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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권민경 權旼暻
1982년 서울 출생.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nunkiforu@naver.com
귀여운 육손이
귀부인의 부채처럼 활짝
필 때 아름다운 손
레이스처럼 펄럭이던
여분의 삶
6번째 손가락을 분리한 밤
열이 오르고 환상 속에서 두 손 모두 손가락이 6개인
아름다운 난쟁일 만나지
수줍은 듯 얼굴을 감싸는
12개의 별자리 12개의 귀여운 손가락
하늘이 커다란 오르골처럼 돌아가요
별들이 길을 따라 행진하네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
6번째 손가락이 잡음을 만들어내지
꿈은 조율되지 않네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이 다정할 때
갓 먼지를 털어낸 보석함에
떼어낸 손가락 두개를 고이 넣어두었어
어느날 내 방엔 조그만 발자국이 어지럽고
보석함은 뚜껑이 열린 채
오르골 소리는 끓어질 듯 이어지네
없어진 건 6번째 손가락뿐
잠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고 머리맡을 더듬거렸어
내가 벗어놓은 이름은 어디 있나
어느 주머니 속에서 떨고 있나
아프고 귀여운 기형의 나날
고아
홀로 태어난 밤 톱질 소리 들려요 흩어지는 톱밥과 흩날리는 눈빛들
막 사포질을 끝낸 관 속에서 죽은 암소의 젖을 빨아요 빨간 비로드로 옷을 지어요 불러줄 입이 없는 이름은 지워요 휘파람 소리가 자꾸 들락거려요
국경에서 온 먹구름은 손뼉을 쳐요 털이 곤두서고
북풍이 도래해요 우리는 노래해요 자꾸 등 떠미는 대패
재채기처럼 세상에 흩뿌려져요
나는 플라스틱 꽃을 달고 구멍난 몸으로 물 위를 걷고 뛰어 어스름한 나라에 가고 웃기도 합니다
0.1초씩 북상하는 어둠
물갈퀴를 흔드는 거위
휘몰아치는 깃털들이 뺨을 때려요 길이 엉키기 위해 자라요
모두가 도망 도망을 가고 손가락질하고 못질을 해도 꽁꽁 언 시간을 도시락에 싸서
소풍 나갑니다 야바위꾼이 부모를 뒤섞고 끝없이 자라는 머리카락이 세상을 휘감고
펄럭거리고 날아가고 멀리멀리 사라지고
마음껏 쏘다닐래요 오늘의 눈을 멀게 하고 세상을 멀게 하고
꿈을 꾸고 꿈을 갚아서 마구 부스러뜨릴래요 잃어버린 생일파티 할래요 톱 연주 소리 들려요 포근한 밤 톱밥 속엔 웃음이 기어다니고
기억은 사각사각 갈려요 새하얀 언덕에 세워놓은 목각 부모
따뜻한 손들에 악수 청하면
해진 발이 사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