴돈다.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 듯 처음 들은 그 노래의 가락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소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평일 새벽, 태풍이 지나간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차만 몇대 있을 뿐 건물 밖으로는 사람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그래. 그래.

조금이라도 파인 곳마다 아직 흥건히 물이 고여 있었다. 웅덩이들 위로 듬성듬성 떨어지는 빗방울이 작은 파장들을 일으키고 있다. 갑자기 빗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어느새 곁에 와 선 동행이 내 머리 위에 우산을 드리웠다.

나는 그 우산을 대신 잡아 들고 한손을 뻗어 동행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기울어 있던 우산을 동행 쪽으로 숙였다. 마치 여태껏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순간 놀란 듯 잠시 멈춰 섰던 동행이 이내 내 등 뒤로 팔을 두르며 휴게소를 향해 종종거리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휴게소 밖으로 나왔을 때 빗줄기는 조금 더 굵어져 있었다. 사실 확실치는 않았다. 뭐랄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약간의 차이를 두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정도였다. 물러나는 바람이 털어내는 물기 같기도 하다. 끝물의 수분을 떨구고 난 바람은 얇은 천이 되어 쉼없이 내 목을 감았다가는 곧 스르르 빠져나갔다.

동행이 두손으로 감싼 두툼한 종이컵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입김을 불면서 동행은 조심스럽게 한모금을 입에 담았다. 동시에 피어나는 그녀의 미소에서 만족감이 보인다. 나도 한모금의 커피를 입에 붓고 혀를 굴렸다. 작은 얼음조각들이 혀와 이 사이에서 또르르 구른다.

바람이 좀더 찼으면. 따뜻한 커피에 위로받고 있는 여자를 옆에 두고 불쑥 든 상념에 스스로 무안해진다. 나는 담배를 한개비 빼어 들고 멀리 가로등 아래의 흡연부스를 가리켰다.

동행은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한기를 느끼는지 한손을 풀어 반대편 팔을 문질렀다. 나는 그 손을 잡아 내 등허리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좀 따뜻하지?”

흡연부스 안에 들어가 앉기 전까지 동행은 내 어깨 뒤에 몸을 밀착한 채 걸었다. 아주 오래전 익숙했던 어느날들의 장면이었다. 내 팔에 어깨를 바짝 붙이고 걷거나 혹은 반걸음쯤 뒤에서 끈에 연결되기라도 한 듯 터덜터덜 따라오던 그녀와의 산책.

“변하지 않았네.”

“뭐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미소짓는 동행의 눈가에 서너겹의 주름이 잡혔다.

“오빠인 양 늘 내 손을 먼저 잡아끌던 버릇 말이야. 나이도 어리면서.”

내 손끝을 벗어난 담배연기가 그녀의 이마 위 하얗게 드러난 머리카락 뿌리 언저리를 맴돌다 사라졌다.

“나 한모금만 줘.”

동행이 담배를 쥔 내 손을 잡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이 사람이 담배를 피웠던가. 내가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려 애쓰는 동안 그녀가 입안에만 담아두었던 연기를 서둘러 허공으로 뿜어냈다.

“기억 안 나? 그때도 흉내내고 싶어서 어쩌다 한번씩 뻐끔했던 거. 이렇게 네가 피우고 있는 것을 뺏어서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내겐 조각으로 흩어진 사소한 기억들이 그녀에겐 아직도 완전한 프레임의 영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난 그 장면의 마지막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동행의 허리에 머무른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간지럼을 못 이겨 나이 육십의 여인이 자지러진다. 스무살 사내놈의 장난기에 맥없이 무너지던 스물다섯 그때처럼.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미사리를 지날 때였던가. 서울을 빠져나오기 전 차 안에서 동행이 잠꼬대처럼 한 말이었다. 그렇지. 서울 같은 대도시 한복판에서 옛 연인과 마주치는 것은 사실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테니까. 게다가 그 공백이 서로 연락 한번 주고받지 않은 삼십년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나는 지난밤 꿈의 한자락을 떠올렸다. 마지막 출근을 앞둔 날이라 생각이 많아서였는지 유독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러저러한 꿈들을 꾸었는데 유독 마지막에 찾아온 꿈만은 모든 장면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한데 지난밤에 내가 이 사람도 보았던가.

 

한무리의 사람들과 술을 마시던 나는 담배를 사기 위해 술집을 나섰다. 그들이 누구인지 확신이 없다. 그저 막연히 친구들일 거라 생각할 뿐이다. 자신들의 것을 함께 나눠 피우자며 만류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나오기는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담뱃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도로에 갇혀버렸다. 담배고 뭐고 그저 되돌아갈 생각뿐.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내가 어느곳으로부터 왔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 망연자실해 있던 그때, 도로 맞은편이라 짐작되는 한 지점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조심스레 한발씩 내디디며 간신히 찾아간 그곳은 작은 건물의 경비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내들이 동시에 나를 보며 묻는다. 무슨 일이냐고.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켜보기는 하지만 내가 있던 술집의 이름은커녕 동네도 기억하지 못해 수조 안에 갇힌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나와 마주한 채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답답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뒤의 벽을 치자 놀랍게도 쪽문이 열렸다. 그 너머가 환하다. 사내가 손바닥을 펴 안쪽을 가리킨다. 난 구세주라도 만난 심정으로 몸을 웅크려 쪽문 안으로 들어섰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사무실이었다. 드높은 천장은 형광등으로 가득했다. 눈이 부셔 손으로 가림막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비어 있는 책상 하나가 보였다. 내가 앉을 자리인가 하고 다가가려 한다.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내게 몰려오기 시작한다. 벌거숭이로 냇가를 누비던 불알친구들부터 동창들, 내가 거쳤던 몇 회사의 동료들, 옛 애인들과 지금은 곁에 없는 마누라까지. 남자들은 모두 팔을 벌려 달려와 내 어깨를 감쌌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내 볼에 입술을 부비고 돌아갔다. 하지만 기쁨에 들뜬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머릿속은 의혹으로 가득하기만 했다.

내가 죽으려는가.

이윽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 뒤 다시 덩그러니 서 있던 나는 몇번이나 이 말을 중얼거렸다.

 

마지막 출근을 했다. 사실 출근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거의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를 갔고, 몇개의 사무실을 돌며 인사만 했을 뿐이다. 내 책상은 깨끗이 정리된 채 새 주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료 몇과 퇴근 후 술자리를 가졌다. 그것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간 함께했던 세월을 기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 세월을 함께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소주 한잔 사고 돌아가려 했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그들에게 잡혀 맥주 한잔을 더 걸쳤다.

딱히 갈 곳을 미리 정하지 않았으므로 산책이나 할 겸 종로를 걸었다. 평일 저녁이어도 종로통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직도 젊은이들이 많은 거리다. 중년이나 노인 들의 길은 주로 대로 뒤편의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이곳도 앞으로는 가끔 옛 친구들을 만날 때에나 찾을 것이다. 술 한잔에 당구나 한게임 정도. 대로 뒤편의 골목 어딘가에서.

일단 서울역까지 걸으면서 술을 깰 요량이었다. 행선지는 그동안 정하거나, 아니면 역에 도착해 열차시간표를 확인한 후 어디라도 가능한 곳으로 하면 될 터였다. 등에 걸친 배낭에는 세면도구와 잘만 하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속옷에 티셔츠 몇벌, 그리고 반년 전에 큰맘 먹고 장만한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일년하고도 수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나는 가던 길에 테이크아웃점에서 산 네잔짜리 커피 한묶음을 작은 천막 안의 탁자에 올려놓고 고맙다는 인사도 듣기 전에 수줍은 소년처럼 빠져나왔다. 그리고 긴 천막 내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의 어린 영정들 앞에서 잠시 합장하곤 발길을 돌렸다. 명복을 빌었는지 부끄러운 어른인 나 자신의 용서를 빌었는지.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시청 뒤 흡연구역에서 잠시 멈췄다. 서울역까지의 중간 어디쯤에선가 한숨 돌려야만 할 것 같았다. 술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태풍 끝물의 바람을 맞는 와중에도 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라이터를 켜기도 전에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나 해서 저곳부터 따라오긴 했는데……”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여인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어깨에 닿았던 손가락을 오므린 채 입을 막고 있었다. 크고 동그란 눈. 만만치 않은 세월로 인해 조금 내려앉고 주름이 지긴 했지만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어린 고양이 같은 눈매. 세워주겠다고 장난삼아 엄지와 검지로 잡아당기곤 했던 작은 콧방울. 먼 기억 저편으로부터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똑같은 경험을 했던 삼십년 전의 어느날처럼.

대학 졸업을 앞둔 12월이었던가.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사흘이 멀다 하고 외박을 일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사회에 나가기 전에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오랜만에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보니 현관에서 신발도 벗기 전에 어머니가 집 전화기를 들고 나를 부르셨다.

수화기 건너에서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확인하듯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 두글자를 들었을 뿐인데도 확연히 기억 저편을 건너오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재수하던 시절 사랑하고 헤어졌던 사람. 아니, 헤어졌다기보다 나로 인해 상처받고 떠났던 사람.

다음날 오후 난 부천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장을 차려입은 채였다. 아마 환자복에 초췌한 몰골일지 모를 그 사람이나 병실에서 마주칠지 모를 가족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음료수 하나 사 들지 못했을 정도로 그때까지도 일반적인 예의에 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층은 신경정신과 병동이었다. 복도 입구에서 본 병동 표지판을 보고 아마도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 병동엔 어떤 사람들이 입원하는 것인지 추측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알려준 병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복도 한가운데서 서성이던 환자복 차림의 그녀가 나를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바로 앞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본 그녀는 내 옛 기억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다. 반갑다는 인사도 할 겨를 없이 그녀가 덥석 내 손을 잡고 이끈 곳은 병실이 아닌 계단이었다.

계단 입구의 문을 닫은 그녀가 제일 먼저 내 앞에서 보인 행동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내 옷매무새며 얼굴, 그리고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그 곱고 긴 머리카락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군대 갔다 오고 나니 머리 긴 것도 귀찮아졌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점퍼를 벗어서 그녀의 어깨에 걸친 것이다. 계단은 난방이 안되는 구역이라 온기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단에 단둘만 있기를 선택했던 것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계단에 앉을 때 양복의 윗도리마저 벗어 그녀의 다리를 덮어주는 것뿐이었다. 사실은 헐렁한 환자복 위로 드러난 그 사람의 앙상함을 보는 것이 나로선 감당이 안되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나는 사람이 너밖에 없었어.”

위아래로 긴 허공만 이어진 계단 통로에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작은 메아리 되어 내 귓전을 맴돌았다. 살짝 엿본 옆모습엔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복숭아 같던 살결은 흔적조차 없었다.

그날, 가물에 콩 나듯 흰 가운을 걸친 의사 몇 정도만 지나갔던 그 계단에서 우린 두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몫이었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

오빠의 소개로 안정적인 직장에 온화한 성품을 가진 남자를 만나 부리나케 치른 결혼식과 부천에서의 신혼생활. 나를 만나던 시절을 포함해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면서 돌봐준 아빠 같은 오빠의 소개였기에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나는 혹여 그 서두른 결혼이 무한정 자유롭기만 했던 나와 헤어진 상처의 영향은 아닐지 조마조마했다.

‘아, 모르셨어요? 지난 10월에 결혼했는데……’

대학에 합격한 1월 중순쯤엔가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의 올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듯 말끝을 맺지 못했었다.

이미 헤어진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던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안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나보다 다섯살이 많은 그녀는 자신과의 연애가 혹시라도 내 재수생활을 망치진 않을지 늘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난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착한 남편과 제왕절개까지 해서 얻은 두 아들과의 행복한 결혼생활. 하지만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어미가 결혼과 동시에 한집에 존재하고 있었다. 몰상식과 막말의 정도가 해가 거듭될수록 심해지다 못해 포악한 수준에 이르렀을 즈음 그녀의 정신세계가 입원을 필요로 할 정도로 심하게 무너져내린 것이다.

“어느날엔 내 면전에다 과일접시를 집어던지는 거야. 이걸 사람 먹으라고 깎아논 거냐면서 말이야.”

언제부터인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는 것.

“남편은?”

어미에게 한마디 대응도 못한다는 남편이란 자를 떠올리며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분노를 표출했을 때 그녀는 오히려 말리듯 내 손목을 부여잡았다. 아니라고. 그는 그저 착한 효자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신들에겐 꽃 같은 자식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다고.

그렇게 그녀는 생채기로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행복을 보듬느라 모진 애를 쓰고 있었다. 친구들이나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오빠에게조차 입원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오래전 의지했던 연하의 남자 옆에서.

헤어짐의 인사까지 마치고 돌아서기 전 나는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 흔들리는 동공 속에서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너지듯 품에 안겨 미동도 없는 사람의 등을 쓸어내리는 동안 나 또한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비를 머금은 바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부천과 서울을 오가며 서너번을 더 만났다. 점심식사에 맥주를 한잔 곁들이는 정도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는 해가 기울기 전에 쫓기듯 집으로 향했다.

퇴원 이후로 시모의 언행이 많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가끔은 자신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주에 한번씩 만날 때마다 그녀의 몸피와 얼굴도 눈에 띄게 좋아 보였다.

나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서로가 의도적으로 살을 맞잡지 않으려 애썼다. 마주 앉은 채로 가끔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들에서조차 우리는 서로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내게 두권의 공책을 건넸다. 그러곤 꽃처럼 화사한 웃음을 잔영으로 남긴 채 멀어져갔다.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건네받은 것은 수년 전 어느날 한 어린 남자애를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속상함으로 범벅인 일기장이었다.

 

“여기가 어디?”

“동명항. 피곤했나봐.”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고속도로 끄트머리의 어둠 속에서 울산바위를 본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떠보니 정갈하게 정리된 작은 포구의 주차장이었다. 동행이 포구의 끝을 가리켰다. 그곳엔 2층짜리 건물의 아래층에 매달린 등들이 아침보다 먼저 하얀빛을 고즈넉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 등이 켜지면 아래층 칸칸이 이어진 가게들이 하루일과를 시작한다는 신호야.”

“내부는 다 깜깜해 보이는데?”

“가게 주인들이 다 여기 나와 모이거든. 먼저 생선을 떼야 하니까.”

동행은 아이에게 설명하듯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바로 앞 선착장에 길게 마주한 경매대 위로 이제 갓 도착한 배로부터 고무 함지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아직 들어온 배는 한척에 불과한데 경매대 주변엔 경매사들뿐 아니라 얼굴의 부기가 채 가시지 않은 가게 주인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경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매대 앞을 지나치며 동행은 그들 중 몇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의 고객들일까.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간단히 요기를 하는 동안 그녀가 속초에서 오랫동안 보험 일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아. 필사적이었어. 그리고 재미있었어. 사람 사귀고 사연을 주고받는 재미랄까? 그 덕에 혼자서 아이들 대학 졸업시키고 장가도 보낼 수 있었거든.”

너무도 숫기 없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적잖이 놀라던 내게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내가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또 한척의 배가 선착장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낯빛들이었지만 옮겨지는 생물을 훑는 눈길은 마치 잘 벼려진 날 같다. 그 눈길들을 보는 것만으로 내 몸에 깃든 피로감이 한방울도 남김없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차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는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방해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한 채 셔터를 몇번 눌렀다. 누를 때마다 일련의 흑백사진들이 머릿속을 유영했다.

“그나저나 태풍 때문에 못 나간 배들이 많아서 오늘은 양이 얼마 안될 텐데. 좀 비싸겠다.”

담백한 어조로 속삭인 동행이 걸음을 방파제 쪽으로 옮겼다. 사진 몇장을 더 찍고 나는 허둥지둥 그녀를 따랐다. 흐린 날씨인데다 해 뜨기 전이라 그런지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가 보일 듯 말 듯 멀기만 하다. 이리 긴 방파제도 있던가. 방파제 위에 우리 말고 사람이라곤 아주 멀리서 꼬무락거리는 그림자 몇뿐이었다.

“어쩜 오늘은 해 오르는 걸 못 볼 거야.”

동행이 손을 뻗어 수평선 위로 드리운 회색 구름띠를 가리켰다. 아마도 속초 앞바다의 해돋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난간에 기대 바다를 마주하고 선 그녀의 얼굴엔 못내 감추지 못한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선들거리는 바람에 그녀가 어깨를 감싸안은 채 몸을 한번 떨었다. 혹시나 해서 갖고 나왔던 점퍼를 그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그리고 위로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해가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방파제를 넘나드는 바람이 순해서였을까. 반팔 차림임에도 난 새벽의 바다 사이를 걷는 동안에 서늘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것도 갱년기 증세인가. 몇달 전부터 툭하면 까닭 없이 가슴 쪽으로 뭔가 치밀어 오르고 온몸에, 특히나 윗몸에 화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 같다고 푸념하던 내게 친구는 전형적인 갱년기 증세라고 했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고. 자신은 그 증세가 너무 심해서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아보았다고.

어디서부턴가 나는 동행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어느 지점에선가 내 손이 그 시절처럼 따뜻하다고 그녀가 내 귀밑에서 속삭였다. 어느덧 바다 끝 회색 구름띠에도 주황빛이 들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마주한 방파제의 끝 흰 등대 아래로 두척의 배가 나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또 하나의 등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걷고 있던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가 서 있었다.

“등대의 색깔이 다르네.”

“빨간 등대는 왼쪽으로 가라는 뜻이고 흰 등대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신호야. 그대로 따라가다보면 저렇게 항구 안으로 들어가는 거지. 후훗, 그걸 아는 사람 그리 많지 않아. 나도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거야.”

파도를 타고 온 한줄기 바람이 동행의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헝클어놓았다. 그 바람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동행은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쓸어내렸다. 밤을 새운 여정에 피곤해서인지 화장기 풀린 피부가 유난히 메말라 보였다. 눈가에 겹친 주름과 시간을 이기지 못해 탄력을 잃어버린 창백한 목. 그곳의 주름과 몇개의 점들. 비로소 우리 사이에 투명하게 걸쳐진 세월의 거리를 느꼈다. 그의 눈에 나는 또 어찌 보일까.

“속초에는 연고가 있어서 온 거야?”

문득 궁금해졌다. 남편과 사별하고 젊은 시절 자신을 그토록 애먹이던 시모도 이승 사람이 아니란 얘기는 들었지만 정작 왜 이토록 먼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 사람 병이 들었어. 병이 든 걸 알았을 때는 기한이 얼마 안 남았어. 남들이 아이엠에프 시절을 얘기하면 난 창피해. 난 그것도 모르고 내 남자가 자기 사업한다고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둔 줄 알았거든.”

동행은 한동안 기억을 더듬듯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변머리는 없지만 그렇게나 착한 사람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고꾸라질 줄 꿈에도 몰랐던 거야. 식구들에게 오늘은 뭘 먹일지만 고민하고 있었으니 오죽했겠어? 투자한 돈 한푼 못 건지고 그때까지 모은 것 다 잃은데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 사람에게 내가 먼저 말했어. 당신과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자고. 공기라도 좋은 곳으로 가자고 말이야. 천운이었는지 몰라도 그때 이미 치매에 접어든 시어머니가 속초의 자그마한 집 한채는 움켜쥐고 있었더라고.”

잠시 쉴 듯 숨고르기를 하던 동행은 그러나 더이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난간에 팔을 얹은 채 말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지켜보기만 했다. 방파제를 따라 수북이 쌓여 있는 테트라포드는 너울지지 못하는 새벽 바닷물을 꿀꺽꿀꺽 삼켰다가 트림하듯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려가며 그 시절에 어디쯤 있었는지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 전국적인 위기의 시기가 나처럼 젊었던 놈에겐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 내 곁에 선 동행의 남자가 어둡고 고통스러운 회랑을 지나고 있을 그때 나는 햇살 가득한 정원으로 연결됐으리라 확신했던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십년가량 다니던 종합상사를 나왔다. 마치 작당이라도 한 듯 엇비슷한 시기에 독립을 선언한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다섯평도 안되는 사무실에서 달랑 책상 두개 놓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그해 11월, IMF의 공식적인 구제금융 발표를 한달도 채 안 남긴 때였다.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해 9월까지 달러당 850원 하던 게 11월 중순엔 1400원을 넘었다. 개업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사무실에 전화와 팩스가 연결되자마자 우린 바로 도모하던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앤디의 재즈카페엔 앤디가 없다오. 대신 재키가 있을 뿐.

 

아, 시카고. 그랬다. 12월초 어느날 오후 난 시카고의 한산한 재즈바에 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수십년간 다녀갔던 연주자들의 흑백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유난히 바람이 드셌던 날이었다. 이틀간의 실랑이 끝에 발행된 신용장 사본을 시카고의 거래처 사무실에서 서울로 전송한 후 호텔로 돌아왔을 때 긴장 풀린 내 몸이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한잔의 술이었다.

“신용장에 있는 선적기일 신경 쓰지 마. 요즘 다 그렇듯이 어차피 은행은 우리 같은 점방이 결제대금을 달러로 보유하도록 절대 놔두지 않을 테니까 업체에서 이삼일 내로 싣게 하고 바로 연달아 네고해버려. 괜히 환율 피크 눈치 보면서 욕심내지도 말고 말이야. 그때쯤이면 아마 이천원쯤 될 거야.”

내가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30분쯤 뒤에 재즈바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동안에도 환율은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호텔방에 들어서면 리모컨을 들어 CNN부터 틀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의 위기상황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내 머릿속은 가능한 품목들과 거래처들을 포도송이처럼 엮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제조업체들마다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창고를 헐값에 비워내던 시절이었다. 처음 시카고에 2천대의 17인치 컴퓨터 모니터를 내다판 것을 시작으로 모니터로만 한달 새에 6천대분의 신용장을 받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대기업 브랜드의 정장을 여성용 남성용 가리지 않고 창고에서 나올 수 있는 물량만큼 중국으로 실어냈다. 아무리 현찰이 급해도 국내에는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헐값에 내놓을 수 없는 기업들은 대신 해외에 몰래 내다팔았고 우리는 그 통로를 열어준 셈이었다.

한달 만에 경리를 두었고, 석달이 지나서 진단용 의료기기를 수입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거래은행 차장이 인사 겸 탐색차 구석방만 한 우리 사무실을 찾아오기도 했다. 일년이 채 안돼 두명의 직원을 더 채용했다.

기회를 잡았으니 잠깐이라도 성공한 시절이었을까. 술 마시는 밤에도, 자다가 깬 새벽에도 해외 거래처와의 통화를 위해 핸드폰을 곁에서 떼어놓지 못하던 그때가 성공한 시절이었을까. 행복했다면 돌아가고 싶을 만도 한데 그런 욕망을 단 한차례도 느껴보지 못했다.

그 시절 나를 한시도 가만놔두지 않던 내 안의 격랑은 무엇이었을까. 몇년이 못 가 다시 어느 회사의 차장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좌절 대신에 느꼈던 평안은 또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사업도 우정도 모두 닫혀버린 후 뜻밖에 찾아온 평안이라니!

갑자기 어디선가 뜨끔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허리 밑단 어디쯤의 뼈 하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담이라도 들려는가 싶은 그때 심한 어지럼증과 식은땀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나는 주저앉지 않기 위해 방파제 난간에 올려놓은 두팔에 힘을 있는 대로 준 채 고개를 숙였다. 바닷바람이 목덜미를 쉼없이 쓰레질하는데도 식은땀은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안 비쳤다.

“괜찮아?”

동행의 목소리엔 당혹감이 배어 있었다.

“안 좋아 보여. 땀 흘리는 것 좀 봐.”

뒷목에 닿은 그녀의 손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손이 내 등을 몇차례 쓸어내리는 동안 벼락같이 찾아왔던 허리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곧 어지럼증과 식은땀도 누그러져 목덜미에 서늘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몸을 돌려 난간에 기댄 채 허리를 곧추세웠다. 잠시 독한 몸살기를 겪고 난 느낌이었다.

“그만 돌아갈까? 원래는 저 빨간 등대까지 다녀올까 했는데…… 그 벽에 젊은 애들이 남기고 간 낙서를 읽는 재미도 있거든.”

“사랑한다, 영원하자, 뭐 그런 것들 말이지? 안 봐도 눈에 선해.”

“맞아. 엿보는 즐거움은 잠깐인데 남는 부러움은 오래가는.”

“돌아갑시다. 그리고 나 배고파.”

나는 마치 친누이에게 어리광부리듯 콧소리마저 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무안해질 법한 콧소리였다. 한줄기 센 바람이 방파제를 넘어와 우리를 덮쳤다. 일순 오한이 찾아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기를 건네주려는 듯 동행은 부드럽게 팔짱을 끼며 잠시 휘청하던 내 몸을 지탱해주었다.

식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동행은 반색을 하고 주방에서 나오는 여주인과 포옹을 나누었다. 끌어안고 있는 동안 동행은 뭔가 위로해주는 사람처럼 여주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나는 그런 동행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수줍음을 타던 사람이었다. 다급하게 궁금한 일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 줄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회사 동료가 있을 뿐 친구는 없다고 했다.

“그건 내가 네 분위기에 휩쓸리기 때문일 거야. 너만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고 웃음도 헤퍼져. 난 그게 좋아. 너와 헤어지면 다시 지루하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그러곤 너랑 만날 일주일 뒤를 손꼽아 기다리는 거야. 그것도 좋아.”

언젠가 나하고 있을 때면 왠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의아해하던 내게 그녀가 한 대답이었다.

그녀와 달리 난 사람 사귀는 것을 즐겼던 생기발랄한 스무살이었다. 걸핏하면 학원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낮술을 하거나 당구장이나 탁구장을 찾기도 했다. 가방 안에는 늘 소설이나 철학책 한권쯤이 순서를 바꿔가며 들어가 있었다.

가끔은 내가 재수생 맞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물음조차도 아주 잠깐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랑, 친구, 그리고 다가올 시험에 이르기까지 자신 없는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비록 돌아갈 수는 없지만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는 것 같은 시절.

탁자에 앉아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사람을 새로 사귀기보다 남아 있는 이들과의 관계나 원만히 유지되기를 바란다. 일찍 떠나간 몇몇 친구들을 생각하면 내 건강에 대해서도 그리 확신이 서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은 아무리 방어적인 계산을 거듭해도 좀체 답을 얻지 못한다.

포옹을 풀고도 두사람은 주방 가까운 탁자에 앉아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동행은 여주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두사람은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바다를 향해 난 발코니를 응시하곤 했다.

동행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내 시선은 계속 활짝 열린 그 발코니에 머물렀다. 밤색 목조 테라스 위의 탁자엔 내 나이쯤 돼 보이는 중년의 사내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주잔들이 앞에 놓여 있긴 했으나 왠지 꽤 오랜 시간 그대로 정물이 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이윽고 한 사내가 잔을 비우자 맞은편 거구의 사내가 다소 힘겹게 팔을 뻗어 빈잔을 채워줬다. 그들의 낮은 목소리가 파도소리에 묻혔다 웅웅거리며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간만에 만나 수다 좀 떠느라고.”

여주인이 탁자 위에 반찬그릇들을 내려놓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동행은 어느새 맞은편에 와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둘 앞에 놓인 큰 사기그릇 안에는 뽀얗게 우러난 황태국이 담겨 있었다. 동행이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이 집 황태해장국이 일대에선 최고야! 조금 있으면 이것 먹으러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올 거야. 왜, 소리없이 유명한 집 있잖아.”

“인제 용대리에 사는 우리 오빠가 황태덕장을 하신다우. 그중에 젤로 좋은 것으로다 챙겨서 보내주시거든요. 잡숴봐요. 잘 왔다 싶을 거예요. 아, 맥주는 미안해서 제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다시 돌아온 여주인이 맥주를 한병 내려놓으며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고 동행과 내게 번갈아 선한 웃음을 보이고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

동행의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성급하게 한모금 떠넘긴 국물의 맛은 진하면서도 담백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맞은편의 동행에게 눈을 크게 껌벅여 보였다. 그녀가 엄지를 세우며 환하게 웃었다. 허하고 시린 속을 감안하더라도 일품의 맛이었다. 지친 몸이 따뜻한 욕조에 푸욱 잠기고 있었다.

흥건히 만 밥을 반 이상 먹고 나서야 앞에 놓인 맥주잔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비로소 반주 겸 한모금 마실 때 테라스로부터 호탕한 웃음소리가 건너왔다. 나는 다시 그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행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왜?”

“저기 밖에 있는 두사람 말이야, 묘해. 밥이 앞에 있는데 밥 먹는 것 같진 않고, 술이 앞에 있는데 술 마시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술을 안 마시는 것도 아닌데.”

달리 묘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잔에 남은 맥주를 천천히 입안에 흘려넣었다.

“아주 자분자분하게 얘기하며 웃고 손사래치고 하는데 마치 소리 죽인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아.”

“아마도 이런 내용 아닐까? 그땐 미안했다. 용서해라.”

“그럴까? 마치 본 것처럼 얘기하네?”

동행이 내 잔에 맥주를 채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이 어린 눈빛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이 옆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었거든. 저녁이었는데 그때는 꽤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 같았어. 둘 중에 체구가 큰 사람 있지? 지금 자기 장례식을 미리 당겨서 하는 중이야.”

나는 밥숟갈을 입에 넣다 말고 고개를 들어 동행의 눈을 들여다보았다가 이내 발코니 쪽을 한번 더 기웃거렸다. 굉장히 독특하거나 혹은 심각한 사연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주방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아, 이 식당의 주인이자 남편이야. 내게 첫 계약을 안겨준 사람인데 얼마 전에 암 선고를 받았어. 그게 하필이면 췌장암이야. 청천병력이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발견될 때쯤이면 4기라고 하는 것이 통설인데 더욱이나 발코니의 저 거구의 사내가 몸속에 커가는 종양을 인지했을 리가 없다. 마침 뒤를 돌아본 동행과 눈이 마주친 그가 반가운 수인사를 건넸다.

“저 사람은 수술과 항암치료 대신에 아직 기력 남아 있을 때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거야. 어차피 본인 죽음 뒤의 장례식장에선 한마디도 나눌 수 없을 테니 살아 있을 때 서로 풀자는 것 아니겠어?”

“용서든 화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

“응, 그리고 후에 소식만 전하고 장례식은 아예 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어쨌든 저 사람은 기쁘게 친구들을 만나는 중이야. 아까 부인 얘기 들어보니까 하루에 소주 세잔, 담배 한개비는 아직 너끈히 하고 있다던걸.”

“대단한 사람이네.”

요즘 세상에 얼마나 젊은 나이인가. 누구라도 수술에 항암치료를 감당하면서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을 게다. 욕망과 부질없음 사이의 계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할 테니까. 하지만 그는 그 계산을 냉정하게 끝냈고 다른 희망의 끈을 당긴 것이었다. 일순 정신이 아뜩해졌다.

“처음부터 독특한 사람이긴 했어. 벌써 십오년쯤 됐나. 보험 영업 첫날 선임자와 함께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이 이 식당이었어. 난 배우는 입장이라 선임자가 설명을 대신 하고 있었거든. 물론 그 계약은 나를 위한 것이었고 선임은 일종의 도우미 역할이었어. 갑자기 저 사람이 선임자의 말을 막더니 볼펜을 뺏어서 자기 앞에 놓는 거야. 그러곤 내게 묻지 않겠어? 처음이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대신 나보고 설명하라는 거야. 자기도 어차피 난생처음 생명보험 가입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이니 서명할 준비는 돼 있다고.”

회상하는 그녀의 입꼬리가 꿈꾸듯 살짝 씰룩거렸다.

“그래서 운 좋게도 첫날 첫 방문지에서 계약서를 들고 나올 수 있었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 그런데 그날 무슨 정신으로 설명을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말을 하는 내내 얼마나 떨리던지.”

한무리의 사람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새벽길을 달려온 여행객들인 듯한데 탁자 두개를 붙여야 할 만한 인원이었다.

“미안, 잠깐 도와주고 올게.”

자리에서 일어선 동행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주방을 향했다. 저리 씩씩할 수가 있는가. 그 나이에 밤을 꼬박 새우기까지 했는데!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돌아 나가니 바다가 바로 눈앞이었다. 두 사내가 있는 발코니를 지나 바닷바람을 가장 가까이서 맞을 수 있는 곳까지 걸어나갔다.

해안 끝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눈에 들어오자 당연한 의례를 치르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미 사위가 환하게 밝은 지 오래였다. 두런거리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의 눈에 발코니 위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한대 하시겠습니까?”

 

 

에필로그

 

오정혜씨. 이제야 당신의 이름을 온전히 불러보는군요.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목마를 때 먹으라며 당신이 내게 준 토마토를 하나 꺼내 먹습니다. 갈증이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일단 맛이 그만입니다. 마당에서 텃밭을 일구던 당신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피곤해서였을까요. 어제 당신의 오래된 녹색 대문을 들어선 후에도 난 그 텃밭의 존재를 알지 못했네요. 아마도 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기까지 내 신경은 오로지 언젠가부터 동네를 떠돌다 당신의 식구가 되어버렸다는 흰 털북숭이에게 꽂혀 있었나봅니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그 강아지를 당신은 아가라 부르더군요.

오늘 아침 텃밭에서 따온 과실들을 건넬 때 내가 그 손을 꼬옥 쥐었지요. 할머니 손 같다며 당신은 부끄러워했지만 난 한동안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맞아요. 당신이 이미 세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거실 벽에 걸린 액자들을 통해 알고는 있었어요. 그리고 어제 서로 확인했듯이 염색약 밑에 숨은 우리의 머리칼은 하얗고, 모든 살은 주름지거나 처졌지요. 하지만 내가 쥐었던 그 두손은 스물다섯, 혹은 서른한살 오정혜의 손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내 손이 스물, 혹은 스물여섯 최규진의 손 아니었던가요?

 

집에 들어와서야 술 한잔을 시작한 당신과 정말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황태국집 주인이 바리바리 싸준 안줏거리들은 하나같이 맛있더군요. 그중에서도 양념한 우럭구이의 맛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메뉴판에도 없던데 아무래도 그분의 손맛이 굉장한 것 같다고 내가 놀랐더니 당신은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잊지 않고 그분께 언질을 주었다 했죠. 난 당신의 입맛을 전혀 기억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제 꽤나 많은 술을 마셨네요. 내 주량은 턱없이 줄었는데 술 마시는 시늉만 하던 당신은 굉장히 늘었더군요. 덕분에 그간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꿀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밤부터 지친 몸이 흐트러질 때까지.

 

왜 그리 울었어요? 갑자기 내게 안겨, 아니 정확히는 당신이 잠시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지만, 한번만이라도 그 시절처럼 자신을 불러달라 했죠? 사랑한다, 정혜야. 그 시절 수십 수백번 했던 말 단 한번을 끝내기도 전에 내 어깨가 흠뻑 젖어버렸더군요. 온몸을 떨어대며 울던 당신에게서 너무나 오랜 세월 쌓인 외로움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어제 내내 난 세월이 당신을 튼튼하고 가없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간 마음에 묻어두었어야만 했던, 당신을 할퀴고 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더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기억하나요? 내가 당신을 진정시키려고 불렀던 이 노래가 실은 그 시절 어깨에 늘어진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당신이 내 귓전에서 속삭이듯 불렀던 노래라는 걸. 당신에 비해 난 많은 걸 기억 못하지만 그 노래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네요.

 

원주행 표를 끊었습니다. 제천으로 가려고요. 옛 친구를 만나려 합니다. 그곳에서 어디를 다녀보고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며칠이나 있게 될지, 몇군데나 더 다니다 서울로 올라가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가는 곳마다 적잖이 배우겠지요. 부디 만나는 인연들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혜, 당신도 다시 볼 때까지 꼭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아가에게 매일 내 인사도 전해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