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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

 

3·11 이후 일본문학과 ‘이후’의 상상력

 

 

남상욱 南相旭

인천대 일문과 교수. 공저로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일본,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 등이 있음.  indimina@incheon.ac.kr

 

 

미래의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의 지식이 완전히 죽는다는 것을

이제 당신은 이해하겠지!

단떼 『신곡: 지옥편』 중에서1)

 

1. 들어가며: 붕괴된 서고로부터의 출발

 

2011311일 오후 24618초에 태평양에서 발생한 매그니튜드 9도의 지진은 최고 40미터가 넘는 쯔나미를 일으켜 일본 동북해안 일대를 덮쳤다. 그 여파로 약 2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후꾸시마(福島)1원전 원자로 총 6기 중 3기가 노심용융(爐心鎔融)에 빠져 수소폭발을 일으켜 천문학적인 수치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확산되었고 약 16만명의 지역주민이 고향을 떠나 지금도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비슷한 시각 토오꾜오에서 쉰살이 된 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일흔여섯 노작가의 서고에서는 책과 자료, 오래된 원고 들이 쏟아져 내렸다. 여진이 계속되어 불안해하는 쉰살의 아들이 누울 곳만을 겨우 마련해준 후 줄곧 TV 앞에 앉아 쯔나미와 원자력발전소 사고 영상을 지켜보던 그는,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물질에 의한 오염의 실상을 취재하던 프로그램을 보고는 마침내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만다.

키우고 있는 말의 출산이 임박해 피난권고 명령을 무시하고 위험지역에 남은 농장주는 정작 망아지가 태어나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다. 말이 뛰어놀고 풀을 뜯을 초원이 방사능 비에 오염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 생명의 탄생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게 된 그 농장주의 어두운 표정을 본 작가는, 그 초원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 그보다 훨씬 오래도록 원래대로 될 수 없으며, 나아가 ‘그것을 우리의 동시대 인간은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그만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담함 속에서 무너진 서고 앞에 멍하니 있던 그는 단떼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문구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미래의 문이 닫히는 순간/우리의 지식이 완전히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오에 켄자부로오(大江健三郎)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인 『만년양식집』(晩年様式集, 2013)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4장에서 하겠지만에서 그는 후꾸시마의 충격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후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원자폭탄’이라는 대량학살병기의 기술을 평화적으로 사용한다는 명목하에 도입되어 일종의 ‘미래의 문’으로서 기능해왔다. 이러한 ‘미래의 문’이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과학이라는 지식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바 있듯이 과학은 여러차례 원자력의 위험성을 경고해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후꾸시마 원자력 폭발은, 과학의 잠재적 위험성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미래’만을 보도록 강제하는 어떤 ‘지식’의 임계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맹목성을 과연 ‘지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그러한 맹목성을 허용해온 어떤 다른 ‘지()’를 일컫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만년의 오오에가 후꾸시마 사고로부터 ‘지식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받았을 때, 여기서 ‘지식’이란 그가 그토록 옹호하고 신뢰했던 ‘전후민주주의’까지 포함하는 ‘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3·11 이후 스스로를 지탱해온 ‘지’의 죽음을 간파한 것은 사실 오오에가 처음은 아니다. 예컨대 젊은 사상가 사사끼 아따루(木中)3·11 직후 열린 한 강연에서 서구의 철학에서 ‘대지’(大地, 독일어로는 Grund, 영어로는 ground)가 ‘근거이자 이유이며 이성을 움직이는 무엇’이자, ‘법의 근거’이기도 함을 환기시킨 바 있다.2) 이는 3·11에 의한 대지의 흔들림이, 국가의 법을 지탱하는 ‘지’의 흔들림이기도 하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그는 사고 이후 일본정부 대변인과 토오꾜오전력이 반복해왔던 ‘상정 외(想定外)의 대사건’이라는 말 속의 그 ‘상정’에는 어떤 근거도 없었음을 상식적인 문헌검색을 통해 지적하고 있고, 오오에 역시 『만년양식집』에서 정부와 토오꾜오전력의 ‘상정 외’라는 말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정 외’의 현실과 맞서려”는 의지는커녕, 포기의 알리바이만 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3) 그러니까 두 사람은 모두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위험을 ‘상정’하지 않으려 하는 ‘지식’에 기대 있는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정부는, 시민과 지역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일종의 ‘예외’로 간주하며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했고, 나아가 ‘지’의 흔들림을 틈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허용하도록 법안을 바꾸려 하고 있다.

‘지’의 흔들림은 반드시 3·11 이후의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잔잔했던 바다에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가던 배가 갑자기 침몰해 304명의 사람들(이 중 단원고 학생은 250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을 때, 죽은 것은 배에 탔던 어른과 아이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미래의 문’이 닫힌 그 순간, 실은 ‘우리의 지식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왜 그 배가 그렇게 침몰했고, 왜 구하지 못했으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죽은 아이들에게, 남은 유족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러가지 의미에서 매우 다를 수밖에 없는 세월호와 후꾸시마가 비록 하나의 가느다란 선으로라도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양자가 각각 어제까지의 ‘지’의 임계점을 노출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바꿔 말해 세월호 이후의 한국문학에서 3·11 이후의 일본문학이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붕괴된 서고’로 상징되는 바로 ‘우리의 지’에 대한 절망을 공유함으로써만 가능할 수 있겠다.

 

 

2. ‘방사능’이라는 새로운 ‘현실’의 출현

 

그렇다면 붕괴된 서고 속의 일본문학은 어떻게 새로운 ‘지’의 근거를 마련하려 하는 걸까. 앞서 언급한 사사끼 아따루는 근거의 상실로 인한 공동체의 위기 속 절망이야말로, 일찍이 사까구찌 안고(坂口安吾)가 발견했던 ‘문학의 고향’임을 상기시켰다, 사사끼가 말했듯이 패전 직후 사까구찌는 ‘처참한 일, 구제할 수 없는 일, 그것만이 유일한 구제’이며, 심지어 ‘모럴이 없다는 것 자체가 모럴이며, 구제가 없다는 것 자체가 구제’임을 깨닫는 데서 문학이 시작된다고 말함으로써, 닫힌 미래의 문을 새롭게 열기 위한 ‘새로운 지평’으로서 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4) 이렇게 일본문학의 자기 근거를 패전 직후로 거슬러올라가 찾고자 하는 경향은 사사끼 이외에도 다수 만날 수 있다.5)

하지만 3·11 이후 일본문학의 ‘근거’는 단순히 패전 직후 폐허 속의 일본문학이 확인한 자기 준거점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근거 찾기가 무엇보다도 먼저 3·11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분명히 직시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후꾸시마 이후 일본의 변화를 가장 먼저 전경화해 주목받은 문학작품은 카와까미 히로미(川上弘美)의 『신2011(神様2011, 2011)이었다. 1993년의 데뷔작 『신』(神様)3·11 이후의 변화를 담담히 기입한 이 작품에서 그 변화는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멀리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곰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 내리기를. 그리고 말린 생선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하니까 드시지 않는다면 내일 중에 버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말린 생선을 구두장 위에 장식해놓고, 샤워를 하고 정성스럽게 몸과 머리를 헹구고 자기 전에 조금 일기를 쓰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그런 것처럼 총 피폭선량을 계산했다. 오늘 측정 외부피폭선량·30uSv, 내부피폭선량·19uSv6)

 

1993년의 『신』에서 카와까미가 일본인의 일상 속에서 잊힌 신의 존재를 매우 귀여운 곰을 통해 담담하게 가시화했다면, 2011년의 그녀는 비가시적인 ‘신’과 함께한 환상적인 체험을 끝내고 이제 현실로 돌아왔음을, 마치 오늘 쓴 돈의 목록을 가계부에 적듯이 잠들기 전 일기에 꼭 눌러 기입하는 비가시적인 방사능의 수치를 통해서 알린다. 3·11 이후의 ‘현실’은 이렇게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가 일상화된 세계로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카와까미의 『신2011』은 3·11 이후 일본인의 ‘리얼’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이 작품은 3·11 이후 방사능이 일본인의 행동에 있어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고 직후 후꾸시마 원전에서 20여킬로미터 떨어진 미나미소오마(南相馬)시에서 정부의 피난권고를 거부하고 98세의 노모와 치매에 걸린 아내, 그리고 두살배기 손녀와 함께 집을 지킨 퇴역교수 사사끼 타까시(木孝)는 자신의 블로그 ‘모노디아로고스’에 이 방사능 수치를 기입하고 있었다.7) 얼마 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시버트(Sv)로 표시되는 수치가 98세의 노인과 두살짜리 손녀의 피난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였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여전히 후꾸시마현에 남아 있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야외활동 여부를 결정하는 근거인 동시에 ‘위기가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의 위선과 임계점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근거자료이기도 하다. 예컨대 타까하시 테쯔야(高橋哲哉)가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제하는 국가의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자료로서 제시한 것도, 정부가 후꾸시마현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야외활동을 위해 대폭적으로 ‘완화’한 터무니없이 높은 연간 피폭기준량이었다.8) 카와까미 역시 ‘강력한 바이러스 이상으로 어이없이 생물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일종의 ‘리얼’로 간주하며, 원자력발전소 없는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9)

이들에게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어떤 수치가 이렇게 갑자기 ‘현실’을 움직이는 강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었던 데는 히로시마, 나가사끼 그리고 비키니반도에서 조업하던 참치어선의 피폭경험이 하나의 강력한 ‘근거’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후 일본에서 이 세번의 경험은 오랫동안 전체 일본인 중 그저 ‘일부만의 현실’에 지나지 않았고, 이러한 경향은 후꾸시마 이후 일본 전체에 있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즉 삶을 풍요롭게 해줄 긍정적 이미지로서 원자력을 표상하고자 했던 일본정부의 노력과 경제성장 신화 속에서 20세기의 피폭체험이 그저 ‘일부’의 경험으로만 축소되고 비가시적인 것으로 역사 속에 부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후꾸시마 이후 고향을 떠나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약 16만명의 지역주민의 모습은 2020년 토오꾜오올림픽이라는 새로운 청사진에 가려 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은 ‘일부의 경험’을 가시화함으로써, 이를 ‘모두의 현실’을 움직이는 새로운 ‘근거’로 정초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일본인의 일상이 변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문학이 수행하고자 하는 방사능에 대한 가시화의 노력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예시적이며, 초현실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는 방사능에 대한 위험이 바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후꾸시마 이후 피난민의 삶과 정부의 피난권고 명령을 거부하고 지역에 남은 사람들의 ‘지금-여기’의 경험이 아직 문학의 언어로 옮겨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후 히로시마-나가사끼의 피폭 경험에 대한 본격적인 문학적 기록이 꽤 오랜 세월을 지나 가능해진 것처럼, 초현실적인 경험의 리얼리즘적 글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적 경과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작 후꾸시마의 경험이 ‘현실’을 바꾼 것은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서였다. 즉 독일은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오직 소수에게만 ‘가시적’이었던 과학의 위험성과 불완전성을 모두에게 밝혔고, 이는 20115월, 202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기로 한 결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독일정부의 결정은 역사상의 부정적인 사건이야말로 단순히 역사의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역사를 여는 하나의 준거점이 된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새로운 역사는 이제까지 역사의 발전법칙상 하나의 오류이자 예외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 사건을 현재의 자기 한계를 드러내는 지표이자 미래의 ‘근거’로서 정초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다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기

 

한편 방사능수치에 대한 절대화는 변함없이 전후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구조적 아포리아를 노출시키기도 한다. 즉 하나의 과학(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부정하기 위해, 또 하나의 과학(개인의 생명의 위험성을 알리는 방사능측정기)을 굳게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아포리아. 절멸의 무기인 핵의 평화적 이용을 외쳤을 때부터 이미 일본인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의 근대성’이라는 이중구속의 구조 속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속에 대해 문학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3·11 이후의 일본문학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구분을 더이상 ‘과학적 합리성’에만 맡기지 않으려고 시도한다. 가장 비근한 예가 쯔나미에 의해 죽은 희생자의 목소리를 라디오 전파에 싣는 시도를 감행해 화제를 모은 이또오 세이꼬오(伊藤せいこう)의 『상상라디오』(想像ラジオ, 2013)다. 이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비과학적’인 죽은 자의 ‘목소리’를 역시 ‘비가시적’인 라디오 전파라는 과학을 통해 ‘재현’한다는 발상의 참신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10)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려는 문학적 행위가 수반하는 윤리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재해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사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자원봉사자의 리더격인 나오군에 의한 다음과 같은 발화는 ‘죽은 자’의 침묵에 대한 오늘날 거의 ‘일반화’된 윤리를 환기시킨다.

 

사체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비과학적인 감성 아닐까요? (…)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을 제일로 생각해야만 해요.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은 잘 알지만, 그건 진짜 가족이나 지역 사람들이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을 체육관에서도 임시주택에서도 얼마든지 보아왔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상자로 위패를 만들어서라도 애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영역이라고 할까요, 그런 곳에 우리 같은 무관한 사람이 흙발로 들어가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잃지 않은 우리는 뭔가 얘기를 하기보다 그저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묵묵히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11)

 

‘사체의 말’의 가능성을 ‘비과학적인 감성’으로 상대화하며 “살아 있는 사람을 제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 젊은이의 주장은, 유족에 대한 지원을 중시하는 자원봉사 리더의 입장으로서는 일견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비극적 사건에 대응하는 국가의 입장과 겹친다는 점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바꿔 말하자면 위의 인용을 통해 우리는 국가가 어떻게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국가(혹은 이에 준하는 권력집단)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행위를 ‘비과학적 감성’으로 매도하거나, 희생자의 유족이라는 존재를 죽은 자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애도 불가능성의 지표로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근대 국민국가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자들을 공동체의 차원에서 기억하고 추도하며, 그 유족에게 애도를 표하고는 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실패 탓에 희생된 자들에 대한 대응은 어떠한가. 전후 일본정부는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죽은 자에 집중되는 시선에 부담을 느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시선을 ‘미래’로 돌리고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적극 도입했다. 그렇게 원자력발전소를 추진한 일본정부가 정작 히로시마, 나가사끼에서 희생된 자들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 것은 피폭으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후였다. 실은 죽은 자에 대한 망각의 댓가가 어떠했는지는 후꾸시마만이 아니라, 쯔나미로 인해 폐허가 된 동북지방 연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동북지방 연안에 신사(神社)들이 유독 높은 곳에 위치함으로써 후세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재(震災) 이후에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3·11 이후를 다룬 『상상라디오』에서 19458월의 히로시마만이 아니라, 3월의 토오꾜오 대공습이 짧게나마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동체의 안전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의, 역사에 기재되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서만 담보될 수 있음을 3·11이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3·11 이후의 문학은 그것이 설사 ‘비과학적’이더라도 사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다음과 같은 저주와 불평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말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무언으로 저세상에 갔다고 생각하지 마라, 비명이 온 마을에 울려퍼졌을 테고, 분해서 어쩔 줄 모르며 자신을 저주하듯이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을 테고, 뜨겁게 울고 화를 내며 숨을 거둘 때까지 목 안에서 신음을 흘렸을 거라고.12)

 

물론 『상상라디오』의 저자 이또오 세이꼬오가 ‘DJ아크’라는 죽은 자가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을 저주와 회한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죽은 자는 자신의 어이없는 죽음을 인지하고 세상과 국가에 대해 뜨겁게 분노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대부분은 재해에 휘말려 생사를 알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살아 있는 동안 저질렀던 자신의 사소한 잘못에 대해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이또오가 비록 적은 지면을 통해서라도 죽은 사람이 “무언으로 저세상에 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로운 윤리로서 강조하려 했음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는 오늘날 일본인의 ‘지식’이,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건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뚜껑을 덮어”버리고13) 오직 살아남은, 혹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과정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었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삶의 재생을 도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순은 아니었을까.

 

 

4. 이제부터 태어날 아이를 위한, 타자의 윤리를 받아들이는 윤리

 

이러한 죽은 자와의 대화 시도는 『상상라디오』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고인이 된 에드워드 싸이드(Edward W. Said)의 만년의 사상(on late style, 한국어판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을, 작품 제목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하는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만년양식집』(영문명은 in late style로 되어 있음)이야말로, 현재의 일본인이 망각하고 있는 죽은 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 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행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죽은 자들은 만년의 벗이었던 싸이드나 자신의 어머니, 스승, 자살한 손위처남뿐 아니라, 이전 작품에 등장했던 이른바 “카타스트로피(파국 혹은 대재앙)의 한가운데에서 자폭했”던 등장인물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물론 오오에에게 이러한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60~70년대 그의 주요 작품은 물론, 2000년대에 발표된 『체인지링』(, 2000)에서 『익사』(水死, 2009)에 이르기까지 오오에는 마치 하나의 습관인 양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며 그 흔적을 문자화해왔고, 그와 동시에 이러한 시도의 윤리성을 오랫동안 작가의 그늘(혹은 억압)에 가려 있던 타자(혹은 가족과 유가족)의 시점을 설정해 검토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2000년대 들어서 자신이 오랫동안 그 신념으로 받들어왔던 ‘전후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헌법 9조를 개헌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노화로 겪게 되는 개인적 위기에 직면한 작가가 타자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글쓰기를 통해 양자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두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하려는 오오에의 ‘만년 스타일’은, ‘일본 전후민주주의 세대의 카타스트로피’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만년양식집』에서도 계속되는데, 예컨대 오오에가 후꾸시마 이후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원전제로’ 운동의 과정에서 발화한 그의 ‘언어’에 대한 여동생의 비판은 오오에의 위기와 그 극복 노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2012716일 토오꾜오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굿바이 원전 10만인 대회’에서 오오에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자이자 시인인 나까노 시게하루(中野重治)의 「초봄의 바람」(さきの, 1928)이라는 단편소설 속에 나오는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는데,14) 그 과정에서 오오에가 마치 이 시가 실제 나까노의 체험을 ‘재현’한 듯이 말하는 오류를 범했음을, 집회에 참여했던 여동생이 비판했던 것이다.

이렇게 굳이 작가의 사소한 실수와 그 비판 대목까지 언급하는 것은 이것이 2000년대 이후 오오에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목을 통해 그는 현대 일본에서 자신을 포함한 이른바 ‘전후민주주의 세대’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전경화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자신이 범한 오류와 그에 쏟아지는 어떤 비판을 감추지 않고 기록하는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는 것이 바로 ‘전후민주주의’임을 한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오에에게 있어 중요한 ‘전후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타자의 윤리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3·11 이후 곧장 독일은 ‘원자력발전 이용에 윤리적 근거는 없다’며 나라의 방향전환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윤리적’ ‘모럴’이라는 말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습니다만, 독일의 정치가들은 다음 세대가 연명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갈 환경을 없애지 않는 것이 인간의 근본윤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정권이, 그 행동의 근거에, 정치적·경제적인 것밖에 두지 않는 것과 대비해보십시오.15)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오오에는 이미 한차례 타자의 윤리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그 타자의 윤리가 바로 미국에 의해서 기안된 일본국헌법 속의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된다”라는 조항으로 가시화되는 ‘민주주의’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런 타자의 법을 윤리적 ‘근거’로 삼아 히로시마와 오끼나와, 자신의 아들과 같은 장애인, 재일외국인의 인권을 옹호해오면서 스스로의 영혼을 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오에는 히로시마와 후꾸시마로 대표되는 일본이라는 타자의 경험을 새로운 자신의 윤리적 준거점으로 삼은 독일 정치인들의 윤리를, 자신의 새로운 윤리적 준거점으로 삼을 것을 결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윤리적 준거점의 이동을 결정짓는 ‘근거’는 또 무엇일까. 『만년양식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오에의 장시(長詩)는 이를 설명해준다. 일본인 스스로 만들고 진리로 믿어왔던 ‘황국사상’이 무너지던 날, ‘우리는 재생할 수 없다!’고 절규한 교장의 모습을 본 오오에는, 학교를 가지 않고 ‘숲’으로 가서 ‘자신의 나무’로 상징되는 스스로의 윤리를 찾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곤 한다. 그렇게 돌아오는 그를 보면서 그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상처투성이의 나를 벌거벗겨/스스로 모은 약초의/기름을 발라주면서/엄마는 탄식했다./아이들이 듣는 곳에서/우리는 재생할 수 없다고/말해도 되는 것일까/그리고 엄마는 나에게/오랫동안 수수께끼가 되는 말을 이어 말했다./나는 재생할 수 없다. 그러나/우리는 재생할 수 있다.16)

 

오오에가 70년에 걸쳐 겨우 도달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지금 여기서 몇줄의 말로 해명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오오에의 윤리적 판단의 근거가, 내가 죽더라도 여전히 ‘죽은 나’를 그 일부로서 공유할 ‘우리’에 대한 강한 신념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이미 죽은 자보다는 바로 지금 막 태어난, 그리고 이제부터 태어나는 아이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5. ‘이후’의 상상력파괴된 언어의 세계

 

『만년양식집』을 끝으로 오오에가 일본인의 ‘미래’를 위해 반원전, 반개헌시위의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 이미 원전폐쇄를 결정한 독일에서 체류하며 양쪽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던 타와다 요오꼬(多和田葉子)는, 오오에가 그토록 걱정하던 또다른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를 가정한 디스토피아 소설 「불사의 섬」(不死, 2012)을 발표한다. 2023년의 어느날 독일 공항의 직원이 일본 국적의 여권을 만지려고도 하지 않는 장면을 시작으로 일본의 ‘한심한’ 과거(우리에게는 미래)가 회상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단편소설에서, 일본의 근미래는 다음과 같은 씨나리오로 카타스트로피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후꾸시마의 공포는 끝났다’고 선언되기 시작한 2013년 무렵, TV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원전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천황과 수상이 TV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2015년 마침내 일본정부는 ‘Z그룹’에 의해 민영화된다. 그때부터 일본으로의 모든 통신은 두절되어, 2017년 태평양지진이 일어나 수도권을 대형 쯔나미가 집어삼키는 장면은 결국 위성을 통해 접했을 뿐이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걱정하는 ‘나’는 미국에서 입수한 책을 통해서 일본의 소식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의하면 이 지진으로 새롭게 폭발한 4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물질로 인해 노인들은 죽을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병들어 더이상 ‘젊다’는 것이 ‘젊음’을 의미하지 않게 된다. 소설은 그런 세계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태양전지로 움직이는 게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원한을 가지고 죽은 사람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기회를 놓치고 죽은 사람들, 그러한 사자(死者)들의 망령이 말하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단편적인 망상을 잘 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들에게 어울리는 경()을 선택해주면 망령이 성불해서 삭제되는 게임인데, 아무리 삭제해도 새로운 망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 이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데, ‘이긴다’라는 말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이미 거의 없어져버렸다.17)

 

이 대목은 앞서 언급했던 이또오 세이꼬오의 『상상라디오』처럼 망자의 원한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지나친 애도를 일종의 게임에 비유함으로써 이를 폄하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타와다에게 있어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애도보다, 또 한번의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독일처럼 원전을 멈추는 것이 훨씬 다급한 과제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원전이 정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지진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때는 지금 죽은 자에 대한 ‘애도’라는 말이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죽은 자가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애도’는 마치 아우슈비츠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야말로 단순한 기계적 반복을 일컫는 ‘게임’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앞서 오오에가 말한 의미에서의 ‘우리’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불사의 섬」에 이어 발표된 타와다의 『헌등사』(献灯使, 2014)를 본다면, 원전사고로 황폐해진 대지에서 ‘우리’의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작에서 일본열도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려낸 근미래 일본의 모습을 그 안으로부터 더욱 세밀하게 그려낸 이 작품에서, 일본은 쇄국을 결정한 민영화 정부의 통치하에 모든 외래어의 사용이 금지된 닫힌 공간으로 표상된다. 이제까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쓰였던 ‘조깅’이라는 말조차 ‘도주’(ち)로 대체된 세계에서, 죽음을 상실해 100살이 넘어서도 개와 조깅할 수 있는 건강한 노인 요시로의 외래어와 관련된 기억이, 대재앙 이후의 닫힌 일본에서 태어나 칼슘 부족으로 겨우 “문어처럼 걷”는 증손자 무메이(無名)와 자연스럽게 공유될 리 만무하다. 오염된 대지에 의해 만들어진 각기 다른 신체상의 ‘현실’은 각기 다른 세대의 언어의미 공유를 방해하는데, 언어의 의미가 지속되지 못하는 이상 죽는 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역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쇄국은 앞서 봤던 현대 독일 정치인들의 윤리 같은, 이른바 타자의 윤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한다. 이러한 세계야말로 오오에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전후 일본의 카타스트로피의 모습 아닐까.

요컨대 타와다에게 원전사고에 의한 방사능 유출은 단순히 혈액과 유전자 파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지를 오염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근거가 되는 언어의 공유를 파괴하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언어를 다루는 소설가답게 타와다는 방사능이라는 ‘현실’이 언어를 파괴하기 전에, 아직 파괴되지 않은 언어의 힘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회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타와다의 서사전략은 언어를 통한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 노력이라는 점에서 앞서 봤던 작가들과 유사하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로 역사 속에서 망각된 과거를 가시화하고 있다면, 타와다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미래가 ‘우리’라는 형식이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최종적인 근거가 되는 언어의 재앙으로 예감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6. 나가며: 파괴된 언어를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

 

이러한 3·11 이후의 일본문학이 그려내는 ‘이후’의 모습은, 세월호 이후의 한국문학이 그려내는 ‘이후’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2015410일 열린 세교연구소 심포지엄 ‘세월호 시대의 문학’(발표 함성호 함돈균 심보선 남상욱)에서 함돈균(咸燉均)은 한강(韓江)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와 이영광(李永光)의 시 「수학여행 다녀올게요유령6」를 예로 들면서 “동정도 연민도 공감도 심지어는 ‘기억’조차도 넘어서 죽음-주검의 ‘현금(現今)’과 접속하려는 이런 정신의 극한적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음에 주목했는데, 이는 앞서 본 이또오 세이꼬오의 『상상라디오』 경우와 흡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양국 작가들이 국가의 목소리 속에 파묻힌, 목소리가 없는 자의 목소리를 가시화할 책임이 문학에 있다는 데 공명하며, 이제까지 해본 적 없는 깊이있는 애도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 이또오가 죽은 자의 목소리를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작가들의 경우 그 목소리의 톤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 다른데, 이는 양국의 문화적 차이보다는 사건 자체와 작가 개개인의 성향 차이 등을 고려해 더욱 깊이 성찰해봄직하다.

무엇보다도 3·11과 세월호 이후 양국 문학에서 똑같이 언어가 파괴되었다고 인식되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 2015)에서 박찬세는 2014416일 이후 “선원을 선원이라 (…)/선장을 선장이라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고 노래하는데, 이는 타와다가 가진 언어파괴에 대한 위기감이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현실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언어적 감각을 공유할 수 없게 된 현실로 인해 야기된 언어파괴가 누구보다 세월호 유족에게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세월호 유족들의 육성을 채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416 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2015)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작업에 참여했던 작가 김순천이 세교연구소 심포지엄 현장에서 말했듯이 최초의 그들의 언어가 “차라리 짐승의 말, 괴물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만도,18) 따라서 ‘채록’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까스로 언어화될 수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채록을 통해 겨우 유족들의 언어를 따라가다보면,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행위가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서 되묻는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 어머니 노선자씨의 다음과 같은 부분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포기하고 나니까, 나온 것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짐 챙기면서 그랬어요. “하느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돌아와줘서, 아들, 고마워.” 옆에서 다들 부러워하더라구요. 이게 부러워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그리고 서로 축하를 해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래요. 그러니 내가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왜 이게 감사해요? 도대체 왜?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고, 아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19)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아이들이 죽어서라도 ‘돌아오면’ 다들 ‘고마워하고, 감사’했다. 이러한 말들은 아이의 시신마저 확인하지 못한 부모들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죽은 아이를 데리고 팽목항을 떠나 장례를 치른 후, 그리고 그뒤로 다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그때의 ‘축하’와 ‘감사’라는 극히 ‘인간적인’ 언어행위는 오히려 유족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 왜 우리는 굳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려고 했을까(그것도 그렇게 죽은 아이들처럼), 하고 스스로 되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언어행위 자체에 의심을 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과 우리의 언어가 어떻게 분절되어 파괴되어가는지를 고통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렇게 반문하는 시점에서 그들이 ‘짐승’이나 ‘괴물’이기는커녕, 누구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라고 노선자씨가 말할 때, 그 말은 현실에 굴복해서 만들어진 언어를 사용하길 거부하고, 오히려 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로 파괴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요컨대 이 말은 “세월호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영방송 보도국장의 말이 덮은 현실을 자명한 언어로 드러냄으로써, 위기에 처한 우리의 말을 재생시킨다.

따라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단순히 유가족의 파괴된 언어의 기록만이 아니라, 그들이 울음과 침묵 속에서 말 본래의 의미에 다가가 거기에 오랫동안 머무름으로써 일그러진 ‘현실’의 모습을 정확히 포착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언어 ‘재생’의 현장기록이라고도 하겠다. 비록 이것이 아직까지는 완전한 형태의 재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완전히 파괴된 언어를 경험한 그들에게 어떻게 그러한 ‘재생’이 가능했을까.

이를 기다려주고, 같이 울면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작가기록단’의 존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일본에서 일찍이 오오에가 히로시마와 오끼나와에서, 그리고 옴진리교 사건 이후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가 시도한 적이 있지만, 한 사람의 소설가가 아닌 집단의 형태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이러한 집단에 의한 기록이라는 형태는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소설가의 기록에 비해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기록단이야말로 파괴된 언어의 치유란 오직 언어로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오오에의 잠언에 한결 본질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족이 보여준 언어의 ‘재생’은 아이들이 남긴 말을 자기 말의 ‘근거’로 삼았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유족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울면서 토해낸 언어의 근거로서 자신의 말 앞뒤, 중간에 아이들의 언어를 제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의 문이 닫히는 줄도 모르던 시절에 발화된 그 말의 대부분은 말 본래의 의미에 충실해 사랑과 감사와 희망을 담은 정직한 언어들이었고, 그러한 언어의 힘은 말을 빼앗긴 유족의 언어를 재생시키는 유일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족에게만 한정된 바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국어교사가 되고 싶었다던 신호성 학생이 남긴 시 속의 다음과 같은 물음은 이 순간 ‘우리’의 물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20)

 

슬픔 속에서 이러한 물음을 공유하면서, 그 물음 속에 담긴 윤리적 요청을 받아들여 내 삶의 ‘근거’로 삼을 때, 가까스로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영원히/함께 항해”할 수 있지 않을까.21)

 

 

* 이 글은 세교연구소 주최 심포지엄 ‘세월호 시대의 문학’(2015.4.10, 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의 발표문을 개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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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7, 104면.

2) 사사키 아타루 「부서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사상으로서의 3·11』, 윤여일 옮김, 그린비 2012, 60~61면.

3)晩年様式集』 61면.

4) 坂口安吾 「文学のふるさと」, 『現代文學』 4 6(1941년 8월호).

5) 예컨대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이며 사상가인 요시모또 타까아끼(吉本隆明)가 대표적이다. 吉本隆明第二敗戦期』, 春秋社 2012 참조.

6)川上弘美 『神様2011』, 講談社 2011, 36면, 강조는 인용자.

7) 사사키 다카시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형진의 옮김, 돌베개 2013.

8) 다카하시 데쓰야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한승동 옮김, 돌베개 2013.

9) 川上弘美 「311とデビュー作書し」, 『サンデー毎日90 47(2011) 23면.

10) 일본문학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를 소환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예컨대 아꾸따가와 류우노스께(芥川龍之介)의 「덤불 속」(1922)에서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다르자 영매를 통해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법정 앞에 소환했고,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의 『영령의 목소리』(1966)에서는 영매를 통해서 2·26사건(1936)과 태평양전쟁 때 죽은 병사들의, 쇼오와(昭和) 천황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를 ‘재현’한다. 영매를 통해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문화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가시적인 것을 중심으로 진화하는 문화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적 의미를 지닌다. 『상상라디오』 또한 쯔나미 영상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TV와 인터넷 동영상이라는 시각매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11) 이토 세이코 『상상라디오』, 권남희 옮김, 영림카디널 2015, 74~75면.

12) 같은 책 76면.

13) 같은 책 146면.

14) 오오에가 인용한 나까노 시게하루의 시는 다음과 같다. “벌써 봄바람이었다./그것은 매일 밤낮으로 대토오꾜오의 하늘에 모래와 연기를 피워 올렸다./바람 소리 속에 엄마는 죽은 아이를 생각했다./그것은 좁쌀처럼 작게 보였다./엄마는 마지막 행을 썼다./‘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엄마는 잠들었다.” 이 시를 낭송한 후 오오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소설에 기록된다. “무엇보다 이 엄마의 말이 내게 와닿는 것은 원자력발전소 대사고가 아직 종식되지 않는 가운데 오오이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시키는 정부에, 나아가 재가동을 확대하려는 정부에, 저는 지금 우리가 모욕당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그야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 우리는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 십여만명은 이대로 모욕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더욱 나쁘게 이대로 다음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의해, 모욕 속에서 살해될 것인가?” 『晩年様式集』 187면.

15) 같은 책 312면, 강조는 인용자.

16) 같은 책 328면, 강조는 인용자.

17) 多和田葉子不死」, 『それでも三月は、また』, 講談社 2012, 199면.

18) 정홍수 「‘세월호’와 문학의 자리」, 창비주간논평(http://weekly.changbi.com) 2015.4.15.

19) 『금요일엔 돌아오렴』 29~30면, 강조는 인용자.

20) 같은 책 136면, 강조는 인용자.

21) 세월호 희생자 신승희 학생의 시 「항해」, 같은 책 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