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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19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주혜 李柱惠

1971년 전주 출생. leestori@hanmail.net

 

 

 

오늘의 할일

 

 

세 자매가 천변 산책로에 돗자리를 폈다. 평일 대낮이었다. 바람에 은색 돗자리 한 귀퉁이가 자꾸 펄럭였다. 첫째가 그 귀퉁이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무겁지 않은 가방이 들썩였다. 이놈의 바람이. 첫째는 일부러 가방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두 동생은 신발을 벗고 돗자리 위로 올라앉았다. 검정 구두 두켤레가 함부로 방치되었다. 세 자매 모두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채도랄지 담도랄지 그런 건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검었다.

자매는 한동안 말없이 숨을 골랐다. 셋 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푸석하게 부어 있었다. 둘째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큼직한 가죽 가방에서 캔맥주를 꺼내 자매에게 돌렸다. 셋 다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맥주를 들이켰다. 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에 꽃놀이를 다 하네? 드디어 첫째가 입을 열었다. 개울가엔 꽃나무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는데 자매가 앉은 곳 바로 앞에 우람한 수양벚나무가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자매는 내내 겨울을 살다 갑자기 봄의 한가운데로 내쳐진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이렇게 화사해도 좋은가 싶게 꽃들이 낭자했다. 검고 무거운 옷을 입고 꽃그늘 아래 앉은 자신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소포 같았다. 그래도 봄이 좋긴 좋구나. 이 와중에도 꽃을 보니 웃음이 나오잖아. 첫째가 말했다.

누가 봄씨 아니랄까봐 봄 찬양이 늘어지시네. 둘째의 대꾸가 끝나자마자 셋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셋만이 알고 셋만이 공유해온 먼 옛날의 약속을 꽤 오랜만에 떠올렸다는 기꺼움의 표현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글쎄, 느이 아버지가 자식 욕심이 얼마나 많았는지, 결혼 첫날밤 베갯머리에서 자기는 최소한 넷은 낳아야겠다는 거라. 그때가 언제야?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운동 때 아냐? 둘 이상만 낳아도 무식하단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라고. 셋도 아니고 다섯도 아니고 왜 하필 넷이냐고 물었더니(4자는 왠지 불길하잖니) 안 물어봤으면 섭섭해했을 만큼 준비한 대답을 줄줄 늘어놓는 거야.

자매의 아버지는 자식을 넷 낳아 사계절을 뜻하는 한자를 하나씩 넣어 이름을 지어주는 게 꿈이었다. 춘하추동 네 글자는 그에게 시간과 세계를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었다. 만약 첫애가 딸이면 춘희나 춘애, 아들이면 춘수나 춘영 정도랄까? 둘째가 딸이면 하연이나 하선, 아들이면 하성이나 하문이 좋겠지. 신랑의 고백을 들은 자매의 어머니는 ‘춘’이나 ‘추’가 들어간 이름이라니 다소 촌스럽겠다고 생각했지만, 첫날밤 신부의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고 또 내리 넷을 낳을 자신도 없어 일단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유보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는 뜻이었지 적극 찬성합니다,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부의 고갯짓을 동의로 해석한 자매의 아버지는 이듬해 첫딸이 태어났을 때 춘희나 춘애라는 이름을 탐탁지 않게 여긴 아내와 한판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결국 아버지의 오랜 꿈이 승리했고 첫째의 이름에는 봄 춘()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2년 후 태어난 둘째딸의 이름에는 여름 하()자가, 그로부터 2년 후 태어난 셋째딸의 이름에는 가을 추()자가 들어갔다. 2년 터울로 내리 세 딸을 낳은 자매의 어머니는 계절의 소임을 다한 식물처럼 시들시들 말라갔다. 자매의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넷째는 끝내 태어나지 못했다. 춘하추동 네 글자로 이루어진 그의 우주적 소망은 그렇게 미완의 상태로 남는 듯했다.

첫째와 셋째는 학창시절 내내 춘자나 추녀 등의 별명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딸이 짓궂은 놀림을 당하고 동시에 울며 돌아온 날 어머니는 세 딸을 나란히 앉혀놓고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구술에는 본인의 체념과 딸들을 향한 미안함이 덜 녹은 설탕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자백과도 같은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세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기는커녕 원망만 더 커졌다. 꼭 네 글자로 짝을 맞추고 싶었다면 춘하추동 말고 다른 한자도 많았을 텐데. 천자문만 들춰봐도 참고할 한자가 무려 천개나 있지 않은가. 일테면 매란국죽이랄지. 아니 굳이 한자를 꼭 써야 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 우리말을 썼다면 두고두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이날부터 자매는 서로를 봄 여름 가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은 매화 난초 국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을 향한 불만이 커질수록 결속력도 단단해졌다. 물론 심사가 틀어지면 이 장소팔고춘자야, 못생긴추녀야, 소리가 주먹질과 함께 오가기도 했다. 가끔은 이름이 비교적 평범한 둘째도 하지감자야, 하녀나부랭이야 소리를 면치 못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자매는 새 이름의 사용처를 집 밖으로 늘려갔다. 사실 내 진짜 이름은 봄이야. 아버지가 우리말을 너무 사랑하셔서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보수적인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호적에만 한자 이름을 올리고 집에서는 다들 봄이라고 불러. 울 아버지 기분 좋은 날엔 매화야, 이렇게 부르기도 해. 매화는 봄을 상징하는 꽃이잖아. 친구들은 아쉬운 일이 생기면 봄아, 하고 불렀고 장난기가 발동하면 춘자야, 했으며 이도 저도 아닐 때는 그냥 출석부에 오른 이름을 불렀다.

 

*

 

아무리 절간이라도 그렇지 사이다가 뭐냐, 사이다가. 봄이나 매화로 불릴 수도 있었던 첫째가 말했다. 절간이니까 절간 법도를 따라야지 어쩌겠어. 여름이나 난초가 될 뻔해서 그런지 뾰족한 둘째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가을이나 국화였을지도 모르는 셋째는 조용히 맥주만 마셨다. 피곤했다. 머릿속에 쇠그릇이 들어가 덜컹거리는 기분이었다. 부은 눈은 잘 떠지지도 감기지도 않았다. 셋째는 오늘 절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 노스님이 그만 울라 엄하게 꾸짖을 정도였다. 오늘은 영가가 육신과 사바세계의 미련을 버리고 훨훨 날아 극락왕생하라고 비는 날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이렇게 섧게 울어대면 영가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노스님의 말투는 아이 유치원 원감만큼이나 꼬장꼬장했다. 어머님이 자꾸 준비물을 빠뜨리시면 아이가 원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사십구재가 시작되기 전 스님은 자매에게 한글로 풀어쓴 발원문 책자를 나눠주었다. 소리가 클수록 영가도 부처님도 잘 들을 수 있으니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으로 크게 크게 따라하십시다. 그러나 막상 독경이 시작되자 셋째는 또 울음이 터져버려 단 한글자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 사이다를 올리냔 말이야. 내가 오죽하면 웃음이 나왔겠어. 첫째가 세번째 캔맥주를 땄다. 속 버려, 같이 먹어. 둘째가 돗자리 위에 휴지 한장을 깔고 절에서 챙겨온 깐밤과 대추를 올렸다. 첫째가 깐밤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어금니 사이로 알밤이 딱 하고 깨지는 느낌이 뜻밖에 쾌감을 주었다. 동시에 기억 하나가 딸려 올라왔다. 아버지는 딱딱한 걸 잘근잘근 씹는 걸 좋아했다. 부엌에는 북어나 마른오징어, 피문어 따위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주말의 명화를 보기 전 아버지는 첫째에게 북어 한마리를 두드려 오게 했다. 첫째는 다듬잇돌에 북어를 대고 방망이로 탕탕 두드렸다. 한번 내리칠 때마다 북어가 원래의 꼴을 잃고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타격의 물리적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오른팔 근육은 쾌감을 느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실컷 두들겨 팬 북어를 가지고 안방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그 위에 북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놓았다. 아버지와 세 딸은 북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영화를 보았고 주로 아버지가 좋아하는 서부영화였다. 방바닥에는 노란 북엇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런 밤이면 입속이 짜 자주 깼다.

 

살아생전 애착하던 사대육신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거두니 주인없는 목석일세

 

둘째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나가던 노인이 노골적으로 흘끔거렸다. 둘째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포기했다. 둘째는 자매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십수년 만에 만난 친척들은 아버지 영정을 한번 보고 상주 자리에 나란히 앉은 세 딸을 한번 보고는 꼭 이렇게 덧붙였다. 둘째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구나. 갸름한 눈매며 뾰족한 하관 같은 것들은 둘째 스스로 생각해도 아버지와 상당히 비슷했다. 그러나 닮는다는 개념이 겉모습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양식까지 아우르는 것이라면 둘째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둘째가 냉소적이고 의심이 많은 편이라면 아버지는 매사에 태평한 사람이었다. 둘째가 현실적이라면 아버지는 이상적이었다. 둘째는 스무살이 넘어 독립하면서부터 부모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아버지 역시 언제부턴가 딸들 앞에서 멋있어 보이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둘째가 처음부터 아버지를 냉소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둘째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만큼 아버지를 가장 잘 따랐다. 아버지도 먼 친척집을 방문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간만에 밤낚시를 가게 되면 꼭 둘째를 데려갔다. 둘째 인생 최초로 꽃을 꺾어 바친 남자는 아버지였다. 낚싯바늘에 지렁이 미끼 꿰는 법을 알려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밤하늘에서 오리온자리 찾는 법을 알려준 사람도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 시절 아버지는 어린 둘째에게 하나의 종교였다. 배교는 느닷없이 일어났다.

집집마다 전화번호부가 있을 당시 자매의 집에는 아버지와 동명이인의 교수님을 찾는 전화가 가끔 걸려왔다. 국립대 교수라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이름도 똑같았고 하필 자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처음 그런 전화를 받았을 때 둘째는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의 남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게다가 교수님이라니. 둘째는 어느새 교수라는 직업까지 흠모하게 되었다. 장래희망란에 국립대 교수라고 또박또박 적어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날 시험을 보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는 평소와는 다른 밀도의 공기가 감돌았다. 낯선 적요를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는 그 국립대 교수를 찾았다. 왜 그랬을까? 둘째는 평소처럼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 아버지는 지금 집에 안 계세요. 세미나가 있어서 오스트리아에 가셨어요. 일주일 후에나 돌아오실 거예요.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단계 높았고 유난히 발랄했다. 상대는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선가 공기를 흩트리는 전파음이 들려왔고 동시에 둘째의 심장이 무섭게 날뛰었다. 둘째는 세미나가 뭔지 정확히 몰랐고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급기야 온몸이 떨려왔다. 그날 밤 둘째는 아홉시 뉴스를 보는 아버지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왜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국립대 교수가 아닌가. 왜 아버지에게는 묵은 책 냄새가 풍기는 서재가 없는가. 누구보다 훤칠하게 잘생기고 양복도 잘 어울리며 중저음의 부드러운 음색까지 갖춘 저 남자는 왜 국립대 강의실로 출근하지 않고 저렇게 파자마 차림으로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가. 왜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부모님 직업란에 ‘무직’이라는 참담한 두 글자를 써넣게 하면서 저토록 태평한 얼굴로 북어 조각이나 씹어대고 있는가.

 

일가친척 많이있고 부귀영화 높았어도

죽는길엔 누구하나 힘이되지 못한다네

 

그날 셋째는 한의원 물리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어깨부터 시작된 통증은 등허리를 지나 어느새 골반 위쪽까지 당도해 있었다. 한의사는 아무래도 평소의 자세와 관계가 있을 거라고 했다.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당신 우익이네? 남편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했다. 그날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한의원에 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찜질과 부항과 다양한 물리치료기가 셋째의 몸을 어루만졌다. 오직 감정 없는 그것들만이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위로했다. 몸 오른쪽에 고슴도치처럼 가느다란 은색 침을 잔뜩 박아놓고 까무룩 잠에 빠져들 때 머리맡의 전화기가 울렸다. 첫째였다. 자매는 살갑게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만나면 금세 허물없이 수다를 떨 정도로 친밀했지만, 별 용건도 없이 전화를 거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 시간에 첫째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셋째는 불길함을 느꼈다. 등에 꽂힌 은색 침이 지르르 울렸다. 전화기 너머 첫째가 잔뜩 억눌린 소리를 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겨우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었다. 왜 그래? 왜 그러는데? 셋째는 공연히 윽박을 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짓눌렀다. 어서 말하라고 다그치면서 사실은 무서운 말일랑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협박. 조용했던 치료실이 술렁였고 간호사가 달려왔다. 셋째는 조그만 전화기를 꼭 붙들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어서 말해! 울지 말고! 오히려 겁에 질린 건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서둘러 셋째의 등허리에 박힌 자잘한 은색 침을 뽑아냈다. 정신없이 옷을 꿰어 입고 치료비를 던지듯이 치르고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셋째는 울지 않았다. 당장 가서 큰언니를 혼내주겠다는 듯 단호하게 굳은 표정으로 병원까지 차를 몰았다.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상복으로 갈아입을 때에야 여태 발꿈치에 박혀 있던 은색 침을 발견했다. 양말 뒤꿈치에 동그랗게 핏자국이 나 있었다.

 

이세상에 처음올때 영가님은 누구셨고

사바일생 마치시고 가시는이 누구신가

 

생각해보면 우리 오늘 완전 쇼한 거야. 아버지가 언제 절에 다니는 거 봤냐? 첫째는 맥주 세캔을 모두 마셔버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돗자리 위 자세가 점점 흐트러지더니 아예 둘째의 가방을 베고 드러누웠다. 절에 다닌 건 자매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식들 생일이 다가오면 반드시 절에 가 축원등을 달았다. 너희가 별 탈 없이 살아온 것은 모두 부처님 덕분이다. 어머니는 버릇처럼 말했다. 자매는 어둔 길에 들어섰다고 느낄 때마다 저 멀리 어머니가 켜둔 오색등이 가느다란 빛을 발하며 자신들을 이끌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셋 다 종교가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지켜준다는 생각은 꽤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사십구재 치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발인과 삼우제까지 마치고 자매는 어머니가 평소 다니던 절에 연락했다. 노스님이 상좌 하나 데리고 근근이 꾸려가는 변두리의 작은 절이었다. 노스님은 한참 만에 어머니를 기억해냈고 아버지 소식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며 탄식했다. 그러곤 같은 입으로 무람없이 사십구재 비용을 말했다.

 

몸뚱이를 가진자는 그림자가 따르듯이

일생동안 살다보면 죄없다고 말못하리

 

바람이 눈앞의 수양벚나무를 흔들자 꽃잎이 후드득 떨어졌다. 자매는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을 눈앞에 두고 잠시 현실감각을 잃었다. 아름답구나. 봄이 말했다. 곧 사라질 아름다움이지. 여름이 대꾸했다. 두 언니는 가을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셋째의 입에서는 전혀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본인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

 

겨울이는 잘 살고 있을까?

첫째와 둘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었다는 듯. 불경한 말이 쏟아졌다는 듯. 자매는 겨울이라는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지난겨울 끝자락부터 오늘까지 49일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애도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환상을 보았다.

뭔 소리야? 첫째는 일단 얼버무렸다. 어떤 겨울이? 둘째는 눙쳐보려 했다.

자매가 서로를 봄 여름 가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계절이 빠져 기우뚱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어머니가 넷째 동생을 낳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사계절이 부드럽게 순환하려면 겨울이 필요했다. 자매는 늘 짝을 맞춰줄 겨울을 찾아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인형이 겨울이가 되기도 했고 아버지가 어디서 얻어온 강아지가 한동안 겨울이로 불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끼는 마당의 모란꽃이 피면 겨울아, 태풍이 불 때마다 덜컹거리며 저절로 열리곤 했던 문짝을 향해서도 겨울아, 했다. 어머니가 봄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봄은 여름에게, 여름은 가을에게 떠넘기고, 가을은 곁에 있는 아무것에게나 겨울아 네가 하렴 하고 떠넘기다 다 같이 까르르 웃는 게 한동안 유행이었다. 겨울은 만만한 막냇동생, 농담거리, 휴지통, 믿고 비빌 언덕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데려온 아이는 셋째보다도 한참 어렸다. 사내아이였다. 얼굴만은 둘째를 쏙 빼닮았다. 아버지가 겸연쩍은 얼굴로 소개한 아이의 이름에는 겨울 동()자가 들어가 있었다. 자매는 딱딱하게 얼어붙어버렸다. 안 그래도 시름시름 말라가던 어머니는 아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손수 약을 달여 어머니에게 바쳤다. 딸들은 한동안 아버지와 말을 섞지 않았다.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아이는 집안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온 집안에 사내아이를 뿌려놓은 것처럼 피할 도리가 없었다. 비겁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면서 자기가 데려온 사내아이는 모른 척 굴었다. 사내아이는 금세 입 주변이나 셔츠 앞자락을 더럽혔다.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내아이를 돌봤다.

겨울이 자매의 집에 머물다 간 시간은 정확히 얼마였을까? 겨울이 사라진 뒤로 자매는 한번도 그 존재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살면서 한번쯤은 문득 조그만 머리통이랄지 말랑한 볼 같은 것을 떠올린 적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잡초처럼 뽑아버렸다. 각자 어른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사내아이에 관한 기억은 고향집 다락방에 처박아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이라고. 아니, 거짓말이다. 자매는 각자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을 통해 겨울을 떠올린 적이 적어도 한번은 있다.

첫째의 기억은 햇병아리 신임교사였던 20여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그녀는 남자고등학교에서 거칠고 무례한 남성호르몬 덩어리들과 싸우느라 늘 기진맥진했다. 남학생들은 그녀의 수업을 만만한 오락시간으로 여겼다. 제발 수업을 듣지 않아도 좋으니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기를, 방해가 된다는 옆반 선생님의 항의만 듣지 않기를, 그녀는 늘 기도하며 수업에 들어갔다. 소위 문제아들이 포진해 있는 반에 들어가려면 몇시간 전부터 위경련이 찾아올 정도였다. 그 반에서 유독 삐딱한 자세로 거친 농담을 던지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날은 농담이 지나쳤고(혹은 지나치게 느껴졌고) 그녀는 급기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휘봉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다. 폭력을 뜻하는 거친 말도 내뱉었다. 아이들은 이 햇병아리가 어떻게 하나 보자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일제히 집중했다. 아이는 좀 전까지의 기세등등한 표정은 간데없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핍박받는 무구한 아이라도 되는 양. 비겁한 자식. 분노가 한심함으로 바뀌었다. 손바닥 내밀어. 딱 열대만 때릴 생각이었다. 절도있게, 박자를 맞춰가며, 권위적으로 열대를 가볍게 때리고 끝낼 생각이었다.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걔는 안돼요. 반장이 앞으로 나와 교탁 한 귀퉁이에 붙은 작은 쪽지를 가리켰다. 특히 주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는 학생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맨 위에 그 아이의 이름이 있고 옆 괄호에 사유가 있었다. 혈우병. 고개를 들어보니 그 아이가 이제 알아들었느냐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씩 웃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한발 앞으로 달려나가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아이의 몸이 휘청하며 흐트러지는 모습을 볼 때의 참담함과 오른팔에 물리적인 타격의 감각이 전해올 때의 쾌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자세를 낮춰 이미 쓰러지고 있는 아이의 뺨을 한대 더 후려쳤다. 또 한대. 또 한대.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가 나요! 바닥에 쓰러진 아이가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희귀질환을 앓는 가여운 아이, 행여 작은 상처라도 날까봐 체육시간에도 맘껏 뛰지 못하는 안쓰러운 아이가 거기 웅크리고 있었다. 누나, 잘못했어요. 사내아이는 여전히 가위를 든 손으로 용서를 빌었다. 바닥에는 그녀가 며칠에 걸쳐 완성한 프랑스 자수 작품이 갈가리 잘려 있었다. 다음날 검사를 받아야 하는 가사숙제였다. 가위가 있기에 집어 들었고 천이 있기에 잘랐을 뿐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한 짓은 절대 아니라는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병원에 보내주세요. 아이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울부짖었다. 누나, 잘못했어요. 겨울은 끝내 울지는 않았다. 겨울의 본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면서도 첫째는 분노했다. 밤새 숙제를 도와줄 건강한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그런데도 다들 이 가엾은 아이를 용서해달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겨울의 손에서 가위를 뺏어 들었고 부들부들 떨었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결단했다. 왼손으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한줌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두피 가까이 가윗날을 들이밀어 싹둑 잘라버렸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의 독특한 감각이 오른손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겨울의 바지 사이로 노란 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셋째도 난데없는 곳에서 겨울의 기억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무렵 셋째는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었는데, 모든 터널이 그렇듯 매캐하고 자욱했다. 걸핏하면 정신을 빠뜨리고 다녔고 방금 잃어버린 것과 전혀 다른 조각을 주워 오곤 했다. 남편이 유럽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여름밤이었다. 아이를 재워놓고 밤거리로 나갔다. 어디선가 술을 마셨고 어느샌가 처음 보는 남자와 잤다. 예상했던 것처럼 빤한 전개는 아니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애였다. 술집을 나와 비틀거리며 함께 택시를 탔는데 남자애는 모텔이나 호텔이 아닌 자기 집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비슷한 모양의 원룸 건물이 줄줄이 늘어선 낯선 동네였다. 남자애의 집은 정갈했다. 스칸디나비아풍 침대에서 두 사람은 천천히 몸을 더듬었다. 사실 둘은 술집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별로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어쩌다 합석했고 어쩌다 춤을 췄고 어쩌다 함께 택시를 탔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면서 오래된 연인처럼 편안하게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갔다.

동이 트기 직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술은 말짱하게 깨 있었고 아이가 벌써 일어나 울고 있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옷을 꿰입었다. 남자애는 자고 있었다. 순간 남자애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알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어서 빨리 이 집을 빠져나가 따뜻한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더는 믿지 않는 나이였다.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는데 등 뒤로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잠기운이 묻어나는 누나 소리에 그녀의 심장이 그대로 현관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꽤 오래전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누나, 가지 마. 그 무렵 셋째는 겨울과 한방을 썼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몰래 두 언니가 자는 방으로 옮겨 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베개를 들고 몰래 방을 빠져나가려는 셋째의 등 뒤로 잔뜩 겁에 질린 겨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가지 마. 나 무서워. 베개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어린 겨울이 그 시간까지 잠들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자신을 붙잡는 것도 놀라웠다. 셋째는 잠시 망설였다. 모른 척 언니들의 방으로 갈 것인가, 그냥 이불 속으로 돌아갈 것인가. 언니들과 남동생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졌다. 동전은 던져졌다. 그녀는 뒤를 돌아 어린 겨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눈 감아. 겨울은 어린 눈망울을 더 크게 떴다. 얼른 눈 감아. 안 그러면 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겨울이 질끈 눈을 감았다. 찍소리라도 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셋째는 두꺼운 이불을 겨울의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되어 들고 있던 베개를 겨울의 얼굴 위에 올려두었다. 움직이지 마.

남자애가 침대 밖으로 나왔다. 얼굴은 푸석거렸고 눈도 제대로 못 떴다. 누나, 가게요? 그녀는 신발을 마저 신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남자애가 옷장에서 옷 한벌을 꺼내오더니 그녀에게 입혀주고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후드까지 씌워주었다. 새벽이라 쌀쌀해요. 그녀에게 터무니없이 큰 옷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풍겼다. 그럼 잘 가요, 누나. 그녀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집을 나섰다. 큰길까지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행선지를 말하고 나서야 남자애가 그 다정한 태도를 하고도 그녀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묻고 싶어 망설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구리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지독한 실연이었다. 오래전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겨울의 흔적이 통째로 사라져 있음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각과도 비슷했다. 셋째는 남자애가 입혀준 후드집업을 버리지 않았다.

정신 차려. 둘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이 무슨 날이야? 둘째는 나무라는 눈빛으로 셋째를 노려보았다. 옛 우물은 함부로 들여다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라고 유난히 자신의 얼굴을 빼닮았던 사내아이를 떠올린 적이 없었겠는가. 지난겨울 장례식장에서도 그녀는 조문객 중에 자신과 얼굴이 비슷한 남자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골똘히 살폈더랬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아이가 피로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찾아와 구석에서 묵묵히 육개장을 떠넣는 모습을 줄곧 상상했다. 그러느라 첫째와 셋째와는 달리 장례식 내내 맘 놓고 울 틈도 없었다. 오늘 사십구재를 지내는 동안에도 둘째는 자꾸만 다른 곳으로 엇나가는 자신의 생각을 붙들고 씨름했다. 아버지가 자매의 아버지라는 이 세계의 자아를 버리고 영영 다른 곳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이니만큼, 둘째는 온통 아버지에게 집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노스님의 독경과 목탁 소리, 젊은 스님의 바라 소리가 쟁쟁 울리는 동안에도 자꾸만 미끄러지는 정신줄을 안간힘으로 붙들었다. 임종의 순간 서서히 체온이 빠져나가던 그 야윈 팔이 유년의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자전거를 몰던 든든한 팔뚝과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발원문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 집착 말라 가르치는 그 육신이 사실은 그녀를 만든 시작이자 끝이었음을 아프게 새겼다.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영원히 잠든 아버지의 육신은 무거웠다. 그녀는 단 한번도 아버지를 업어준 적이 없었다. 다시는 태어나지 마요. 그게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말이었다. 노스님이 준비해준 아버지의 종이옷을 태우면서, 봄의 대기로 하얀 재를 풀풀 날리면서, 그녀는 오늘 자신의 유년을 영영 떠나보냈다. 더불어 어느 추운 겨울날 눈이 얼음장으로 꽁꽁 얼어붙은 골목길에 어린양 한마리를 놔두고 혼자 도망쳐버린 기억도 영영 하늘로 날려버렸다. 아버지, 내 죄까지 가져가고 다시는 태어나지 마요.

 

*

 

산책로에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큰 개를 끌고 가던 여자가 자매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등산복 차림의 노인은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자매의 얼굴은 봄볕 아래 한껏 불콰했고 돗자리 위 자세도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오후가 배처럼 출렁이며 서쪽을 향해 흘러갔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모여 서서 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리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셋째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사람들 무리를 뚫고 들어갔다 나온 셋째가 언니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첫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고 둘째는 정말로 가기 싫은 내색을 하며 일어났다.

가까이서 내려다본 개울물은 생각보다 얕았다. 봄가뭄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뭘 그렇게 골똘히 보는 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에 선 빨간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가리켰다. 저기, 저기 꺼먼 거. 얕은 개울물 한가운데 몸통이 큰 물고기 한마리가 멈춰 있었다. 보통 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큼직한 관상용 잉어였다. 아니, 저게 왜 저기 있다냐? 조그만 푸들을 품에 앉은 노파가 혀를 찼다. 근처 호수공원에서 키우던 게 여까지 내려온 게지. 다른 노파가 아는 척했다. 죽은 거 아녀? 아냐, 지느러미 움직이잖아. 그래도 곧 죽겠지. 등이 말라 죽겠어. 노파의 말처럼 물고기의 등은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몸 아래쪽의 아가미로 겨우 물을 빨아들이며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아유, 딱하다. 푸들을 안은 노파는 연방 혀를 차며 누가 뭘 좀 어떻게 해보라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고기는 시원스럽게 앞으로 헤엄쳐나가지도 못하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도 못하는 게 덫에 빠진 짐승 같았다. 빨간 등산복 여자가 갑자기 헛둘헛둘 구보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결국, 자매와 푸들을 안은 노파만 남았다. 몸통보다 터무니없이 작고 여려 보이는 가슴지느러미가 물속에서 부지런히 파닥거렸다.

셋째가 구두를 벗더니 비탈길을 내려가 개울로 들어갔다. 첫째와 둘째가 말릴 틈도 없었다. 셋째는 물고기가 있는 개울 한가운데를 향해 허우적거리며 걸었다. 야, 조심해. 첫째가 말했다. 셋째가 가까이 가자 물고기의 크기가 실감 났다. 물고기는 생각보다 컸다. 색깔까지 거무튀튀해서 조금 전까지 딱하고 가엾어 보이던 게 셋째의 희고 가는 팔뚝과 비교하니 징그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양손으로 물고기 몸통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물고기는 어느새 셋째의 손에서 벗어나 퍼덕거리며 공중제비를 넘더니 더 먼 쪽에 뚝 떨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물고기가 떨어진 자리는 물이 더 얕고 큼직한 바위까지 있었다. 물고기는 아까와는 다르게 마구 몸을 퍼덕거렸다. 희뜩이는 배가 자꾸 드러났다. 아가미 덮개가 눈에 띄게 헐떡였다. 아이고, 저를 어째! 푸들 노파가 큰소리로 탄식했다. 어떻게 좀 해봐. 셋째는 물고기 쪽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마구 몸을 뒤척이는 물고기의 위세에 주춤거렸다. 그러다 몸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물속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탄성을 지르지 않았다. 푸들을 안은 노파가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셋째가 울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아무도 셋째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 아유, 나도 몰라. 나도 모른단 말이야. 첫째가 서 있던 자리에 주저앉더니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둘째는 난감한 얼굴로 바로 옆의 언니와 물속에 주저앉은 동생을 번갈아 보았다. 구경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아, 그만들 해. 창피하게. 둘째가 신경질을 부렸다. 아, 씨발.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들 좀 하라고!

 

셋째의 몸에서 비린내가 났다. 첫째가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학교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는데도 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맥주를 한캔만 마신 둘째가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가장 많이 마신 첫째는 조수석 의자를 끝까지 젖히고 누웠다. 뒷자리에 혼자 앉은 셋째는 물티슈로 벗어버린 옷에 묻은 물이끼 따위를 닦아냈다. 그늘 없는 야외 주차장이라 차 안은 금세 찜통이 되었다. 자매는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져버렸다.

시동을 켜고 네비게이션을 여기저기 눌러보던 둘째가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첫째를 흔들었다. 네비 좀 찍어봐. 첫째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윗몸을 일으키더니 신경질적으로 네비게이션을 조작했다. 조금만 참아.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뒷자리의 셋째가 짐짓 어른스럽게 말했다. 지랄. 첫째가 퉁을 줬다. 그래, 아직 오늘의 할일이 하나 남았지. 둘째는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자신답지 않게 오늘은 너무 말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에벤에셀 요양병원, 안내를 시작합니다. 자동차가 비틀거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