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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시대의 과제, 검찰개혁
박근용 朴根勇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공저 『MB의 비용』이 있음.
석진환 昔鎭桓
한겨레 사회부 법조팀장
임수빈 任秀彬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법학전문박사. 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정연순 鄭然順
법무법인 지향 대표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박근용(사회) 오늘 대화는 검찰개혁을 주제로 합니다. 검찰개혁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어왔음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촛불정국에 들어서면서 김기춘-우병우 등으로 대표되는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써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영역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대두된 상황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될 전망인 만큼 오늘 창비의 대화 지면을 빌려 검찰의 문제와 개혁 방향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검찰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정연순 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법률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검찰개혁을 비롯한 사법개혁은 특히 주된 관심사안입니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서 민변이 최우선적인 개혁과제로 꼽는 것 역시 언론개혁과 함께 검찰개혁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박근용 반갑습니다. 민변의 활약을 더욱더 기대해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임수빈 저는 20년 정도 일했고 지금은 변호사 9년차입니다. 제가 이번에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는데요,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검사로 근무할 때는 검찰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변호사를 해보니까 너무 많은 문제가 보이더라고요.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몇년간 검찰이 계속 꼴찌를 하는데도 검찰은 전혀 변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검찰이 어떻게 될지…… 제가 청춘을 바친 조직이라서 검찰을 미워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검찰을 사랑하기 때문에 검사님들한테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제가 본 문제점을 같이 토론해봅시다 하고 다가가는 마음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박근용 이 논문은 저도 읽어보았는데, 법무부가 구매해서 토론교재로 검사들한테 배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이 대화를 보신다면 고려 부탁드립니다.(웃음)
석진환 저는 한겨레 사회부에서 법조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여러 출입처를 도는데 저는 이번에 법조 출입을 세번째로 하게 됐습니다. 처음 출입할 때가 노무현정부 2년차였는데, 그때가 사개위(사법개혁위원회)와 사개추위(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설치됐을 때라 당시 검찰과 법조계 전반의 개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뒤로 2009년에 다시 검찰에 출입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이명박정부 2년차로 당시 검찰이 수사했던 대표적인 사건이 PD수첩,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등이었습니다. 이런 수사들을 지켜보고 취재하면서, 아 노무현정부 때 내가 지켜봤던 사법개혁 논의들이 말짱 도루묵이 됐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출입이고 곧 정권이 바뀔 텐데,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번에는 꼭 검찰이 개혁되고, 또 그런 개혁이 시스템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보고 다른 출입처로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용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평소에 사법개혁, 검찰개혁 문제를 논의하러 여러 자리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진행을 요청받았는데, 저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검찰의 모습을 지켜보고 경험하신 여러분께 말씀을 들으면 시민의 입장에서 제게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참여하게 됐습니다. 우선 여쭙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지난 몇년을 돌아봤을 때 검찰이 가장 잘못 처리한 사건, 혹은 우리 사회에 가장 악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검찰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들
석진환 수사를 해서 문제였던 사건과 수사하지 않아서 문제였던 사건, 두가지로 나눠서 꼽아보고 싶습니다. 전자는 이른바 박연차게이트인데요, 이 사건이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까지 이어졌지요. 당시에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 최초 보도 때부터 굉장한 언론플레이가 있었습니다. 기획부터 발생 과정, 결과까지 기자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은 선례로 남아 있습니다. 광우병 촛불을 겪은 이명박정부가 정국전환용으로 꺼내든 칼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져 많은 사람들한테 정치적으로 한이 맺히게 했습니다. 이건 두고두고 후과를 남겼는데요, 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거친 태도만 해도 그렇고,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를 하지 않아서 문제였던 건 너무 많아서 꼽기가 어렵기도 하고 그걸 밖에서 일일이 알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하나를 꼽자면 BBK 사건을 들고 싶습니다. 이 문제를 덮은 검찰의 주역들이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 후배들이 뭘 느꼈겠어요? 확실한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봐요. 우병우의 존재만 봐도 그렇고요.
정연순 민변에서는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재벌은 봐주기 수사, 정치권력은 부실수사, 저항세력은 남용수사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저도 석기자님처럼 뭔가를 한 수사와 안 한 수사로 나누어서 말해볼까 해요. 기소해서 문제였던 사건은 NLL대화록 관련 사건을 꼽고 싶습니다. 2013년 검찰이 노무현정부 관계자들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무죄 판결을 보면 매우 간단한 문제였어요. 이들이 삭제했다는 기록물이 원본이 아니고 초본이라서 무죄라는 건데요, 사실관계가 애매해서 수사를 열심히 해야 하거나 아주 복잡한 법리판단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검찰 또한 충분히 그렇게 판단할 수 있었던 부분인데, 정치적인 목적에서 무리하게 기소하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정권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들뿐 아니라 남북 간에도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줬다 보고요. 수사를 안 한 사건은 대표적으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꼽고 싶습니다. 고 성완종씨가 사업가이며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했던 분인데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해서 폭로했거든요. 정권실세인 김기춘씨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요. 그러나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죠. ‘십상시’ 논란부터 시작해서 성완종 리스트, 최순실게이트와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지는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 문제에 대해서 과연 검찰이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을까요? 대통령 탄핵은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불행한 일이고, 큰 피해를 우리 모두가 감수하면서 치러낸 사건입니다. 만일 검찰이 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권력비리를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국가적·사회적 손실을 막을 수 있었겠지요.
박근용 NLL대화록 사건을 두고 정치행위를 이념화시킨 사건이자 검찰이 법률가로서 충분히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을 굳이 기소까지 한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러면서 결국 검찰이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의 사례로 PD수첩 사건이 떠오릅니다. 저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그랬지만 당시에 법조계의 웬만한 사람들은 다 기소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당사자였던 임수빈 변호사님은 말씀을 아끼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당시 수사 담당자로서 그런 주장을 하다가 옷을 벗게 된 거라고 밖에서는 생각하고 있거든요.
석진환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한말씀 드리면 언론도 굉장히 잘못하는 것이, 한창 수사할 때는 기사를 엄청 많이 받아서 쓰다가 나중에 무죄가 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사는 사실 거의 안 써요. 제가 17년 전에 입사할 때부터 지적받았던 부분인데 저희를 포함해서 잘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연순 언제부터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언론이 밖에서 불러주는 대로 기사를 따라 쓰기 한다는 느낌입니다. 검찰의 발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걸 좇아가요. 그러니까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죠. 나중에 무죄를 받더라도 국민들의 머리에 그건 남지 않습니다. 당사자는 이미 욕을 다 뒤집어쓰고 명예가 완전히 추락되고 말죠. 권력은 그걸 정치적으로 악용하고요.
석진환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사실 언론의 태도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메이저 언론은 검찰에 굉장히 우호적입니다. 실제 검찰은 평소에도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전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요. 집권 초기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여론이 높을 때 빨리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실현 가능성이 점점 멀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와 검찰
박근용 참여연대에서 검찰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매년 내는데 얼마 전에는 박근혜정부 4년간의 검찰을 종합하는 보고서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연 바 있습니다. 거기 오신 분들께도 가장 부정적으로 처리된 사건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제일 많이 거론된 것이 (박근혜 4년을 중심으로 물어봐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정윤회 국정개입의혹 문건과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였습니다. 우병우 수석과 관련해서는 2016년 여름께부터 관련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되었음에도 수개월 동안 검사들이 전혀 수사의지를 가지지 않았던 것을 시민들이 특히 문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한편 최근 최순실 스캔들에 대해 시민들이 검찰수사에 관심이 많은데 우병우 건 말고는 검찰수사가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대체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잡아넣는 역할까지 했으니까요.
정연순 그건 다 특검이 한 일 아닌가요?
박근용 기존 검찰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특검에서 다 판을 깔아준 것이고 특검이 미진했던 부분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다고들 하지요. 이렇듯 최근 정국에서 검찰수사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할 텐데 관전평을 듣고 싶습니다.
석진환 저는 일련의 수사를 특검이 했느냐 검찰이 했느냐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검찰은 어쨌든 엘리트 집단이고 수사 잘하는 사람들이라 사실 정치권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수사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한시적인 특검보다 검찰이 훨씬 수사를 잘하지요. 그러니까 이번 수사가 잘되었다면 이건 국민여론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힘이 계속 뒷받침된다면 검찰도 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검찰 특수본 1기, 특검, 특수본 2기, 이렇게 수사 단계를 나누는데 저는 각 단계의 수사 성과가, 딱 여론이 받쳐주는 만큼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연순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우리 검찰이 어느 경우에 잘했다 못했다라는 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의지의 문제 혹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지난가을부터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난 민심이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단을 요구했기 때문에 검찰도 그 민심을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그 와중에 특검이 조금 더 잘했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조직에 묶여서 일해야 하는 일반 검사들보다 조금 더 자유로웠기 때문일 테죠. 아무튼 저는 특검을 비롯해 이번 수사에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점수를 높게 주고 싶습니다.
박근용 이제 임변호사님께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두분이 말씀하신 외부의 압력, 즉 여론이 될 수도 있고 정치권력이 될 수도 있을 그 바깥의 분위기가 정말 검사들의 수사에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인가요?
임수빈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조금 일반화해서 검찰과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고 행정부의 수반이지요. 검찰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같이 독립된 헌법기관이 아니라 행정부에 소속된 조직인 이상 대통령이 국가통치를 위해서 내리는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따르는 게 맞고요. 다만 간혹 국가통치를 가장해서 검찰을 정치적 술수의 도구,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때가 문제겠죠. 그때는 검찰도 이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권력과 검찰의 관계에서 왜 자꾸 우리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그건 일차적으로 인간의 본성 때문일 거예요. 정치권력은 정치권력대로 더 큰 권력을 잡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검찰을 이용하고 싶고, 또 검찰은 검찰대로 거기에 따라주니까 더 큰 이익이 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어떤 검사는 소신 따르다 사표 쓰고 그러지 않은 다른 검사는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젊은 검사들한테 학습됩니다. 이런 게 걱정되는 거예요.
박근용 정치권력이 뭐든지 활용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검사들 중에서 거기에 부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승진? 좋은 보직? 혹은 나중에 나와서 권력을 누리고 싶은 욕심?
임수빈 셋 다 이유가 되겠죠. 하나 덧붙이고 싶은 지점은 조직문화입니다. 예를 들어 법원에서 무죄 나오면 왜 검사들은 무조건 항소하고 상고하느냐? 검찰 내부에 자리한 무오류의 신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입장에서는 검사가 뭘 처분하면 그건 지고지선이에요. 틀릴 수가 없어요. 검사가 영장청구했는데 판사가 기각한다? 검사가 기소했는데 무죄가 나온다? 용납을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때로는 무죄인 걸 알면서도 항소·상고 하는 거예요. 요즘 재심 전문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님 책을 보면 제가 대한민국 검사였다는 게 부끄러워요. 검사는 누가 억울하게 들어갔으면 빨리 나오게 하고 잘못된 부분 있으면 빨리 고쳐줘야죠. 그런데 유죄판결은 무조건 검사들에게 옳은 게 되는 거예요. 검사는 오류가 없으니까. 이런 조직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정연순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강한 인정욕구를 갖고 있고 그게 사회적으로 표출될 때는 흔히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곤 하죠.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공적 의지의 통제를 받느냐인데, 검사 개개인의 품성을 떠나서 지금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지닌 권력이 너무 많아서 그런 욕구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게 사실입니다. 검사도 한명의 시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검찰인력을 양성하는 방식이 지나친 엘리트주의로 빠지면서 시민들은 저 아래 있고 검찰이라는 조직은 항상 이쪽에서 내려다보고 징치(懲治)하는 별개의 귀족 같은 집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석진환 공감합니다. 힘이 있는 데서 생기는, 어쩌면 당연한 문제이니 결국은 조직의 선의를 통하거나 특정한 인물이 나서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가 하더라도 적절히 조직이 통제되고 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검찰의 독립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박근용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개혁방안을 논하기 전에, 아까 임변호사님이 거론하신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문제를 더 짚어보고 싶습니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확보가 검찰개혁의 방향으로 논의된 바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잘되지 않았는데, 그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임수빈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기에는 역시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그건 너무 당연한 명제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다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하지요. 저는 그보다 수사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판사만 봐도 유무죄 판단은 그 재판을 맡은 판사가 하잖아요. 법정에서의 구두변론과 제출된 증거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누가 전화해서 야 그거 유죄 해 무죄 해, 이러는 건 말도 안 되죠. 검찰도 사실 마찬가지여야 하거든요. 이 수사가 맞는지 안 맞는지, 그래서 기소할 건지 불기소할 건지를, 수사한 검사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소신껏 판단해야지 위에서 누가 기소해 불기소해, 수사하지 마,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건 검찰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입니다. 수사의 독립은 이렇듯 중요한 문제인데, 그렇다고 모든 것을 검찰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일뿐더러 민주적 정통성을 갖고 있잖아요. 검찰은 국민이 뽑아준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검찰 마음대로 인사권을 행사할 순 없고 청와대가 견제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런 양자관계에서 검찰이 수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정연순 저는 이 문제를 과거사 문제와 연결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육칠십년대에 조작간첩사건으로 피해를 당한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데요. 당시에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고문을 통해서 간첩으로 조작하는 걸 그냥 통과시키는 기관이었어요. 피해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앙정보부에서 수십일 동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고문을 당하고는 ‘검사님’을 만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구제받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검사실에 갑니다. 그런데 얘기를 다 들은 검사가, ‘다시 중정으로 돌아가고 싶냐’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게 조작간첩이 돼서 재판에 넘겨지는데, 법원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조서를 의심도 하지 않고 사형도 선고하고 20년형도 선고했죠. 그래도 법원은 민주정부 수립 이후 나름대로 재심을 통해서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당시 대법원장을 필두로 해서 어느 정도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그런데 검찰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치하라 어쩔 수 없었다는 뉘앙스를 깔면서 그러니까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자신들이 저항하지 않아서 빚어진 비극적인 과거사에 대해서는 한번도 사과하지 않고 그뒤로도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으려는 거죠. 그러다보니 민주화 이후로는 군부독재시절과는 또 다르게 스스로 정치검찰화해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향유하려는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검찰이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도 국민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 하지요. 권력으로부터는 독립하되 국민의 견제와 감시는 기꺼이 받겠다는 쪽으로 나아가야지만 국민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임수빈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시민참여입니다. 검찰이 내세우는 수사의 밀행성이라는 건 수사하는 과정에서나 필요한 겁니다. 수사가 끝나고 나서는 이렇게 수사했고 증거는 이거다라는 걸 공개해서 기소, 불기소를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토론해서 결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과거사에 대한 정변호사님 말씀에 저도 백퍼센트 공감해요.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은 유일한 기관이 검찰이죠. 이 또한 무오류의 신화에서 나온 건데, 제가 대검에 있을 때 접한 논리인즉, 고문? 우리는 고문 안 했어, 1차 수사기관이 했어, 유죄판결? 우리가 아니라 법원이 했어, 우리가 잘못한 게 뭔데? 이런 거였어요. 저는 이게 너무 마음 아파요. 검사 본연의 임무는 가령 1차 수사기관에서 고문으로 잘못된 자백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주는 일입니다. 그거 하라고 검사가 있는 거 아닌가요? 법원이 올바르게 판결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도와야 하고요. 그러지 못한 것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박근용 직무유기이자 사법방해죄를 적용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1차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잘못된 자료에 대해서 알고도 묵인했으면 사법방해죄지요. 재판에서 고문증거자료는 안 내놓고 다른 거 올려서 법원에서 잘못된 판결이 나오게 한 것도 포괄적으로 보면 일종의 사법방해죄고요. 과거로부터의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검찰 출신의 김기춘 같은 사람들이 그대로 위세를 떨치고 검찰 간부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정리하면 저는 외부의 개입으로부터 검사들을 보호해주는 절차로서 정치적인 독립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 검찰 스스로가 하나의 큰 권력집단이 된 데 대한 사회적인 통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치적 독립만 보장했다가는 자칫 검찰이라는 조직을 괴물로 놔둬버릴 수 있어요. 말하자면 검찰권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임변호사님이 관련 논문을 쓰시기도 했으니 먼저 어떤 것을 검찰권의 오남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권
임수빈 검찰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든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저는 검찰권 남용의 사례를 수사, 처분, 공판, 이렇게 단계별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먼저 수사 단계에서의 문제를 보면, 표적수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용어인데, ‘타건압박수사’라는 게 있습니다. 원래는 A사건을 수사하고 싶은데 증거가 약하면 B사건을 수사해요. B사건에서 피의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가지고 A사건에 대해 검찰이 유리한 진술을 받아내는 거죠. 이런 타건압박수사를 지금 검찰에서 생각보다 많이 하고 있고 그 폐해가 심각해요. 심하면 조사받고 나와서 한강다리로 갑니다. 판례를 보면 가혹행위란 심리적·정신적으로 압박하는 행위로서 고문과 마찬가지의 범죄로 규정합니다. 저는 타건압박수사가 가혹행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범죄라는 거에요. 또 하나가 심야수사, 철야수사인데요. 피의자를 새벽 세시까지 붙잡아두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게 실제로 수사의 양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때뿐 아니고 똑같은 질문을 30번 100번 하면서 시간을 끌어요. 밤이 될수록 검사는 유리해지고 피의자는 불리해지는 싸움이거든요. 이런 것도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 잠깐 언급된 피의사실 공표 문제도 거론해야겠고요. 그와 함께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수사관들이 검사 없이 막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작성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어느 케이스는 어떤 사람이 검찰청에 70번 불려왔음에도 남아 있는 거라곤 진술서 하나랑 진술조서 5개밖에 없어요. 그러면 나머지 육십몇번은요? 와서 검사랑 놀았겠어요? 수사과정이 투명해야죠. 형사소송법의 모든 조항들이 수사과정을 투명하게 하라는 취지로, 도착시간 같은 것도 다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 그 와중에 검사는 피의자 면담이라고 해서 변호인 참여도 배제하고 따로 방에 들어가서 둘이 얘기합니다. 그게 조사랑 뭐가 다를까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변호인참여권을 면담이라는 명목으로 박탈하는 겁니다. 면담을 금지할 필요가 있어요.
박근용 제가 잠시 끼어들면, 70여번 검찰청에 출석했지만 수사기록으로는 몇건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그 사건이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관련 수사였던 것으로 압니다. 검찰에 불려갔던 그 사람은 결국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죠.
임수빈 처분 단계에서는 무죄인 줄 알면서 기소한다든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소유예를 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다른 사건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기소유예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형법, 형사소송법, 검찰사건사무규칙을 다 위반하는 겁니다. 형법 제51조와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등을 보면 기소유예 처분을 할 수 있는 사유 중의 하나로 범행 후 정황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른바 정상참작 사유인데요. 이는 이 사건에 대해서 반성하고 피해자와 합의한다든가 할 때 정상을 참작해서 기소유예를 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관계없는 다른 사건 수사에 협조하는 게 어떻게 이 사건에 대한 기소유예 사유가 되느냐고요. 이건 검사들이 법을 잘못 끌어다 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공판 단계에서는 피고인한테 유리한 증거를 검사가 제출 안 하는 경우가 있어요. 듣기에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실제 케이스를 말씀드리면 강도강간사건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속옷에 범인이 사정했다고 해서 그 속옷을 감정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범인이라고 잡았는데 이 사람의 DNA가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것과 달랐어요. 그런데 검사가 그걸 증거로 안 냅니다. 1심에서 징역 20년이 나왔어요. 항소심에서 검사에게 그 자료를 내라고 하는데 안 내니까 법원이 국과수에 직접 의뢰해서 받아봤더니 아닌 거예요. 그래서 무죄가 확정됐어요. 검사님들, 왜 이러세요 진짜. 무죄면 할 수 없잖아요. 미안하다, 우리가 사람 잘못 잡은 모양이다, 이렇게 얘기해야지 숨기면 어떡하냐고요. 결국에는 국가배상까지 이루어졌어요.
박근용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그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그 검사는 법적인 책임을 졌나요? 정변호사님, 우리가 그런 게 되는 나라인가요?
정연순 잘 안 되지요. 그나마 이번에 피의자에게 수갑 채워서 수사받게 했던 검사 개인에 대한 위자료가 인정된 일이 있어요 . 금액은 100만원밖에 안 되지만요. 국가 배상에서 더 나아가 검사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더 활발해져야 합니다.
박근용 그건 아마 가령 어느 경우에 포승을 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거겠지요. 그보다 임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사건처럼 유리한 증거를 알고 있는데 안 내놨다? 이에 대해서 법적으로 검사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면 검사 입장에서 숨긴 게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을 땐 얼마든지 유혹에 빠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법률도 있고 내부에 훈령도 있고…… 검사들이 지켜야 할 다양한 규칙들이 있는데 그 빈틈을 참 잘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석진환 그런 것들이 다 수사기법이니 노하우니 하면서 전수되는 것 아니겠어요? 도제식으로 돼서 그런 검사 밑에 가서 이런 걸 잘 배우면 잘나가는 특수검사 되잖아요. 내가 그때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되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고요.
정연순 내가 70번 불러다 앉혀놓고 자백받았어, 이러면서……
석진환 검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듣게 되는 논리가 있어요. ‘요즘 뇌물범죄가 얼마나 입증하기 힘든지 알아?’ 이런 거죠. 범죄수법은 더 은밀해지는데 수사환경, 재판환경은 더 힘들어지고……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검찰이 공공연하게든 사석에서든 계속 유포합니다. 듣는 쪽에서, 그래도 법을 어기면 안 되지 않느냐 하면, 그럼 나쁜 놈 안 잡을 거야? 하는 식이에요. 그러면 이제 얘기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일반 국민 상당수도 이런 검찰의 논리에 반복돼 노출되다보면, ‘그렇지, 뇌물받는 나쁜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지’ 이렇게 사고가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검찰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이 여전히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임수빈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검사들을 교육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들이 언제부터인지 스스로를 ‘칼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검사는 칼잡이,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에요. 문관으로 있으면서 더러 칼잡이 역할을 조금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예 문관을 저버리고 칼잡이로 나선다면 그건 검사 본연의 모습이 아니에요. 문관으로서 검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권을 옹호하고 공익을 대표하는 겁니다. 절대로 누구를 잡아넣는 일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검사들이 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요, 다 좋지만 그 상위의 개념이 적법절차 준수, 인권보장이에요. 그걸 무시한 진실규명과 처벌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법치주의의 근간을 깨는 일이죠. 그런 식으로 하려면 아예 조선시대처럼 주리를 틀죠. 그런데 주리를 틀어서 나오는 말이 진실이 아닌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검찰 수사권, 이대로 괜찮은가
박근용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 행사 범위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예 검찰은 직접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있고요. 임변호사님의 표현으로는 검찰은 칼잡이 역할을 하는 경찰이 적법절차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해당 사건이 법률적으로 공소제기(검사가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재판을 청구하는 신청)의 대상이 되는지만 판단하는, 정말 문관으로서의 역할만 하게 하자는 것이겠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연순 그런데 저는 지금 당장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하고 경찰에 모든 수사권을 넘기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수사권의 귀속을 경찰로 한다 해도 국민에 대한 수사책임을 제대로 지고, 지금까지 문제가 된 친정권적, 친재벌적인 편향수사를 제어한다는 보장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석진환 저도 정변호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수사권을 조정해서 아예 싹 다 경찰에 넘기려면 굉장한 디테일이 필요할 겁니다. 또한 그게 선언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지, 실제 현장에서는 검찰이 기소권을 가진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가 불가피할 터라 그렇게 세분화해서 권한을 나눌 수 있을까 의문이에요.
또 한가지, 이건 좀 다른 각도의 이야기인데요. 제가 아는 한 형사에게 들으니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수사권 독립 같은 거 사실 일선에서 수사하는 수사경찰 입장에선 별로 바라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꽤 있다,라고 해요. 왜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검사가 지휘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간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경찰서장, 수사과장, 또는 지방청의 고위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하려 하거나 청탁하려고 하면, 검사 핑계를 대면 된다는 거죠. 그러니 새로 경찰의 재량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순간 ‘시어머니’들이 너무 많아질 거라고 우려하더군요. 차라리 검찰, 경찰 수사하는 사람들 모아놓은 FBI(미국 연방수사국) 같은 조직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도하더라도, 경찰 내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경찰개혁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연순 민변의 입장은 검찰의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검찰은 공소를 할지 판단하고 공소유지를 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다만 공무원 범죄 등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계속 수사권을 가질 필요가 있겠고요. 수사권을 둘러싼 수사기관 간의 균형과 견제, 수사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원칙 확인과 이를 관철할 제도의 마련,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제도로의 개혁을 가능케 할 정밀한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임수빈 검찰이 직접수사를 몇십년 동안 계속해왔기 때문에 그걸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면 혼란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실무적으로 봐도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다음에 조금만 더 수사하면 될 때가 많거든요. 그걸 다시 경찰에 보내야 하는 곤란함이 생기겠죠. 그렇더라도 지금보다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부분을 좀 줄여야 되겠다는 생각은 저도 합니다. 단적인 예를 말씀드리면 어떤 사람이 동업자가 공금을 횡령했다고 고소했는데요, 고소사건이니까 형사부로 갔는데 검사가 수사를 안 해줘요. 비슷한 사건이 특수부(특별수사부)로 가게 되면 피해를 제기한 피해자도 없는데 그 회사를 완전히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있는 거 없는 거 다 밝혀내가지고 그걸로 딴생각을 하기도 하죠. 피해자들이 하소연하는 범죄는 제대로 수사 안 하고 아무 피해자가 없는 범죄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수사하는 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검찰 수사권이 너무 인지사건(피해자의 고소·고발을 통해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사건과 달리 수사기관이 직접 범죄사실을 인지해 수사를 시작하는 사건) 위주로 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을 보더라도 특수사건 담당하는 3차장검사 산하가 고소고발, 일반형사 사건 담당하는 1차장 산하에 비해 화력으로 따지면 수사력이 두배는 셉니다. 앞뒤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인지사건을 줄이는 차원에서 3차장 산하 인력을 대폭 줄여서 1차장 산하로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더 열심히 수사할 수 있을 겁니다.
박근용 3차장 산하 부서가 대부분 인지사건을 다루게 될 텐데 1차장 부서보다 지금은 더 커진 것으로 압니다 .
임수빈 맞습니다.
석진환 제가 처음에 법조계 출입하던 2004년 무렵만 해도 3차장 산하에는 특수부만 3부까지 있었고 나머지는 다 하나씩이었는데 지금은 특수부는 4부까지 있고, 첨단범죄수사부도 2개부가 되었더군요. 공정거래조세조사부 등 없던 부서도 생겼고요. 더 신랄하게 보는 사람은 검찰 내 인사 수요가 많아서 부를 쪼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박근용 말씀을 모아보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유지는 하되 그 권한을 통제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임변호사님이 검찰권 남용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자세히 말씀해주셨는데요, 주로는 과잉수사 내지는 검찰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방향의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접근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해야 할 수사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문제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남용이라는 표현이 조금 안 맞아서 참여연대에서는 ‘오남용’이라고 묶어서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났던 내용 외에 비선실세들이 권한을 남용한 바가 있는지 더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라든지, 고 백남기 농민의 경우처럼 집회에 참가한 사람에게 공권력이 과잉폭력을 행사해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서 지금 1년 반째 수사를 안 하고 있는 것도 검찰권의 오남용 사례에 포함시키고 그에 대한 통제 방안을 강구하는 일 또한 검찰개혁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석진환 이 지점에 있어서도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 나누어주거나, 현재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통해 분산시키는 일이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권한의 오남용은 이런 권한을 오로지 자신의 조직만 행사할 수 있을 때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다른 예지만,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경향신문의 논조가 지금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무슨 성명을 낸다 했을 때, 이 성명을 지면에 쓰는 곳은 한겨레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겨레에서 참여연대에 ‘오늘은 지면에 쓸 게 많으니까, 성명을 오늘 말고 내일 내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는 ‘갑질’이 가능했던 거죠.(웃음) 하지만 이제는 한겨레가 안 쓰면 경향신문이 쓸 수 있고, 그러니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을 부릴 수 없게 됐죠. 검찰과 공수처 사이에서도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날 수 있다고 봅니다. 검찰이 사건을 덮으려다가도, 이게 나중에라도 공수처에서 수사해 기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덮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수사 검사들도 덮으라는 상관의 지시에, ‘나중에 공수처에서 수사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따질 수도 있고요.
검찰개혁의 세부적인 제도방안
박근용 말씀하신 것처럼 기소권을 비롯해 검찰이 독점하는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최근에 검찰개혁의 중요한 방향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포함해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볼까요? 역시 임변호사님이 먼저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수빈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앞서도 언급했던 검찰수사의 독립성입니다. 수사의 독립은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생각해요. 수사배경이 정당해야 하고, 수사과정이 적법해야 하고, 처리가 공정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수사배경은 사실 정당하지 못한 배경에 대해 외부에서 확실히 파악하고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인간본성에 근거하는 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섣불리 손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상대가 변명하기 너무 쉬우니 성과를 얻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그다음 두 요소, 즉 적법한 과정과 공정한 처리에 핵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 둘을 제대로 지키면 배경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우선 과정상의 적법성에 대해 말씀드리면, 그것을 확보할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로 검찰에서 피의자를 최소한 일주일 전에 부르라는 겁니다. 오늘 전화해서 내일 나오라고 하는 데 대해서 약속 있으니 못 나가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명이나 될까요? 형사소송법에 몇개 조문이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이 수사기관의 배려에 맡겨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연기시켜주면 그저 감사한 노릇이 되는데 이건 사실 피의자의 권리지요. 이런 걸 하나하나 다 규정하자는 거예요. 일주일 전에 통보하고 적어도 피의자가 한번은 날짜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또한 소환 횟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지금은 제한이 없으니 50번 100번이라도 부르면 나가야 되고 안 나오면 체포한다는 경고를 받거든요. 횟수를 제한하고 그보다 더 하고 싶으면 법원에 허가받도록 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시간적으로도 밤 9시를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9시뉴스는 집에 가서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웃음) 부득이 밤에 하려면 변호인 입회시키고요.
아까 말씀드린 타건압박수사 금지도 과정상 적법을 확보하는 방안입니다. 그와 더불어 사건 통지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가령 폭력사건이 발생해서 검찰로 넘어가면 피의자건 피해자건 내 사건이 어디서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음주운전 같은 건 따박따박 벌금 고지서가 나오지만 상해사건, 폭력사건은 기소유예도 많이 하거든요. 근데 피해자가 자기 때린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피의자 역시도 국가로부터 입건당하는 불이익처분 받은 사람인데 왜 통지받지 못하느냐는 거죠.
이런 등등의 문제를 규제하는 수사절차법을 만들어서 검사들로 하여금 그것을 넘어서는 불법적·탈법적 수사를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한가지만 더 언급하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서의 증거능력이 원래는 검사가 준사법기관이고 인권옹호기관이라서 도입된 건데요, 앞뒤가 바뀌어 그 증거능력이 너무 월등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자백을 받고 싶은 거예요. 그것을 제한해야만 검사가 강압이라든지 부정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
박근용 검사가 받은 피의자신문조서를 경찰 작성 조서와 같이 취급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는데도 검찰이 정말 격렬하게 반대해서 번번히 막히고 있죠. 계속 말씀 부탁합니다.
임수빈 처리의 공정성 면에서는 두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하나가 기소기준제예요. 법원에는 양형기준제라는 게 있잖아요. 이걸 도입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검찰도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기소기준제의 구체적인 형태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점수 방식입니다. 각 범죄마다 기본점수를 두고 구체적인 참작사유에 따라 점수를 더하거나 뺍니다. 그래서 나오는 최종점수가 기소 기준점수 이상이면 기소, 이하면 기소유예 하는 거지요. 이렇게 하면 검사의 임의성도 배제할 수 있고,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범죄사실이 누락되거나 엉뚱하게 기소유예로 빠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시민들을 심리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이 있고 나서 2010년에 대검에서 검찰시민위원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이게 지금 유명무실하거든요.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 이걸 활용하되 운영방식을 바꿔서 검찰이 시민위원을 임명하지 말고 무작위로 추출하는 겁니다. 그렇게 구성한 위원회가 참여해서 기소 여부를 토론해서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면 처리가 훨씬 공정해지지 않겠어요?
제가 꿈꾸는 사회는요, 검사한테 누가 전화해서는 이것 좀 부탁합니다,라고 했을 때, ‘도와드리고 싶지만 제가 그렇게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구조적 통제 시스템을 갖춘 사회입니다.
박근용 청탁수사, 외부의 압력이나 요청에 의한 수사처럼 배경이 의심스러운 수사도 있겠고 검사 개인의 야심이나 오판 때문에 방향이 어긋나는 수사도 있을 법합니다. 이런 것들을 억제하기 위한 과정과 절차상의 제도는 분명 필요하겠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도 요건이 되면 반드시 기소한다는 기소법정주의를 시행하고 있지요. 우리는 지금껏 검사 개인의 양심에 기대왔는데 이제는 정말 사회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여러 제도를 마련할 때입니다. 정변호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민변에서도 여러 구상을 하시지요?
정연순 검찰조직을 크게 바꾸는 큰 그림과는 별개로 임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절차적인 부분에서 바로 시행할 수 있겠다고 보는 것이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겁니다. 저희가 공판중심주의(조서가 아닌 법정에서의 심리를 중심으로 형사사건의 실체를 판단한다는 원칙)를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해왔고 그것이 일정정도 사법개혁의 성과로 남았어요. 그런데 법정에서 여전히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자체가 주요한 증거로 채택되다보니 그 당사자가 내가 말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조서에 나온 ‘아’와 ‘어’가 어떻게 다르냐를 따지는 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조서 검토에만 7시간을 썼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그만큼 중요한 문제인데,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은 이미 수사 단계에서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결론은 여전히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큰 애로가 있다, 그래서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적어도 올가을쯤부터는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었으면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소위 정치검찰의 문제와도 또 다르게 일반 국민들이 겪는 형사 사법절차와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박근용 석기자님이 현장에서 보기에는 어떠세요?
석진환 제도적인 문제는 언론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변호사님 말씀을 듣고 나니 흔한 말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일반 형사사건에 엮였을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언론은 아무래도 유명인, 정치인, 관료, 경제인 등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사건에 더 치우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세부적인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인 만큼 수사 과정상의 제도적 문제를 물론 충분히 논의해야 하겠지만, 지금껏 검찰개혁에 필요한 사람, 인사(人事)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찰인사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검찰 내부에서도 소위 잘나간다는 엘리트 검사들이 특수부, 공안부, 법무부 근무를 도맡는 바람에 일선에서 불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참여정부 때는 검사들이 서울에서 일하면 다음 인사 때는 지방에서 2년을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식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이게 내부적으로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어요. 엘리트 검사들이 참여정부 후반부로 가니까 ‘봐라, 특수수사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을 인사개혁 한다고 특수1부장으로 임명했더니 제대로 수사 못하지 않느냐’고 내부 여론을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그러고는 정권 바뀌자마자 예전 시스템으로 돌아갔어요. 또 당시 참여정부에서 법무부 문민화를 한다고 장관을 포함해 몇몇 국장급 보직을 검사가 아닌 변호사나 행정관료 출신으로 바꿨는데, 이 역시 다음 정부에서 원점으로 돌아갔지요. 지금도 법무부는 장관에서부터 차관, 주요 실국장이 모두 현직 검사장이에요. 법무부가 소속기관인 검찰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검찰이 상위기관인 법무부를 장악하는 구조인 거죠. 이런 점을 봤을 때 새 정부에서는 단순히 일회성으로 검찰 인사개혁을 하려고 하기보다 검찰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제도를 안착시키는 방안 등을 더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그들만의 리그, 검찰 인사
임수빈 지금 검찰 내부의 인사 시스템을 두고 ‘당신들’만의 인사라고 체념하고 푸념하는 검사들이 꽤 많아요. 법무부나 대검에서 잘나가는 검사들의 이너써클이 몇개 있습니다. 소위 기획통, 특수통, 공안통. 이 안에서 항상 자기들끼리만 싸고 돈다는 거예요. 전체 검사가 2천명쯤 되는데, 이너써클은 한 일이백명 되려나요? 나머지 팔구십 퍼센트는 인사 때마다 체념합니다. 이번에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면, ‘아무 데나 가겠죠 뭐’ 이런 식이에요. 2천명 다 아끼는 자식들이 되어야지, 누구만 내 자식, 누구는 데려온 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석진환 여기에 대해 기자들도 출입하면서 보고 느끼는 게 있습니다. 기획통 공안통 특수통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면 처음에는 연수원 성적대로 배치하겠죠. 근데 연수원 성적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그러면 결국 누구를 어떻게 모시느냐에 달려 있어요. 자기가 모신 부장이 잘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부장이 또 모 차장한테 잘 보이는 것…… 이러면서 후진적이고 도제식인 이너써클이 형성되는 거죠. 그 안에서 끌어주고 당겨오고.
박근용 그동안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일정한 인사제도가 마련되긴 했습니다. 외부에서 참여하는 후보 추천위원회를 두고, 인사청문회도 하고 있죠. 박근혜정부 초기에는 추천위원회가 비교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지 채동욱이라는 사람이 총장에 임명됐는데, 청와대에서 이 사람에 대해 ‘앗 뜨거’ 하면서 다시 확실하게 장악하는 바람에 이제 유명무실한 추천위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총장 인사에 대해서는 제도화가 되어 있는 데 반해 그 아래 전반적인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논의된 바가 부족했던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연순 검찰총장 임기제도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성과로 남기는 했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검찰의 권한이 너무 과도하다는 점이에요.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너무 많은 분야에 뻗쳐나가 있어요. 주요한 것만 나열해보자면 우리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공소제기와 유지권, 정보수집권, 공안기능 등을 다 가졌는데 이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인적 구성조차 사법시험 등을 거친 동질집단으로만 되고 강력한 서열구조로 통제되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무부와 청와대죠. 법무부에 인권국이 있는데, 미국을 보면 인권국 소속 직원들은 채용절차가 일반 검사들과 달라요. 인권국에 속한 사람이라면 인권옹호자로서의 일을 하는 것이고 조직에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지요. 우리도 인권국이 만들어질 당시, 일반 변호사들 중에서 인권옹호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채용하라고 인권단체들이 요구했지만, 결국엔 그런 사람은 한두명만 넣고 나머지는 다 검사로 채웠어요. 지금도 거의 다 검사 출신인 걸로 알아요. 인권국뿐 아니라 지금 법무부가 하는 일을 보면 법무행정, 홍보, 형의 집행, 인권옹호, 행정부 입법발의에서의 주무기관으로서의 역할, 이런 건데 그걸 다 검사들이 해요. 법무부가 검찰 소속인가 일반인들이 헷갈릴 지경으로요.
석진환 기자들의 경우에도 법무부 쪽은 서울중앙지검에 출입하는 기자가 약간의 덤으로 맡는 식입니다.
정연순 그렇죠. 그리고 검사의 청와대 파견 문제도 있잖아요. 검찰이 권력의 핵심으로 가는 거죠. 청와대의 민정 기능조차 검찰 출신이 모두 담당하고, 이를 마치면 다시 검찰조직으로 돌아오는 회전문인사가 이루어져왔어요. 우병우 전 수석 사태가 보여주는 것이 이러한 구조의 적나라한 폐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적 연관으로 해서 검찰이 청와대와 법무부 양쪽에 팔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고리를 빨리 끊어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검사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해야 해요.
박근용 그래도 지난 2월에 국회가 검찰청법을 개정해서, 검사의 청와대 편법 파견근무를 억제할 수 있게 한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입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에 검찰청법을 바꾸어서 현직 검사는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할 수 없게 했더니, 잠깐 사표 내고 청와대에서 일이년 정도 근무한 다음에 검찰이 재임용해서 검사 일을 이어가는 행태가 오랫동안 반복되었죠. 이게 계속 문제 되니까 청와대에 근무한 검사는 근무 마친 후 2년이 지나기 전에는 검찰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이번에 고친 건데,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래도 청와대 민정수석에 우병우처럼 검찰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검사 출신을 임명하는 일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좀전에 말씀 나누었듯이 개별 검사들에 대한 인사제도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연구도 부족하거니와 현재의 인사가 내부적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지조차 밖으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검찰권을 다양한 방법으로 오남용했던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들이 후배들에게 아주 나쁜 시그널을 주면서 검찰을 더욱 병들게 했는데 인사권을 이용해서 그런 사람들을 솎아내거나 징벌효과를 줄 필요가 있겠지요.
석진환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법무부 검찰국을 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구조를 깨야만 합니다. 그래야 해법을 모색할 기회가 열릴 거예요.
‘법무부의 탈검찰화’, 시민참여의 필요성
박근용 네. 이와 관련해 아까 석기자님이 ‘법무부의 문민화’를 말씀하셨는데, 참여연대에서는 그걸 법무부의 ‘탈검찰화’라고 말합니다. 정변호사님이 거론하신 법무부 인권국만 해도 사실 검찰이 인권을 침해하는 과잉수사를 하면 인권국이 나서서 뒤집어야 하는데 안 그러잖습니까. 다 같은 검사들이다보니. 작년부터 많은 시민들의 기억에 남은 진경준 검사장, 이분이 출입국정책관리본부장으로 있었는데 출입국관리정책에 전문성도 없는 검사가 굳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나요? 법무부에 가 있는 검사들이 보통 짧으면 1년, 또는 2년 있다가 다시 검찰로 돌아가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사람이 와요. 그러니 정책의 장기적인 연구, 평가 같은 걸 할 수가 없죠. 법무부 자체로 봤을 때도 검사가 한 일이년 있으면서 장차관하고 친분이나 쌓다가 돌아가면 발전이 안 되겠죠. 그렇게 볼 때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중요한 개혁방향이 되겠다고 봅니다.
그리고 앞서 임변호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시민위원회 제도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각 검찰청마다 시민위원회가 있기는 한데 빈껍데기에 불과해요. 최근에 검찰이 욕을 많이 먹다보니까 대검에도 조직을 만들 테니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참여연대에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그동안에 우리도 일본식의 검찰심사회(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견제하고 부당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1948년 도입한 민간기구)라든지 미국식 대배심제도(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시민 배심원이 판단하는 제도) 같은 걸 도입해보자는 의견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정연순 현재 검찰시민위원회에서는 검찰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수용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전문성과 해당 사건의 정보량 등에서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거든요. 시민의 참여를 절차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그와 관련한 해외 모델도 들여다볼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우리가 수용해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석진환 제대로 도입·운영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고, 그 전에 검찰이 알리바이성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박근용 우려야 들지만 어쨌든 시민참여가 검찰개혁의 한 방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빈껍데기 내지는 알리바이성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이런 점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꼽을 만한 요소가 있을까요?
임수빈 일차적으로 현재 검찰시민위원회 구성을 검찰이 하는 게 문제입니다. 견제받을 대상이 견제 주체를 뽑고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어용기구화될 소지가 크지 않겠어요? 법무부에서 범죄예방위원회, ‘범방’이라는 조직을 지역별로 두고 있는데요, 여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위촉된 분들이 원하는 건 검찰 견제가 아니라 검찰하고 가깝게 지내는 거거든요. 검찰시민위원회를 어떻게 강화할까 했을 때 첫째로, 위원들을 검찰이 뽑지 말아야 합니다. 무작위로 뽑으면 돼요. 우리 보통 시민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둘째로, 심의하는 안건을 다 검사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물론 검사가 정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나 피의자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혹은 위원회에서 직권으로 우리가 한번 심사합시다라고 할 수 있어야 돼요. 셋째는, 심의할 때 검사가 만든 자료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변에 전문가 한 사람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다른 분석도 받아보는 거예요. 서로 다른 얘기를 들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 않겠어요?
공수처 설립을 새 정부 검찰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박근용 검찰이 감시받겠다는 조직의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다각도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고 검찰을 견제·감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공수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화가 책으로 묶일 때는 대선이 끝난 이후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 많은 문제와 대안적 제도, 개혁방향들이 대선 국면에서 논의가 별로 없는 것이 유감스러운 한편, 공수처에 대해서는 여러 후보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거나 최소한 중요한 의제로 삼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컨대 이미 상당 부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이라는 느낌인데, 이 부분에 대해 논평을 부탁드립니다.
석진환 요즘 분위기는 ‘누가 대통령 돼도 공수처는 생겨’ 같은 식의 기사 제목이 가능할 정도인데,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공수처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어떤 권한을 줄 것인지, 어디까지 수사하게 할 것인지 등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쟁점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은 분위기가 이렇지만 막상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과연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결국 국회로도 가야 될 문제인데 전에 무산된 과정을 지켜본 저로서는 우려가 됩니다.
정연순 민변도 공수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실은 이 제안을 참여연대가 1996년에 했더라고요. 20년 동안 얘기했으면 그냥 한번 해보면 어떠냐 저희끼리 농담하기도 했죠.(웃음) 다만 말씀하신 대로 실행해본 적이 없는 제도여서 실제 제도로서 도입되는 내용이나 그 운용 등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지극히 경계해야 하겠고요.
검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일선 검사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소수의 정치검찰이 문제라는 거잖아요. 근데 바로 그 소수의 정치검찰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게 고위공직자, 재벌에 대해서 상황에 따라 부실수사를 하거나 표적수사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체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도 이런 부분을 따로 떼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부에서 ‘옥상옥(屋上屋)’이라고 해서 공수처가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강화하게 될 수도 있다, 또는 검찰의 업무와 중복된다고 반대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런 문제들은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으면 되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에는 새 정부에서 꼭 공수처를 도입했으면 합니다.
임수빈 저도 공수처 설치에 찬성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생길 때 대법원이 엄청나게 반대했거든요. 근데 헌재가 생기면서 양쪽 모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어요. 검찰은 전국 조직인데, 그와 달리 헌법재판소처럼 딱 본부조직만 갖춘 공수처를 만들어서…… 상징적이라도 좋아요. 검사를 상대로 수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검사들이 자꾸 자기들만의 성 안에서 안주하려고 할 거예요. 검찰에 뭔가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고 공수처가 그런 기능을 충분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근용 정변호사님이 인용하신 옥상옥이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 쓰는 표현인데 공수처를 두고 이 말을 법무부에서도 하고 그동안 비교적 개혁적이라고 봤던 몇몇 정치인들도 하길래 저희가 이건 옥상옥이 아니라 ‘옥외옥(屋外屋)’이라고 설득하려 하고 있습니다.(웃음) 새 정부라고 대통령 혼자서 법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국회를 통과해야 되는데, 강경한 반대의 벽을 어떻게 뚫을지가 큰 관건이겠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가 반대하고 있고요, 유승민 후보는 찬성이지만 바른정당 당론으로는 지난 2월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석진환 당시에 바른정당 의원 삼십여명 중에 두명인가 빼고는 다 찬성이었어요. 그런데 반대한 둘 중 한명이 권성동 의원이었던 거죠. 서른몇명이 한 사람을 못 넘어요, 법사위원장이니까. 검사 출신들이 국회에 가면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일치단결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수처를 도입하려면 정부 초기에 최대한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초반에는 의지만 가지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국회에서 맞붙게 되는 법안들이 많이 있을 테니 이 사안은 타협을 통해서 결론 낼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박근용 법무부도 탈검찰화해야 하지만 법사위도 그렇게 되어야죠. 물론 검사직을 경험한 사람의 전문성이 법사위에서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너무 그쪽만 많이 들어가면 문제이거니와 근본적으로 법원도 견제하고 검찰도 견제해야 하는 국회의 법사위원장을 검사 출신이 맡는 것은 국회 스스로 위신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키를 검사 출신 법사위원장이 잡고 있어서 연내에 국회에서 이게 통과될지 국민들의 관심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석진환 여론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어쨌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국회도 계속 막무가내로 저항하기는 어려울 걸로 봅니다.
박근용 기대해보겠습니다. 막바지에 제가 한가지 사안을 덧붙이면,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말할 때 정치적으로 청와대로부터 검찰을 떼내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그럼 그렇게 떼놓고 나서는 누가 검찰을 견제하느냐의 문제가 남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법사위도 그런 기능을 간접적으로 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진전된 직접적인 방법으로 지방검찰청장, 즉 검사장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좀더 중장기적인 과제이기도 하니 오늘은 제가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로 하고 다른 자리를 기약해보려 합니다.
그럼 끝으로, 지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데 정부에 대한 당부를 비롯해 한말씀씩 청하고 마치겠습니다.
임수빈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대통령 중에는 분명히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주려고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어떻게 보면 원래 사람을 안 믿는 거잖아요. 제도화라는 부분을 꼭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석진환 제가 아까 서두에서 사개추위 논의를 겪어봤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 2년 가까이 논의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가서 잠들어버리고, 제대로 시행된 건 몇가지 없어요.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의 과정도 굉장히 지난했습니다. 두꺼운 ‘사개추위백서’ 두권 보면서 뭐가 문제였는지 리뷰하고, 마음 단단히 잡고 추진하지 않으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이 개혁은 의지를 가지고 최대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지, 다른 문제에 넋 놓고 있다보면 절대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정연순 검찰권력을 무소불위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절대적인 권력은 국민뿐 아니라 그 조직과 구성원 본인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검찰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당연히 그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이 행복해지겠지만 동시에 당사자인 검사도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나는 검사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관객들도 박수쳐주지 않습니까. 현실에서도 검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검사들이 일하는 조직으로 재탄생되어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당장 달콤한 듯한 권력을 놓는 것이 아쉽고 뭔가 허전할지 몰라도, 새 정부를 계기로 검찰도 과거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먼저 나서주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박근용 오늘의 대화가 새로운 대통령을 비롯해 정책을 마련하는 사람들, 그리고 검찰개혁에 대해 관심 가지고 여론을 형성할 시민들에게 두루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2017.4.25. 창비서교빌딩)