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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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마리오 베네데띠 『휴전』, 창비 2015

몬떼비데오에 사랑이 찾아왔다

 

 

황수현 黃秀鉉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교수 juansole@hanmail.net

사랑은 죽음에 대한 보상이다.

쇼펜하우어

 

세계문학40-휴전-표1_fmt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었다는 무히까(J. Mujica) 우루과이 전 대통령의 서민적 삶이 회자되는 요즘 귀한 책 한권이 나를 찾아왔다. 우루과이 출신의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Mario Benedetti, 1920~2009)의 『휴전』(La tregua, 1960, 한국어판 김현균 옮김)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네데띠를 떠올려보았다. 해맑은 미소를 짓던 소년 같은 작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아메리카문화원(Casa de America)에서 열린 문학강연회에서 그를 만났던 것이 생각났다. 그를 시인이라 부를까 소설가라 부를까 잠시 망설였다. 유학시절 시집으로 그를 처음 만났고 나중에 소설을 읽게 된 만큼 나에게는 시가 베네데띠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던 셈이다.

37권의 시집과 7편의 장편 외에도 단편과 희곡, 에세이 등도 40권 넘게 출간되었고 이들 작품이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니 베네데띠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수도 몬떼비데오(Montevideo)를 문학적 공간으로 형상화한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세계의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문학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그의 시적 감수성과 시어의 아름다움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이제 장편 『휴전』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한국에 초역되어 소개된 『휴전』을 읽으며 얼핏 김훈(金薰)의 단편 「화장」(2003)이 떠올랐다. 물론 두 작품은 중년의 남자가 직장에서 만난 여직원에게 설렘을 가지고 몰래 연정을 품게 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어찌 보면 『휴전』은 사무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직장생활의 신산(辛酸)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데서 삶의 통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무미건조함과 비루함의 틈새에서 시원적 갈망의 샘을 발견할 때 타나토스적 소멸과 에로스적 생성의 이미지는 중첩된다. 이렇듯 감수성의 혈관을 타고 온몸의 섬모(纖毛)를 일으키는 사랑이야기는 당대의 미시적 삶을 담담하게 재현하는 풍경화다. 물감을 풀어 몬떼비데오의 일상을 그리다보면 번져나오는 소소한 이야기들, 업무 스트레스와 질투와 권력욕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은 지구 반대편으로 길을 내야 만날 수 있는 나라 우루과이에서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사무실이 빌딩 속 정글과 다름없는 ‘미생(未生)’의 일상에는 ‘완생(完生)’의 로망이 있을 법한 것.

베네데띠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극작가였던 만큼 시적 서정성을 글에 담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해낸다. 그래서 『휴전』에는 도시적 삶이 격벽(隔壁)을 허물고 나온다. 이웃과 친족, 동창의 이야기가 부도덕하고 은밀한 밀실을 떠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 몬떼비데오 곳곳을 찾아간다. 까페떼리아에서, 강변에서, 사무실에서 이야기되는 소재는 어찌 보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소시민의 생활이다.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으면 포착할 수 없는 일상. 그 중심에 지치고 힘든 중년의 직장인 홀아비 마르띤 산또메가 있다. 단조로운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49세의 이 범부에게 어느날 거짓말처럼 사랑이 찾아온다. 스물넷의 신입사원 라우라 아베야네다. 그녀는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이 수수한 사람이지만 마르띤의 고갈된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순수함의 표상이다. 홀아비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마르띤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설렘으로 불러보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마르띤은 그녀를 라우라라는 이름 대신 아베야나다라는 성으로 부른다. 이런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르띤의 마음에 틈입하고 둘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베네데띠는 이 작품에서 우루과이 중산층의 삶을 그리며 연대기 작가의 시선으로 도시의 일상을 형상화한다. 도시공간이 보통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이라고 믿었던 베네데띠에게 일기라는 형식은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에 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작품 속에서 마르띤이 퇴직날짜를 기다리다 만난 사랑의 시간은 시작과 끝 사이의 휴지기를 의미하는 휴전의 시간이다. 휴전은 결국 괄호 안에 묶여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괄호 안의 시간은 공식적인 서사 사이의 행간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이는 물리적이며 직선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의 삶’에서 벗어나 초월적 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꿈꾸는 인간 욕망의 발현이다. 소설은 삶의 미시적 정서인 사랑과 욕망, 불안과 고독을 살펴보는 문학적 창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사회의식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베네데띠는 이 소설에 당대 우루과이 사회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밑그림으로 두고 있다.

시인 베네데띠를 소설가로, 이야기꾼으로 재조명하게 한 작품이 『휴전』이니, 베네데띠의 작품 사랑은 깊어 그는 이에 대한 애정을 수차례 표현했다. 『휴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시집 『사랑, 여인 그리고 삶』(El amor, las mujeres y la vida, 1995)에도 녹아 흐른다. 작품 속 마르띤 산또메와 라우라의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쓴 「라우라의 마지막 생각」이라는 시 일부를 읽어보자.

 

어쩌면 산다는 것 그건

가까이 있는 것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산또메

당신은 모르지요

얼마나 어둡고

얼마나 멀고

얼마나 조용한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사랑은 죽음에 대한 보상”이라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봄날은 간다”(손로원 「봄날은 간다」)라는 크로노스적 시간의 속도 앞에 우리는 『휴전』의 마르띤처럼 카이로스의 봄을 꿈꿀 수 있을까.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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