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김재근 金宰槿

1967년생. 2010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zepal2@hanmail.net

 

 

 

세개의 방

 

 

트윈스

쌍둥이로 태어나길 잘했어. 나는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고 도시 뒤편 술집에 앉아 어린 여자를 만났지. 나는 나에게도 거짓말하면서 즐거웠고 아무도 속지 않아 더 즐거웠다.

 

구름

흔들리는 치아 때문에 나무가 흔들렸다.

여동생의 송곳니는 높이높이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음악가

궂은 가을 날씨가 음습합니다. 누군가 툭 치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날개를 떼어낸 새였는지도. 마른 모래를 뿌리면 금세 젖을 듯합니다. 맹인견을 따라 맹인이 차도를 건넙니다. 눈먼 맹인견은 누가 데리고 갈까요. 코트 깃에 바람을 잔뜩 담으면 밤바다는 파편처럼 시끄럽습니다. 부유하는 방파제 이편과 저편의 이야기가 부두에 정박중입니다. 눈알을 찔러 눈물을 맛봅니다. 밤이 깊습니다. 삐걱거리는 폐각(殼)의 울음소리 들립니다. 이 방을 나서면 나는 사라집니다. 내방에 흘린 파도소리를 기억해주십시오. 나의 다음 생은 바람이거나 혹은 흔들리는 음악입니다.

 

 

 

질소를 넣은 풍선

 

 

너무 오래 앞니를 갈았어. 입 안에 푸른 연기를 넣어주며 치과 선생님은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이 입 안에서 시작되었으니 충치가 생길 수밖에.

 

너의 염소와 같이 밤기차에 태워줄게. 덜컹대는 기차에서 생쌀을 오물거리는 할머니, 머리에 눈이 왔고 기차는 꼬리가 길어서 슬퍼 보였다.

 

바람이 몹시 불었고 풍경들의 계절이 지나갔다.

 

풍향계가 멈춘 곳. 비탈에만 구름이 모였다. 아이들은 구름과 가까워질수록 멀미를 했고 구름을 다 토할 때까지, 아이의 등을 세차게 두들겼다.

 

아이들아, 저녁이 되었으니 신발을 말리렴.

 

물을 딛고 선 아이들이 서서히 얇아져갔다. 캡슐 속 진통제, 흔들리는 잇몸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물속에서 아가미는 물을 삼켰다 뱉었다.

 

나침반을 따라 저녁이 온다. 아이들 눈에 물냄새가 자라고 식빵에 피는 푸른곰팡이들의 저녁. 바다에서 입을 헹구면 새로운 사랑이 온다는데.

 

나는 일기장에 염소의 눈은 작고 염소 뿔은 발기돼 있었다고 적었다. 내일은 충치가 생기고 치과 선생님과 다정한 피맛을 함께 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