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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근수 외 『지금, 한국의 종교』, 메디치미디어 2016

한국의 종교,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나

 

 

김학철 金學哲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seinkim@yonsei.ac.kr

 

 

175_417다이앤 무어(Diane Moore)는 종교문맹(religious illiteracy)이라는 말로 현재 교양인들의 상태를 표현했다. 종교문맹이란 주요 종교에 대한 기본적 지식의 결여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부정적 결과들을 종합한 말이다.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중등학교 공교육 과정에 종교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를 모르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심지어 문맹으로도 나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문맹인의 삶은 불편하고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충분히 감지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종교문맹의 폐해 역시 다종교사회에 들어선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몇년 전 세계 유수 대학의 교양교육 과정을 분석하다가 놀란 적이 있다. 하바드 대학의 예를 들면,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일정 학점 이상 핵심 교양 과목들을 수강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개설된 과목명 가운데 약 20%가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수업 계획서나 내용이 아니라 과목명이 말이다.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인류사회의 미래를 기획할 때 종교독해력(religious literacy)이 핵심이라는 학문적 인식이 확고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학문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령 미국의 경우 세계종교를 관찰하고 통계를 내는 일은 중앙정보국(CIA)에서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종교에 대한 조사를 통계청이 아니라 국정원에서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의 종교』는 한국의 주요 종교인 개신교, 불교, 가톨릭이 드러내는 걱정거리가 무엇이고, 왜 그것이 걱정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 뒤표지에 있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문구는 ‘지금, 한국의 종교’가 놓인 처지를 압축한다. 한국 종교의 행태가 시민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 책에서 논의되는 종교들이 당시의 시민 상식을 걱정하고 그것을 초월하여 탄생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비극적이다.

조성택은 불교의 ‘깨달음 지상주의’와 그것의 결과인 ‘오만과 편견’ 현상을 지적한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당연한 듯 보이는 연결고리를 해체하면서, 그 고리의 접착제였던 역()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한다. 또한 깨달음을 달성하려는 사람, 그러나 세상과 단절한 도인(道人)들이 불교의 주체가 된 현상을 ‘도인불교’라고 부르며 꼬집는다. 오늘날 불교 내의 이런 경향은 불교의 불변하는 전통도 아니며 도리어 불교의 핵심인 수행의 일상성과 사회성을 파기하게 한다. 이것은 지금 불교의 가장 큰 병폐인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성택은 이에 대해 “합리적 의사결정의 주체로서의 시민을 넘어 ‘동체대비’(同體大悲, ·보살과 중생이 동일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대자비평자)와 같은 실천적 영성을 갖춘”(182면) ‘시민보살’이 불교적 감성을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시민보살은 화쟁(和諍)이라는 불교적 통찰을 통해 새롭게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김진호는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를 들춰낸다. 이른바 ‘콘스탄티누스적 전환’(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받음으로써 박해받는 종교에서 권력의 종교로 전환한 기점이 된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 이후를 일컬음) 이후 그리스도교는 정치권력과 손잡고 배타주의의 역사를 걸어왔다. 대내적으로 이단과 이웃 종교를 배타와 증오의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배타주의의 근원에 유일신 신학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일신 신학은 아브라함 계통의 세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의 단일신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럽중심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해 강화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개신교는 반공주의, 친미주의, 우리 문화에 대한 반전통주의, 그리고 성장지상주의가 혼합된 형태로 배타주의를 강화해왔다. 김진호는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그 에토스를 ‘증오의 영()’으로 부른다. 이 증오의 영은 이상화된 몸을 바라며 끊임없이 성형하려는 욕망의 몸에 성육신한다. 이 몸은 배제와 위계의 몸이다. 자신과 다른 것은 배제하고, 위와 아래를 엄격히 구분하는 질서를 세우고자 한다. 하여 예수는 죽음을 통해 현재의 몸 밖으로 나가, 타자됨의 영이 됨으로써 구원을 만들고자 한다. “타자를 내 몸 안에 모심으로써 내가 구원/해방된다는” “타자성의 영성”(244면)이 지금 한국 개신교에 요청된다.

김근수는 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문제의 핵심으로 꼽는다. 이 권위주의는 두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대외적으로는 “가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주의, 대내적으로는 교회의 성직자 권위주의다. 권위주의는 진짜 권위를 상실한 데서 온다. 진정한 권위는 대외적으로는 이웃 종교를 존중하고, 대내적으로는 평신도를 존중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권위의 회복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난은 신학·신앙의 핵심 주제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달렸다. 가난에 대한 성찰과 가난 실천은 자유와 해방이라는 이상을 바람직하게 강조하게 하는데, 자유와 해방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종교 본질 회복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들 세명과 청중이 함께 쓴 책이라 할 수 있다. 세 저자가 돌아가면서 각각 발제를 하고, 그에 대해 다른 두 저자가 논평을 하면 다시 발제자가 대답하고, 이후에는 청중 역시 질의응답에 참여하는 세미나의 형식을 고스란히 책으로 가져왔다. 세미나로서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또 기왕에 이런 형식의 책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의 내용을 고려하면 의의가 없지 않다. 종교의 배타와 독선, 고립과 불통 등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발제자 홀로 하지 않고 대화로서 심도 있게 서로 나누며, 나아가 물음과 대답을 확장해가는 형식은 그 자체로 지금 한국 종교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이른바 신뢰 속에서 의견이 개진되는 화쟁을 볼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종교에 대한 걱정과 비판은 학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내부에서도 활발히 일어났다. 책의 주제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하더라도 감히 일독을 권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 때문이다. 적실한 분석과 선명한 주장과 섬세한 성찰이 긴장감 있게 엮이면서 종교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게 하고, 현실을 고민하게 한다. 구름이 짙게 드리우니 달을 찾는 마음이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