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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심사평
처음 편집부로부터 올해는 응모자가 작년보다 상당히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반가웠다. 이 엄혹한 시대에도 여전히 시는 읽히고 또 쓰이고 있었구나. 시의 존재감을 이런 식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그런 만큼, 패기로 무장한 새 얼굴의 시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책상 위 수북이 쌓인 원고들을 읽는 일은 그러므로 고된 임무였다기보다 순수한 설렘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과정에서 마음을 무르녹게 할 만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모호한 문장이나 의도적으로 꼬아 만든 비문과 오문을 도처에서 접했고, 그 속에 깃든 얕은 수법이 작품으로의 몰입을 방해했다. 번득이는 표현으로 미적 형상을 구현한 시편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거나 그 자체가 지나치게 가벼워 허탈감을 안기곤 했다. 좋은 시란 으레 화려한 말로 치장한 것이라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경험이나 관찰 없이 책상 앞에 앉아 막연한 상상에 기대어 시를 써내리는 데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요컨대 시를 쓴 이에 대한 믿음을 좀처럼 갖기 어려웠으며, 그럴수록 더욱 성실하고 듬직한 시인의 면모가 간절했다.
지난 6월 초부터 7월 중순까지 4명의 심사자가 예심과 본심을 연이어 진행했다. 900여명의 작품을 약 한달간 나누어 읽은 뒤 각기 두세명의 작품을 뽑았다. 이후 최종심 자리에는 총 10명의 작품이 놓였다. 심사자 각각의 기준과 안목을 반영한 듯 하나같이 개성적인 작품으로,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얼마간의 논의를 거친 뒤 설하한, 박선주, 김솔, 강응민, 한연희 등 5명의 작품으로 폭을 좁혀 이야기를 이어갔다.
먼저 설하한의 작품은 공장에서 야광시계를 만드는 소녀나 혼자 고철을 주우러 다니는 소년과 같은 근래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문 주체들을 중심으로 도시 빈민의 삶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응모한 다수의 작품에서 드러난 과도한 언술이 긴장감을 잃게 만들었다. 일부 시편은 운문으로 보기 힘들 만큼 장황했는데, 설명과 진술로 일관된 산문적 전개가 읽기를 지치게 했다. 종교적 소재를 대입해 깊이를 획득하려는 시도 또한 조금은 억지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박선주의 작품은 특유의 분위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보내온 10편은 모두 산문시임에도 막힘없는 유창한 호흡을 지녔으며, 자유롭게 뛰노는 시어들의 생동 또한 흥미로웠다. 그런 반면 지나치게 거친 문장이 치기어린 느낌을 준다는 점이 단점으로 거론되었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 또한 어설픈 면이 없지 않아, 다소간의 정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김솔의 작품은 웅숭깊은 사유가 돋보였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고된 생활감정을 드러낸 작품에서 “공장장도, 그도 어느 생에선가/한번쯤은 내 어머니였을 것이다”와 같은 문장은 무심코 울림의 파동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링’과 같은 제재를 좀더 긴밀하게 녹여내지 못한 점, 리얼리즘 계열의 시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한 점 등이 지적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보내온 11편의 시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작품은 강응민과 한연희의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두사람의 작품을 놓고 심사자들 사이 팽팽한 논의가 이어졌으며,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한연희의 「수박이 아닌 것들에게」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강응민의 작품은 세련된 수사를 바탕에 둔 시적 에너지로 시선을 압도했다. 표현 하나하나 공들여 세공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빛나는 구절들 사이 과한 치장의 흔적, 이를테면 “당신은 영원히 구두를 신지 않고 추락하는 것들을 닮은 눈꺼풀은 끝내 어둠으로 닿아서”와 같은 문장은 위태롭게 느껴졌다. 더욱이 이같은 감각과 화법이 본연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힘들었다. 기성의 스타일과 많은 부분 닮아 있고, 일부 시편의 경우 특정 시인의 색과 결이 묻어나기도 했다. 행여 이것이 최근의 시류를 의식한 결과라면, 스스로 좀더 단단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선자인 한연희의 작품 또한 이같은 충고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의 운용에 별다른 지나침이 없고, 대체로 유려하며,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능란했다. 자기기반이 탄탄하다는 증거로 보였다. 드세고 요란한 여러 응모작들 가운데 순하고 차분한 느낌을 지닌 것도 미덕으로 여겨졌다. “좋아하는 것들이 땀띠처럼 늘어난다”고, “쌓인 빨래더미 위에, 식은 밥그릇 위에 고요가 내려앉는다”고 쓴다는 것. 비상한 무언가를 가져다 으스대려 하기보다 일상의 친근한 사물과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 시의 풍경을 넉넉하게 채워낼 수 있다는 것. 그가 부려놓은 사근사근한 말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매력적인 편편의 시들이 완성되어 있었다. 5편의 작품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점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긴 단련의 시간을 짐작게 했는데, 심사자들은 그 시간을 헤아려 힘을 싣고자 합의했다. 지금 여기 놓인 작품들이 야무지고 착실한 새 시인의 출발을 알리는 좋은 증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그가 묵직한 사유로써 한층 깊이있는 세계를 구축해가길 기원한다.
박성우 박소란 송종원 진은영
시 | 수상소감
한연희
1979년생, 한신대 철학과 졸업.
죽은 아빠가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화가 납니다. 마구 소리 지르다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길몽입니까, 흉몽입니까.
길을 걷다가 커다란 물고기를 한마리 삽니다. 그걸 안고서 내가 환하게 웃었다는 누군가의 이 꿈은 길몽입니까, 예지몽입니까.
갈색 말 두마리가 다가옵니다. 그 탐스럽고 매끄러운 갈기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는 당신의 이 꿈은 길몽 중의 길몽이 되는 것입니까.
이 세개의 꿈은 최근에 꾼 꿈들입니다. 각자의 이 꿈들이 한데 모여 내게 행운을 안겨준 게 아닐까, 내 능력과는 별개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 벌어져 멍합니다. 잠시 발에 쥐가 나기도 하고, 머릿속이 시끄럽기도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가 실실 웃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꿔온 꿈이 이뤄진 것인데도 사실은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또한 꿈이 아닐까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써왔던 글들을 쭉 훑다보니 그동안 참 많이 쓰긴 했구나, 그동안 참 열심히 꿈꾸며 왔구나, 이런 생각에 어쩐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어제의 내가 아닌 게 되는구나. 다시 새로운 내가 되어 또 열심히 꿈을 꿔야 하는구나. 그러니까 잠을 자야지. 악몽을 꾸건, 개꿈을 꾸건 꿈을 꿔야지.
이렇게 마음먹는 동안 하루하루는 변함없이 굴러갑니다. 이 세계에서 나는 불명확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아무도 잡을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자만이 이 세계를 버텨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꿈을 꾸고 그 꿈을 쓰겠습니다.
그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릴 분이 더 많지만 어쩐지 여기에 적어 내려가면 그 마음이 퇴색되어버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래서 아껴두기로 합니다. 고맙습니다. 살면서 쓰면서 이 모든 은혜를 갚아나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토록 원했던, 하지만 가질 수 없었던 언니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언니들은 내게 시가 됐다가, 개가 됐다가, 악몽이 됐다가, 우주가 됐다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고.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이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나는 외로이 잘 살아갈 테니. 모쪼록 언니들도 진창인 삶을 잘 살아가소서, 부디.
소설 | 심사평
올해 19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479명이 총 1003편의 작품을 보내왔다. 다섯명의 심사위원은 예심에서부터 이번 공모에 수준 높은 작품들이 유독 많이 응모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 한 작품 허투루 읽을 수 없을 만큼 저마다 개성이 뚜렷했고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에도 공감이 갔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문제로 인식되는 가난과 불안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비판적 접근부터 감각적인 감성으로 에두르는 접근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미래적 상상력으로 완성한 SF와 기존 작품의 다시쓰기나 환상성이 두드러진 실험적인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사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그 자체로 문학적인 표현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그 어느때보다 고심 끝에 선택된 본심 진출작 중에서 「정선드라이브」는 개성적인 인물과 탄탄한 서사에서 오는 재미와 긴장감이 있었다. 문장 역시 여운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교통사고로 파국을 맞는다는 결말은 다소 쉬운 봉합이 아니었을까. 함께 제출한 「트리거 해피 솔저」는 역사적 비극을 어떻게든 지금 이 시대에 녹여내려 했던 그 순정한 욕심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었으나 현재의 서사가 밋밋하고 ‘트리거 해피 솔저’의 의미랄지 상징성이 작품을 관통하지 못하여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화양연화」는 중산층 여성의 일탈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짙은 허무와 쓸쓸함은 그 통속성을 누그러뜨리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감정이 아니라 돈으로 연결된 두 남녀의 일시적인 관계는 섬세하게 묘사됐지만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일탈이 무엇 때문인지는 잘 표현되지 못한 듯하다. 「아마 늦은 여름, 저수지」 속 일탈 역시 설득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화양연화」가 장편이었다면 인물의 역사가 확장되면서 호소력있는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더라도 개작하여 다시 도전해보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그만큼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오만원」은 그들의 절박한 생존방식과 자본과 위계에 따른 인간관계의 위선을 사실적으로 묘파했다. 단문의 문장, 영화적 장면전환, 디테일한 묘사,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 등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재능이겠으나 아직은 거칠다는 게 중론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피 흘리는 모습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설득력이 부족했다. 같은 작가의 「위풍당당, 내가 간다」는 무엇보다 보통의 성장소설을 따르지 않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서술되어 단조로운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돌아오는」은 누가 봐도 잘 씌어진 단편이다. 불행의 총량이 같고 죄로 인해 그 균형이 맞춰진다는 쉽지 않은 주제가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마치 롱샷으로 찍은 영화처럼 주인공의 삶에 거리를 두면서도 주제와 서사를 작동하게 하는 비밀스러운 사건을 그 안에 숨겨두고 그 여파는 생략하는 솜씨 또한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함께 보낸 「겨울의 기상학」이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잔잔한 울림을 준 것 역시 그 수준을 증명한다 하겠다. 그럼에도 끝까지 지지를 보내지 못한 것은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 독자를 혼란이나 격정에 빠뜨리는 장면의 부족이라는 결점으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지치지 말고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뒤에도 독자의 머릿속에서 진동하게 하는 장면 혹은 문장을 찾아가길 당부드린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마그마」와 「오늘의 할일」이었다. 두 작품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아 토론은 원점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긴 논의 끝에 「오늘의 할일」을 선택한 것은 작품 자체의 우열을 떠나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앞으로 넓고 다양한 세계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일단 「마그마」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읽고 나면 아련함이 남는 작품이었다.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한 채 아픔을 모른 척하며 살아가는, 누군가를 죽이는 꿈이라도 꾸어야 가까스로 살 수 있는 젊은 연인들의 고단하면서도 허무한 몸짓 때문에 읽기를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본 장면도 많았다. 그러나 심사가 진행되면서 폐쇄된 관계 이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려면 응모자에게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애정 어린 조언이 잇따랐고, 문답형 문장이 너무 빈번하게 나온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함께 보낸 「해빙기」는 삶의 균열을 포착해내는 장면이 많아 인상적이었으나 그 균열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채 평이하게 마무리된 것도 사실이다.
당선작 「오늘의 할일」은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빌미로 만나 천변 산책로에서 나들이를 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언뜻 미니멀한 연극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무대는 한정되어 있고 첫째, 둘째, 셋째로 호명되는 인물들은 그 개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 단조로운 이야기는 세 자매가 숨겨진 막내 ‘겨울’을 각자의 삶과 결부하여 떠올리는 지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풍부해지고 산뜻해졌다. 「오늘의 할일」과 상반되게도 같은 작가의 「원」은 치밀한 구성과 뚜렷한 주제, 유려한 문장 등을 갖춘 밀도 높은 작품이어서 더더욱 신뢰가 갔다. 다만 세상에 소개하는 신인의 첫 작품으로는 완숙함보다는 신선함이 더 큰 미덕일 것이기에 「오늘의 할일」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언제 작가가 되는 것일까. 등단이라는 제도는 시작에 불과한 통과의례일 뿐이고, 스스로 만족한 작품을 쓴 순간이라고 한다면 그 기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대다수의 독자가 그 작품을 쓴 사람을 알아보는 시점이라면 어떨까. 부지런히 쓰고 발표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늘의 할일」의 이주혜씨가 그런 작가가 되리라 믿는다. 아울러 두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고민과 집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지나온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와 응원,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소설 | 수상소감
이주혜
1971년생.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절대시간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늘어나거나 압축되는 시간이 있다. 어떤 시간은 재깍재깍 걸어가지 않고 뒷덜미에 고여버리기도 한다. 겨우내 힘겨워하던 아빠의 심장이 끝내 멈추며 순순히 이별을 알리던 마지막 몇초가 그랬다. 막 내 몸을 빠져나온 아이가 발을 버둥거리다 내 허벅지 안쪽을 건드리며 드디어 타자가 되었음을 알린 순간도 그러했다. ‘거울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로 시작하는 합창곡의 메조소프라노 부분을 틀리지 않으려고 골똘하던 열일곱 여름의 기억은 지금도 성대를 빳빳하게 잡아당긴다.
버스가 멈추자 노파는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겨우 두칸의 계단을 밟아 승강장으로 내려섰고, 동시에 날랜 가젤 같은 두 젊은이가 버스에 뛰어올랐다. 확연한 속도 차이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그 순간도 영원히 박제되어 내 마음에 남았다. 시공의 그물을 용케 빠져나온 어떤 순간을 포획해 영영 활자로 남기는 것은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오만한 욕망이었다.
감정이 앞서 허술한 구멍이 숭숭 뚫렸을 텐데, 애써 덮고 당선을 결정해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창비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너무 늦게 시작한 자의 무거움까지 얹어버렸으니 죄송할 따름이다.
도대체 소설이 뭐라고, 함께 책을 읽고 습작을 하고 늦도록 떠들었던 연희동의 문우들과 그 곁을 묵묵히 지켜주셨던 원종국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신들은 내 소설세계에서 ‘첫’의 자리를 차지한다. 문학의 길에서 지치지 말라고 너른 품을 내주셨던 김장하 선생님과 박노정 선생님을 비롯한 진주가을문예 식구들에게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서교동의 오후 공기를 알려준 백민석 선생님과 문우들에게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는 한때 꽤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애소설을 만들어낸 정용준 선생님에게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소설을 향한 애정은 내가 감히 따를 수가 없다.
심드렁한 내게도 조금이나마 재치라는 게 있다면 그건 순전히 아빠의 유전자다. 게으른 내가 한토막의 성실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건 오로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두분에게는 받은 게 너무도 많아서 아예 갚을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갓 스물이 넘어서부터 나를 ‘작가’로 대접해준 남편, 내가 쓰는 글은 단 한줄도 읽지 않지만 ‘꼭 읽어야 아나’라는 그의 배포만은 존경한다. 엄마를 여러모로 미흡한 한 인간으로 봐주는 두 아들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너희는 내게 빚진 게 없다.
늦게 일어섰으니 오래 걸을 것이다. ‘신인’이니 귀엽다고 우기고 싶다. 서툰 걸음새가 우스꽝스럽더라도 주저앉히지만 말아주시길.
평론 | 심사평
올해 23회를 맞은 창비신인평론상에는 모두 24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심사에서 만난 비평문의 주제와 경향 역시 매우 다채로웠다. 해체와 전위를 꿈꾸는 실험적인 문학의 경향에 호의적인 시선들이 많았으며, 윤리와 애도의 서사, 역사에 대한 관심, 여성문학의 이슈 및 퀴어적 상상력에 대한 주목도 눈에 띄는 주제였다. 아쉬운 지점은 비평이 자신의 관심 대상으로 작가와 작품을 호명할 때, 왜 그 작가이며 작품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사유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재적 삶과 문학작품이 어떻게 관계 맺는가를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신인다운 개성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찾기 쉽지 않았다.
본심에서는 문종필의 「어리석은 자들의 발걸음: 바통(baton) 넘겨주며 전력 질주하는 전사들의 이야기」, 강찬모의 「祝祭의 왜곡, 죽임의 일상화: 이영광의 시」, 김지원의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김현의 『글로리홀』」, 임지훈의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를 다루는 방법」 모두 4편의 글이 집중적인 논의대상이 되었다. 문종필의 글은 김남주, 송경동, 백무산의 작품을 문학사적 계보 속에서 연결시켜 살펴보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 시인의 고유한 시적 특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보다는 평자 개인의 인상적인 요약들이 나열되는 문제를 드러냈다. 강찬모의 글은 이영광 시의 변모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죽음과 애도의 문제가 어떻게 시대적 삶과 연결되어 시로 발화되는가를 세심하게 추적하였다. 개별 작가론으로는 친절하고 자상한 글이었지만 분석 대상을 향한 평자의 객관적인 시선과 비평적 평가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당선작 후보로 두고 고민을 가장 많이 한 것은 김지원과 임지훈의 글이다. 김지원의 글은 김현 시집 한권을 집중적으로 해석한 글로 텍스트의 혼종성 문제, 황병승 시와 연결되는 퀴어 미학의 계보, 분열된 주체에서 복제된 주체로의 이행 등을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각주를 포함한 서브텍스트들이 어떻게 시에 스며들어 독자적인 발화양상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유익한 참고가 되는 논의였다. 그러나 문학의 퀴어적 상상력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비극적 삶을 극복하는가를 살펴보고 평가하겠다는 서론의 문제제기가 글의 결론에서는 휘발되는 문제를 드러냈다. 퀴어적 상상력을 소재적인 것으로만 평가하지 않으려면 김현 시집이 동시대의 문학 속에서 갖는 고유한 의미를 비평적으로 진단하고 해석하는 결론의 논의가 필요하다.
임지훈의 글은 황인찬과 김승일의 시를 중심으로 전통적 서정시와 미래파로 불리는 시,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젊은 시의 새로운 경향을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작품이다. 비평적 쟁점을 포착하고 평자의 문제의식을 실어서 힘있게 논의를 펼쳐간다는 점에서 주목된 글이다. 그러나 논의의 실제 분석들에서 서정시의 세계에 대한 지나치게 단선적인 논의들을 전제함으로써, 추후의 논지가 매끄럽게 전개되긴 해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한다. 새로운 시의 흐름을 평가할 때도 ‘하지 않음의 주체’ ‘비성년’이라는 기성 평자들의 명명과 어법을 넘어 자기만의 고유한 분석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응모작들을 읽고 오랫동안 토론과 고민을 나눈 끝에 올해 수상작을 뽑지 못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문학적 글쓰기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비평의 존재의미를 고유한 방식으로 성찰하고 질문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개별 글들이 보여주는 열정적인 질문과 탐구는 그 자체로 귀중하고 감사하다. 신인이기에 보여줄 수 있을 독창적인 비평의 시선이 진전되어 다음 기회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들께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백지연 한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