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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일본 사회운동을 통해 본 대전환

 

 

오시까와 준 押川淳

일본 월간지 『겐다이시소오(現代思想)』 편집자.

 

*이 글은 원제 「日本社会運動から大転換」을 옮긴 것으로, 2016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주제: 동아시아에서 ‘대전환’을 묻다)에서 발표된 글을 추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올해 2월 중순 발표된 한 블로그 글을 둘러싸고 일본사회는 크게 동요했다. 제목은 ‘보육원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인데, 그 요점을 인용하겠다.

 

이게 뭐야 일본.

일억 총활약 사회가 아니던가.

어제 보기 좋게 보육원에 떨어졌어.

어쩔 건가. 나더러 어떻게 활약하란 말인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회에 나와 일하며 세금을 내주겠다는데 일본은 무엇이 불만인가?

뭐가 저출산(少子化)이냐구, 제기랄.

아이를 낳는 건 좋지만 희망대로 보육원에 맡기는 건 거의 무리이니 아이를 낳는 놈일랑 있을 리 없지.

 

이것은 익명의 글이지만, 아사히(朝日)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글쓴이는 토오꾜오(東京)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여성이다. 한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보육원 입학을 거절당해 복직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보육원 부족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감사를 받는 보육원에 보내지 못하는 ‘대기 아동’은 계속 증가해, 현재는 문부과학성 공표에 따르면 6만명, 민간 추산으로는 50~90만명에 달한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환경이 나쁘고 비싼 비인가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친인척의 협력을 구하거나, 엄마가 복직을 단념하거나 중 하나다. 위의 블로그 글은 이 상황을 고발한 것이며, 내용은 아베(安倍)정권의 슬로건인 ‘여성활약사회’에 우롱당했다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토오꾜오올림픽에 투입한 거액의 예산과 국회의원이 받는 높은 보수를 비난하며 그것들을 없애고 보육원을 확충하라고 주장한다.

이 글이 발표되자마자 트위터를 중심으로 수많은 공감이 뒤따랐고, 2월 하순에는 신문·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에서도 연이어 소개됐다. 야당인 민주당(현 민진당)의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櫻里) 의원은 229일 국회에서 글을 인용하며 아베정권의 기만적 정책을 추궁했지만, 그에 대한 아베의 답변은 “익명인 이상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였으며, 여당 의원들도 “글쓴이가 누구냐”라는 야유를 계속했다. 이런 태도에 호응하듯이 인터넷상에서는 블로그에 글을 쓴 이가 야마오 의원 본인일 거라는 루머가 확산됐다.

하지만 이런 반동적인 대응은 당사자인 부모들을 넘어 광범위한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금방 “#보육원_떨어진_건_나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대기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일본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제 ‘벌칙 게임’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아이를 위해 취업을 포기하는 여성의 수는 수십만을 웃돌고, 복직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대부분 직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 한편 아이들을 맡는 보육사들은 고도의 전문성과 중노동이 요구됨에도 전체 직종의 평균 월수입보다 11만엔이나 낮은 임금밖에 받을 수 없고(대략 15만엔이라고 한다), 대다수가 몇년 후에 퇴직한다.

하지만 실은 보육원 확충을 요구하는 운동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2013년 봄에는 토오꾜오 내의 각 자치단체(보육원 인가는 자치단체가 담당한다)에 부모들이 일제히 항의한 것이 ‘보육원 봉기’라 하여 주목받았다. 또한 몇몇 비영리기구(NPO)에 의한 공제형 보육 시도에도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 블로그 기사에 공감한 부모들도 물론 그러한 지역마다의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대처를 숙지하며 참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분노는 지금 “일본 죽어라”라는 가장 솔직한 형태로 이 나라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2

 

위와 같은 구도는 지난여름 안보법제(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국과 자위대의 공동 군사행동을 가능케 하는 법 개정옮긴이)에 대한 대규모 항의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운동은 1960년의 안보투쟁 이래 처음 대학생이 주도했다고 보도됐는데, 주목된 학생단체 SEALDs(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의 멤버가 왜 지역이나 자기 주변의 사회문제, 혹은 NPO 같은 활동이 아니라 국가의 큰 문제에 관심을 갖느냐며, 특히 사오십대에게 비판받았다고 한다. 너희 학생들은 평화헌법이나 전후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장할 신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인물인 오꾸다 아끼(奥田愛基)는 스스로를 가두항의로 내몬 것은 이른바 호헌(護憲)의식이 아니라 ‘우습게 보지 말라’는 분노의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평화헌법이나 전후민주주의에 대한 집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 평가도 개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하지만 자민당이 연면히 이어온 개헌논의 중에서도 아베정권에 의한 논의는 특히 권위주의적이며, 그 일환으로서 안보법제도 비논리성과 자의적인 근거, 그리고 합의의 요구에 대한 명백한 조소() 아래 정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엉터리 (비)정치가 횡행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그들을 가두로 내몬 것이다.

작년 8월부터 9월에 걸쳐 최고조에 달한 반안보법제화운동은 국회 앞에 10만에서 20만의 민중을 모았다. 그곳에는 평화헌법과 전후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재결집한, 이른바 ‘호헌파’라 불리는 시민과, 오꾸다가 말한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함께 자리했다. 대다수는 30대 후반(1977년 태생)부터 고등학생(1997년 태생)에 속하고, ‘#보육원_떨어진_건_나다’ 하는 사람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이른바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한가운데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다.

버블 붕괴 후 일본경제는 긴 저성장기에 접어들었지만, 공적자금의 대량투입과 저금리정책, 감세에 의해서 대기업과 은행은 우대를 받아 자금을 모으고 국제경쟁력을 유지했다. 여기서는 상세히 논하지 않지만,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형 기업경영인 ‘가족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접합하면서 연명해왔다. 1985년 남녀고용기회균등법에 따라 ‘남자와 동등하게 일하는’ 한에서 편입된 여성 정규직 사원의 대다수는 기업에서 부가적인(fringe)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겉으로 선진성을 어필하는 재료가 되는 한편, 실제로는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 고용자와 함께 노동시장에서 자력조정 밸브가 되었다. 이미 기업경영에 도의성을 문제제기하는 일이 없어졌고,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은 한없이 증대·다양화했다. 비정규 고용은 임금노동자의 40%에 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전례없을 정도로 확대·고정화되고 있다. 그 결과 남성 정규직 사원과 주부(主婦/主夫)를 포함한 대부분의 노동자는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여당인 자민당도 복지·사회보장·교육에 공적 지출을 삭감하고 시장원리를 도입해 경제계와 협동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대신 복지·사회보장의 장에서는 자기책임론과 수익자부담론이, 교육의 장에서는 권위주의가 강조되어, 누구의 눈에도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계속 비정치화됐다. 또한 그것은 다른 한편에서 미일 군사동맹 강화 및 군국주의화(militarization)와 접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해를 거듭해온 것이다.

 

 

3

 

이런 목소리는 후꾸시마(福島)원전사고(2011)에 의한 방사능 공해를 계기로 최초로 폭발했다. 몇몇 사회조사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피폭의 위험성에 민감하게 반응해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과, 반원전운동의 중심 담당자에 정규직 이외의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지진 이후 2013년까지 그들이 ‘국회의사당 앞’을 상징으로 하는 가두정치의 장을 펼쳐 연 것으로, ‘잃어버린 20년’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학생, 보육세대)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그동안의 20년은 자동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라는 점이다. 빼앗은 쪽은 누구인가. 일본경제인단체연합회(이하 경단련)를 중핵으로 하는 경제계(대기업군), 여당 자민당(+공명당) 및 그 지지층, 관료기구, 일부 학자·언론인·대중매체의 집합체다. 블로그 기사가 ‘일본’이라고 명시한 것은 이들 집단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부정의가 계속 축적되는 상황을 나는 ‘부패’로 바꿔 말하고 싶다. 이같이 오랜 기간에 걸친 부정의를 부패라 말하지 않고 뭐라 할 것인가.

80년대 후반의 거품경제기에 연이어 폭로된 정치비리로 인해 이른바 ‘정치개혁’이라는 명목상의 양당제가 정착했다. 하지만 그 일단의 성과인 민주당정권하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부패가 단지 정치비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은 데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누가 봐도 분명하게 했다. 전력회사·관료기구·학술계의 트라이앵글에 의한 ‘원자력마피아’는 그 전형의 사례였다.

반원전운동에서 반안보법제, 그리고 보육원 문제로 이어지는, 그동안의 사회운동을 꿰뚫는 공통의 모티브는 이같은 심장부 깊숙한 부패에 대한 분노다. 오꾸다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은 그 상징을 안보법제에서 발견하고, ‘우습게 보지 말라’는 심플한 표현을 구심점으로 대다수의 새로운 참가자를 국회의사당 앞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사람들의 분노가 “죽어라!!!”라는 적나라한 말로 표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4

 

아마 최근 20년간 가장 경단련 친화적일 아베정권은 민주당정권이 서서히 회복시키고 있던 복지·사회보장을 ‘아베노믹스’로 파괴하면서 최종 목적지인 개헌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래에 제시한 최신 여론조사(와 과거 35년 남짓의 추이)에 따르면, 아사히신문(리버럴)과 니혼케이자이신문(경단련 편향) 양자에서 그동안 개헌파는 호헌파를 밑도는 데까지 감소하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니혼케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2016.5.3 발표)

 

이 그림은 1980년부터의 경과를 나타내는데, 2007년까지 완만한 호헌파의 감소는 사회당·사회민주당의 쇠퇴와 궤를 같이한다. 호헌 여론은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로 상승하기 시작하며, 동일본대지진 피해를 입고 정점을 맞이한다. 민주당정권의 붕괴로 일시적으로 떨어지지만 그외에는 2011년 이후 거의 안정적으로 호헌파가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다. 즉 지금의 ‘호헌’을 지탱하는 것은 대지진 이후 정치적 주장을 하게 된 ‘신 호헌파’들이다.

이것을 아베정권의 급진적 우경화에 따라 국민의 평화의식이 다시금 커져 개헌 지향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면, 1950년대 상황과의 중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부패한 정권이 지향하는 목표, 이른바 부패의 극단적 상징이 아베의 개헌 주장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호헌운동이라고 파악하고 싶다. 이 20년 동안의 ‘빼앗긴’ 사람들과 대지진 후의 ‘신 호헌파’는 분명히 중첩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호헌운동이라는 표현을 취한 반부패투쟁이며, 과거 일본사회가 경험해본 바 없는 국면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평화헌법, 혹은 그것을 주창한 전후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리고 이 평화주의가 전제로 삼고 또 은폐하는 것에 대해 ‘신 호헌파’가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헌법을 특정한 장(topos)으로 삼아 축적되고 표현되고 있는 부패에 대한 분노는 평화헌법을 국민적으로 점유하면서 전후민주주의만이 보편타당하다며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호헌의 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현재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부패투쟁 가운데 하나에 호헌운동을 두는 것이며, 혹은 동아시아의 ‘빼앗긴’ 세대, ‘빼앗긴’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협동의 회로를 열 가능성인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심각한 규모에 이른 이 부패에 대한 분노는 공유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분노를 기축으로 삼아 일본사회에 전환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

 

 

5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731일에 치러진 토오꾜오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우파에 속하는 코이께 유리꼬(小池百合子)가 득표 총수의 거의 과반수를 획득하며 압승했다. 그녀는 매파적인 주장과 개헌에 대한 자세를 애매하게 취하면서, 자기가 남성에 지배된 자민당에 대한 반역자임과, 대기 아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음(그 정책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을 주장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지를 모았다. 이런 부패에 대한 분노와 헌법을 분리하고, 미봉책을 통해 불만을 해소하려는 전략은 당연하지만 아베정권에 의해서도 자행되고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개헌세력은 헌법을 둘러싼 토포스를 끊임없이 분리하면서(가령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본토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시간을 들여 개헌의 타이밍과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끈질기게, 또한 장소나 이슈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저항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분리정책과 싸우면서 분노를 심화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우선 자신의 생활권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진행되는 부패와 위기의 심각함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726일 밤, 카나가와(神奈川) 현 사가미하라(相模原) 시의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이 시설의 전 직원 남성이 침입하여 45명의 입주자를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 예단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만을 노린 증오범죄로, 세계적으로 봐도 유례없을 정도의 끔찍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범인 남성은 범행 전에 오오시마 타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할 수 있는 세계”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피력하면서 자신이 장애인을 ‘말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행동은 세계평화와 일본을 위함이니 오오시마 의장과 아베 총리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문의(文意)가 잘 통하지 않는 파탄된 편지이니 과잉의 의미부여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문장 중 “이유는 세계 경제의 활성화” “불행을 최대한까지 억제할 수 있다” 등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토오꾜오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따로오(石原慎太郎)가 “(장애인에게) 인격이 있는가” “(서양인이라면) 배제해버리지 않았을까” 같은 발언을 반복했던 일이다. 지금 이 사회에는 어디까지 공리주의적인 우성(優性)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부패를 방치하고 만 것은 아닐까.

부패는 어디에나 있다. 헌법도, 생활도, 신체도, 그 모두가 부패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둘러싼 미시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전후 일본과 헌법’ 같은 국민주의적인 문제 설정이 아니라, 지극히 미시적인 우리 개인 차원에서 헌법, 생활, 신체(그외 다양한 것)를 응축해 거기에 자기 고유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 위에 서로의 문제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가 모색되어야 한다.

총체로서 진행되는 이 부패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미지 하나를 제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일본어의 ‘부패(腐敗)하다’는 ‘Corrupt’(부폐腐廢하다)와 ‘Decay’(유기물이 썩다)의 양쪽 의미를 지닌 것인데, 유기물의 부패는 ‘발효’(Ferment)로 변환된다. 뛰어난 제빵사나 양조업자 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 중 미생물인 효모균의 효소 작용으로 발효식품을 만든다. 효모균을 배양하는 것은 대단한 시간과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좋은 효모균은 규격화된 식품에서는 배양할 수 없는 고유성과 다양성을 통해 우리 소화기관을 미지의 세계와 접속시킨다. 물론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나 이런 ‘발효’ 과정에서 상상력을 확장해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헌법을 ‘부패’시키는 세력에 저항하면서 묵수(墨守)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발효’시켜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스크랩 앤 빌드’(scrap and build, 비능률적 설비를 폐기하고 고능률의 새 설비로 대체하는 일옮긴이)와 노동력을 용도폐기하는 행위로부터 이뤄지는 ‘부패’한 기업사회에 대항하며 그것을 ‘발효’ 과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필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별 계층이 아니라 계층끼리의 상호작용 안에서 분명 진행될 것이다. 총체의 부패로부터 총체의 발효를 향해서. 그리고 발효를 매개로 성립하는 사회로. 우리는 조금씩 계단을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

번역: 박광현(朴光賢)/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