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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강 韓江
1970년생.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 장편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이 있음.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그가 나에게 온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나는 열흘 가까이 떨어지지 않는 밭은기침을 하며 책상 앞에 웅크려 앉아 있던 참이었다. 외풍이 센 방이어서, 유리창에 올록볼록한 비닐을 붙였고 커튼도 쳤지만 코끝이 찼다. 보일러 온도를 더 높여야 하나. 의자에 걸쳐둔 솜조끼를 스웨터 위에 겹쳐입고 일어서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작고 마른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통이 넓은 연한 색 청바지에, 역시 지나치다 싶게 품이 큰 갈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한 발을 방 안으로 막 들였고, 남은 한 발은 바깥에 엉거주춤 걸쳐놓았다. 방문 너머 부엌의 어둠을 등진 그의 얼굴이 해쓱했다.
어쩐 일이세요?
반사적으로 나는 물었다. 그가 나에게 올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의 가족이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다. 잠시라도 연인이거나 그 비슷한 무엇이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 질문이 무례하고 무정했다는 걸 깨닫고 얼른 덧붙여 말했다.
서 있지 말고 들어오세요.
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턱을 마저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책상 앞 회전의자를 문 쪽으로 돌려놓았다.
여기 앉으실래요?
그는 망설이는 듯했다. 나는 재차 두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마지못한 듯 회전의자에 걸터앉은 그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뿔테안경 속의 장난기 어린 눈이 조금 웃는 것도 같았다.
차를 대접해야 할까? 하지만 죽은 사람이 차를 마시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차를 끓이는 동안 그를 혼자 두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잠자코 그의 얼굴을 건너다봤다. 어쩐 일이세요,라고 다시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든 이유가 있겠지, 죽은 지 삼년이 지난 뒤 누군가에게 올 때에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
여기가 k씨 집인가?
예.
혼자 살아요?
예.
내가 예전에 k씨 결혼식에 갔었는데, 그게 벌써.
십삼년 전 이맘때예요. 십이월.
그렇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가 되풀이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차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어올렸다.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는 외모에 무신경한 사람, 그래서 얼마간 촌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억양이나 표정, 손동작 같은 것은 대조적으로 서울 토박이 같았다. 사석에서도 사용하는 문어체 문장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는 오지라 할 만한 강원도 군사지역에서 태어났고, 인근 마을들을 통틀어 유일하게 고등학교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필사적으로 책을 탐식하는 그의 습관은 여섯개 학년이 한 학급으로 운영되던 초등학교 분교의 도서실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십칠년 전 첫 직장에서였다. 그는 나보다 여덟살 많은 선배였으니 나에게 말을 놓아도 되었고 간혹 높여도 무방했다. 그는 질책할 일이 있거나 까다로운 일을 의논할 때마다 깍듯한 존댓말을 썼는데—갑자기 말을 높이는 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편안한 분위기에서도 다른 선배들처럼 분명한 하대를 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경어 표현을 이따금씩 섞어 썼고, 뭔가 지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주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글쎄, 그건 다음 기회로 넘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거리를 뒀다.
방금 중얼거린 말을 스스로 지우려는 듯 그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닌데……
지금 그가 내 사생활을 중언부언 캐묻거나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곧 알아차렸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단지 정확하고 싶은 것이다. 말로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때 선배님이 접시를 사주셨어요.
화제를 돌리려고 나는 밝게 말했다.
축의금 대신에요. 인사동 통인가게 거였는데, 두개 한벌짜리 분청사기 접시였어요.
내가 그랬나?
미소를 지어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그가 되물었다.
하나는 이사 다니면서 깨졌는데,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있어요.
나는 접시가 있는 부엌 쪽을 가리켰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가리킨 쪽의 어둠을 향해 그가 얼굴을 돌렸다.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내는 게 늘 싫긴 했어. 너무 편리한 방법이잖아.
그가 또박또박 발음하며 다시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어올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그리 변하진 않는 거로구나, 나는 생각했다.
*
왜 여기로 왔는지는 나도 몰라요.
여전히 침착하게 그가 말했다.
꼭 가고 싶은 곳에 가게 되지도 않고, 꼭 보고 싶은 사람을 보게 되지도 않아.
책상의 스탠드 불빛을 옆으로 받은 그의 얼굴은 절반쯤 밝았고, 나머지 절반은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어두웠다.
선택할 수 있다면 매번 딸아이를 보러 가겠지. 그애가 벌써 열아홉살이야.
순간 나는 사과하고 싶어졌다.
미안해요 선배. 저는 몰랐어요, 지난봄까지.
뭘 몰랐어요?
아무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경주 언니 그렇게 되고, 첫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하곤 완전히 연락이 끊겼어요. 지난봄에 J사 사람을 우연히 만나 선배 안부를 물었는데, 대답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 사람을 안 만났으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눈가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그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나쁘지 않은데.
그의 나이는 마흔여섯에서 멈췄고 나는 그 뒤로 삼년 동안 나이를 먹어, 이제 그와 나는 다섯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여태 내가 함께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의 소식을 뒤늦게 들은 그 봄날 저녁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했었다. 이년 칠개월 전의 부고 기사가 가장 먼저 떴다. 방금처럼 눈가의 주름을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 사진을 생소한 느낌으로 들여다보고, 지인들이 트위터에 올린 애통한 단상들을 여전히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읽어내려간 뒤, 오래전 몇차례 들러본 적 있던 그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그가 쓴 기사들과 생활의 단상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업데이트되던 그곳에는 정말로 삼년여 전부터 새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정색을 하면 커지는 검은 눈으로 안경알 너머에서 나를 응시하는 표정이 어쩐지 두렵게 느껴졌다. 내가 잘못된 화제를 꺼낸 게 분명했다.
선배, 차 드실래요?
다시 나는 밝게 물었다.
그럴까?
산딸기차, 박하차, 홍차가 있어요.
박하차가 좋겠는데.
나는 낮은 책장 위에 놓인 씨디플레이어를 켰다.
음악 들으실래요?
좋지.
어떤 거 틀까요?
뭐든. k씨가 듣고 싶은 것.
나는 그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그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블로그에 실렸던 마지막 기사가 초가을 밤 사간동 한옥에서 열린 퓨전 음악회였던 것을 기억했다. 기사 다음에 올린 단상에서 그는 그 공연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평생에 걸쳐 가본 어떤 음악회보다 좋았다고, 정확한 이유는 어째선지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나에게는 여남은개의 국악 음반이 있지만 그중 퓨전은 둘뿐이다. 해금과 피아노 앙상블을 찾아 씨디플레이어에 넣었다.
물이 금방 끓을 거예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일어서서 창 옆 책장으로 걸어갔다. 아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듯, 내가 최근에 산 책들 중 하나를 호기심 어린 손길로 꺼내 목차를 펼쳤다. 쉰 목소리로 흐느끼는 것 같은 해금 가락이 막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부엌으로 갔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끓이는 동안 가장 좋은 머그잔 두개를 꺼내 티백을 넣었다. 그가 선물했던 분청사기 접시를 씽크대 위쪽 선반에서 찾아내, 냉장고에 남아 있던 호두와 건포도를 모두 털어 담았다. 불안한 마음에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방에서는 스탠드 불빛과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책장 앞에 서 있는 그의 헐렁한 청바지가 보였다.
*
물이 끓기 직전에 나는 생각했다.
그가 조금 변하지 않았나.
물론 많은 부분이 놀랄 만큼 그대로였다. 하지만 십칠년 전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 때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지 않나.
죽었기 때문일까,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비슷하게 침착한 저 표정을 그의 블로그에 올려진 몇장의 사진에서도 봤다. 나이를 먹으며 성마르고 까다로워지는 사람과 온화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후자 쪽인 것 같았다. 감포 바닷가의 콘도로 떠났던 회사 수련회에서 얼굴에 맥주를 뒤집어쓴 채, 목을 타고 셔츠로 흘러내리는 술을 닦으려 하지 않은 채 핏발 선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던 서른한살의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그때 나는 입사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수습사원이었기 때문에 그 충혈된 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그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은 뒤 유리잔을 쥔 채 떨고 있는 여선배의 손을 이해하지 못했다. 좌중의 침묵을, 헛기침을, 콘도 지하의 컴컴한 술집 테이블에서 서둘러 빠져나가는 임원진의 구둣발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와 여선배가 어떤 연애에 얽힌 사이일지 모른다고 막연히 상상했다. 어쨌거나 막내사원인 내가 테이블을 정돈해야 했다. 카운터로 뛰어가 냅킨 한다발과 물수건을 가져와서 그에게 건네며, 여전히 입술을 떨고 있는 여선배의 창백한 옆얼굴을 놀랍고도 꺼림칙한 마음으로 훔쳐보았다.
자신의 얼굴과 셔츠를 대강 문질러 닦은 뒤에도 그는 고개를 똑바로 세운 채 침묵했다. 사람들이 눈치껏 차례로 그 불편한 자리를 떠나는 동안, 문제의 여선배는 맹렬한 속력으로 술을 들이켜 곧 엉망으로 취해버렸다. 열두시가 가까워지자 그와 여선배, 그리고 나만 테이블에 남았다. 둘이서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에 나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어디 가요? 우리 바람 쐬러 나갑시다.
조금도 취하지 않은 목소리로 그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같이 갑시다, k씨.
아니에요, 뒤로 물러서는 나에게 그는 한번 더 힘주어 말했다.
같이 갑시다.
콘도에서 불과 이백여 미터 거리에 해변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내 앞으로 세걸음쯤 떨어져 걸었다. 엉망으로 취한 줄 알았던 여선배는 비틀거리긴 했지만 부축받지 않아도 될 만큼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대화했으며 때로 언쟁했다. 바람과 파도 소리에 묻혀 대화의 내용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연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들은 사적인 화제를 다루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검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자, 흰 모래펄 틈으로 거칠게 솟아오른 젖은 바위들을 그들은 앞장서서 밟으며 나아갔다. 간혹 뒤돌아보며 내가 아직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는데, 그것은 완벽한 제삼자이자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세살짜리 수습사원에게 던질 만한 눈길이 아니었다. 제발 이곳에 둘만 남겨놓지는 말아달라고, 이 시간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곤란과 괴로움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것 같은 이상하게 간절한 시선이었다. 얼얼하게 얼굴을 때리는 짠바람과, 거대한 바다가 쉬지 않고 검은 몸을 뒤척이는 것 같은 파도 소리 속에서, 나에게는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방에 돌아와보니 그가 홀연히 사라졌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 책상 앞에서 일해온 사람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뿔테안경을 벗어 한 손에 든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책상에 펼쳐둔 삼국유사 주석본이었다.
연말까지 희곡을 완성해야 해서요.
책상 모퉁이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절반쯤만 사실이었다. 국립극장에서 내년 이른 봄 삼국유사를 주제로 세편의 연극을 올리는 기획을 했는데, 연출하는 친구가 그중 하나를 맡았다. 처음으로 함께 작업해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지만, 실은 다른 종류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도 다시 쓸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 끝에 대본을 맡은 것이었다. 하지만 두주 전에 최종마감이 지나갔고, 친구는 서둘러 다른 작가를 알아보겠다며 완곡하게 실망을 숨기는 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연말까지 희곡을 완성하겠다는 것은, 그저 이 해가 가기 전 무엇이든 끝내보겠다는 개인적이고 가망 없는 바람에 불과했다.
부엌에서 쓰는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책상 옆에 놓고 내 몫의 찻잔을 들었을 때에야 그는 책을 내려놓았다. 펼쳐진 페이지 가운데 지난여름 내가 연필로 그었던 밑줄들이 보였다. 그 뒷페이지의 여백에는 이제 쓰게 될 대본 속 승려들의 이름을 적고 동그라미를 둘렀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열살 무렵 문고판 삼국유사로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 이름들의 발음은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래서, 잘되어가고 있어요?
오래전 그가 정색을 하고 말을 높일 때마다 그랬듯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밭은기침이 다시 나오려는 것을, 뜨거운 차를 한모금 마셔 가라앉혔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언제나 그렇게 물었다. 기어이 원고를 펑크 내겠다는 필자를 설득하는 긴 통화를 막 끝마쳤을 때. 기행 꼭지의 출장 사진을 실수로 모두 날려버렸다는 사진작가의 사과 전화에 애써 괜찮다고 답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잘되어가고 있어요? 그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었다. 나무라는 것도, 약을 올리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호들갑스럽게 근심을 함께 나누고선 막상 현실적인 도움을 못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감정을 절제하는 편을 택하는 그의 성격을. 그걸 알고 나서는 일부러 엄살을 섞어 대답했다. 아, 정말 죽겠어요. 안도하듯 그도 선선히 응수하곤 했다. 저런,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아.
이제는 예전처럼 과장스런 쾌활함 뒤로 숨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문제가 좀 있어요.
그는 놀라지 않은 듯, 그러나 조금은 궁금한 듯 상체를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다.
흔한 문제예요. 연출자와 제가 가려던 방향이 원래 비슷했는데, 제가 써갈수록 점점 달라졌어요.
그가 잠자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 계속하라는 뜻이다.
*
처음 생각은 광대극을 만들자는 거였어요. 엉터리 신라 옷을 입은 광대 넷이 무대 한쪽에 앉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극이 시작돼요. 광대들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극이 진행되는 중에도 태연하게 툭툭 끼어들어 말도 하고 노래도 해요.
극의 전반부는 가볍게 가요. 깊은 산속 각자의 암자에서 홀로 사는 두 스님이, 이따금 만나 서로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지 경쟁하고, 내기도 하고, 팽팽한 농담을 주고받아요. 너는 물고기를 먹고 똥을 누었구나? 나는 물고기를 먹고 물고기를 누었다. 에그, 저기 헤엄쳐 가는 게 그놈인 게냐? 제가 얼마나 캄캄한 데를 빠져나왔는지 알려는가.
그러다 눈보라 치는 밤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어요. 길 잃은 여자가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하는데, 노힐부득은 유혹이 두려워서 거절해요. 하지만 달달박박은 여자를 암자 안으로 들여요. 다음 이야기는 아마 선배도 아실 거예요. 언 몸을 녹이도록 달달박박이 나무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워줬는데, 여자가 함께 목욕을 하자고 말해요. 마침내 그 밤이 지나가고, 아침 일찍 노힐부득이 달달박박의 암자에 찾아가죠. 친구가 유혹에 넘어갔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그런데 나무 욕조도, 그 안의 물도 모두 황금이 되어 있어요. 달달박박은 황금 부처가 되어 있고요. 여자가 관음보살이었던 거죠. 그 황금의 물에 노힐부득도 몸을 씻고는 함께 부처가 돼요.
연출자는 제가 그 이야기의 전체 뼈대를 지켜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쓰면 쓸수록 제 마음이 그 결말과 멀어졌어요. 그 승려들이 황금 부처가 될 것 같지 않고, 길 잃은 여자가 관음보살일 것 같지 않았어요.
*
음악 때문에 나는 일어섰다. 해금 앙상블의 마지막 트랙이 시작되었는데, 갑작스런 축제처럼 여러대의 관악기와 타악기가 들어와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볼륨을 반쯤 줄였다가, 눈짓으로 그의 동의를 구한 뒤 정지 버튼을 눌렀다. 선 채로 다른 씨디들을 뒤적이며 그에게 물었다.
이야기가 재미없지요?
자문자답하며 나는 웃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봄부터 매일 생각했어요.
방금 뱉은 것이 낯익은 문장이란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나는 말을 멈췄다.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난 날마다 생각해.
십칠년 전 그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었던, 검은 바위들이 솟아오른 해변을 비틀거리며 앞서 걸었던 여선배를, 나는 한달쯤 뒤 점심시간에 회사 뒤편 골목에서 마주쳤었다. 삼월 하순이었지만 초겨울같이 추웠고 바람에서 모래맛이 났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국수집 담장 위로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피차 혼자여서 우리는 함께 식당에 들어갔다. 여럿이 식사를 함께한 적은 몇번 있었지만, 따로 대화를 나눈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유난히 안 나오는 국수와 전을 기다리는 동안 선배는—아직 경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지난 몇달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참 재미없는 이야기지, 그렇지? 마른 몸에 비해 마디가 굵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그녀는 웃으며 자문자답했다.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난 날마다 생각해.
*
더이상 나는 그에게 이 실패할—아니, 이미 실패한—대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창사기념일 기억나세요, 선배?
찾고 있던 씨디를 플레이어에 넣으며 나는 물었다.
월미도에 같이 갔었잖아요.
이번에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가 말할 것 같아 나는 긴장했다. 중지 첫마디에 펜대 자국이 두드러진 오른손을 뻗어 그가 찻잔을 들고 있었다.
그랬지, 류경주씨하고.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 또렷한 가야금 독주가 이윽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우리가 탁구를 쳤지 않나?
그가 찻잔을 입술에 대고 기울일 때 나는 생각했다. 차가 식었을 텐데. 그는 여태 차가 식기를 기다렸을까. 죽은 사람은 뜨거운 것을 마시지 못하나.
k씨가 심판을 봤지.
불쑥 누군가가 문턱을 넘어 들어올 것 같아 나는 그의 어깨너머 어둠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부엌도 현관도 텅 비어 있었다. 그와 나 둘뿐이었다.
*
그날 경주 언니는 짙은 남색 원피스에 하얀 면 재킷을, 나는 첫 월급으로 2월에 사뒀던 연두색 투피스를 입었다. 그는 회색 정장에 하늘색 타이를 매고 007 가방을 들었다. 오월 초순의 화창한 날이었다. 제대로 차려입은 우리가 평일 오후 월미도의 놀이공원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아마 바이킹부터 탔던 것 같다. 개구리라는 이름이 붙은 처음 보는 놀이기구도 탔다. 기둥 하나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플라스틱 좌석 여남은개가 그 기둥에 체인으로 매달려 있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기둥이 회전하자 좌석들이 대각선으로 떠오르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회전이 차츰 빨라지는가 싶더니 좌석들이 예고 없이 개구리처럼 튀어올랐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툭 떨어지고, 더 빨리 돌고, 나중엔 예기치 않게 뒤쪽으로 돌며 튀어올랐다가 지옥처럼 끝없이 떨어져내리는 그 기구에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입장권은 그와 경주 언니가 번갈아 샀다. 방금 탄 놀이기구 때문에 어지럼이 가시지 않은 채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는 나에게 경주 언니는 말했다. k씨, 수습이잖아. 아직 햇병아리도 안됐는데. 그녀는 쿡쿡 웃으며 놀렸다. 계란이는 가만있어.
창사기념일 행사가 끝난 것은 오후 한시 삼십분경이었다. 입사 후 밝은 평일 오후에 퇴근하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좀 어리둥절해져 있었다. 갑자기 생긴 시간을 어떻게 쓸까, 생각하며 지하 행사장 정리를 마치고 경주 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먼저 사무실에 들렀다 나온 그가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선배, 뭐 하세요 오늘?
나보다 다섯살 많으며 그와 입사동기인 그녀가 그에게 깍듯이 물었다.
글쎄, 너무 일찍 끝나 뭘 할지 모르겠는데요.
그 역시 깍듯하게 대답했다. 감포에서의 일 이후 그들이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럼 월미도 갈까요? k씨하고 같이.
그는 놀란 듯했다. 나도 놀랐다. 월미도? 되묻는 그에게 경주 언니가 말했다.
거기 놀이공원 있잖아요. 회는 먹으면 좋고, 안 먹어도 되고.
오후의 한산한 인천행 국철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지상구간으로 접어들 때까지, 그들은 여전히 학생처럼 깍듯한 말씨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까지 그들은 5년 가까이 같은 부서에서 잡지를 만들었으므로, 내가 알지 못하는 공통화제들이 담담하게 이어졌다.
윤선배하고 요즘도 연락해요?
그가 물었을 때 경주 언니는 선선히 대답했다.
예, 한달에 한두번은 통화해요.
지금 뭘 하신답니까?
그때 그의 어조는 너무 정중해서 약간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있는데 잘되는 것 같지 않아요. 벌써 나이가 너무 많잖아요.
그제야 윤선배가 누구인지 나는 알았다. 대학 졸업과 함께 회사에 들어와 십일년 동안 근속했던 사람. 내가 입사하기 직전까지 그들과 함께 잡지를 만들고 일을 가르쳤던 선배.
지난 삼월 경주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입사한 첫달에 느꼈던 사무실의 미묘한 분위기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 들큼한 것이 벽 뒤에서 썩어가는 것 같던, 사람들의 미소와 목소리와 속마음이 모두 다른 말을 하는 것 같던 이물감이, 단순히 처음 진입한 사회생활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주관적인 인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6·25 때 월남한 보수적인 오너가 세운 직원 사십여명 규모의 회사였다. 한때 정치판에 몸담은 적 있다는 그 오너는 단신에 강철 같은 카리스마의 소유자였고, 여자 직원은 결혼과 함께 퇴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귀중한 모성을 보호받아야 하므로 가정과 직장을 양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 회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을 주로 채용했고, 그녀들이 이십대 후반에 결혼해 회사를 떠나게 되면 다시 미혼의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창사 후 수십년 동안 이 원칙이 지켜졌으므로, 직원들은 나이든 남자 상사와 어린 여자 평사원으로 양분되었다. 현재 평직원 가운데 남자는 한 사람, 지금 월미도에 함께 가고 있는 그뿐이었다. 그는 스물일곱살에 입사해 얼마 후 결혼했고 돌이 지난 딸이 있지만, 퇴사할 이유가 없으니 변함없이 회사에 몸담고 있었다. 끝까지 회사에 남아 책임을 맡을 사람이므로 상사들을 비롯한 모두가 그를 다르게 대했다.
그와 경주 언니의 선배였던 윤이란 이는 서른네살에 갑자기 결혼하게 되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길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퇴직을 거부한 첫 사례였다. 그녀가 서면으로 노동법의 근거를 제시했지만, 오너의 뜻은 완고했고 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녀가 출근투쟁을 시작하자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작은 조직에서 사람들은 그 싸움을 지지하는 이들과 방관하는 이들,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로 나뉘었다. 매일매일의 냉대와 압박 속에서 그녀는 한달을 버텼다. 아무도 일감을 주지 않는 책상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었다. 내가 그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지원서를 낸 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젠 모르겠어,라고 경주 언니는 나에게 말했었다.
임선배가 어떤 역할을 해줄 거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 누구보다 입장이 난처했을 테니까. 그런데 알 수 없는 건 내 마음이었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사람들, 정말 열심히 싸워야 할 상대는 오너와 상사들인데, 이상하게 임선배가 불편했어. 그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며 끝까지 회사에 남을 선배의 얼굴을, 복잡한 마음 없이 바라볼 수 없었어. 출근투쟁이 시작되고 두주 동안 평직원들 대부분이 태업을 했어. 삼주째엔 평직원 모두가 사표를 쓰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상사들은 그 즉시 모두 해고될 거라고 경고했어. 이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많다고, 어쨌거나 유능한 상사들이 버티고 있으니 잡지가 결호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우린 저녁마다 모여서 회의를 했고, 우리 중 누가 회의 내용을 상사들에게 알리는지 파악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어. 모두 불안해했어. 다수결로 파업도 일괄사표도 결렬됐어. 앞을 알 수 없게 복잡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라고 그때는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더 단순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과정이었어. 우린 깨끗이 졌고, 출근투쟁을 하던 선배는 떠났고, 그 자리에 k씨가 채용됐고, 회사에선 전면적으로 인사 배치를 새로 해서 각 부서 직원들을 모두 떼어놓았어. 이젠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 모든 과정을 임선배가 몰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나서지 않았을 뿐 늘 우리와 같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단지 모두와 똑같이 무력했던 것뿐인데, 나 자신부터 그토록 철저하게 무력했는데, 어째서 그 미소 짓는 얼굴에 술을 뿌릴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었던 걸까?
*
탁구를 치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그였다.
비비탄 장총으로 동물 인형들을 맞혀 떨어뜨리는 부스를 지나 놀이공원의 출구 쪽으로 걷는데, 빛바랜 흰 천막 아래 설치된 탁구대가 보였다. 그와 경주 언니는 무심하게 잠시 의논한 끝에, 다섯 세트를 해서 진 사람이 저녁으로 회를 사기로 했다. 나에게는 네트 옆에 서서 심판을 보라고 했다. 치자고 한 사람이나 그러자고 한 사람이나 심드렁했던 그들의 태도는 경기가 시작되자 곧 진지해졌다. 둘의 실력이 거의 대등했다. 마지막 세트는 여러차례 듀스가 되다가 어렵게 결판이 났다. 누가 이겼는지는 어째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장과 원피스 차림으로 신중하게 써브를 넣고, 지나치다싶게 열심히 쫓아가 공을 받아치던 그들의 모습만 또렷하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춰 서서 웃음을 머금은 채 경기를 지켜보다 제 갈 길을 가곤 했다. 하지만 정작 그와 경주 언니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점수를 얻었다고 특별히 기뻐하지 않고, 잃었다고 표 나게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가끔 함께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웃음의 끝이 길고 쓸쓸했다. 그들 사이에 조심스러운 우정이 존재한 적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한차례 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난 매일 생각해. 속이 텅 빈 하얀 플라스틱 공이 쉬지 않고 탁구대에 부딪히며, 무심하게 맑은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등이 책상 위 자명종 시계를 가려 몇시인지 보이지 않았다. 내 손목시계는 차를 끓이는 동안 부엌의 식탁에 풀어놓았다. 휴대폰은 현관 옆 옷걸이에 걸어둔 가방 속에 있다.
그 시합, 누가 이겼는지 기억나세요?
그가 웃었다.
그런 건 심판이 기억하는 거 아닌가?
누가 회를 샀는지 기억 안 나세요?
생각 안 나는 걸 보니 내가 이겼었나……
기억을 더듬는 듯 그가 커튼이 쳐진 창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경주씨 혼자 계산을 하진 않았을 거야. 같이 냈을 거예요 아마.
그러자 어렴풋이 떠올랐다. 납작한 광어들이 바닥 쪽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그 위로 여남은마리의 오징어들이 빠르게 헤엄치던 푸른색 수조. 그 앞 카운터에서 지갑을 꺼내들고 서로 계산하기 위해 실랑이하던 그들의 옆얼굴. 계란이는 빠지라니까. 나는 얼떨떨하게 옆에 서서, 스물세살이 열세살이라도 되는 듯 베풀어지는 그들의 배려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나만 살았어. 하마터면 그렇게 소리내 중얼거릴 뻔했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듯 그가 말했다.
k씨만 남았네.
그의 침착한 말씨를 흉내내려 애쓰며 나는 대답했다.
아직까지는요.
방금 한 말을 다시 지우려는 듯, 이번에는 그가 밝게 화제를 돌렸다.
희곡 이야기를 더 해봐요.
재미없는 이야긴데요.
아니, 뭐든 나에게는 재미있어. 이렇게 시간이 가지 않을 때는.
그가 다시 비스듬히 어깨를 앞으로 기울였다.
제목이 뭔지 궁금한데.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처음에 생각한 게 있을 텐데.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그렇지, 눈보라가 쳤다고 했지. 여자가 온 밤에.
*
어두운 무대에 눈이 내린다. 눈송이들은 점점의 흰 조명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실은 눈이 아니라 빛이기 때문에, 눈송이 하나하나가 기묘하게 따스해 보인다. 바람 소리의 음향이 차츰 거세어진다. 눈송이-빛-들이 한 방향으로 세차게 몰아친다. 그 방향을 거슬러 흰 옷 입은 여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힘겹게 나아간다.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깝다. 너덜너덜한 담요를 왜소한 어깨에 둘렀고, 추위에 곱은 손으로 담요가 날아가지 않도록 가슴팍을 여며 누르고 있다. 남은 한 손으로는 대나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큰 눈을 치뜨고 허공의 한 점을 올려다보며,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소녀는 필사적으로 걷는다. 걸음이 하도 느려, 마치 영원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이 시각쯤이었을까?
그가 조용히 물어와 나는 말을 멈췄다.
예, 새벽 한시에서 두시 사이예요. 노힐부득의 암자 문앞에서 소녀가 내쫓기고, 들을 가로질러 달달박박의 암자로 가는 길이에요.
그게 아니라……
미세하게 그의 어깨가 더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 사고가 난 것이.
그의 말을 이해한 순간 나는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난 발인 전날 밤늦게야 도착했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확히 어떤 사고였는지 듣지 못했어.
안경알 너머 그의 눈이 어둡고 진지했다.
그전까지도 k씨와는 연락하고 지냈지요? 두 사람이 끝까지 친했으니까.
어느 쪽의 질문에도 얼른 대답하지 못한 채 나는 그의 말끝을 곱씹었다. 끝까지 두 사람이 친했으니까.
내가 아는 한 그와 경주 언니는 끝내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다. 월미도에 다녀온 뒤로 한결 자연스럽게 지냈지만—농담을 주고받았고, 이따금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어른거리는 그림자 같은 경계와 의심, 미미한 실망 같은 것이 두 사람 사이의 공기에 언제나 배어 있었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직원들이 절반쯤 빠져나가 한산하던 점심 무렵,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 마주 앉아 신문을 보던 그들의 대화를 기억한다. 관광용 헬기가 바다에 추락해 조종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로 신문과 방송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3억…… 보상금이 3억이라.
그가 감탄하듯 낮게 중얼거렸을 때 경주 언니가 물었다.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보상금 3억이, 그래서 그냥 어떻다는 거예요?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그만 그 자리가 불편해졌다.
피곤하게 그러지 말아요, 경주씨.
미안합니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그녀가 사과했다. 그가 신문을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커피가 담긴 자신의 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몸을 돌리고 한발 걸어가려다 말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류경주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도 진심으로 그 사과를 받지 않았다.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는 말.
그 국수집에서 경주 언니는 말했다.
그 말 때문이었어. 그 말이 갑자기 또렷이 생각났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내 손에 빈 유리잔이 들려 있었어. 임선배는 얼굴이 흠뻑 젖어서 날 바라보고 있고. 몸이 덜덜 떨려왔어. 잔을 떨어뜨리면 깨질 것 같아 힘껏 움켜쥐고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은 내가 그걸로 더 무서운 짓을 할까봐 불안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학교 다닐 때도, 아무리 술을 마셔도 그런 행동은 한 적 없었어.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사기잔을 그녀가 가만히 쥐었다 놓았다. 반신반의한 채 경계하며 나는 그 조심스런 손동작을 지켜봤다. 그녀와 단둘이 이 식당으로 들어온 것이 어쩐지 잘한 일 같지 않았다.
파업을 해야 하나, 한다면 언제 할까. 모두 함께 사표를 써야 하나, 그게 수리되면 다음은 어떻게 할 건가. 그렇게 끝없이 길어진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선배와 함께 지하철을 탔어. 내가 내릴 지하철역이 가까워졌는데 선배가 그 이야기를 했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란 말도 있잖아, 경주씨.
핏기 없던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상기된 것을 나는 보았다.
물론 그건 단지 그날 선배 마음에 오가던 많은 생각들 중 하나였을 수 있어. 그렇게 직설적으로 누군가가 떠나주길 바란다고 말한 건 아니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난 당황했어. 당황한 마음을 숨기고,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하고서 지하철에서 내렸어. 왜 그렇게 얼굴이 뜨거워졌는지 몰라. 3분 만에 완성된다는 증명사진 부스를 지나는데, 거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무슨 물감을 칠한 것같이 붉어져 있었어.
나는 당황했다. 누구도 선뜻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회사의 상황에 대해 그녀가 여태 설명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수순으로 그녀는 왜 감포에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자면 상대편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험담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다. 여전히 의심하며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토록 착잡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가 경솔하고 감정적인 사람, 가까이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할 선배라는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금까지도 내가 자꾸만 그 말을 떠올리곤 한다는 거야. 마치 그게 임선배가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해낸 말인 것처럼.
그때 나는 그녀의 어깨가 유난히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 목에서 팔로 이어지는 선이 유달리 가파른 경사로 미끄러져내려와, 아래쪽으로 처진 작은 어깨뼈를 지나 약간 통통한 팔—그녀의 몸에서 유일하게 통통한 부분—로 이어졌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여고생 시절부터 입어 몸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회색 폴라티를, 그 아래 드러난 힘없는 어깨뼈의 윤곽을 나는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다음에 누군가가 결혼하게 될 때, 다시 지난번처럼 우리가 싸울 수 있을까? 질 게 분명한 싸움을 누가 하려고 할까? 디자인팀 사람들하고 얼마 전에 이야기해봤는데, 모두 여기서 적당히 경력을 쌓아 결혼 전에 이직하겠다는 분위기였어. 신문을 펼치면 구직란부터 본다는 사람도 있었어.
그때까지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몇가지 사정으로 그녀가 사실상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도, 대학 1학년부터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얼마 전에 결별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게 현명한 건지도 몰라. 모두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k씨도 신중하게 생각해. 여기가 떠나야 할 절이라면, 정말로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우린 임선배와는 처지가 다르니까. 뼈를 묻을 수 있는 직장이 아니잖아.
*
그러나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
그는 그 회사에 뼈를 묻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2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둔 이듬해, 그가 경주 언니보다 먼저 이직을 했다. 경력직 공채로 들어간 시사잡지 편집부에서 5년쯤 일하다가, 한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특집기사가 인쇄 직전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항의를 위한 태업과 파업, 주동자 해고의 수순을 밟은 뒤 기자들은 끝까지 싸우자는 이들과 업무복귀하자는 이들로 분열되었다. 그는 돌아가지 않는 편을 택했다.
언론이 그 일에 침묵했으므로 당시 나는 그 과정을 세세히 알지 못했다. 파업 이후의 싸움이 다시 일년을 끌었으니, 천막을 치고 장기농성을 하는 동안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은 사측의 회유와 협박, 한밤의 몸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모금을 하고 스스로 사비를 추렴해 새로운 잡지를 꾸렸다. 그곳에서 그는 마지막 4년을 일했다.
그의 1주기에 동료 기자가 쓴 짤막한 회고 기사를 나는 지난봄에야 읽었다. 천막에서 농성을 하며 너나없이 집에 생활비를 못 가져다주던 시기에도 그는 늘 조용하고 침착해서, 친가나 처가에 재산이 많은 모양이라고 짐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짐작이 틀렸다,라고 그 기자는 썼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고등학교 동기라는 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녀석이 그 무렵에 저에게 전화했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오만원만 빌려줄 수 있느냐고.’
기사 하단에 단체사진 한장이 실려 있었다. 천막농성 시절 기자들이 야외용 플라스틱 탁자에 둘러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탁자 모서리께에서 두 손으로 턱을 고인 채 웃고 있었다.
서울내기들보다 더 서울내기같이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사람. 새벽까지 다들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는데 술집 화분에서 풀잎을 꺾어 피리를 불어보다 얼른 내려놓던, 사실은 촌놈. 암 진단을 받은 즈음이었을 여름에 그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제 너무 착하게 살지 말아야겠어. 착한 사람은 일찍 죽는 것 같아.’ 왜 그때 나는 그토록 야무지게 되받아쳤던가? ‘당신, 별로 안 착하거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테니 걱정 마.’
*
바깥이 너무 고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커튼을 걷어보면 눈이 내리고 있는 것 아닐까. 음보다 침묵이 또렷하던 음악은 조금 전 마지막 트랙까지 돌아가 멈췄다. 여전히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답을 기다리며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갓길이 없는 구간이라서, 사고차량이 너무 위험해 보이니까 경주 언니가 차를 세운 것 같아요.
자신도 위험할 거란 생각을 못했던 거군.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도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결국 죽었어요. 경주 언니 삼우제 조금 지나서.
신혼이었는데.
결혼하고 일년 반 정도 됐을 거예요.
나는 결혼식 때밖에 못 봤어.
사람 좋고, 조금 통통하고…… 그 무렵 경주 언니가 많이 말라서 더 그렇게 보였던 것 같아요. 둘이 참 달랐는데 이상하게 어울렸어요. 결혼 전에 셋이 저녁을 같이 했는데, 계속 저에게 뭘 먹이려고 하더라고요.
착한 사람이었나봐.
경주 언니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어요.
류경주씨가,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랬죠. 많이 예민하고.
그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양, 기도하듯 조심스럽게 두 손을 깍지 끼었다.
*
가끔 우리가 벌레 같다는 생각을 해,라고 경주 언니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결혼한 뒤 서로 바빠 거의 8개월 만에 만났을 때였다. 주말까지 시내로 외출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내가 신혼집으로 찾아갔다. 그녀의 남편은 주말 특근을 나갔고, 언제나처럼 그녀는 나에게 케이크며 쿠키 같은 달콤한 것들을 먹이고 싶어했다.—그녀는 사무실 책상 서랍에도 늘 초콜릿과 사탕을 넣어두고 다녔다—내가 가져간 차를 열어 함께 마신 뒤 그녀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다. 그렇게 단것들을 먹었는데도 그날 그녀는 지쳐 보였다. 몰라보게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수령이 오래된 듯한 갈참나무들 아래를 지나다가 불쑥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오래 살아가는 것들 아래 있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어쩌다 불이 나거나 벼락만 맞지 않으면 수백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음달, 다음해, 아니, 오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
그렇게 냉소적인 경주 언니의 모습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시기가 아마 그녀에게 가장 어두웠던 때였다. 나와 그가 그 회사를 떠난 뒤 경주 언니는 서른세살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회사와 싸울 준비를 함께 했는데, 그 과정을 누구와도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 대부분 후배인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혼자 노동청에 신고를 했다. 회사에서 책상을 치워버릴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기약 없는 출근투쟁을 시작했고, 마침내 회사가 승복했다.
더 어려운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따돌림이 심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공황장애도 그 무렵 경험했다. 숨이 가빴어. 숨을 못 쉬어서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정말로 조금도 숨을 쉴 수 없었어. 그렇게 그녀는 일년을 버텼다.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면, 법적으로 이긴다 해도 결국은 지는 거라는 선례가 될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얼마간 쉬며 건강을 추스르는 대신 바로 지방도시의 작은 신문사로 이직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결국 결혼 때문에 그만둔 것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않고 싶기 때문이었다. 선례라니, 나에게는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본의든 아니든 오랜 시간 그녀를 따돌리고 있는 바로 그 동료들을 위한 선례라니.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시간에 갇혀 앞을 보지 못하므로, 타지에서 시작한 새 직장생활에 경주 언니는 만족했다. 대우가 박한데다 직원이 적어 일이 고된 편이지만 우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한달에 두번 그녀가 서울로 올라가고 두번은 남편이 그녀에게 내려와 주말을 보낸다며, 다시 연애를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싫지 않다고도 했다. 지금은 모든 게 괜찮은데, 앞으로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할지 그게 걱정이지.
그날은 오월 첫주 연휴의 마지막날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연휴를 보냈고, 그사이 양가 어른들에게 미리 어버이날 선물을 드리며 식사를 했다. 그녀 혼자 내려가는 게 안쓰러워서였는지 남편이 차에 동행했다. 가끔 그렇게 함께 내려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바로 올라가곤 한다고, 그녀는 자랑과 근심과 애정이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 적 있었다.
시간에 갇혀 앞일을 알지 못했으므로, 경주 언니는 특별히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 없이 사고차량 뒤에 차를 멈추고 내려섰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스스로 부대끼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계산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까다롭고 유난하고 피곤한 선택들로, 그러나 자신으로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유일한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 그녀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부고를 듣고 내려가며 생각했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릴 내려다보는 존재 같은 건 없다고. 우리를 혐오하거나 연민하거나 무관심한 존재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고. 밤의 고속도로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 찌르고 찔리며 꿈틀거린다고. 그러다 죽으면 사라진다고. 그 모든 번민, 선의와 후회가 남김없이 무로 돌아간다고.
*
함께 있어주세요, 소녀가 말한다.
젊은 승려가 멀찍이 떨어져 서서 대답한다.
그건 안된단다.
제발.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만.
소녀는 나무 욕조의 물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 그 눈송이들을 커다랗게 확대한, 눈의 결정 모양을 한 빛무늬가 무대 뒤편 검은 벽에 하얗게 비쳐 있다.
그 결정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승려가 묻는다.
왜 머리 위 눈이 녹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가 시간 밖에 있으니까요.
*
그전에, 회사 앞으로 류경주씨가 날 찾아온 적 있었어.
낮아진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나는 손바닥으로 두 눈꺼풀을 문질렀다. 졸음이 물러나고 살갗이 까슬해질 때까지 비볐다.
경주씨가 결혼하고 반년쯤 됐을까?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 처음 하는데…… 꼭 아이를 가진 사람 같았어요. 집사람이 딸아이 처음 가졌을 때 앉고 일어서는 걸 유난스럽게 조심스러워했는데, 뭔가 비슷했어. 못 보던 기미도 얼굴에 잔뜩 끼고.
그는 텅 빈 머그잔을 눈높이까지 올려 들었다. 차가 남긴 얼룩의 무늬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잔 안쪽을 들여다봤다.
좋아하던 커피도 안 마시고, 무슨 허브차를 앞에 놓고 한시간쯤 딴 이야기만 하다 갔어.
소리 내지 않고 찻잔을 책상에 내려놓은 뒤 그가 다시 손깍지를 끼었다.
처음엔 아마 나에게 뭔가 부탁할 일이 있어 왔을 거라고 생각했어. 가령 이직할 자리를 알아본다거나.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았어요. 대화는 조용하고, 어느 때보다 순조로웠어. 그 친구하고 그렇게 순탄하게 대화를 나눈 게 아주 오랜만이라고 느낄 만큼.
그때가 경주 언니에게는 어려운 시기여서.
그랬겠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 화제는 피하고 싶어했어.
조용히, 깨끗하게 잠이 가셨다. 그 무렵 그녀가 정말 임신을 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그 아이를 잃었는지, 그랬다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나는 처음 만났던 인상 그대로 햇병아리 어린 후배일 뿐이어서,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에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흉내내듯 고개를 수그려 텅 빈 찻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와 그가 우스꽝스러운 정장 차림으로, 기우는 햇빛을 받으며 탁구를 치던 모습을 생각했다. 이상해요,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그가 묻는 음성이 아득히 멀어진 것 같았다.
늘 생각하던 경주 언니가 오지 않고, 선배가 오늘 저에게 왔다는 게.
*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그녀를 생각했다. 갓길이 없는 구간을 지날 때마다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팔았다. 갑자기 운전을 그만둔 것에 대해 누구에게든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
희곡 얘기를 더 해봐요.
그의 목소리가 더 낮고 아득해져, 마치 이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가 다예요. 끝내지 못했어요.
좀더 또렷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럼 쓰다가 멈춘 장면 얘기를 해봐.
나는 그 장면을 이야기할 마음이 없었다.
*
소녀가 물 밖으로 걸어나온다. 젖은 옷에서, 팔뚝과 종아리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러내리는데, 머리 위에 쌓인 눈만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 무대 앞 객석을 향해 한발씩 다가오며 그녀가 말한다.
나는 잠을 잘 수 없어요. 당신은 잠들 수 있어요?
잠깐 잠들어도 꿈을 꿔요. 당신은 꿈을 꾸지 않아요?
언제나 같은 꿈이에요.
잃어버린 사람들.
영영 잃어버린 사람들.
거기서 멈췄다. 더 쓸 수 없었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했기 때문이다. 더 쓸 수 없다고 메일을 보낸 며칠 뒤 새벽, 아직 잠들기 전이었는지 친구가 즉각 전화를 걸어왔다.
그럼 더 쓰지 않아도 돼. 대사는 필요 없어. 말로 못하는 걸 몸으로는 할 수 있어. 몸을 비틀고 관절을 꺾을 수 있어. 무너지고 으스러질 수 있어. 그렇게 어떻게든 다다를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더 쓰지 않아도 돼. 원고만 넘겨.
하지만 나는 원고를 넘기지 못했다. 오직 그 모습, 머리에 눈을 인 소녀가 관절을 꺾고 몸을 비틀고, 무너지고 으스러지는 모습만 남았다. 친구가 무대에 올릴 그것과 같을 수 없을, 내 상상 속 그녀의 고통만이.
*
그를 등지고 걸어가 창문 앞에 서자 찬 기운이 느껴졌다. 커튼을 열자 더 추워졌다. 밭은기침을 하며 반투명한 안쪽 유리창을 열었다. 투명한 바깥쪽 유리창이 나왔지만 올록볼록한 비닐을 붙여놓아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귀퉁이부터 반쯤 비닐을 뜯어냈다. 과연 어둠 속에서 성글게 날리는 눈발이 보였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는 건가?
나는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
끝을 쓰지 못했다니까요.
거기서 멈췄다면 그게 끝인 거지.
내가 재차 고개를 젓자 그가 물었다.
더 쓴다면, 끝에 가서 그들이 평화를 얻나?
지난봄 보았던 단체사진에서처럼, 그는 책상에 팔꿈치를 얹고서 비스듬히 턱을 고이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나는 대답했다. 부처가 되지 않고 관음보살이 되지 않고, 나무 욕조에 담긴 물이 황금이 되지 않고 그들이 평화를 얻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여전히 손에 턱을 고인 채 그가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k씨는 언제나 평화스러운 사람이었는데.
나는 되물었다.
제가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었어.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땐 제가 지금보다 말이 없었으니까, 단지 조용하니까 그렇게 보였던 것 아닐까요?
그런가. 하지만 지금도 k씨는 평화로워 보여.
아니요, 불가능해요. 이 세상에서 평화로워진다는 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뒤척이고 악몽을 꾸고.
내가 입을 다물었는데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악물고 억울하다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간절하다고, 간절하다고 말하고.
누군가가 어두운 도로에 던져져 피흘리고.
누군가가 넋이 되어서 소리 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고.
누군가의 몸이 무너지고. 말이 으스러지고. 비탄의 얼굴이 뭉개어지고.
*
하지만 평화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가 의자를 밀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한테는 언제나 그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의 키가 이렇게 컸을까,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보다 사오 센티미터 정도 큰, 남자들 중에선 체구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웅크린 자세로 책상 앞에서 일하면 오히려 키가 줄어들지 않나.
그러자 불현듯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언젠가 이렇게 그와 마주 선 적이 있었다. 마주 앉아 무엇인가를 반박하고 옹호한 적이 있었다. 침묵하며 고집스럽게 서로를 건너다본 적이 있었다.
*
밤 아홉시가 채 안되었는데 뜻밖에 마감이 끝난 십일월 저녁이었다. 한꺼번에 원고가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며 불평하던 디자인팀은 다음날 아침 일찍 오기로 하고 먼저 퇴근해, 그와 나만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열쇠를 경비실에 맡긴 뒤 어둑한 로비를 빠져나오자 밤바람이 찼다. 앞장서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저는 여기서 걸어갈게요, 선배.
걷다니, 어디까지?
이상하다는 듯 그가 물었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퇴근할 땐 삼양동까지 걸어가는 게 나아요.
그렇게 먼 길을, 걸어서?
두서없이 나는 대답했다.
빨리 걸으면 한시간 반쯤 걸리는데, 가슴 답답한 것도 없어지고…… 버스를 타도 무척 막히니까요. 아침마다 시달리는 걸로 됐지, 저녁까지 만원 지하철 타고 싶진 않고요.
그래? 그럼 오늘은 나도 걸어볼까.
편하지만은 않은 선배가 함께 걷는다니 기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꺼려질 것도 없었다. 벌써 일년 가까이 함께 일해 서로의 사생활과 장단점을 알았고, 서로 도울 일이 많다보니 사소한 신뢰가 쌓여, 일정한 거리를 둔 약간의 우정이 자라나 있었다. 회식 뒷날 아침 그가 서랍에서 꺼내 건네준 겔포스를 받아들고 조금씩 빨아 마시다가 눈이 마주쳐 웃음을 흘리기도 했고, 그래도 숙취가 나아지지 않아 토마토주스를 사러 가는 나에게 그가 천원권 지폐를 주며 한병 더 부탁하기도 했다. 손윗사람인 그의 생활을 지켜보며 배운 것들도 있었다. 잡지가 나와 취재원과 필자들에게 보낼 때면 반드시 펜으로 감사 엽서를 써서 해당 페이지에 끼워놓는다거나, 아무리 바빠도 퇴근하기 전에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는 습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막말을 하는 상사에게 자존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거나, 때로 불가피할 때 체념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위계가 중요한 직장생활에서, 더구나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해가 흐르면 한낮의 놀이공원에서 정장 차림으로 탁구를 칠 만큼 무람없어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허물없지 않아서, 불빛이 휘황하고 번화한 거리와 한산한 거리, 다시 나타나는 번화한 거리를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통과해 걸었다. 다시 한적해진 인도의 포장마차 앞에 그가 멈춰섰다.
오랜만에 걸으니까 배가 고픈데. 뭐라도 먹고 가지.
자리에 앉자 그는 소주 한병부터 시켰다. 그즈음 위염 약을 먹던 나는 한잔만 받아 마셨고, 그는 석잔을 거푸 마시고는 한쪽으로 병을 치워버렸다. 오뎅국물과 떡꼬치를 앞에 놓고 일 이야기를 심상하게 주고받다가 그는 물었다.
k씨는, k씨의 자리가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가 깍듯한 경어를 쓸 때마다 그랬듯 나는 긴장했다. 내가 일을 못한다고 말하려는 걸까? 자신의 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고 나에게도 말하려는 걸까.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지난 삼월 국수집에서 따뜻한 물잔을 쥐었다 놓으며, 이 말을 이 아이에게 다 해도 될까, 가늠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던 경주 언니처럼.
그후 한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회사에서 느끼는 고립감에 대해 말했던가? 동료들의 끈질긴 오해가 그를 절망시킨다고 말했던가? 아니, 그런 말들은 하지 않았다. 한번도 국그릇을 들어올려 입에 대지 않고, 오직 숟가락만 사용해 말끔하게 오뎅 국물을 비운 뒤 그는 말했다.
그럼, 더 걷고 싶으면 k씨 혼자 걸어요. 난 이제 버스를 타고 가야겠어.
버스정류장에서 그는 나에게 배웅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주 걸어다니면 다리가 아프지 않느냐며 웃었다.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고등학생같이 방황하는 거예요?
놀리는 듯, 짐짓 걱정스러운 듯 그가 존댓말로 물었다.
그날 삼양동까지 마저 걸어가던 길은 평소처럼 자유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벽쯤 눈비가 오려는지 습기 찬 바람이 얼굴을 얼얼하게 했다. 다리가 더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걸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의 내 책상에 정확히 앉아 있을 내 모습이 타인의 것 같다고 느끼며 걸었다.
다음날 언제나처럼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그가 지나가듯 간밤의 꿈 이야기를 했다. 두돌이 되어가는 부산스런 딸아이가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맞췄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딸아이의 얼굴이 아니어서 놀랐다. 아주 낯선 아이였는데, 그게 어린 k씨란 걸 어째선지 알아볼 수 있었어.
그렇게 먼 길을 맨날 혼자 걸어다닌다고 하니, 아마 좀 걱정이 됐었나보지.
그가 스스로 꿈을 분석했다.
이런 꿈 이야기를 하니까 이상한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그는 물었다.
아니요,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오해 같은 건 하지 않겠지.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었다.
*
나는 힘주어 바깥쪽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까지 열고 바깥으로 손을 내밀었다. 찬 눈송이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가 곧 사라졌다. 텅 빈 도로변의 나무들이 눈에 덮여 고요했다. 빽빽이 주차된 차들 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아직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인도가 가로등 불빛에 빛났다.
요즘 나는 이런 일들이 좋아졌어,라고 경주 언니는 메일에 썼었다. 새 직장 옆에 얻은 방의 햇빛 드는 겨울 창을 찍어 함께 보내면서였다. 막상 결혼할 때는 다른 일이 더 중요해서, 이런 것들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 이 방은 무늬 없는 흰 벽지로 도배를 하고, 문하고 창틀은 하얀 페인트로 직접 칠했어. 밝은 게 좋아서 커튼은 달지 않았어. 이상하지, 이제야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은 늘 마음 어딘가가 부서져 있어서, 굳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가봐.
그가 걸어와 창 앞에 나란히 섰다.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는 추운 듯 어깨를 웅크렸다. 두꺼운 안경알 안쪽에서 빛나는 눈이 바깥을 향했다.
이제 손을 꺼내 눈을 향해 내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손은 얼마나 차가울까. 거기 닿은 눈은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눈 한송이가 녹지 않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순간 내가 그와 악수를 나눈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공손하거나 가볍게 목례했을 뿐, 가장 담담한 예의를 갖췄을 뿐이었다. 한번의 꿈속뿐이었다, 잠시 우리가 닿았던 것은. 내가 그의 딸아이만큼 어려져서 무릎에 앉았을 때.
이제 밝아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마치 검푸른 허공에 멈춰서려는 듯 느리게 떨어져내리는 눈송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우리의 눈과 눈이 만났다.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